이글루스/유식학의 중심사상(묘주스님), 여래장사상의 실천적 이해(정호영), 정토사상의 핵심사상 연구 강 동 균,《摩訶止觀》의 十乘觀法 차 차 석, (2024)

유식학의 중심사상(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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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학의 중심사상

묘주

Ⅰ. 유식사상의 성립

1. 유식의 언어적 분석

2. 유식사상의 성립 배경과 시대 구분

3. 교의체계와 주요 경론

Ⅱ. 心識論

1. 팔식의 역동적 구조

Ⅲ. 三性·三無性의 중도설

1. 세 가지 자성

2. 삼성의 관계

3. 세 가지 無自性

4. 삼성·삼무성설의 의의

Ⅳ. 수행문-五位 수행과 轉識得智

1. 轉依

2. 五位의 수행단계

3. 證果-대열반과 대보리

유식학의 중심사상

Ⅰ. 유식사상의 성립

석존(釋尊)의 교설 자체는 변함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불교의 교의(敎義) 체계는 역사적으로 시대상황에 맞추어 중관학(中觀學)·유식학(唯識學)·밀교학(密敎學) 등 몇 번 새로운 방법론으로 전개되었다. 그 양상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 선구적인 수행자들의 체험적인 자각이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둘째, 새 이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근본 전제 내지 방향이 어디까지나 깨달음[自覺覺他]을 위한 수행의 이론적 토대였다.

인도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의 선구적인 유가사(瑜伽師, 요가 수행자)의 선정에서의 지각인 '유식(唯識)에 바탕을 둔 현상계의 모든 것은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다(sarvam vijnaptimatram).'라는 명제는 이 학파 학설의 바탕을 이룬다. 현상세계는 인식의 주체인 식(識)이 대상의 모습을 띠고 나타난 표상식으로 존재할 뿐이고, 대상세계는 결코 식을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각된 그대로 외계에 실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을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이라고 한다. 진실로 각자(覺者)의 눈으로 보면 이 세계는 식의 사현(似現)이고 표상일 뿐 실재하지 않으며 꿈과 같은 환상이다. 그러나 무명(無明)에 싸여 주관과 객관의 대립 속에 사는 일반인들은 이 세계가 지각되는 그대로 실재한다고 믿는다. 유식사상은 이러한 아집과 법집을 타파하고, 업식(業識)을 반야의 지혜로 전환하고자 한다. 이처럼 업식 반야의 무분별지혜, 즉 전식득지(轉識得智)가 바로 유식학의 근본 취지[大意]이다.

1. 유식의 언어적 분석

우선 유식이란 용어의 언어적인 분석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유식(唯識, vijnaptim-atra)의 말뜻은 '(현상계는) 오직 표상식(表象識)일 뿐'이다. 이것은 외부대상이 가유(假有)로 존재할 뿐, 실체가 없으며, 나아가 인식의 주체도 실체가 없는 공(空)임을 나타낸다.

그런데 한역경론(漢譯經論)에는 vijnana와 vijnapti를 다같이 식(識)으로 번역하는데, 실은 유식학파의 사상적 배경을 갖는 단어로서 의미의 차이가 있다. vijnana는 '식별작용' '식별작용을 지닌 주체'의 의미로서 육식(六識)·팔식(八識) 등의 경우에 사용. vijnapti는 '둘로 나누어(분별하여) 알게 된 것'이라는 뜻으로서, 인식대상이 인식상황 속에서 객관적 형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상태, 활동태로서의 식이며 '유식(唯識)' 등의 경우에 사용된다.

2. 유식사상의 성립 배경과 시대 구분

인도불교사에서 유식무경설(唯識無境說)과 아뢰야식연기설이 주창되고 유가유식학파(瑜伽唯識學派)가 성립된 배경으로는 크게 ① 요가 수행자[Ψ伽師]의 체험과 그 이론화 ② 중도사상의 재천명을 들 수 있다.

종교상의 이론이 새롭게 형성되는 큰 요인은 선구적인 수행자들의 체험적인 자각이다. 유가유식학파의 선구적인 유가사들은 선정을 닦는 과정에서의 자각적인 체험, 즉 ① 선정 관행(觀行) 중의 갖가지 영상은 다만 식(識, vijnapti)일 뿐이라는 자각 ② 부파불교 이래 추구되던 윤회의 주체이며 현상계를 형성하는 아뢰야식의 구명 ③ 부파불교시대부터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구명하려는 과정에서 말나식 연구를 바탕으로 유식무경설을 주창하고 하나의 학파까지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과 말나식을 덧붙이고 정교한 팔식(八識)이론을 주창했다. 이 아뢰야식과 말나식의 식체(識體)는 유가유식학파에 들어와서 비로소 발견된 것이라기 보다는 종래의 의식(意識)의 개념과 기능을 확대하고 분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새로운 명칭으로 주장되는 아뢰야식과 말나식이 결코 석존(釋尊)이 설하신 심의식설(心意識說)에 위배되는 것이 아님을 밝히기 위하여, 초기불교시대부터 설해진 심(心)·의(意)·식(識)에서 아뢰야식을 심, 말나식을 의, 육식을 식에 각각 배당시켰다. 그리하여 인간의 정신현상과 성불의 과정을 체계적이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게 되었다.

또한 교단사적으로 중도사상을 다시 천명할 필요성이 크게 대두되었다. 유식논사들은 설일체유부의 유적(有的) 사유체계뿐만 아니라, 반야공 사상을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일부 악취공자(惡取空者)들의 오류를 시정하는 삼성·삼무성의 유무중도설을 주장하여 석존의 중도사상을 재천명하였다.

이상과 같은 배경 위에서 유식사상이 성립되었으며, 그 전개과정의 시대구분은 초기·중기·후기로 나뉜다. 초기 유식학은 미륵(Maitreya)·무착(無着, Asanga, 395∼470년 경)·세친(世親, Vasubandhu, 400∼480년 경)의 유식학설이고, 중기 유식학은 안혜(安慧, Sthiramati, 510∼570년 경)·호법(護法, Dharmapala, 530∼561년 경) 등 십대논사(十大論師)의 학설을 말한다. 후기에는 진나(陳那, Digna-ga, 480∼540년 경)와 법칭(法稱, Dharmakirti, ∼650∼) 등이 인식문제를 논리적으로 연구하여 바른 인식의 본질과 방법 등을 불교적 입장에서 연구하여 불교 인식논리학파(Buddhist logicoepistemological school)라고 불리운다.

3. 교의체계와 주요 경론

유식학의 교의체계는 크게 다음 세 부문으로 구성된다.

① 심식설(心識說)과 아뢰야식연기설-아뢰야식설, 종자설, 말나식설, 육식설, 심소설(心所說), 식전변설(識轉變說), 사분설(四分說) 등.

② 삼성중도설(三性中道說)-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의 삼성과 삼무성(三無性)의 비공 비유(非空非有) 중도설.

③ 유식관법(唯識觀法)의 오위수행과 전식득지(轉識得智) 지관법(止觀法), 오위설(五位說), 전식득지(轉識得智).

모든 교의(敎義)의 체계는 크게 이론문과 실천문으로 나뉘는데, 유식학에서는 ①②가 이론문이고, 그것을 이론적 토대로 해서 ③의 실천문이 전개된다.

유식학의 소의경론(所依經論)으로는 6경 11논을 든다. 이 중에서 유식학의 근본경전(所依經典)은 《해심밀경(解深密經)》이고, 인도에서 찬술된 주요 유식논서로는 미륵의 《유가사지론(Ψ伽師地論)》, 무착의 《섭대승론(攝大乘論)》, 《현양성교론(顯揚聖敎論)》, 세친의 《대승백법명문론(大乘百法明門論)》, 《유식삼십송》, 호법 등의 《성유식론(成唯識論)》 등이 있다.

Ⅱ. 心識論

1. 팔식의 역동적 구조

유식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식별작용의 주체[心王]와 그에 수반되는 심리작용[心所]으로 나눈다. 전자에 팔식(八識)이 있고, 후자에 51가지 심소가 있다. 또한 존재구조면에서 팔식은 전식(轉識)과 근본식으로 나뉘어 설명된다. 전식은 아뢰야식의 등류습기(等流習氣)에서 전변(轉變) 생기(生起)된 식으로서 오식(五識)·제6 의식·제7 말나식이 이에 해당된다. 근본식은 칠식의 근본이 되는 식으로서 아뢰야식이다. 제8 아뢰야식을 초능변식(初能變識), 제7 말나식을 제2능변식(第二能變識), 의식·오식의 육식(六識)을 제3능변식(第三能變識)이라고 부른다.

1) 전식(轉識)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을 통틀어 오식 또는 전오식(前五識)으로 부르는데, 그것은 오식이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안식은 눈, 이식은 귀 등 감각기관[根]에 의지해서 외부대상을 감각적 직관적으로 인식한다. 둘째, 감각기관에 의지하기 때문에 각자 자기 영역만을 고수한다. 예를 들면 안식은 빛깔과 형체만을 인식하지 소리를 인식하는 일은 없다. 셋째, 현재 각 감각기관에 대면하고 있는 대상을 인식할 수 있어서 시간적·공간적으로 한계성을 지닌다. 넷째, 현량지(現量知)로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요별할 뿐 여기에 사량분별이 가해지지 않는다.

의식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오식이 각자 자기 영역을 고수하는 데도 실제로는 종합적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제6 의식이 오식의 내용을 종합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의식은 기억·회상·추리·상상 등의 작용을 한다.

범부가 본능과도 같은 집요한 자기 집착심을 갖게 되는 근본원리는 무엇인가? 유식학에서는 제7 말나식이 제8 아뢰야식을 의지처로 하고 동시에 그것을 인식대상으로 해서 자아로 착각하고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2) 근본식

근본식을 아뢰야식(alaya-vijnana)·이숙식(異熟識, vipaka-v.)·일체종자식(一切種子識, sarvabijaka-v.)·아타나식(阿陀那識, adana-v.) 등으로 부르는데, 이중에서 아뢰야식이라는 명칭이 보편적이다. alaya는 '저장' '집착' '무몰(無沒)'의 뜻이다. 이 식에 종자를 `저장'하고, 말나식에 의해 상주불변의 자아로 착각 '집착'되며, 아득한 옛적부터 성불에 이르기까지 이 식의 흐름이 결코 단절되지 않기 때문이다.

아뢰야식은 어떤 작용을 하는가? 첫째, 모든 잡염법의 저장소 역할을 한다. 즉 모든 인식과 행위의 결과가 종자(種子, bija)로서 이 식에 저장된다.

둘째, 윤회의 주체이다. 윤회과정에서 이 식이 모태에 들어가 최초의 생명체[ 羅藍]가 형성되고 신체의 각 기관이 만들어지면서, 이 식에 저장되어 있던 등류습기로부터 점차 오식·의식·말나식이 전변 생기되어 팔식의 구조를 갖추게 된다.

셋째, 종자와 신체의 작용을 유지[執受]하는 근원적인 생명체이다. 아뢰야식에 의해서 신체가 헐지 않고 그 기능이 유지된다. 감각기관·신경계·순환계 등의 작용, 신진대사 등 갖가지 생리적인 기능들이 아뢰야식에 의해서 유지된다. 정신과 신체는 상호작용하며 이것을 안위동일(安危同一)이라고 한다. 물론 이러한 유기적인 관계에서 주도권은 정신에 있다.

넷째, 종자와 신체를 생리적으로 유지하는 동시에 그것을 인식대상으로 하며, 또한 외부적으로 자연계[器世間]도 대상으로 인식작용을 한다. 꿈에 의해 앞일을 예측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아뢰야식의 이 기능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전식(칠식)과 근본식(아뢰야식)의 관계는 파도와 물로 비유된다. 마치 파도가 물을 떠나서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듯이, 전식은 그 생기(生起)의 원인인 근본식에 의지한다. 전식과 근본식은 다음과 같은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첫째, 식의 구기성(俱起性)이다. 오식이나 의식이 작용할 때는 항상 말나식과 아뢰야식이 함께 생기한다. 둘째, 팔식은 종자를 매개로 해서 상호인과(相互因果)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3) 종자(種子)

인간은 누구나 본성적으로 불성(佛性)의 존재이며, 현실적으로 팔식(八識)·심소(心所) 등 역동적(力動的)인 정신구조를 갖춘다. 그런데 개인은 신체적 조건의 차이는 물론이고, 인지능력·정서·성격 등 정신기능면에서 개인차(個人差)를 보인다. 그러한 개인차는 어떻게 생겨나며, 무엇이 정신현상의 작용인(作用因) 역할을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하여 유식학에서는 종자설로써 해명한다. 개인은 일상생활에서 여러 외부 상황에 처하면서 지각하고 판단·사유하며, 갖가지 감정이 교차되고,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선·악·무기(無記)의 업(業)을 짓는다. 이러한 정신적·신체적 행위의 결과가 아뢰야식 속에 습기(習氣, vasana)의 형태로 이식(移植) 저장된다. 이것을 종자(種子, bija)라고 하며, 여러 유식논서에서 종자의 속성과 종류 및 기능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찰되어 있다 종자는 단순한 생리학적 저장물이 아니다. 그것은 '특수한 정신적 힘, 에너지(功能差別)'로서, 정신현상의 주체와 작용이 발생 존재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종자가 종자로서의 기능을 발휘하려면 어떤 속성을 갖추어야 하는가?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육의(六義)로써 설명된다. 즉 종자는 고정적으로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순간순간마다 생기소멸하면서 지속되고[刹那滅義], 종자가 현행(現行)하여 심리 인식작용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그 결과가 종자로서 훈습되는 순간은 동시적으로 이루어진다[果俱有義]. 선·악의 종자는 한 부류로 상속하여 전후찰나에 성질이 바뀌거나 단멸되지 않으며[恒 轉義], 선·악·무기를 일으킬 힘이 결정되어 있다. 선종자에서 악의 결과가 현행된다거나, 악의 종자에서 선의 결과가 현행되는 경우는 결코 없다[性決定義]. 종자는 선·악 등의 성질이 결정되어 있지만, 그것이 현행되려면 중연(衆緣:作意·根·境 등)과 화합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이시인과(異時因果) 관계는 이루어지더라도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의 동시인과(同時因果) 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待衆緣義]. 종자는 오직 자기의 결과만을 발생시킨다[引自果義]. 모든 종자는 이 6가지 속성을 갖추어야 비로소 종자로서의 작용이 가능해진다. 다만 순간순간 반드시 6가지를 구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여러 순간에 함께 구비한다.

그런데 종자는 본래부터 있는 것인가, 아니면 훈습에 의해 비로소 존재하는가? 이에 대해서는 종자 본유신훈병유설(本有新熏竝有說)이 정설로 인정된다. 종자는 본성에 원래부터 갖추어진 것도 있고, 새롭게 훈습력에 의해 저장되고 성장된다는 것이다. 본유(本有)이므로 유위무루(有爲無漏)종자의 존재가 가능하고, 신훈이므로 칠전식(七轉識)과 아뢰야식의 인과관계가 성립된다.

또한 종자가 정신현상의 작용인(作用因) 역할을 하는 것은 어떤 작용원리에 의해서인가? 유식학에서는 훈습(熏習)과 현행(現行)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훈습은 7식이 아뢰야식에 새로운 종자를 이식시키고, 본래 있는 종자를 생장(生長)케 하는 작용이다. 현행은 종자가 아뢰야식 속에서 순간순간 생멸하면서 성숙되어 생연(生緣)을 만나 생기한다. 이 과정은 종자 자체의 힘만으로는 안 되며, 7식과 아뢰야식·심리작용[心所]·감각기관[根]·환경요인[境]의 유기적인 작용에 의해 비로소 가능하다. 이와 같이 종자생현행(種子生現行)·현행훈종자(現行熏種子)·종자생종자(種子生種子)의 유기적인 순환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개인차가 나타난다.

4) 심리작용[心所]

우리의 정신작용을 객관적으로 분석해 보면 식별작용 이외에 참으로 갖가지 심리작용들이 교차됨을 알 수 있다. 식별작용의 주체를 심왕(心王:8식)이라 하고, 심왕에 수반되는 심리작용을 심소(心所)라고 한다. 유식학에서는 변행심소(5가지)·별경심소(5가지)·선심소(11가지)·번뇌심소(6가지)·수번뇌심소(20가지)·부정심소(4가지)의 51가지 심소를 인정한다.

① 변행심소(遍行心所)는 팔식에 언제나 상응하여 함께 작용하는 보편적인 심리작용이다. 이 심소는 선·악·무기의 모두에 함께 일어나고, 삼계 어디에서나 작용하며, 유심무심(有心無心)의 모든 순간에 일어나고, 이 다섯 심소는 반드시 함께 일어난다. 이에 촉(觸)·작의(作意)·수(受)·상(想)·사(思)의 5가지가 있다.

② 별경심소(別境心所)는 6식의 대상 인식과 관련해서 `지향성(指向性)'의 속성을 띤다. 대상에 따라 하나 둘 내지 다섯 가지가 함께 일어난다. 이에 욕구[欲]·승해(勝解)·기억[念]·집중[定]·혜[慧]의 5가지가 있다.

③ 선심소(善心所)는 마음의 적절한 순간에 일어나는 보편적으로 선한 심소이다. 이에 믿음[信]·참(慙)·괴(愧)·무탐(無貪)·무진(無茂)·무치(無癡)·정진[勤]·경안[安]·불방일(不放逸)·행사(行捨)·불해(不害)의 11가지가 있다.

④ 번뇌심소(煩惱心所)는 보편적으로 악한 심리작용으로서, 식(識)을 오염시키고 이로 인해 생사윤회의 고해에 잠기게 한다. 이에 탐욕[貪]·성냄[茂]·어리석음[癡]·거만[慢]·의심[疑]·악견(惡見) 등 6가지가 있다.

⑤ 수번뇌심소( 煩惱心所)는 근본번뇌심소의 작용에 의해 같은 부류로서 이끌려 일어나는 번뇌심소이다. 이에 분노[忿]·원한[恨]·덮음[覆]·고뇌[惱]·질투[嫉]·인색[ ]·속임[ ]·아첨[諂]·해(害)·방자함[ ]·무참(無慙)·무괴(無愧)·들뜸[掉擧]·혼침[ ]·불신(不信)·게으름[懈怠]·방일(放逸)·실념(失念)·산란(散亂)·부정지(不正知)의 20가지가 있다.

부정심소(不定心所)는 그 체성이 선(善)도 염오(染汚)도 아니고, 선·악·무기의 모든 심소와도 상응하여 삼성(三性)이 될 수 있다. 이에 뉘우침[悔]·수면[眠]·심구[尋]·사찰[伺]의 4가지가 있다.

그러면 심왕과 심소의 작용의 차이는 어떠한가? 구체적인 인식상황 속에서 심왕은 대상의 전체적인 윤곽을 취하고, 심소가 구체적인 모습들까지 취함으로써 전체적인 대상 인식작용이 가능해진다. 대상에 대하여 고(苦)·락(樂)·사(捨) 등의 감정을 일으키고, 대상을 선택하며, 선·악 등의 업을 짓게 한다. 팔식과 51심소는 체(體)를 달리하며 상응(相應)하여 구기(俱起)한다. 팔식과 51심소의 상응관계를 살펴보면, 아뢰야식에는 5변행심소가 상응한다. 말나식에는 5변행심소, 4번뇌, 수번뇌심소 중에서 혼침·들뜸·불신·게으름·방일·실념·산란·부정지, 별경심소 중에서 혜(慧) 심소의 18심소가 상응한다. 의식에는 모든 심소가 상응할 수 있고, 오식에는 5변행심소, 5별경심소, 선심소 11, 번뇌심소 중에서 탐욕·성냄·어리석음, 수번뇌심소 중에서 무참·무괴·들뜸·혼침·불신·게으름·방일·실념·산란·부정지심소 등 34심소가 상응한다.

이상과 같이 정신세계는 팔식(八識)과 그에 상응하여 수반되는 51가지 심소로 이루어진다. 팔식은 역동적으로 작용하며, 개별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함께 일어난다. 오식은 대면하는 대상에 따라 하나 또는 여러 가지가 함께 일어나는 데 반하여, 의식·말나식·아뢰야식은 항상 함께 일어난다. 그리하여 팔식은 종자를 매개로 상호인과관계 속에서 작용한다.

Ⅲ. 三性·三無性의 중도설

범부들이 흔히 집착과 미망의 세계를 사는 근본원인은 무엇이고, 그러면서도 현실에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는 무엇인가? 이러한 존재·인식·깨달음의 문제들에 관하여 유식학에서는 삼성·삼무성설로 설명한다. 삼자성(三自性)은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이고, 삼무자성(三無自性)은 상무자성성(相無自性性)·생무자성성·승의무자성성이다. 유식교학에서 삼성·삼무성설은 현상계와 본체계를 포함하여 모든 존재양식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1. 세 가지 자성

1) 변계소집성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parikalpita-svabhava)에서 변계(遍計)는 이리저리 헤아리고 억측한다[周遍計度]는 뜻이고, 소집(所執)은 두루 계탁함으로써 잘못 보이는 집착된 대상을 가리킨다. 그것은 일체법의 가명안립(假名安立)으로서 자성을 차별하고 언설을 일어나게 하는 것, 즉 언어에 의해 가립되고 언어에 의해 파악되는 존재형태이다. 변계소집의 원인에 대해서 그리하여 유식학에서는 미혹의 근원을 특히 명칭이나 언설 위에서 찾는다. 변계소집성은 명칭에 의해 가정적으로 안립된 양상이면서 언설을 일으키기 때문에, 그 언설에 의해 가정적으로 안립된 자성차별이다. 그것은 명칭·언설에 의한 영상(影像)·환상이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는가? 대상을 인식할 때 각자(覺者)의 지혜(jnanana)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직관하지만, 범부의 식(識, vijna)은 주객 대립의 인식상황 속에서 선입견 등의 영향을 받는다. 즉 식이 객관으로서의 식[相分]과 주관으로서의 식[見分]으로 분화되어 표상작용을 일으키고(vijnapti), 여기에 식의 구기성(俱起性)으로 인해 아뢰야식의 습기의 영향 속에서 인식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변계소집성은 이러한 허망된 분별에 의해 실체[實我實法]로 착각되고 집착되어진 것이다.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임시적인 존재[假法]이며 상주불변하는 실체는 없다. 그런데도 범부들은 미혹하여 허망된 견해를 내어 마음 밖에 실법(實法)이 존재하는 것으로 허망되게 집착한다. 변계소집성은 범부들의 허망된 견해에 의해 인연소생의 가아가법(假我假法) 위에 오인되어진 실아실법(實我實法)에 대한 미혹된 집착이다. 실제로는 전혀 실체가 없는 다만 공허한 환영(幻影)과 같은 것이어서 체성이 전혀 없다.

그러면 변계소집을 일으키는 주체[能遍計]와 대상[所遍計]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성유식론》에서는 제6식과 제7식만이 능변계가 있다고 한다. 말나식이 아뢰야식을 대상으로 실아(實我)로 착각하고, 의식이 오온을 대상으로 또한 실아로 착각한다. 의식은 외부대상을 두루 분별해서 선·악·무기의 삼성으로 인식 집착하기 때문이고, 말나식은 아뢰야식을 실아로 착각 집착하기 때문이다.

변계의 대상은 이러한 계탁 작용에 의해 실재하는 것으로 집착되어지는 대상, 즉 사현된 자아[似我]와 사현된 법[似法]이다. 분별망집은 인연으로 생겨난 존재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소변계는 의타기성이다. 즉 의타기의 법, 즉 오온·십이처·십팔계 등의 인연소생법이다. 변계소집성은 소변계가 능변계의 식 위의 상분으로 떠올라 있을 때, 그것이 마음 밖에 실유(實有)한다고 미혹되게 집착하여, 그 허망된 생각 앞에 나타나는 실아실법의 허망된 모습이다.

2) 의타기성

의타기성(依他起性, paratantra-svabhava)은 다른 것에 의지해서 생겨나는[依他起] 속성을 지니는 법의 양상을 말한다. 그것은 일체법의 연생(緣生)의 자성, 즉 인연소생법(因緣所生法)이다.

참으로 현상계의 모든 법은 인연화합에 의해 생겨난 것이지 자연생(自然生)이거나 독존적(獨存的)인 것은 없다. 그 어떤 존재도 자기자신에 의해서만 존재하거나, 자신과는 전혀 별개인 존재가 그것을 생겨나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의타기성은 변계소집성처럼 체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나, 인연소생법이므로 상주실유(常住實有)가 아니고 세속제에서 그 존재성이 인정된다.

삼성 중에서 의타기성에 대한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변계소집성과 원성실성이 바로 의타기성 위에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식학에서 의타기성은 결국 아뢰야식을 기반으로 하는 팔식을 가리킨다. 유식학은 식일원론의 입장이기 때문에, 경험세계가 성립하는 기체(基體)로서의 식을 유일한 연기법 즉 의타기성으로 부른다. 그리하여 《섭대승론》에서는 "무엇이 의타기성인가? 아뢰야식을 종자로 하고 허망한 분별에 포섭되는 모든 식이다." 라고 설명한다. 《성유식론》에서는 더 나아가서 "여러 가지 연(緣)으로 생기한 심왕(心王)·심소(心所)의 자체와 상분·견분 그리고 유루·무루가 다 의타기성이다." 라고 한다.

참으로 현상은 연기법에 의해 존재한다. 단순히 `눈 앞의 책을 바라본다'는 하나의 인식이 성립하는 데도 대상[책]·감각기관[눈]·인식주체[識] 등 여러 요소가 인연관계에 있다. 여기서 인식주체를 세분하면 안식·의식·말나식·아뢰야식이 구기(俱起)하고, 이에 여러 심소들이 상응하며, 심왕과 심소의 분화(상분·견분·자증분 등), 그리고 아뢰야식 안의 종자의 현행 등 여러 가지 인연관계가 있다.

후대에는 의타기성을 오위백법(五位百法) 가운데 심왕법(心王法)·심소법(心所法)·색법(色法)·불상응행법(不相應行法)의 4위 94법을 포섭시켜서 설명하기도 한다

3) 원성실성

원성실성(圓成實性, parinispanna-svabhava)은 원만성취실성(圓滿成就眞實性), 즉 원만히 성취되어 있는 참다운 성품의 법의 양상을 말한다. 현상계의 모든 법의 본체인 진여이다. 진여는 모든 법에 두루하고[圓], 체성이 상주불변하여 항상 변함없이 성취되어 있으며[成], 모든 법의 진실한 체성이어서 허망된 법이 아니다[實]. 이것은 '이미 완전하게 성취되어 있는 것', 즉 지금은 미완성인데 앞으로 완성된다는 뜻이 아니라, 아득한 옛적부터 이미 완성되어 있다.

변계소집성은 단순한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그 체(體)도 상(相)도 없는 무상법(無相法)이다. 변계소집성이 단멸하면, 잡염의 의타기성은 그 모습이 소멸되어 집착할 것이 없는 청정한 모습이 나타난다. 그 청정상이 바로 원성실성이다. 즉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이 영원히 없어진 것을 말한다.

현상계의 모든 법은 인연소생의 의타기성이고, 그것에 두루 계탁하는 번뇌의 구름이 걸려 있을 때 그 구름이 변계소집성이고, 의타기성은 번뇌의 구름에 오염된 잡염의 의타기성이다. 따라서 그 번뇌의 구름이 소멸될 때 잡염의 의타기성은 본래의 청정한 의타기성으로 돌아간다. 그 청정한 의타기성이 그대로 원성실성이다.

원성실성은 진공묘유(眞空妙有)의 경계이다. 원성실성을 오위백법 중에서 말하면 6가지 무위법이 이에 포섭된다. 그런데 이것은 유위무위문(有爲無爲門)에 의한 것이고, 유루무루문(有漏無漏門)에 의해 논하면 의타기성의 유위법 중에서 무루법이 아닌 무루유위법(無漏有爲法:道諦)도 원성실성이다.

2. 삼성의 관계

삼성은 각각 자기 동일성을 띤 개별적인 존재형태가 아니라, 우리들의 관련 방식에 따라 나타난 세 가지 존재형태이다. 환술에 의해 나타난 환상의 사물을 진짜 사물로 여기는 가립을 여셀 때, 그 환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환상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아차린다. 즉 변계소집성은 '가설(假說)된 것'이고, 의타기성은 '가설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우리들은 아득한 옛적부터 의타기의 자성 위에 집착해서 아법(我法)을 분별하고 자아·법의 모습을 띤 제법의 종자를 심식에 훈습시켜 왔기 때문에, 그 습성에 의해 자아·법에 비슷하게 잡염의 의타기성을 일으킨다. 그 생기된 잡염의 의타기성에 다시 잠재의식에 의해 전도의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에, 의타기성과 변계소집성은 다시 서로 연(緣)이 되어 생사에 전전(展轉)히 상속하여 끊어짐이 없다. 청정한 눈을 지닌 사람의 눈에 여러 안질의 증상들을 멀리 여의고 어지러운 경계가 항상 없는 것 같은 것이 원성실성이다.

삼성의 이러한 성격을 《해심밀경》에서 비유하기를, 마치 깨끗한 수정(水晶, 頗 迦寶)은 청색과 만나면 제청(帝靑)·대청(大靑)의 마니주처럼 보이고, 적색과 만나면 호박의 마니주처럼 보이며, 황색과 만나면 금상(金像)처럼 보인다. 이때 마니주나 금상이 변계소집성이고, 수정이 의타기성이며, 수정의 실성(實性)에 마니주나 금상과 같은 모습이 항상 없는 것이 원성실성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의타기성에서 변계소집성을 멀리 여의면 잡염된 의타기성이 청정한 의타기성으로 전환되며, 그 청정한 의타기성이 그대로 원성실성임을 밝힌다.

삼성에 대하여 《섭대승론》에서는 흔히 인용되듯이 뱀·노끈·삼의 비유로 설명한다. 어두운 밤에 두려움을 느꼈을 때에 길가의 노끈을 보고 뱀으로 잘못 알았을 때에 그 오인된 뱀의 모양이 변계소집성이고, 뒤에 자세히 보고서 노끈인 줄 안 것은 의타기성이다. 그리고 다시 생각하기를 사실 노끈이란 것도 실체가 아니고 다만 여러 인연이 화합된 가유(假有)의 모습이며 그 자체는 삼(麻)이라고 아는 것이 원성실성이다. 이처럼 우리는 원성실성의 진여 위에 인연화합으로 생기된 의타기성의 법[心內所顯]에 대하여 아(我) 또는 법으로 집착하여 실아실법(實我實法)으로 착각하여 마음 밖에 실재한다고 오인한다.

오염된 의타기자성이 청정하게 될 때 그것이 그대로 원성실자성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삼성은 자체를 달리 해서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의타기성[識]과 원성실성[眞如]은 비일비이(非一非異)의 관계이다. 이것은 곧 번뇌 집착이 있는 우리들의 심식이 진여·무분별지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원리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과 희망을 준다.

3. 세 가지 無自性

삼무자성(三無自性)은 삼성에 갖추어져 있는 이면의 무자성을 나타내 보인 것이지, 삼성 이외에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비유하면 상무자성성은 허공의 꽃과 같고, 생무자성성은 환상과 같으며, 승의무자성성은 허공과 같다고 말해진다. 미(迷)와 오(悟)의 일체법을 유(有)의 측면에서 변계소집성·의타기성·원성실성의 삼자성으로 분류함에 대하여 공의 관점에서 상무자성성·생무자성성·승의무자성성의 삼무자성으로 안립한다.

상무자성(相無自性, -性)은 변계소집성의 존재성 부정이다. 변계소집성은 그 자체도 없고 그 상(相)도 없는 무자성이다. 변계소집성은 가명의 안립으로 상(相, laksana)을 삼은 것이지 자상의 안립으로 상을 삼은 것이 아니므로 상무자성성이다. 허망분별[識]에 의해 가상된 것이므로 허공의 꽃처럼 실재성이 없음을 말한다.

생무자성(生無自性, -性)은 의타기성의 존재성 부정이다. 생무자성성에서 생(生)은 인연소생(因緣所生)의 뜻이다. 의타기성은 중연(衆緣)으로 이루어진 법이며 자연생(自然生)이 아니므로 생무자성성이다. 유식학에서 의타기성은 결국 팔식을 가리키는데, 현재의 심식(心識)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업의 습기와 현재의 여러 가지 연(緣)의 세력에 의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실재성이 없다.

승의무자성(勝義無自性, -性)은 원성실성이 모든 법의 승의제이고 자성없는 성품이 나타난 바[無性所顯]의 진성(眞性, 理)인 것을 말한다. 변계소집의 자아·법을 멀리 여읜 곳에 나타나는 바, 뛰어난 무분별지혜의 대상인 진여의 공적이체(空寂理體)이므로 승의(勝義, paramartha)라고 한다. 여기서 `자성없는 성품이 나타난 바[無性所顯]'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 진여가 만법의 근원으로서 상(常)·낙(樂)·아(我)·정(淨)의 덕을 갖추고 있는 뛰어난 존재성[勝義]이면서, 인연에 의해 이로부터 현상계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둘째, 실천 증득의 면에서 볼 때, 의지처의 전환[轉依]과 동시에 법계가 중생에게 현성(現成)함을 말한다.

4. 삼성·삼무성설의 의의

1) 중도설의 재천명

유식학에서는 반야공(般若空)의 논리가 중관학파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된다. 즉 일부 중관학자들의 악취공견(惡取空見)을 시정하기 위해 공성(空性)이 성립하는 장(場)으로서의 식(識)의 존재성을 인정한 바탕 위에서 공의 논리를 편다. 그리하여 중관학처럼 연기(緣起) → 무자성(無自性) → 공(空)의 방식이 아니라, 의타기성에 변계소집성이 항상 없을 때 그것이 바로 공이며 원성실성이라고 말한다.

《해심밀경》에서 삼성설은 공과 유(有)를 상대하여 중도의 이치를 나타내 보이는 현요설(顯了說)이고, 삼무성설은 공의 측면에서 법유(法有)의 집착을 없애고자 하는 밀의설(密意說)임이 누누이 강조된다. 삼성은 본래부터 분리된 것이 아니라 동일한 법 위에서 세 가지 방면으로 삼성의 차별을 가분(假分)하여 중도의 미묘한 이치를 나타내 보인 것이다. 변계소집성의 공[無],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의 존재성 위에서 비공비유의 중도설이 성립된다.

유식학의 삼성·삼무성설에 의한 비공비유(非空非有)의 중도설은 설일체유부 등 아비달마철학의 유적(有的) 사유체계뿐만 아니라 반야공(般若空)사상을 허무주의로 오해하는 일부 악취공자들의 오류를 시정하는 제3의 이론이 된다.

2) 전의(轉依)의 구조적 원리 제시

삼성·삼무성설의 시설목적 가운데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깨달음의 이론적 근거를 구체적·논리적으로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유식학에서 깨달음이란 전식득지(轉識得智), 즉 수행에 의해 중생의 무명업식(無明業識)을 반야의 지혜로 전환하는 것을 말하며, 그것은 전의(轉依)로서 이루어진다. 삼성·삼무성설은 전의에 의한 성불의 구조적 원리를 제시한다. 전의에 의해 번뇌로 오염된 식이 청정하고 분별이 없는 지혜로 전환된다.

3) 법상의 교판의 이론적 근거

중국불교계에서는 입교개종(立敎開宗)의 교리적인 근거로서 교상판석(敎相判釋)이 행해졌는데, 법상종에서는 《해심밀경》에 의거해서 삼시교판(三時敎判)을 세웠다. 즉 《해심밀경》의 <무자성상품>에서는 제법개공설(諸法皆空說)이 상무자성성과 승의무자성성에 의해 밀의(密意)로 말해진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제법개공설이 상무자성과 승의무자성에 의한 밀의설이라면, 반야교설은 전체적으로 밀의설로 된다. 그리하여 《반야경》을 제2 은밀륜(隱密輪)이라 하고 자신을 제3 현요륜(顯了輪)이라 한다. 또한 <무자성상품> 말미에 승의생보살이 석존 일대의 가르침에 삼시(三時)의 교설이 있음을 밝힌다. 이에 근거해서 인도 유가유식학파의 계현(戒賢, Silabhadra)논사는 유식학이 석존의 교설 중에서 최상의 법문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삼시교판의 원형을 세웠다. 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서 중국 법상종의 자은(慈恩)이 《대승법원의림장(大乘法苑義林章)》 제1권에서 제1시 유교(有敎)· 제2시 공교(空敎)·제3시 중도교(中道敎)의 삼시교판을 세웠다. 이처럼 삼성·삼무성설은 법상종에서 교판을 수립하는 데 교리적 근거가 되었다.

Ⅳ. 수행문 五位 수행과 轉識得智

1. 轉依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성불이며, 그것은 깨달음으로 성취된 진여 무분별지혜의 경지이다. 유식학에서는 깨달음을 성취하는 원리를 전식득지(轉識得智), 즉 현상계의 허망된 식(識)을 진여의 무분별지혜로 전환시키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전식득지는 전의(轉依)로서 이루어진다. 전의는 자기 존재의 기체(基體)를 허망한 상태(변계소집성)에서 진실한 상태(원성실성)로 질적으로 변혁시키는 과정, 또는 그 과정의 결과로 증득된 열반과 보리를 가리킨다.

전의(轉依, asraya-paravrtti)에서 '전(轉)'은 전사전득(轉捨轉得), 즉 번뇌장·소지장의 종자를 전환해서 버리고, 보리(菩提)와 열반을 전환해서 증득하는 것이다. '의(依)'는 전사전득(轉捨轉得)의 의지처[所依], 즉 의타기를 말한다. 전의는 의타기성인 팔식을 변혁시켜서, 번뇌장과 보리장의 종자를 소멸시키고 보리와 열반을 증득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번뇌에 오염된 팔식이 네 가지 지혜, 즉 아뢰야식은 대원경지, 말나식은 평등성지, 의식은 묘관찰지, 오식은 성소작지로 전환된다.

2. 五位의 수행단계

유식학에서는 자각각타(自覺覺他)의 길을 가는 보살의 수행 위계(位階)를 41단계로) 인정하고, 이것을 다음과 같은 오위에 배대한다.

① 자량위

자량위(資糧位)는 길고 긴 수행의 도정에서 재산이 될 양식을 저장하는 단계이다. 깨달음을 향한 수행의 출발에서 선우(善友)·작의(作意)·자량(資糧)·신해(信解)가 중시된다. 여기서 자량이란 복덕과 지혜를 가리킨다. 37보리분법과 육바라밀을 닦는 과정이다. 십주(十住)·십행(十行)·십회향(十廻向:제10회향의 住心까지) 등 삼십위의 단계이다. 그런데 이 단계에서는 지말적인 번뇌는 정화할 수 있어도 근본번뇌는 정화되지 않으며, 능취(能取)와 소취(所取)가 남아 있다.

② 가행위

가행위(加行位)는 수행심을 더욱 경책하여 정진을 가행하도록 하는 단계로서, 제10회향의 만심(滿心)에서 네 가지 선근(난위·정위·인위·세제일위)을 닦는다. 난위(煖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관찰하고[下品의 尋思觀], 정위(頂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관찰한다[上品의 尋思觀]. 인위(忍位)에서는 대상이 공함을 인가하고, 인식주체도 공함을 관찰하여 인가하고[下品의 如實智觀], 세제일위(世第一位)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공함을 둘다 인가한다. 집착심과 차별심을 발생하는 능취와 소취의 번뇌가 없어진다. 후천적인 번뇌만을 정화한다.

③ 통달위

통달위(通達位)는 견도위(見道位)라고도 하며, 이 지위에 오르면 진여성을 관찰하게 된다. 십지(十地) 중에서 초지(初地)의 입심(入心)의 수행위이다. 무루의 지혜가 생겨나서 비로소 진여의 일부분을 견조(見照)한다. 분별심이 없어지지만, 아직 반연하는 작용이 남아 있어서 진여를 완전히 증득한 것은 아니다. 후천적인 번뇌[分別起煩惱]는 한꺼번에 소멸되지만, 선천적인 번뇌[俱生起煩惱]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제6 의식과 제7 말나식의 일분(一分)이 각각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로 전환되기 시작한다.

④ 수습위

수습위(修習位)는 수도위(修道位)라고도 하며, 초지의 주심(住心)부터 제10지 끝까지의 지위로서 견도에서 일부 증득된 진여의 도리를 반복적으로 닦아 익힌다. 번뇌장과 소지장을 정화해 나가는 지위이다. 다문훈습(多聞薰習)과 문혜(聞慧)·사혜(思慧)·수혜(修慧)의 삼혜에 의해, 아집과 법집을 정화하는 아공과 법공을 닦아 진여의 경지에 진입하는 수행을 한다. 번뇌장과 소지장이 정화되면서 그 동안 장애를 받아 발휘되지 못했던 지혜가 본격적으로 발현되기 시작한다.

초지부터 제10지에 이르기까지의 수행인데, 번뇌장과 소지장이 초지부터 점차 정화되기 시작하여, 제7지에서 번뇌장이 정화되어 아집이 단절되고, 제10지에서 금강유정을 수행하여 소지장을 정화하여 법집이 단절된다.

⑤ 구경위

구경위(究竟位)는 모든 번뇌를 정화하고 성불의 지위에 오른 과위(果位)이다. 대보리(네 가지 지혜)와 대열반(무주상열반)을 증득한다.

3. 證果 - 대열반과 대보리

1) 대열반 - 청정법계

대열반은 진해탈(眞解脫)이라고도 한다. 이에 본래자성 청정열반·유여의열반·무여의열반·무주상열반을 든다. 본래자성 청정열반(本來自性淸淨跡槃)은 일체법의 실상인 진여를 말한다. 그 성품이 본래부터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유여의열반(有餘依跡槃)은 진여가 번뇌장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미세한 괴로움의 의지처를 아직 멸하지는 않았지만, 장애를 영원히 고요하게 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무여의열반(無餘依跡槃)은 진여가 생사의 괴로움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번뇌를 이미 모두 없애고 의지처도 역시 멸하여 많은 괴로움을 영원히 고요하게 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무주처열반(無住處跡槃)은 진여가 소지장을 벗어난 것을 말한다. 대지(大智)이므로 생사에 머물지 않고 대비(大悲)이므로 열반에 안주하지 않는다. 유정을 이롭고 안락하게 하는 일을 미래세가 다할 때까지 하더라도 항상 고요하기 때문에 열반이라 이름한다.

모든 유정에게는 본래자성 청정열반만이 있고, 이승(二乘)의 무학(無學)에게는 자성열반·유여의열반·무여의열반이 있으며, 오직 붓다만이 네 가지를 갖춘다.

2) 대보리 - 네 가지 지혜

팔식은 현상일 뿐 그 본성은 결코 실체가 없는 공성(空性)이며, 전의에 의해 번뇌로 오염된 식(識)이 청정하고 분별이 없는 지혜로 전환된다. 이러한 전식득지(轉識得智)는 곧 유식교학의 근본취지[大意]이다.

우선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유루의 제8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이다. 아뢰야식 안의 모든 잡염법이 소멸되어, 한 점의 티끌도 없는 대원경(大圓鏡)처럼 된 상태이다. `대(大)'라 함은 시간·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이고, `원(圓)'은 사물의 실상을 그대로 비추기 때문에 그렇게 부른다. 자신과 진여법계가 하나가 됨으로써, 우주 전체가 대원경처럼 변화되어 모든 사물이 있는 그대로 비추어지듯이, 시공을 초월하여 모든 것을 아는 원만한 지혜이다. 불과(佛果)에서 처음으로 얻는다.

평등성지(平等性智)는 유루의 제7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여기서 평등한 성품이란 진여를 말한다. 진여는 체성이 평등하여 일체법에 두루하므로 평등성이라 한다. 또한 지혜가 그것을 반연하므로 평등성지라고 한다. 말나식에서 자아 집착작용에 의한 모든 차별심이 소멸되어 일체를 평등하게 보며, 대자비심을 일으켜서 중생 제도 활동을 하게 된다.

묘관찰지(妙觀察智)는 유루의 제6식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통달위에서 그 일부분을 얻고 불과에서 전체를 성취한다. 묘(妙)는 불가사의한 힘의 자재를 말하고, 관찰은 모든 법을 관찰하여 정통하는 것이다. 의식에서 개별적이고 개념적인 인식상태가 변화되어, 모든 사물의 자체상[自相]과 보편적인 특질[共相]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다. 묘관찰지는 중생의 근기를 알아서 불가사의한 힘을 나타내고 훌륭하게 법을 설하여 모든 의심을 끊게 한다.

성소작지(成所作智)는 불과에 이르러 유루의 오식(五識)을 전환하여 얻는 무루의 지혜이다. 본원(本願)의 해야 할 일을 해 마치는 지혜로서, 오식의 감각작용적인 상태가 변화되며, 삼업(三業)으로 여러 변화신을 보여 중생을 널리 이롭게 한다.

이 네 가지 지혜는 수행에 의해 점진적으로 증득되는가, 단박에 성취되는가? 능변계성인 의식과 말나식이 각각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로 전환되는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고, 현량성(現量性)인 아뢰야식과 오식이 각각 대원경지와 성소작지로 전환되는 것은 성불할 무렵에 단박에 이루어진다. 즉 묘관찰지와 평등성지는 통달위[견도. 初地의 入心]에서 일부[一分]를 증득하고, 이후의 십지 중에서 점차 닦아서 불과(佛果)에 이르러 그 전체[全分]를 증득한다. 대원경지는 해탈도의 시기, 즉 성불하기 직전에 처음으로 일어나게 된다. 금강유정(金剛喩定)이 현전할 때는 이숙식의 종자를 아직 단박에 버리지 못한다. 유루선(有漏善)과 이숙식(異熟識)은 장애는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유루법이고, 제10지에서의 무루는 불지에 비해 열등한 무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일 금강유정에서 훈습을 받는 식이 없다면, 무루가 증성해지지 않고서 성불하게 된다는 모순이 따르기 때문이다. 성소작지 역시 성불할 때에 무루의 감각기관에 의지해서 비로소 일어나게 된다.

이상과 같이 유식학의 중심사상을 성립 배경·심식론·삼성 중도설·오위의 수행과 전식득지의 순서로 살펴보았다. 요즈음 불교학을 연구하거나 관심이 있는 젊은 세대들 사이에 유식학의 인기가 높다. 그것은 우선 유식학이 아함(阿含)·중관학과 함께 불교학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또한 고도의 물질문명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인간의 정신현상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유식학은 매력있는 학문이다. 그리고 서구(西歐)의 현대학문 특히 인문과학분야는 대체로 심리학을 바탕으로 하는데, 이러한 학문체제의 교육을 받은 현 세대가 불교학을 연구할 경우 유식학에 관심을 갖기 쉬운 면도 있다.

앞으로 유식학의 주요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유식경론(한역본·범본·티베트본)의 한글 번역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교학연구에서 기초자료의 번역은 필수적이다. 또한 경론에 담겨 있는 심오한 유식이론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현대감각 있는 용어로 되살려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유식학 연구는 불교학의 다른 분야뿐만 아니라 철학·심리학·논리학 등 타학문과의 연계성 위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서구식 학문 교육을 받은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관련된 타학문도 연구하여 인용 비교하면서 연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어째서 유식무경(唯識無境)'인지를 설명함에 있어서 세친의 《유식이십론》 등의 유식논서만을 사용할 것이 아니라 철학·물리학 등의 이론을 인용하는 것이다. 또한 유식학의 심식론은 현대심리학의 여러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검증된 이론들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인성(人性)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와 연구의 중요한 동기와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여래장사상의 실천적 이해

정 호 영

Ⅰ. 여래장사상의 역사적 의미와 그 연구 방향

Ⅱ. 여래장계 경론에 나타난 여래장사상의 전개

Ⅲ. 여래장사상의 원환적 구조

Ⅳ. 맺음말

여래장사상의 실천적 이해

Ⅰ. 여래장사상의 역사적 의미와 그 연구 방향

여래장사상이 근대의 학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오랫동안 잊혀져 왔던 《보성론》의 산스크리트본이 존스톤에 의해 1950년 출판된 데에서 비롯된다. 산스크리트본 《보성론》의 출판 이후 우이 하쿠쥬의 일본어역, 나카무라 쥬류의 산스크리트와 한역의 대조본,,타카사키 지키도의 영역 및 일본어역 등이 출판되는 등 《보성론》을 중심으로 하는 여래장사상 연구가 활기를 띠게 되었다.

여래장사상의 체계적 논서인 《보성론》은 우리말로도 번역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은 한역에만 의존하고 있으며 전혀 주를 달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연구자료로 충분히 활용되기 어렵다는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최근 《보성론》에 관한 연구가 발표된 바는 있지만, 그것은 대개 《보성론》에 집중되어 있을 따름으로 《보성론》 이후 여래장사상이 후기 인도불교사에서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여래장사상이 인도 대승불교에서 하나의 학파로서 독립된 지위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우리가 여래장학파라 하지 않고 여래장사상으로 명명하는 것도 이러한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곧 여래장사상이 대승불교 전체에 대한 이해에 긴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만약 우리가 여래장을 소박하게 '우리에게 갖추어져 있는 성불의 가능성'으로 이해한다고 할지라도, 이 경우 여래장은 성불을 궁극목표로 하는 대승불교의 원초적 이상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여래장사상은 대승불교 <인간학>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성불의 당위성을 대전제로 하면서 한편으로 유식학이 인간의 미혹된 현존으로부터 출발한다면, 여래장사상은 여래와 다르지 않은 인간의 내재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로부터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다. 또한 유식학이 인간의 앎과 의지 그리고 성불에의 과정을 밝히고 있다면, 여래장사상은 깊은 종교체험에서 드러나는 부처님의 자비 그리고 한없는 인간에의 신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여래장사상은 동북아시아 불교에서, 때로는 여래장이라는 명칭 그대로, 때로는 불성이라는 이름으로 불교의 발전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여래장 또는 불성은 소박하게는 핍박받는 민중의 고통을 위무하기도 하였지만 근본적으로는 깊은 종교적 체험을 촉발시키고 인간의 궁극적 자유와 해방을 일깨우는 가르침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며, 나아가서는 법상종의 일분무성(一分無性)과 열반종의 중생유성(衆生有性) 논쟁, 천태의 성구(性具)와 화엄의 성기(性起) 문제, 그리고 즉심즉불(卽心卽佛)을 강조하는 선종에서 목석(木石) 또한 불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둘러싼 논쟁 등을 촉발시키는 기제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여래장사상이 5세기 초에 성립된 《보성론》에서 그 사상체계가 확립된 이후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여래장사상이 불교의 전통을 준수하기 보다는 우파니샤드 또는 베단타철학과 습합된 것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여래장사상은 불교가 아니다.'라는 극단적인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기본적으로 여래장사상을 법신(法身)의 일원론 또는 계(界, dha-tu)의 일원론으로 평가하는 데에 따른 것이다. 우파니샤드 및 베단타철학이 브라흐만 일원론으로 규정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승인된 사항이다. 그런데 이는 여래장사상을 법신 또는 계의 일원론으로 해석함으로써 베단타와 여래장의 사상적 구조에 아무런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파니샤드베단타가 환원주의적 일원론 또는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에 근거하고 있음에 반하여 여래장사상은 비환원적 불이론 또는 실존적 존재론의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명확히 이해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여 우파니샤드의 브라흐만은 만물이 그것으로부터 생성되고 그것에 의해 유지되며 그것으로 귀환하는 바의 것이다. 말하자면 브라흐만 이외의 제2의 것은 없다는 것이다. 베단타는 이러한 점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여 세계는 환영(maya)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우파니샤드베단타에는 실존이 자리잡을 여지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여래장사상은 실존을 배제하지 않는다. 비록 세계가 그리고 중생이 염오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염오되어 있는 사실을 현실로서 인정하는 것이다. 《보성론》에 인용되어 있는 《승만경》의 산스크리트문은 여래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즉 "여래의 법신이 번뇌의 외피(klesakosa)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여래장(tathagatagarbha)이라 한다." 여기에서 번뇌를 외피(外皮)라고 한 것은 번뇌가 법신과 구별되며, 나아가서는 번뇌가 법신에 비해 부차적 존재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번뇌가 비실재로 간주됨으로써 그 존재가 전적으로 부정되는 것은 아님을 주목하여야 한다. 우리는 이 문장을 다음과 같이 받아들여야 한다. 즉 번뇌는 비록 궁극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존재하고 있음은 엄연한 현실이며, 나아가 여래장은 번뇌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위 문장의 한역은 이러한 점을 더욱 적극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klesakosa(번뇌의 외피)가 번뇌장으로 번역되고 있음이 바로 그것이다. 산스크리트에 있어 kosa와 garbha는 전혀 다른 낱말이다. 그러나 한역자는 이것을 모두 장(藏)으로 번역하고 있다. 이것은 번뇌와 여래장 또는 번뇌와 법신 사이에 위계적 차이를 두는 것이 여래장사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라는 한역자의 적극적인 해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보성론》에서 여래장의 '존재'가 언급될 때 항상 astitva가 사용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있음'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말은 `있다'를 의미하는 동사원형 as의 삼인칭 단수 현재(asti)에 추상명사어미(tva)를 결합시킨 것으로, 영어의 is-ness에 상응한다. 그러면 《보성론》은 왜 전통적으로 존재의 의미로 사용되어온 어휘 sat를 사용하지 않고 astitva를 사용하고 있는가? sat는 동사 as의 현재분사로서 영어의 being에 해당된다. 이 경우 sat는 영어의 being과 같이 두 가지의 의미를 갖는 것으로 분석될 수 있다. 첫째, 그것은 '있다'라는 동사의 현재분사라는 점에서 어떤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현실(act of existence)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의 명사로서 사용될 때에는 '있는 것' 즉 존재 그 자체(being itself)의 의미를 갖는다.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은 이 두 가지 의미 가운데 전적으로 후자의 의미로 사용한다. 이 경우 sat는 결국 현실과는 분리되어 그 자체로 존재하는 본질 또는 실체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여래장사상에서 여래장은 번뇌와 분리되어 있는 본질실체가 아니다. 《보성론》이 존재의 의미로서 astitva를 사용하는 것은 이와 같이 여래장이 현실과 괴리된 본질이 아님을 명백히 하기 위한 것이다. 여래장은 번뇌와 무관계한 실재가 아니다. 여래장은 번뇌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여래장이 연기의 사상과 관련을 맺는 것도 바로 이러한 점에서이다. 여래장사상이 소위 불이론(不二論, advayavada)으로 불릴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이다.

우리는 이제까지의 논의에서 여래장사상에 대한 오해가 주로 여래장사상을 환원주의적 일원론 또는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으로 규정하는 데에서 비롯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래장사상은 여래장의 형이상학적 우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여래장사상은 어디까지나 여래장과 번뇌의 불가분리를 확인하며, 그럼으로써 중생을 본질과 실존의 복합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러한 오해가 제기되는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여기에서 분석적 사유가 갖는 문제점을 간단히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사물에 대한 앎을 추구할 때 우선 그것을 부분들로 분해하는 데에 익숙하다. 말하자면 어떤 사물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때 그것을 작은 조각으로 쪼개고 그렇게 쪼개어진 조각을 다른 조각과 분리시킨 채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고자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많은 부분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무시하게 된다. 그러나 한 사물의 의미는 언제나 단순한 부분들의 총합 이상이다.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은 이와 같이 사물을 분할하고 분할된 부분들을 대립시키고 나아가서는 합리적인 사유법칙에 따라 부분들의 양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지속과 변화라는 한 사물의 두 측면 가운데 변화를 폐기하고 불변성영원성을 이 세계 바깥에 정립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많은 대승경전 특히 《승만경》, 《보성론》 등이 강조하고 있는 불가사의(不可思議, acintya)의 의미를 재음미하여야 할 것이다. 이들 경론에서 불가사의는 단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한다. 즉 중생은 여래가 될 가능태로서의 여래장이지만, 동시에 번뇌와 분리되지 않은 존재 즉 번뇌장이라는 점이 합리적 사유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언명은 결국 깨달음과 미혹이 공존하며, 여래가 동시에 중생이라는 역설적 사실을 지칭한다. 그러면 이러한 선언의 참다운 의미는 무엇인가? 다시 말해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명제의 진리성은 어떻게 입증될 수 있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믿음과 앎과 실천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합리적 사유를 뛰어넘는 지식은 일차적으로 믿음을 통해 수용된다. 그리고 그 믿음의 내용은 우리의 실존적 반성과의 대립, 그리고 그 대립의 극복을 통해 '주체적 앎'으로 전환된다. 만약 믿음의 내용이 단지 우리를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독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만약 우리가 이를 반성없이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굴종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은 단순한 수동적 인식의 태도가 아니다. 믿음은 진리에의 적극적인 참여이며, 진리의 실천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구체적으로 여래장사상은 '모든 사람은 부처님'임을 선언한다. 그러나 우리가 정직하게 자신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결코 부처님일 수 없다. `나는 미혹된 중생'일 따름인 것이다. 여기에서 모든 사람은 부처님이라는 부처님의 말씀과 나는 중생이라는 나의 실존적 반성은 예리하게 대립된다. 그런데 이 대립은 결코 어느 한쪽으로 환원되어서는 안 된다. 부처님으로 환원될 때 그것은 자기기만 또는 과대망상이며, 중생으로 환원될 때 그것은 자기소외 또는 절망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이제 대립은 우리가 어느 한쪽에 안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립은 끊임없는 긴장이며, 역동적인 활동이다. 그리고 이 활동은 종교적 실천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그 종교적 실천 또는 수행이란 바로 '나'의 행위이다. '모든 사람은…'이라는 보편명제가 '나는…'이라는 특칭명제로 전환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수행의 주체적 측면을 통해서이다. 그렇게 하여 '모든 사람은 부처님'이라는 일반적 진리가 수행을 통해 비로소 `나는 부처님'이라는 주체적 진리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중생이 번뇌장이면서 동시에 여래장이라는 불가사의, 합리적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 믿음과 실천을 통해 궁극적인 진실로 입증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하여 확인된 앎의 내용은 단순한 객관적 지식이 아니라 나의 전 인격의 참여를 통해 완성된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자성청정심 객진번뇌염(自性淸淨心 客塵煩惱染)'이라는 여래장사상의 근본명제를 하나의 위대한 종교적 진리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명제는 겸허한 믿음과 역동적인 실천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주체적인 앎을 통해 그 참다운 의미가 드러나는 것임을 확인한다.

이상의 여러 측면을 염두에 둘 때 여래장사상은 단순히 이성적 합리성 차원에서 논의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래장사상은 불교 일반이 그러하듯 합리성을 초월하는 깊은 종교적 진리로 받아들여져야 하며, 그 연구 또한 종교적 수행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전제로 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만 여래장의 존재에 관한 의미가 충분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Ⅱ. 여래장계 경론에 나타난 여래장사상의 전개

여래장이라는 어휘 및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다.'라는 선언이 최초로 등장하는 경전은 《여래장경》이다. 그런데 《여래장경》은 일체중생이 여래장이라는 점을 자세히 논증하기보다는 비유로써 설명하고 있다. 아홉 가지의 비유 중 첫 번째의 비유는 '시든 연꽃 속의 화불(化佛)'로서 그 구체적인 내용은 부처님께서 신통력으로 무수한 연꽃 하나 하나에 여래가 앉아 있는 모습을 연출한 후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선남자여, 시든 연꽃잎에 여래가 좌선을 한 채로 광명을 발하고 있는 것을 그대는 볼 것이다. 여래도 이와 같이 지혜와 여래의 눈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등의 무량한 번뇌에 감싸여 있는 모든 중생들의 내부에 동등한 지혜와 동등한 눈을 가진 여래가 결가부좌하고 부동으로 앉아 있음을 본다. 선남자여, 그리하여 윤회를 반복하는 중생 안에 있으면서도 여래의 본성(dharmata)이 조금도 염오되지 않음을 보고 그 여래들은 나와 다르지 않다[如我無異]고 말한다. 이와 같이 여래는 여래의 눈으로 일체중생은 여래장(sarvasattvas tathagatagarghah)이라고 관찰한다.

그리고 천안(天眼)을 가진 사람은 시든 꽃잎들을 제거하고 그 안의 여래를 현출시킨다. 이와 같이 여래도 불안(佛眼)으로 일체중생이 여래장임을 관찰하여 그 중생들의 번뇌를 제거시키고자 법을 설한다. 이것이 다 이루어지면 여래는 있는 그대로 현출한다.

선남자여, 이것은 보편타당한 진리(dharmanam dharmata, 諸法의 法性)로서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여도 출현하지 않아도 이들 중생은 항상 여래장이다. 이 법을 듣고 수행한 보살들은 모두 번뇌로부터 해방되어 여래가 되고 여래의 활동을 세상에 편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생이 여래장이라는 사실은 여래의 지혜에 의해 확인된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리고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하는 목적은 중생을 성불토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결국 여래출현의 궁극적 이유는 여래의 대비라는 것이다. 그런데 중생이 여래장이라는 사실은 여래의 설법을 통해서 비로소 우리에게 알려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여래의 자비의 설법과 이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여래장경》은 《승만경》, 《부증불감경》과 함께 여래장 삼부경으로 불린다. 이 가운데 《승만경》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여래장을 `무량한 번뇌장에 감싸여 있는 여래 법신'으로 정의함으로써 여래장사상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승만경》은 한편으로 "여래장에 관한 앎은 곧 여래의 공에 관한 앎"이라고 하면서 공(空)과 불공(不空)의 두 가지 여래장에 관해 언급하고 또 이 공에 관한 앎은 일체의 성문벽지불이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과 불공의 문제를 단순히 합리적으로 해석하면―이것이 일반적인 해석이지만―공은 번뇌의 비존재를, 그리고 불공은 여래장의 존재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쉽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해석은 결국 여래장과 번뇌의 대립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복합적인 한 인간을 두 부분으로 분할하고 이 두 부분을 전적으로 다른 두 영역 또는 전혀 이질적인 두 차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A와 B가 모순된다 하더라도―여기에서 모순은 양립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지만―A와 B가 다른 공간 또는 다른 시간에 있다면 둘은 공존할 수 있다는 합리화의 사유방법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른바 '주체적 앎'에서 모순은 결코 두 개의 차원으로 해체될 수 없다. 동시에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도 없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승만경》이 공여래장을 '여래장이 번뇌장을 벗어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과 번뇌장이 구별됨을, 그리고 불공여래장을 '여래장이 불가사의한 불법으로부터 벗어나 있지 않은 것'이라고 하는 것은 여래장이 엄연히 불가사의한 불법으로서 존재하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여전히 번뇌장과 공존함을 함축하고 있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과 불공은 여래장과 번뇌가 서로 다른 것이면서도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으며, 불가분리이지만 서로 혼효(混淆)되지 않고 엄연히 구별되는 불일불이(不一不異)의 관계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승만경》이 여래장을 무위법의 소의처일 뿐만 아니라 유위법의 소의처이기도 하다고 함으로써 이른바 여래장 염정의지설(染淨依支說)을 제기하고 이것이 후대의 여래장 연기설의 근거가 되었던 점 또한 이러한 해석의 가능성으로 증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증불감경》은 일체의 중생이 삼계육도를 왕래하며 윤회생사를 거듭하고 있는 바, 중생의 바다에 증감이 있는가라는 샤리푸트라의 질문에 증감의 견해는 그릇된 것임을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이유로서 일법계(一法界, eka-dharmadhatu)를 여실히 알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계(dhatu)라는 개념이다. 산스크리트어 dhatu는 동사원형 dha에서 파생된 말로 일차적으로 그 위에 무엇을 두는 장소로서의 공간을 의미한다. 계(界)로 한역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공간은 인도철학에서 종종 보편적인 것, 불변적인 것의 비유로 사용된다. 개인의 자아와 우주적 실체의 동일성을 논증하면서 이는 항아리 속의 공간과 우주의 허공이 다르지 않은 바와 같다고 하는 것이 그러한 예이다. dhatu는 이러한 점에서는 본질본성의 의미를 갖는다. 이 경우 법계는 법성(法性 dharmata, 사물의 본성)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dhatu라는 말은 동시에 광물이 놓여 있는 곳, 즉 광상(鑛床)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후에 정련(精練)된다면 금은보석이 될 것이 현재 불순물과 섞여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dhatu는 후에 무엇이 산출될 기반(akara)으로서 인과의 관계에서는 원인(hetu)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태와 현실태의 관계에 있어서는 가능태를 의미한다. 그러면 원인 또는 기반, 가능태 또는 잠재태라고 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서 잠시 여래장과 동의어로 간주되는 불성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의 사상을 담고 있는 《열반경》에 대한 한 조사에 따르면 불성에 상응하는 산스크리트는 buddha-dhatu로서 본성 또는 실체의 의미를 갖는 svabhava(自性)가 buddha와 결합된 용례는 한 번도 없다. 이것은 불성이 불타의 본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중생의 성불의 근거를 지칭하는 것이라는 점을 확인하여 준다. 다시 말하여 buddha-dhatu의 개념에는 '변화', '발전'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buddha-dhatu는 불변하는 본질로서의 buddha-svabhava 또는 buddha의 추상명사로서의 buddhata, buddhatva와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dhatu라는 한 낱말에서 '불변의 본성'과 '변화(발전)의 근거'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여래장사상이 본질론인가 혹은 발전론인가 하는 상이한 해석도 dhatu의 의미의 이중성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까지 여래장사상이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으로 규정되기보다는 종교적 실천의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여 왔다. 여래장은 추상적 관념의 공간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미망에 물들어 있는 우리가 궁극에 있어 여래와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자기구원의 당위성을 깨우쳐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부증불감경》의 일법계에서 간단히 일계(一界)란 무엇인가? 보다 직접적으로 말하여 하나라고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곧 《부증불감경》이 일원론을 지지함을 의미하는 것인가? 여래장사상을 법신의 일원론 또는 계의 일원론으로 규정하는 것은 대개 《부증불감경》의 일계의 개념에 의존한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경의 명칭에 제시되어 있는 바의 부증불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부증불감경》은 어리석은 범부가 지혜가 없어 여래께서 열반을 설할 때에 감소의 견해, 증가의 견해를 갖는다고 한다. 여기에서 감소의 견해란 열반을 세계의 부정[斷見] 또는 일종의 허무로 파악하거나[滅見] 열반은 없다고 하는 견해를 말하며[無跡槃見], 증가의 견해란 열반이 수행 등을 통하여 새롭게 정립되거나[始生跡槃見] 필연적인 이유없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견해[無因無緣忽然而有見]를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견해들은 결국 형식논리적 사유방법에서 비롯되는 실체론적 견해들임에 틀림없다. 미혹된 현실에 대한 자각이 현실을 부정하고 열반을 지향할 때, 우리의 소박한 형식논리는 열반을 이 세계와는 대립된 '어떤 것'으로 파악한다. 세계가 전적으로 부정되고 열반이 절대적인 것으로 정립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절대주의(Absolutism)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거주하는 이 세계밖에 다른 세계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미혹된 현실의 부정이 세계의 부정으로 간주된다면, 열반을 얻는다는 것은 허무에 떨어지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허무주의(nihilism)라고 부르지 않을 수 없다. 《부증불감경》이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절대주의허무주의적 견해들인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증불감경》이 말하는 생사와 열반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생사의 부정이 새로운 열반의 정립을 의미하지 않는다[不增]는 점에서 생사와 열반은 다른 것이 아니며, 생사의 부정과 함께 열반도 있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不減]는 점에서 생사와 열반은 같은 것도 아니다. 결국 생사와 열반은 불일(不一)불이(不異)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생사와 열반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다.

부증불감의 논리를 전제할 때 《부증불감경》의 일계는 단순히 생사와 열반의 평면적 동일성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생사를 본질과 현상으로 해체하고 이 생사의 본질은 열반과 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일차원적 분석을 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부증불감경》이 생사와 열반의 동일성을 말하는 경우에도 여기에는 생사의 부정과 열반의 부정이 있는 것이다. 절대부정을 매개로 하여 비로소 긍정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일계는 단순한 긍정을 통해 정립되는 일치가 아니라 절대부정을 통해 확립되는 절대긍정의 세계인 것이다. 이러한 점은 확실히 우리의 세간적 지식을 넘어선다. 《부증불감경》이 "깊고 깊은 의미는 궁극적 진리이며, 궁극적 진리는 곧 중생계이다. 중생계는 곧 여래장이며, 여래장은 곧 법신"이라고 하여 중생계와 여래장과 법신의 일치를 주장할 때에 '깊고 깊은 의미', '궁극적 진리'라는 말을 앞세우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의미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기원후 5세기 초에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보성론》은 《여래장경》, 《승만경》, 《부증불감경》에서 제시된 여래장사상을 계승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조직한 대표적인 논서로 평가된다. 그런데 《보성론》은 그 첫머리에서 논의 핵심주제가 7가지임을 스스로 제시하고 있다. 불(佛, buddha), 법(法, dharma), 승(僧, sangha), 성(性, dhatu), 보리(菩提, bodhi), 공덕(功德, guna), 업(業, karman)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불법승은 삼보를 지칭하는 것인데 《보성론》은 법보승보가 불보의 일보(一寶, eka-ratna)로 귀일되는 것으로 분석한다. 법보승보는 불보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성론》은 일보 즉 불보가 어떻게 성립되는가의 문제로 나아간다. 이에 대한 분석이 7가지 핵심주제 중의 나머지 넷이다. 《보성론》은 이를 보성(寶性, ratnagotra)의 네 측면으로 간주한다.

그러면 《보성론》의 보성 또는 성보리공덕업의 통칭인 보성의 보다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먼저 보성의 gotra와 7주제 중의 dhatu가 모두 성으로 번역되는 점을 명확히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dhatu의 의미는 이미 앞에서 설명된 그대로이다. 이에 대해 gotra의 어원적 의미는 소[牛]의 거처라는 뜻이지만 그 의미가 확대되어 보물 또는 금속이 매장되어 있는 산, 가계 또는 그 가계에 전승되는 능력의 의미로 사용되며 한역경전에서는 대개 종성(種姓, 種性) 또는 간단히 성(性)으로 번역된다. 이것은 gotra가 특히 가계 또는 그 가계에 공통되는 성품이라는 인격적인 요소와 깊이 결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보와 관련하여 gotra가 사용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보성론》에서 gotra는 dhatu와 동의어로 사용되며 모두 여래장을 지칭한다. 동시에 이들 어휘는 《보성론》 자체에서 인(因, hetu)으로 주석된다. '삼보 출현의 인(triratnotpatti-hetu)'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결국 `보성'이란 단적으로 삼보 출현의 원인을, 그리고 《보성론》이라는 논의 제목은 그 원인에 대한 분석을 의미한다.

이러한 보성의 네 측면 가운데 '성'은 구체적으로 여래장을 의미하며, 이 부분이 《보성론》의 핵심이 된다. 그리고 '보리'는 여래장이 현현된 결과로서의 여래를, '공덕'은 십력(十力) 사무외(四無畏) 등의 여래의 속성을, '업'은 여래의 한량없는 자비의 활동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보리가 여래장이 현현된 `결과'라고 하였지만, 엄밀하게 말하여 《보성론》은 성을 인(因)으로, 보리공덕업을 연(緣)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보리공덕업이 넓은 의미에서 원인의 입장으로 취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즉 보리공덕업이 결과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인위(因位)의 여래장에 갖추어진 능력으로 다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7주제 가운데 뒤의 4주제는 모두 여래장에 대한 분석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보성론》은 한편으로 보성의 네 측면을 유구진여(有垢眞如, samala tathata), 무구진여(無垢眞如, nirmala tathata), 이구(離垢)의 불공덕(vimala buddhagunah), 승리자(佛)의 활동(jinakriya)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이 가운데 특히 유구진여는 성 또는 여래장을 지칭하는 것으로 구와 진여, 즉 번뇌와 여래장의 대립을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유구진여와 무구진여의 관계에 대하여 "(이 둘은) 인과관계에 있지만, 인과는 동질로서 유구, 무구의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 진여로서 무차별불이"라고 하는 해석은 단순하게 질적인 동일성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이제껏 지적하여 온 본질주의적 해석의 한 예로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해석은 지극히 평면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는 구와 진여의 대립 그리고 유구와 무구의 대립이 없으며, 그럼으로써 치열한 수행에 수반되는 극적 긴장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유구진여 안에서도 구와 진여의 대립을, 그리고 유구진여와 무구진여의 관계에서도 진여의 동일성 보다는 유구와 무구의 대립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코자 하는 치열한 노력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Ⅲ. 여래장사상의 원환적 구조

《보성론》은 치밀한 이론적 분석과 다양한 비유를 통해 여래장의 의미를 세밀하게 검토하고 있으며, 그 영역도 광범위하여 논의내용 전체를 간단히 요약하기는 어렵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기왕의 여러 연구서에 맡기고, 여기에서는 《여래장경》의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다(sarvasattvas tathagatagarghah)'라는 선언을 《보성론》이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여래장사상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얻기로 한다. 그런데 《보성론》이 이 문장을 인용하고 그 의미를 분석하는 것은 여래장에 대한 다양한 설명에 앞서서이다. 이러한 사실은 한편으로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는 명제가 여래장사상의 가장 기본적인 선언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본명제에 대한 해석이 차후의 세부적인 분석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보성론》의 이 명제에 대한 해석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보성론》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유구진여에 대해 (경에)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것은 어떠한 의미인가?

중생의 무리에 불지(佛智)가 침투하기 때문에,

그 (중생의 무리가) 무구인 점이 본래 (불과) 불이(不二)이기 때문에,

불의 종성에 그 과(果)를 설정[假設]하기 때문에,

모든 유신자(有身者, 중생)는 불(佛)의 태(胎, 여래장)라고 설해졌다. (I.27)

정각자(正覺者)의 신(身)이 편만하기 때문에,

진여가 무차별이기 때문에,

종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유신자는 항상 불의 태라고 설해졌다. (I.28)

요약하면 세 가지 의미에 의해 세존은 `일체중생은 항상 여래장'이라고 설하였다. 즉 일체중생에 (1)여래의 법신이 편만한다는 의미에 의해, (2)여래의 진여가 무차별이라는 의미에 의해, (3)여래의 종성이 존재한다는 의미에 의해서이다.

여기에서 《보성론》은 일체중생이 여래장이라는 점을 세 가지 측면으로 분석하고 있다. 산문부분의 용어로 말하면 법신의 편만, 진여의 무차별, 종성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보성론》 자신은 이것을 '여래장의 세 의미[三義]'로 부르고 있다. 그런데 산문부분을 자세히 보면 법신, 진여, 종성이 항상 '여래'와 결부되어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여래장에 관한 논의가 중생의 관점이 아니라 여래의 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간단히 말하여 《보성론》은 '중생', '여래장'에서 '여래'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래장에 관한 논의가 세속적 인간의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여 준다. 오히려 깊은 종교체험을 통해 확인된 여래의 성격에 대한 통찰이 여래장의 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보성론》은 이러한 논의에서 여래를 자비의 존재로 파악한다.

자비의 강조는 법신의 개념에도 명백히 나타나 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법신색신의 개념을 통하여 색신을 무상한 육신의 몸, 법신을 영원한 이법의 몸으로 생각하는 데에 익숙해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법신이 초역사적 진리로 간주되고 있음을 말하여 준다. 그러나 《보성론》은 특히 해탈신과 법신에 관한 논의에서 전자를 무루(無漏), 후자를 편지(遍至) 또는 전자를 자리(自利), 후자를 이타(利他)의 존재로 규정한다. 여기에서 편지는 중생에게 두루 미침을 의미한다. 결국 법신의 편지는 법신의 이타적 성격, 자비적 측면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신의 편만(遍滿)'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법신의 편만은 일차적으로 여래법신이 두루 가득 차, 있지 않은 곳이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떠한 중생도 여래법신을 벗어나 있지 않음을, 그래서 모든 중생이 본성적으로 여래법신임을 가리킨다. 결국 법신 편만은 일체중생이 여래장임을 확인하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편만 또는 편지가 여래의 자비를 강조하는 개념이라는 앞서의 논의를 염두에 둘 때 법신의 편만은 침투되지 않는 곳이 없는 여래의 크나큰 자비의 활동을 지칭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여기에서 우리는 `일체중생이 여래장'이라는 명제 속에서 여래의 활동을 발견하는 《보성론》의 깊은 종교성을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법신편만과 관련하여 여래장이 다음과 같이 정의되고 있는 점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일체중생은 여래의 태아이다(tathagatasyeme garbhah sarva-sattvah)'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여래장(tathagatagarbha)이라는 복합어는 '여래의 태아(tathagatasya garbhah)'로 분석되고 있다. 다시 말해 중생은 여래라는 모태에 감싸여 있는 태아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태아 또는 모태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사상의 원초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여래의 크나큰 품안에 감싸여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나타나는 종교적 환희심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법신편만의 인식은 이제 자신을 여래의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가능적 여래로서 새롭게 태어남을 인식하는 것이다.

《보성론》은 또한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는 명제를 '진여의 무차별'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는 앞장에서 '보성의 네 측면'을 언급할 때 유구진여무구진여의 문제가 단순히 진여로서의 평면적 동일성을 지적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한 바 있다. 그러면 여기에서 진여의 무차별을 언급하는 참다운 의미는 무엇인가? 우선 우리는 진여무차별을 언급하는 목적이 '일체중생이 여래장'이라는 명제를 해석하는 데에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일체중생이 여래장'이라는 명제는 나의 미혹된 현실과는 대립된다는 점을 기억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여의 무차별'은 단순히 유구진여무구진여의 무차별이 아니라, 부정될 수 없는 우리의 미혹된 현실 속에서 여래와 차별없는 진여가 발견됨을 지적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 여래와 차별없는 진여는 어떻게 발견되는가? 이것은 '법신편만'이라는 종교적 사실을 전제해서만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 '법신편만'이라는 종교적 사실이 나에 의해 진리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나는 나의 본성이 진여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진여무차별'은 종교적 인간의 자기이해로 확립된다. 《보성론》이 여래장을 '여래, 즉 진여가 이 모든 중생들의 태아이다(tathagatas tathataisam garbhah sarvasattvanam).'라고 정의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여래는 진여로 정의되며, 동시에 중생이라는 모태 속의 태아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것은 '법신편만'에서 여래가 모태로, 중생이 태아로 간주되었던 것과는 반대가 되고 있다. 이와 같은 모태태아 관계의 역전은 각각의 중심체가 바뀌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법신편만'에서 중심적인 존재가 여래였다면, '진여무차별'의 중심체는 중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중심체의 전환은 '법신편만'이라는 종교적 진실이 이제 나의 주체적 확신으로 심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결국 '진여무차별'은 `법신편만'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주체적 앎으로 전환되어 제시되는 분석명제인 것이다.

그러면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는 기본명제의 세 번째 분석명제 '종성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에서 우리는 우선 `존재'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앞서 우리는 '여래장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면서 이 때 존재는 astitva의 번역어임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 우리가 존재로 번역한 말은 sambhava이다. 구체적으로 앞서 인용한 I.27의 주석산문 중의 '여래의 종성에 존재한다는 의미에 의해'는 산스크리트본에서 tathagata-gotra-sambhavarthena로 되어 있다. 그런데 sambhava는 '있다'를 의미하는 동사(bhu)의 명사형에 `함께'를 의미하는 접두어(sam)가 결합된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어원적으로 여러 요소들의 결합, 결합에 의한 형성 또는 그렇게 형성된 존재를 의미한다. 이러한 어원적 의미를 염두에 둘 때 tathagata-gotra-sambhava는 여래의 종성이 무엇을 형성시킨다는 의미에서 `여래종성의 현성(顯成)'으로 번역될 수도 있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둔다면 앞서 인용한 게송 I.27의 "불(佛)의 종성에 그 과(果)를 설정[假設]한다."는 문장의 의미를 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과 즉 결과는 주석에 따르면 자성신수용신변화신의 삼신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문장은 종성을 원인으로 파악하고 그 종성 속에서 종성의 결과인 여래의 출현을 예견함을 명시하고 있다. 《보성론》이 여래장을 '여래의 종성'과 관련하여 '여래성(如來性)이 이들 일체중생의 태아이다.(tathagatadhatur esam garbhah sarva-sattvanam).'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점을 뚜렷이 하고자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서는 '진여무차별'에서와 같이 중생이 모태로 제시되고 있다. 다만 '진여무차별'에서는 여래가 태아로 간주되고 있는 데에 대해, 이곳에서는 여래성(tathagatadhatu) 또는 여래종성(tathagatagotra)이 태아로 간주되고 있다. 우리는 앞서 dhatu는 가능태를 가리키며, 이 개념에는 변화발전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의미를 고려할 때 `종성의 존재'는 결국 주체적 존재로서의 중생의 성불에의 노력, 즉 한없는 종교적 실천을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제까지 우리는 《보성론》의 여래장의 분석 즉 법신의 편만, 진여의 무차별, 종성의 존재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것을 각각 종교적 진실에 대한 믿음, 이에 대한 주체적 확신 그리고 그러한 확신의 적극적 실천의 문제로 파악하였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여래의 자비, 여래의 지혜 그리고 여래의 활동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소위 `여래장의 세 의미'는 참다운 종교적 인간의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며 동시에 절대적 존재인 여래의 참모습을 밝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우리는 '여래의 종성'에서 종성이 원인의 지위에 있는 것이지만 그 가운데에 결과가 예상되어 있음을 지적하였다. 그 결과란 제불여래에 다름 아니다. 한편 여래는 법신으로서 중생 가운데 편재한다. 결국 여래는 중생이 여래장인 소이연이며, 그럼으로써 중생을 진정 중생이게끔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여래법신은 여래장의 원인이면서 동시에 종성이 현성한 결과이며, 중생의 종성 또한 법신으로 현성할 원인이면서 여래법신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법신과 종성이 상호 인과관계에 있음을 말하여 준다. 그리고 이와 같은 법신과 종성의 상호 인과관계는 여래장사상이 원환적 구조로 조직되어 있음과 무관하지 않다. 여래장사상이 (1)법신편만의 개념을 통하여 `여래에서 중생으로'라는 자비의 하향도를, (2)진여무차별로써 '중생은 곧 여래'라는 무분별의 반야를, 그리고 (3)종성의 존재 개념을 통하여 `중생에서 여래로'라는 구원의 상향도를 제시하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또한 이 장의 첫머리에서 법신, 진여, 종성이 일관되게 여래와 연관되어 논의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여래장이 여래의 입장에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이제 우리는 법신, 진여, 종성이라는 여래장의 세 의미를 중생의 입장에서 다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법신, 진여, 종성이 각각 중생의 믿음과 앎과 실천과 정확히 대응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여래의 법신, 진여, 종성은 중생의 믿음, 앎, 실천과 결합됨으로써만 참다운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요약하면 중생으로부터의 (1)'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는 여래의 설법에 대한 믿음과 (2)이 믿음을 통하여 '일체중생은 여래장'이라는 보편명제가 `나는 여래장'이라는 특칭명제로 전환된 앎 우리는 이것을 주체적 참여의 앎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3)이러한 자각 속에서 '객진번뇌염'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쉼없는 실천이 유기적으로 결합됨으로써 여래장은 그 본연의 의미를 다하게 되는 것이다.

Ⅳ. 맺음말

우리는 이 글의 첫머리에서 여래장사상의 역사적 의미를 되돌아보고 현대의 몇몇 연구 결과를 검토하였다. 그 과정에 우리는 여래장사상이 본질주의적 형이상학으로 해석됨으로써 여래장사상 본래의 의미가 왜곡되고 불교의 종교성이 퇴색되는 결과를 목도하였다. 우리는 여래장계 경론에 그렇게 오해될 여지가 있는 개념들이 등장한다는 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개념도 그 전체의 의미구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여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여래장계 경론의 핵심개념들을 역사적 맥락에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보성론》에서 말하는 '여래장의 세 의미'의 연관관계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 종교적 실천의 문제를 항상 염두에 두었다.

이제 여래장사상의 '자성청정심 객진번뇌염'의 명제는 우리에게 자기완성의 끝없는 노력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 여래장사상은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우리의 참여를 촉구하는 엄숙한 종교적 진리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다.

정토사상의 핵심사상 연구

강 동 균

Ⅰ. 정토사상의 한국적 위상

Ⅱ. 정토사상의 내용

1. 정토사상이란 무엇인가

2. 정토사상의 所依經典

Ⅲ. 정토사상의 두 가지 흐름

Ⅳ. 정토의 세계

Ⅴ. 본원진실의 세계

정토사상의 핵심사상 연구

Ⅰ. 정토사상의 한국적 위상

한국사에 있어서 정토사상(淨土思想)의 수용, 전개 및 성쇠는 매우 다양한 우여곡절을 시사해 주고 있다. 육조시대에 이어진 담란(曇鸞), 혜원(慧遠), 천태(天台), 길장(吉藏)의 영향이 신라에 정토사상을 흥기하게 하였으며, 도작선도의 열정적인 종교관은 신라후대를 일변시켰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기술된 왕생담(往生潭)만 하더라도 일서를 이룰 분량과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신라말에 전래된 선종(禪宗)이 밀교(密敎)와 혼융되어, '도참사상(圖讖思想)', '풍수지리설(風水地理說)' 등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에 시대를 압도한 선종은 '오교구산(五敎九山)'을 기반으로 고려불교를 지배하여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와중에 정토신앙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어 역사의 뒤안길로 스며들어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하였다.

간간히 엿보이는 정토신앙에 대한 언급은 선종의 우수성을 드러내기 위한 들러리였으며 혹은 천태신앙(天台信仰)의 한 방편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조선조를 지내고 현대까지 정토사상 내지 정토신앙은 사그라졌지만, 민중의 가슴 속에, 혹은 무식한 아낙네의 치마폭에 휩싸여 전수되어졌다. 물론 고려시대의 백련교도들의 활동이라든가, 조선조의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 등은 특기할 만한 사료를 제공해 주기는 하지만 그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하였다.

Ⅱ. 정토사상의 내용

1. 정토사상이란 무엇인가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大乘佛敎)는 그대로 중앙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나,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사상조류(思想潮流)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 있어서는 원효(元曉)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도,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사상적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하여는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기는 하지만, 1883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막스 뮐러 교수와 南條文雄 박사의 공동연구의 성과로서 《무량수경(無量壽經)》과 《아미타경(阿彌陀經)》의 산스크리트 원전이 간행되었으며, 이것은 정토사상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하였다. 근래에는 1970년에 동경대학에서 藤田宏達 박사에 의해서, 《원시정토사상의 연구》가 출판됨으로 인해서3), 상당부분이 밝혀지게 되었다.

불교에서 정토사상이 구체적으로 형태를 갖추어서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이며, 그것은 정토계(淨土系) 경전군(經典群)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틈에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것은 인도의 용수(龍樹), 세친(世親)과, 중국의 담란(曇鸞), 도작(道綽), 선도(善導) 등의 대사상가들과 구마라집(鳩摩羅什), 현장(玄 ) 등의 역경의 거장들, 신라의 원효(元曉), 경흥(憬興), 의적(義寂), 일본의 법연(法然), 친란(親鸞) 등의 저마다의 지역과 시대를 주도했던 대사상가들에 의해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가장 뛰어난 대승불국토로 지칭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실로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것은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토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極樂)'과 '아미타불(阿彌陀佛)'과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은 본원이라고 하는 약속을 통해 중생에게 베풀어지는 귀한 선물이기도 하다.

`나무아미타불'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산스크리트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다.

Namo - Amitabha = Namas + a + mita + abha

Namo - Amitayus = Namas + a + mita + ayus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며, mita는 헤아린다·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수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고 하는 말이다. 무한광명(無限光明)무량광(無量光)에 귀의하고, 무한생명(無限生命)무량수(無量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다르마법(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身)·구(口)·의(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이라고 한다. 《무량수경(無量壽經)》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이 서로 염(念)한다,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彌陀三昧)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광명(無限光明)과 하나되고, 무한생명(無限生命)과 하나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신앙의 세계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의 창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란 염불(念佛)인 것이다.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2. 정토사상의 所依經典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경전(淨土經典)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大經이라 약칭으로 부르기도 하며, 魏譯이라고도 한다)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불설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2권(觀經이라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구마라집(鳩摩羅什) 역 《불설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小經이라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을 말한다.

1) 무량수경

《무량수경》에는 고래로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도합 12역이 있었다고 전하여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번의 번역이 되었는지는 의심스럽다. `오존(五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도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大阿彌陀經)》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支Ψ迦讖)이 번역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222년, 혹은 223∼228, 또는 253년에 번역되었다고 한다.

②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

《평등각경(平等覺經)》이라고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도 하며, 위(魏)의 백연(帛延)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西晋)의 축법호(竺法護)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258년 경에 번역되었다고 한다.

③ 《불설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중국한국일본에서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중국의 사상가들이나 한국의 사상가들과 일본의 사상가들도 거의 모두가 이것을 바탕으로 하여 정토사상을 피력하였으며, 정토신앙을 고취시켰다. 위(魏)의 강승개(康僧鎧)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하여진다. 그러나 근래의 연구 보고에서는 조심스럽게 동진의 불타발타라(覺賢)와 유송(劉宋)의 보운(寶雲)과 공동 번역이 아닌가 하고 추정되어지고 있으며, 그렇다면 421년에 번역되었다고 추정된다. 한편으로는 서진의 축법호(竺法護)가 308년에 번역했다고 하는 설도 있다.

④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

《대보적경(大寶積經)》 권 1718. 《여래회(如來會)》라고 약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당의 보리 유지(普提流志)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서 번역하였다.

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

송(宋)의 법현(法賢)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의 산스크리트 원전은 이제까지 50부 이상의 사본이 발견되었으며, 현재 다섯 종의 원전이 간행되었다. 그것은 모두 네팔 사본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원전과 한역된 원전을 비교하여 대조해 보면, 한역 가운데에서는 《무량수경여래회(無量壽經如來會)》와 가장 가깝다. 한편 티베트말로 된 번역본도 <티베트 대장경> 가운데에 수록되어 있으나, 이것은 8세기 초에 번역된 것이며, 산스크리트 원전과 거의 내용이 같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역(魏譯)의 《무량수경》의 내용을 살펴보기로 한다.

《무량수경》은 상하 양권으로 되어 있다.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因果)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의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인(因)은 48원이며, 과(果)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왕생의 인은 염불이며, 과는 왕생극락이다. 이것은 신라의 원효성사(元曉聖師)와 경흥대사(憬興大師)의 주석서에 잘 드러나 있으며, 이후에 이어진 한중일의 정토사상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무량수경》은 마가다국의 교외에 있는 영취산에서 많은 장로격의 대제자들과 보현, 문수 등의 대보살들을 위시한 많은 대중 앞에서 아난다(阿難) 존자의 물음에 응답하는 형식으로 설하여졌다. 그 중심사상은 아미타불의 본원에 있다. 구원의 과거에 정광불(錠光佛)이 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한없는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에 들게 한 연후에 조용히 열반에 드시었다. 이어서 53불이 차례차례로 출현하시어 중생을 제도하여 열반에 드시었다. 마지막으로 출현하신 부처님이 세자재왕불(世自在王佛)이었다. 이때에 한 국왕이 모든 명예와 재산을 버리고 출가하였으니, 그가 바로 법장(法藏)비구이다. 본경에서는 54불이 출현하지만, 다른 번역본들에 의하면 반드시 일정하지만은 않다. 혹은 34불이 출현하기도 하며, 많게는 81불이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 문제는 제불(諸佛)의 숫자가 아니라 그 내용이다. 영원의 옛날, 태초로부터 오랜 시간을 걸쳐서 수많은 부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진리 그 자체의 드러남이다. 마치 헤아릴 수 없이 엄청난 물을 머금은 샘이 저 깊은 산속 골짜기에서부터 시작되면서, 계속하여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자비심으로 충만한 엄청난 힘(如來의 위신력 = Tathagatasya - anuvabha)으로 능동적으로 온 누리에 작용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과거의 수많은 제불이 불불상염(佛佛相念)하여 석존의 배후에서 다르마의 근거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석존을 통하여 다르마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중생들에게 연설되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설법이라고 한다. 그리고 불불상념의 근거는 본원에 있는 것이다.

법장 비구는 세자재왕 여래를 통하여 210억의 불국토의 장엄을 관찰하였으며, 오겁사유(五劫思惟)를 거친 연후에 48원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중생을 향한 약속이며, 그 약속은 아미타불의 성불이란 형태로 이행되었다. 그리고 극락정토는 완성되었다.

제불보살(諸佛菩薩)의 본원을 관찰해 보면, 일관되게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의 정신을 저변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서도 제불이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은 하화중생이다. 이제 아미타불이 극락정토를 준비하신 것도, 오로지 정토에 중생을 맞이하기 위한 것이다. 법장보살(法藏菩薩)은 전념염불(專念念佛)하는 사람들을 남김없이 모두 정토에 맞이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이 약속[願]을 성취하기 위하여 조재영겁(兆載永劫)에 걸친 수행을 쌓았으며, 수행의 공덕을 모두 중생들에게 회향하신 것이다. 우리들은 오탁악세(五濁惡世)에 태어나 말법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미타불의 서원에 의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미타불은 스스로 '아건초세원(我建超世願)'이라 선언하셨지만, 이렇게 간절하게 거듭 거듭 약속을 확인하면서 본원을 세운 부처는 달리 찾을 수 없다. "모든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지심(至心)·신락(信樂)·욕생(欲生)의 타력삼신(他力三信)을 얻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염불하거나, 그렇게 열 번 하는 사람이 극락정토에 왕생하지 못한다면, 나는 부처되지 않으리."(제18원)라고 굳은 약속을 했으며, 그 약속은 성취되었다. 또 경 가운데에, "아미타불의 본원력은, 중생이 그 이름을 들어 왕생하고자 바란다면, 누구든지 모두 극락정토에 왕생하여 스스로 불퇴전에 이르게 하리라." 하고 또 강조하고 있지만, 이것은 본원력의 불가사의함을 드러내 보이는 말이다.

하권의 후반부에서는 대고중(對告衆)이 미륵으로 바뀌면서 이 경의 유통을 부촉하신다. 부처님께서 미륵에게 말씀하셨다. "저 아미타불의 명호를 들어서 환희용약하며 일념으로 염불하는 사람은 큰 이익을 얻게 되리라. 이들은 무상의 공덕을 구족하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하느니라." 하고 설해지고 있지만, 이것은 부처님께서 마지막으로 미륵보살에게 이 경전을 부촉하시는 자리에서까지 염불의 공덕이 매우 뛰어남을 명백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관무량수경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려진다. 이 경은 그 첫 부분에 '송(宋)의 원가년중(元嘉年中)에 강량야사(畺良耶舍)가 번역하다.'라고 되어 있다. 송이라고 하는 나라는 중국 역사상 두 번 있었다. 하나는 수, 당, 오대, 그 다음에 일어난 송나라가 있고, 또 하나는 그보다도 훨씬 이전 남북조 시대에 생긴, 유(劉) 무제(武帝)가 양자강 남쪽 건업(建業)에 도읍을 정하고 세운 송 나라가 있다. 이것을 유송(劉宋)이라고도 한다. 여기서는 후자를 가리킨다. 그 시대에 서역에서 강량야사라고 하는 사람이 송(宋)을 찾아 왔으며, 종남산의 도림정사에 살면서 이 경을 번역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이역(異譯)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인도말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 경은 역경사상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경이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을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이라고 한다.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 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아미타 부처님)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觀音)세지(勢至)의 양대 보살을 `관(觀)'하는 경이라는 말이다. '관'한다고 하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 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 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왕사성의 비극이라고 불려지는 연유는, 이 경의 첫머리에 태자 아자타삿투가 그 아버지를 가두고 어머니마저 가두어 버리고, 감옥에 갇힌 어머니가 부처님을 부르는 장면이, 현대에도 있을 수 있는 비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자타삿투가 그런 끔찍한 사건을 왜 일으켰는지에 대하여 《경(經)》에서는 말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먼저 그런 비극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아자세왕국경》을 비롯하여 여러 경전에 언급되어 있는 것을 발췌(拔 )하도록 하자.

마가다국의 왕인 빈비사라왕은 어진 정치를 펴고 국민의 절대적인 신망을 받고 있는 왕이었다. 부처님께 귀의하여 항상 진리에 접하였으며, 곁에는 언제나 아름답고 총명한 왕비 위제희 부인이 있었다. 이 세상에 행복이라고 이름 지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갖추고 있었다. 단 한 가지 나이가 이미 50줄에 들어섰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슬하에 아들이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그래서 하루는 점치는 사람을 불러 점치게 하였더니, "안심하십시오. 반드시 왕자를 얻게 됩니다. 저 건너 산에서 수행하고 있는 선인이 있는데, 그 선인의 수명이 다하면 부인의 몸에 왕자로 잉태될 것입니다. 그것은 앞으로 3년 후의 일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대단히 기뻐하였지만, 그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앞으로 3년이나 지나야 한다는데, 그것은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더구나 더 다급한 것은 부인이었다. 이제 40이 넘고 여성으로서의 매력도 한물 가버린 지금, 3년을 기다린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여러 모로 생각한 끝에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삼년 후에 아이를 갖게 된다는 것은 선인이 앞으로 3년을 더 산다고 하는 말이지요. 그 말은 바꿔 말해서 그 선인이 죽기만 하면 곧 태자로 태어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 선인도 나이 들어 그렇게 서글프게 사는 것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태자로 태어나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무서운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왕은 곧 사신를 보내서 그 선인을 죽였다. 그러나 아무리 선인이라고 하더라도 목숨이 아깝지 않은 사람은 없다. 죽음에 임해서 그 선인은 원한을 품고 반드시 두 사람에게 원수를 갚을 것을 다짐하였다.

그런 저런 일이 있은 다음 달에 부인은 아이를 갖게 되었다. 위제희 부인이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소식은 금방 온 성안에 퍼졌다. 왕을 비롯하여 온 국민이 모두 기뻐하였으며, 그렇게 세월은 흘러 갔다. 이윽고 산달이 다가오자 왕은 다시 점을 치도록 하였다. 점치는 사람은 점괘를 보고는 안색을 바꾸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분명히 왕자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이 아이는 두 분을 몹시 원망하고 있으며, 성인이 된 다음에 반드시 두 분에게 복수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과 왕비는 매우 두려워하였다. 잔인하게도 자기네의 행복을 위해 무고한 선인을 죽인 일이 있으며, 그 선인이 죽음에 임해서 복수하겠다고 다짐했던 일이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었다. 그로부터는 매일 밤마다 그 선인이 꿈에 나타나서는 무서운 형상을 하고서 복수하겠다고 소리치는 것이었다. 왕과 왕비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무서운 계획을 세웠다. 산실을 높은 누각에다 마련하고 그 밑에 칼을 빽빽히 세우고서 아이를 낳아 떨어뜨렸다. 참으로 끔찍한 일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죽지 않았다. 새끼손가락 하나만 잘리고 기적적으로 살았다.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고, 그 울음 소리를 들은 왕비는 모성이 살아나 그 아이를 키우게 되었다. 아이는 예쁘게 자랐으며, 어느덧 왕도 왕비도 끔찍한 일들은 말끔히 잊어버리고, 태자는 어엿한 성인이 되도록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성인이 된 태자는 총명하였으며, 부모를 존경하고 따랐다.

여기에 조달(調達=提婆達多, Devadatta)이 등장한다. 조달은 부처님의 사촌 동생이며, 대단히 뛰어난 수행자였다. 그러나 부처님의 교단을 탐내고 분열을 조장했던 악인이다. 그가 아자타삿투를 현혹시키고, 과거에 두 번이나 자신을 죽이려 하였던 사실을 환기시키면서 쿠데타를 일으키도록 종용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가두고 그 아버지를 살리려고 애쓰는 어머니마저 감옥에 가두게 된 것이다.

《관무량수경》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자기의 잘못은 깊이 뉘우치지 못하고, 순전히 남의 탓만 하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여성 위제희 부인을 통해서, 불교의 깊은 신앙의 세계를 열어 보인 경전이 바로 이 《관무량수경》이다.

이 경전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그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최저최하의 열악한 악인 범부이기는 하지만, 현실생활 가운데서는 왕비라고 하는 최고의 지위에 있는 위제희 부인이 바로 그런 악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지만, 그런 악인이야말로 아미타 부처님의 구제 대상이라고 하는 것이다. 두 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3) 아미타경

《불설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다. 그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佛攝受經)》 1권이 있다. 산스크리트 원전과 티베트어 번역본도 현존한다. 산스크리트 원전은 앞에서 소개했던 영국의 종교학자 막스 뮐러와 南條文雄이 공동 출판한 교정본이 1883년에 발표되었다. 산스크리트 원전은 《불설아미타경》과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유포되어 알려진 것도 이 《아미타경》이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원요(願樂)라고 한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善根)으로는 왕생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 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육방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그리고 석존을 향하여, "매우 하기 어려운 일을 하셨다."고 찬탄하고 있음은 매우 희유한 일이다. 이 부분을 선도는 다음과 같이 단언하고 있다. "이 증명에 의해 중생이 왕생할 수 없다면 육방여래의 광장설은 한 번 입에서 나온 다음에 다시는 입으로 돌아오지 않아 그 혀는 썩어버릴 것이다." 얼마나 자신에 찬 믿음의 선언인가를 알 수가 있는 말이다. 바꿔 말해서,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미타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미타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경》은 믿음에 관해서 많은 시사를 하고 있지만,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증명이 클라이막스가 된다. "이 오탁악세에서 모든 중생을 위하여 일체세간난신지법(一切世間難信之法)을 설하는 것은 심난희유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믿기지 않은 매우 어렵고도 있기 어려운 일을 석존께서는 하셨고, 이 일은 육방제불마저도 찬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불가사의한 본원력에 근거하고 있음을 신지(信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정신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매우 깊은 사색이 요구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Ⅲ. 정토사상의 두 가지 흐름

불교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표는 성불이다. 성불이란 중생이 스스로 주체적으로 부처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중생에게 부처가 될 가능성이 갖추어져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중생 자신이 스스로 '불성적 존재(佛性的 存在)이다'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러한 대전제에도 불구하고 정토교의 흐름은 '불성적 존재가 아닌 자기자신'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그 특징이다. 중국에 있어서의 담란, 도작, 선도의 사상체계가 그러하며, 한국에 있어서의 원효, 일본의 법연친란의 사상체계가 그러하다. 일찍이 도작은, 《안락집(安樂集)》 가운데에서 불교를 크게 둘로 나누어서 '성도문(聖道門)'과 '정토문(淨土門)'이 있다고 규정했다. 말하자면, 전자는 성도문이요, 후자는 정토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8) 《大正藏》 第47卷, p.4a.

그러나 정토교라 하더라도 반드시 불성적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산( 山)의 혜원(慧遠)도 정영사(淨影寺)의 혜원도, 또한 가상 길장(嘉祥吉藏)이나 천태 지의(天台智 )에 있어서의 정토사상도 불성적 존재를 부정하고 있지 않다. 천태의 상행삼매(常行三昧)는 불성적 존재를 자각하기 위한 염불행이다. 여기서 말하는 염불은 자력의 수행이며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렇게 정토교 내지 정토사상에도 크게 두 개의 흐름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자력적인 정토사상과 타력적인 정토사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엘리트 집단의 정토교와 범부구제(凡夫救濟)의 정토교라고 하는 입장으로도 구별할 수가 있다.

초창기의 중국불교에 있어서 정토사상에 관심을 보여 정토왕생을 원했던 사람들은 궐공칙(蹶公則, ∼265∼)승현(僧顯, ∼318∼)지둔(支遁, 327∼402) 등을 들 수가 있지만, 뒤에 중국 정토교의 시조가 된 것은 여산의 혜원(慧遠, 344∼413, 또는 350∼409)이다. 종효(宗曉)의 《낙방문류(樂邦文類)》(1199) 권3의 <연사시조여산원법사전(蓮社始祖 山遠法師傳)>에서는 혜원을 정토교의 시조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어서 <연사계조오대법사전(蓮社繼祖五代法師傳)>에서는 혜원을 이은 정토교의 계보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一曰 善導師, 二曰 法照師, 三曰 少康師, 四曰 省常師, 五曰 宗 師

이것을 받아 지반(志磐)의 《불조통기(佛祖統紀)》(1269년) 권26의 <정토립교지(淨土立敎志)>에서는, 혜원(慧遠)―선도(善導)―승원(承遠)―법조(法照)―소강(少康)―연수(延壽)―성상(省常)이라고 정토교의 계보를 밝히고 있다. 지반은 종효(宗曉)의 6조설을 계승하면서 법조의 스승 승원(712∼802)을 덧붙여 다시 선정융합사상(禪定融合思想)을 주장한 영명 연수(永明延壽, 904∼975)를 덧붙이고 있지만, 종효와 큰 차이는 없다. 후대의 정토교의 계보를 보이는 자료도 똑같은 경향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문제 의식이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되어진다.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같은 정토사상이라 하더라도 커다란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혜원과 선도를 일직선상에 두었다고 하는 것은, 그 내용을 보지 않고 모양만을 취함에 지나지 않는다.

가재(迦才:生沒年代未詳, 七世紀後半에 活動)는 그의 저술인 《정토론(淨土論)》의 첫 머리에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다.

상고(上古)의 선장(先匠)인 원법사(遠法師)사령운(謝靈運) 등 모두 서경(西境)을 기(期)한다고 하더라도 마침내 홀로 일신을 좋게 할 뿐이다. 후의 학자는 승습(承習)할 바가 없다.

불교에서는 특히 대승불교에서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자타일시성불도(自他一時成佛道)' '자미득도선도타(自未得度先度他)'라고 하는 대명제를 제외하고서 말할 수 없다. 이 대승불교의 근원을 정토교 내지 정토사상을 통해서 받아들이고, 악인범부의 자각으로서 불성적 존재가 아닌 자기자신을 바라보며 절망하면서도 더욱 중생구제에 몸을 내던진 선각자들에 대하여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Ⅳ. 정토의 세계

정토란 크게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하나는 '청정한 국토' 혹은 '정화된 국토'라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라는 뜻이다.

정토란 의미의 용어는 모든 대승경전에서 사용된다. 심지어는 '아미타(阿彌陀)'란 말과 `극락(極樂)'이라는 용어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 '반야계(般若系)' 경전군에서도 정토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상당한 비중을 두고 사용되고 있다. 정토는 대승불교에 있어서 공통된 과제이며, 동시에 정토의 개념을 제외하고서는 대승불교가 성립 불가능하게 된다.

'정토'란 '정불국토(淨佛國土)'란 말이다. 많은 대승경전에서 사용되는 '정토'의 개념은 '정불국토'를 상정하여 언급되며, 또는 직접 '정불국토', '청정불국토' 등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구라마집 역의 《유마경(維摩經)》 권1 <불국품(佛國品)>에서 사용된 `정토'란 용어는 20회나 되며, 그 가운데서 3회는 '정불국토(buddhaksetra - parisuddhi)'란 원어에 대한 번역이며, 나머지 17회는 단순히 '불국토(buddhaksetra)'란 말을 `정토'라고 한역한 것이다. 이 `불국토'는 그 의미내용으로 볼 때에 `정화된 국토' 혹은 `청정한 국토'를 뜻하는 말이 분명하다. 한역에서 표현된 '직심시보살정토(直心是菩薩淨土)'란 말은, '직심의 국토(asayaksetra)는 보살의 불국토(buddhaksetra)이다.'에 대한 한역이다. 이것은 말할 것도 없이 `정불국토'의 의미내용을 가진 '정토'의 뜻이기에 구마라집의 번역을 오히려 타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토에 관한 묘사는 앞서 말한 '반야계' 경전군을 비롯하여 많은 대승경전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곳은 또한 '불국토'이기에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기 쉬운 이상세계와는 그 성격을 달리하고 있다. 거기에 '생(生)'하는 사람은 모두가 불타와 동격이며, 따라서 지배하는 왕과 지배받는 국민이라는 개념은 애당초 없다. 수명이 무량하니 윤회하지 않으며, 대승의 청정불국토이기에 오욕과 삼독이 없으며, 사견(邪見)과 이승(二乘)이란 이름조차 없다. 이러한 불국토를 중국에서는 구마라집 이후 '정토'란 용어로 표현하였고, 신라에서도 또한 주로 `정토'라는 용어를 불국토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대승불교에 있어서는 현재타방불의 존재를 인정하며, '정불국토'가 공간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물론 《유마경》에서 말하는 그 유명한 '심정토정설(心淨土淨說)'을 무시할 수는 없다. 말하자면 <불국품>에 "만약 보살이 정토를 얻으려거든 그 마음을 맑게 하라. 그 마음이 맑게 됨에 따라 불토도 맑게 된다."라고 되어 있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을 사상적으로 고찰하여 해석하여 볼 때, 정토를 무형적인 것으로 정의하려는 표현으로 받아들일 수가 있으며, '마음을 맑게 하면 바로 그곳이 정불국토'라는 의미로 집약시킬 수 있다. 이것은 앞서 말한 '정토의 두 가지 의미' 가운데 두 번째인 `국토를 청정하게 한다'는 쪽의 해석인데, 《유마경》에서는 곧이어 사리불과 나계범왕의 문답이 나오고, 나계범왕이 "석가모니 불국토의 청정함이 마치 자재천궁과 같다."고 하자, 석존은 그것을 실증하여 보였다. 이것은 정불국토가 유형적인 것으로 묘사된 구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정토는 '심정토정설'에서와 같이 그 마음을 위주로 한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으로 수용될 수도 있으나, 결국은 중생에게 전달되기 위해서 유형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묘사되지 않으면 안 되었고, 정불국토사상은 유형적인 정토를 상정하는 사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은, 대승불교사상의 근간이 현재 타방불사상(他方佛思想)에 있으며, 그 교리적인 근거가 타방불국토(他方佛國土)라는 공간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한, 당연한 귀결이 아닐 수 없다.

불국토를 공간적으로 설정한다는 것은 이미 유형적인 세계의 묘사를 의미하며, 그러한 세계를 정화한다는 것도 유형적인 것으로 수용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서 정불국토의 사상은 유형적인 정토를 상정하는 사상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필연적인 요청이 형성되는 것이다.

극락정토의 개념은 이러한 정불국토사상을 배경으로 해서 성립하였다. 그리고 극락정토는 모든 대승불교의 정토관의 전형(典型)으로 되었다.

위와 같은 유형적이고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표현으로 인하여, 대승불교의 정불국토사상은 누구나 가까이 할 수 있고, 파악하기 쉬운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종교적인 실천 대상으로서도 피부에 와 닿을 수 있게 되었다.

원효가 추구했던 정토는 본원진실의 세계인 '극락'이다. '정토사상', `정토신앙'이라는 말은 이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 왕생의 근거는 아미타불의 48원에 있다. 중생의 입장에서 정토신앙이 성립하기 위하여는 '본원'이 있어야 하고, '아미타불'이 있어야 하고 '극락'이 있어야 한다. 극락은 《아미타경》에서의 아름다운 묘사로 꾸며지는 장엄이 갖추어져 있으며, 아미타불의 무진법문이 펼쳐져야 하며, 그 모든 근거는 `본원'에 있다.

정토의 본질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정토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왕생 그 자체가 근거를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 그래서 정토를 다시 살펴보면 '정토는 예토가 아니다.'라고 하는 지극히 상식적인 데에 이르게 된다. 그야 당연히 정토는 예토가 아니다. 그런데 정토를 관념화할 때 흔히 저지르는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토는 예토와 같이 생사의 세계가 아니다. 따라서 정토에 태어난다고 하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 정토가 진실로 정토이기 위하여는 생사를 초월해야 한다. 그러면서 정토왕생을 거론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따라서 왕생은 '무생(無生)'이며, '무생의 생'이 왕생이다. 여기에는 중생의 분별지에서 말하는 '태어난다'라는 개념은 일체 부정된다.

원효는 다음과 같이 갈파하고 있다.

정토란 모두가 여래의 원과 행이 이루는 바이며, 저 정토에 생하는 자의 자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예토 등의 기세계가 오직 중생의 공업(共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과 같지 아니하다. 이런 까닭으로 통칭하여 청정토라고 이름하는 것이다.

《無量壽經宗要》

자력을 부정하고 여래의 원(願)과 행(行)을 부각시키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Ⅴ. 본원진실의 세계

역사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역사라 할지라도 언제나 뭔가 시체와 같은 마치 묘지에서 나는 냄새를 풍긴다(괴테의 말이라고 기억하지만). 원효의 시대를 향해 사방에서 풍겨오는 묘지의 냄새, 그것이 원효로 하여금 역사를 새로이 보게 하였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백제의 공격으로 마을이 타고 사람들이 죽었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슬픔과 아픔이 남겨졌다. 문화나 과학면에서 그 시대보다 훨씬 앞선 오늘날일지라도 사정은 비슷할 것이다. 지금도 캄보디아, 유고슬라비아 등 전쟁의 아픔에 시달리고 있는 곳이 지구상에는 많다. 지금 우리가 전쟁에 시달리고 있지 않더라도 매일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살인, 방화, 교통사고, 뺑소니, 산업재해, 지도자급 인사들의 비양심적 범죄행위 등등 이루 말할 수조차 없이 많은 묘지를 보고 시체가 썩어가는 냄새를 맡는다. 원효가 밤새 잠 못 이루고 시달렸던 묘지의 냄새는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아닌가.

인류의 역사는 문화적으로 진보발전한다고 하지만, 이런 생생한 현실을 보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그런데 많은 수의 사람들이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맹목적으로 발전이라 생각하고는 행여 뒤질세라 수레바퀴의 안쪽을 부지런히 돌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보고 듣고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초등학생이 여름방학을 보내듯이 부지런히 흘러왔었다. 여러 가지 발명으로 인한 발전, 그럴 듯한 문화와 종교와 철학을 지니면서도 그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려하지 않고 표면에서만 맴돌았다. 그 표면에다가 껍데기까지 씌워놓았다. 수박 겉핥기는 그래도 수박이라도 만진다. 거기에다가 라카칠을 하고서는 만족해 한다. 마치 보지도 않을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책으로 장식된 넋 나간 사람의 거실을 보는 것과 다름이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인류에게 신선한 광명을 비춘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진지하고 겸허하게 보는 것이다. 그것을 여실지견(如實知見)이라고도 하지만, 보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불교의 실천덕목은 팔정도에서 비롯되는데 그 첫번째가 정견이다. 그리고 정사유로 이어지는 것이다. 맹목적으로 쳇바퀴를 도는 것이 아니라 실로 진지하게, 진실로 겸허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그래서 문제를 제기하여야 한다. 인류에게 광명을 비추는 것은 결코 대중운동이라든가 그런 류의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겸허하게 보는 데에 있는 것이다. 보는 것은 지혜이며, 지혜는 자비에 바탕을 두어야 하고, 무한한 자비에 바탕을 두지 않은 지혜는 진정한 지혜가 아니다. 이렇게 보는 것을 '관자재(觀自在)'라 하는 것이다.

관자재는 객관적으로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다. 사물 그 자체가 되는 것이다. 서양의 지혜와 불교의 지혜는 여기서 그 개념을 달리한다. 객관적인 실험과 관찰, 이것이 서양이라면, 불교는 주관적인 실험과 관찰이다. 예를 들면, 어느 고찰에 낡은 범종이 있다. 이것을 분석하고 관찰하는데, 그 구성비율이 구리가 몇 %이고 주석이 얼마이고 납과 인 등 기타 어떤 성분으로 되어 있으며, 다시 크기와 경도, 공명의 조건 등을 정확히 관찰하여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것도 훌륭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가 진실을 본 것은 아니다. 이것이 서양의 지혜이다. 냉철하고 명쾌하다. 이것이 인류를 발전시킨 원동력이다. 그러나 불교는 그렇지 않다. 그것이라면 앞에서 말한 초등학생의 여름방학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다시 지루하게 역사의 쳇바퀴를 돌아야 한다.

범종이 한 번 울리면 그 소리는 골짜기를 울리고 마을을 스친다. 울리고 스치는 그 종소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훈훈하게 하였는가. 아픔을 달래며 같이 아파했고, 슬픔을 어루만지며 같이 슬퍼하였다. 사람과 종은 하나가 되어 자연 그대로가 된다. 모든 수식과 장식을 떼어버리고, 모든 유위를 떨치고 무위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지혜이다. 불교의 관찰이다. 더 쉬운 예를 들어보자.

여기 수재민이 있다. 엄청난 피해를 입은 수재민이다. 재산도 다 떠내려가고, 일가 친척이 모두 피해를 입은 데다가 남편도 죽고 자식도 죽었다. 그 현실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은 서양의 지혜다. 그것을 나의 아픔으로 관찰하는 것이 불교의 지혜인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아파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식주관이 대상을 객관화하지 않고 대상 그 자체가 되는 것은 자비 없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관자재는 무한한 자비와 무한한 지혜이어야 하는 것이다.

원효가 얻었던 것은 바로 이것이다. 진정 얻으려 하거든 먼저 버려야 한다는 것, 그리고 버린 다음에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버릴 것은 다람쥐 바퀴 돌듯이 돌아가는 상식, 윤리, 계율, 깨달음이며 선택하는 것은 오직 여래본원에 대한 신심인 것이다. 그래서 원효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중생과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계율을 지키고 안 지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인위적이고 유위적인 상식이나 윤리, 도덕은 인간을 구제하지 못한다. 구제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수레바퀴의 다른 한쪽일 따름이다. 더욱이 기도나 주문 따위로 현세의 안락을 구한다는 것이 얼마나 덧없는 일인지 진지하고 겸허하게 보아야 한다.

원효에게 구도자의 길로 나아가게 하였던 원동력은 자비와 지혜의 자각이다. 시체의 냄새가 풍기는 것을 고약하다고 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시체의 냄새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자비가 있었기에, 그 악취 삼독번뇌를 통해서 지혜가 샘솟는 것이다. 그래서 점잖고 위엄 있는 원효대사를 버리고, 중생과 하나일 수 있는 복성(卜性) 거사를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체의 냄새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시체일 수 있고 시체의 냄새일 수 있어야 한다. 악인을 악인이라 손가락질하고 `심판'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며, 불자의 갈길이 아니다. 그 악인의 아픔을 같이 아파할 수 있는 진지함과 겸허함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더한 악인이지만 선인인 척하는 위선자일 따름이다.'라고 나의 내면을 비춰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참회해야 한다. 원효에게는 무엇보다도 이 참회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다. 그것을 원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지금도 우리들은 이 유일하고 진실한 삼보의 세계에 있다. 어떤 죄악도 더러움도 없는 세계에 있으면서도 귀머거리나 장님처럼 그 아름다운 세계를 보지도 듣지도 못하고 있다. 부처의 생명이 작용하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무명으로 인하여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밖으로 객관세계를 만들고 있으며, 나다 혹은 나의 것이다 하고 집착하여 온갖 업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스스로 부처의 생명을 덮어버리고 진실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것은 마치 아귀가 강을 보고 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그런 까닭에 이제 부처님 앞에 깊이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발보리심하고 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참회해야 한다. 나와 중생은 다 함께 무한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무명에 취해서 그 지은 죄가 헤아릴 수 없다. 오역, 십악에 이르기까지 짓지 아니한 것이 없다. 스스로 지을 뿐 아니라, 그것을 남이 하도록 하여 놓고, 사람의 죄악을 헐뜯으며 기뻐하였다. 이렇게 해서 지은 죄를 어찌 다 헤아리겠는가. 그것은 모든 부처와 성자들이 모두 알고 있다. 이미 지은 죄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아직 짓지 아니 했거든 지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大乘六情黎悔》

남에게 '나쁜 짓 하지 말라.'라고 할 게 아니라, 자기자신에게 '나는 나쁜 짓만 골라 했던 악인이었다.'고 나무라며 스스로 안으로 부끄러워하고, 밖으로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일으켜 참회할 수 있는 용기는 마치 《금광명경(金光明經)》 <사신품(捨身品)>에 나오는 마하살타(摩 薩 왕자의 용기와 같은 것이다.

원효는 스스로 중생임을 자각했다. 그것도 '하지하(下之下)'의 극악무도한 '복성(卜性)' 중생임을 자각하였다. 그리고 절망하며 방황하였다. 몇 번이고 '나는 대원효이다. 성자원효이다.' 라고 외치며 달아났지만, 원효의 절망은 더 깊어지기만 하였다. 그 절망은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였으며, 버릴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과감하게 버린 그 순간 원효는 자연이 되었고, 우주가 되었고,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가 되었다. 그리고 본원진실(本願眞實)의 세계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원효가 본 것이 아니라 눈을 떴을 따름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오탁악세를 윤회하는 것도, 피안에 이르러 열반하는 것도 모두가 큰 꿈이다. 눈을 떠라. 생사열반이 하나인 것을. 《無量壽經宗要》

본원진실의 세계, 그것을 정토라 한다. 본원진실이야말로 바로 정토사상의 핵심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摩訶止觀》의 十乘觀法

차 차 석*

Ⅰ. 十乘觀法이란 무엇인가

Ⅱ. 十乘觀法의 觀境인 十境

Ⅲ. 十乘觀法의 實際

Ⅳ. 맺는말

《摩訶止觀》의 十乘觀法

Ⅰ. 十乘觀法이란 무엇인가

《마하지관》에서 설하고 있는 대승보살의 수행법은 원돈지관(圓頓止觀)이다. 그리고 원돈지관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이 십승관법(十乘觀法)이다. 이 십승관법은 《마하지관》 10권 중에서 5권부터 10권까지 설파되고 있으므로 《마하지관》은 십승관법을 설명하는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성상으로는 전체를 십대장(十大章)으로 구분할 때 제 7정수(正修)에 해당된다. 여기서 증오(證悟)나 내관(內觀)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이 십승관법이다.

십승관법은 우리들이 일상 속에서 행해야 할 일체의 실제적인 생활 모습을 대상으로 삼아 실행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하여 심경을 열 가지로 분류하고, 그것의 하나하나에 십승관법에서 수행해야 할 양상이 설명되고 있다. 또한 천태는 십승관법을 수행하기 이전에 예비단계로서 25방편을 구족(具足)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이 25방편이 구족된 위에서 십승관법이 실수(實修)될 수 있다고 말한다.

천태 지의(天台智 )는 《마하지관》에서 9사상승(師相承) 이전의 6사(師)의 학설에 대해 명료하게 논란하고, 그들은 자유스러운 자증(自證)을 절대시하고, 경건하고 착실한 수도를 행하지 않으며, 오히려 경론이나 전래의 수도 규칙을 무시했던 일종의 돈오선의 추종자들이라 규정했다. 그런데 그들은 대부분 악을 구가하고 파계를 득의로 삼는 등의 타락한 사상에 빠지기 쉽다고 하면서 무반성적인 돈오선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25방편의 구족을 강조하고 진정한 돈오선이란 경론을 소의(所依)로 삼고 경건하고 엄숙한 불도의 수행을 구비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그럼으로써 타락했던 당시의 돈오선에 일대의 수정을 가하고자 했던 것이 십승관법을 설하게 된 목적이라 할 수 있다.

Ⅱ. 十乘觀法의 觀境인 十境

십승관법에는 일정한 대경(對境)이 없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우선 무엇을 관경(觀境)으로 삼아야 할까를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발생했다. 본래 일체의 존재를 관경으로 삼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지나치게 고원하고 공막(空漠)하여 지관(止觀)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없기 때문에 비근하면서도 중요한 관경을 선택할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따라서 지의는 음입계경을 초관의 대경으로 정했다. 그런데 지관의 수행이 진전되면서 갖가지의 장애가 출현한다는 사실도 알게 됨에 따라 다양한 관경을 설정하게 되며, 그들을 십종(十種)으로 분류하여 십경(十境)이 수립된다.

범부위(凡夫位)로부터 아직 참다운 도에 들어가지 않은 방편위(方便位)에서 만나는 갖가지 장애를 십종으로 구분한 것이다. 이 학설의 대부분은 대승경론에 의지하고 있지만 지의(智1) 자신의 실제적인 체험을 바탕에 깔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십경은 《마하지관》 권5부터 권10까지 언급되어 있다. 여기서 천태 스님은 (1) 관음입계경(觀陰入界境), (2) 관번뇌경(觀煩惱境), (3) 관병환경(觀病患境), (4) 관업상경(觀業相境), (5) 관마사경(觀魔事境), (6) 관선정경(觀禪定境), (7) 관제견경(觀諸見境), (8) 관증상만경(觀增上慢境), (9) 관이승경(觀二乘境), (10) 관보살경(觀菩薩境)이라는 일정한 관조의 경계를 제시하고 있다.

(1) 관음입계경(觀音入界境)의 내용을 요약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이상의 열 가지 관조의 경계 중에서 관음입계경을 첫번째 관경으로 삼고 있다. 그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경전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따른 것이지만 그것보다도 음입계(陰入界)가 일상적으로 우리들에게 현전해 있는 것이고 잠시도 이것을 벗어나서는 우리들이 존재할 수 없는 가장 비근한 것이면서도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가장 절실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음입계경을 무엇보다도 최초로 관조하고, 그 음입계경은 실상의 부사의경(不思議境)이라 깨닫는 것이 목적이다. 관음입계경 이외의 나머지 9경은 관음입계경에 설해진 내용을 구체적으로 분류한 일종의 조연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논의의 초점이 관음입계경에 모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관음입계경은 구체적인 현실을 떠난 추상적인 진리나 현실과는 별개의 초월적인 경계를 관조의 경계로 삼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현실이 문제이므로 이 현실을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관조의 경계[觀境]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마하지관》 권5 상(上)에서

"3계 안팎의 일체의 5음과 12입은 모두 마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이니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시기를 '하나의 존재가 일체의 존재를 섭수한다'. 이른바 마음이 이것이다. 논에서 말하길 '일체의 세간 속에는 정신과 물질[名色:명은 마음 혹은 정신, 색은 물질]만이 있을 뿐이니 만일 참답게 관찰하려면 다만 정신과 물질만을 관찰해야 한다.'고 하였다. 마음은 미혹의 근본인데 그 의미는 이와 같다. 만일 관찰하여 반드시 그 뿌리를 베어 버리고자 한다면 병에 뜸을 떠서 경혈을 얻듯이 하라."

라는 천태 스님의 말씀이 이것을 적절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제 2경 이하의 9경은 반드시 항상 생기(生起)하는 것은 아니므로 생기할 때만 관경으로 삼는다. 생기의 양상도 매우 복잡하다. 즉 순차적으로 생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꺼번에 생기하는 경우도 있다. 작의에 따라 생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무작의로 자연스럽게 생기하는 경우도 있다. 지의는 이와 같이 복잡한 생기의 호발상(互發相)을 차제불차제(次第不次第), 잡부잡(雜不雜), 구불구(具不具), 작의부작의(作意不作意), 성불성(成不成), 익불익(益不益), 구불구(久不久), 난불난(難不難), 경불경(更不更), 삼장사마(三障四魔)의 열 가지로 구분하고, 이들을 숙세의 인연에 따라 호발(互發)의 차이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2) 관번뇌경(觀煩惱經)은 관심(觀心)의 수행이 진전됨에 따라 생기하는 번뇌를 새롭게 지관의 대경으로 삼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번뇌가 잠복해서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일단 마음이 맑아져서 자각과 반성을 철저하게 하려고 하면 삼독과 사대의 병이 충격을 받고 구름처럼 일어난다. 잠자는 사자가 포효하듯이 맹렬하게 정신을 압도하는 것이다. 《마하지관》 권8 상에서는 번뇌의 모습이 8만 4천 가지이지만 견사리돈(見思利鈍)으로 구분하면 충분하다고 말하고, 이들이 발생하는 인연에 습인(習因)의 종자, 업력의 격작(擊作), 마의 선동(煽動)이 있다고 말한다.

"습(習)이란 무량겁 이래의 번뇌가 쌓여서 종자가 되고 훈습상속(薰習相續)한다. 사수( 水)의 흐름에 따르면 그의 빠름을 느끼지 못하고, 이것을 느끼면 분맹(奔猛)한 것을 아는 것과 같다. ……업이란 무량겁 이래 악행을 성취해서 원책(怨責)을 짓는 것과 같다. 해서 너희들로 하여금 수도하여 출리(出離)하게 하려는 것이다. ……마(魔)란 만일 마업을 만들면 이것은 그것의 민속(民屬)이다. 그러므로 동란(動亂)하지 않는다. 만일 도(道)를 행하여 계(界)를 나오고 이것을 버리고 저것에 투항하면 십군(十軍)의 포로가 된다."

고 말한다. 이것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원리를 체증(體證)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이론과 실천, 관념과 체증을 혼동해서 엄숙한 불도수행을 게을리하고, 막행막식(莫行莫食)하며, 실천이 없는 문자법사(文字法師)들에 대한 경계이다.

(3) 관병환경(觀病患境)은 지관을 수행하는 도정에 행자를 괴롭히는 육체적인 질병을 지칭한다. 병환이 발생하는 원인은 선세에 있었던 행업의 과보라 말하며, 그것이 금세에서는 냉열이 원인이 되어 음식부절(飮食不節), 와기부정(臥起不定)이 되어 발병한다고 본다. 금세의 병은 외병과 내병으로 구분한다. 내병이란 오장의 부조화에 의해 병이 몸 속에 잠재하는 것이다. 외병이란 무궤도하고 난폭한 생활방식으로 생기는 병을 말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질병에는 인중(因中)의 실병(實病)과 과상(果上)의 권병(權病)이 있다. 과상의 권병은 석가나 유마가 방편으로 병을 나타내어 시교(施敎)의 방편으로 삼는 경우를 말한다.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인중의 지관을 수행하는 도정에서 발생하는 현실적인 육체상의 질병이 문제이다. 육체적인 질병이 생기면 수행자는 지관행을 포기하기 쉽다. 《마하지관》 권8 상에는 지관의 수행을 방해하는 육신병상(六神病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만일 혼혼(  )이 많으면 이것은 간 속에 혼이 없는 것이며, 전후를 망실함이 많으면 이것은 마음 속에 신이 없는 것이다. 만일 공포와 전병(癲病)이 많으면 이것은 폐 중의 혼이 없는 것이다. 만일 비소가 많으면 이것은 신(腎) 가운데 지(志)가 없는 것이다. 만일 회혹(廻惑)이 많으면 이것은 비 속에 의(意)가 없는 것이다. 만일 창앙( 怏)이 많으면 이것은 음(陰) 속에 정(精)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육신의 병상이라 이름한다."

고 말한다. 그리고 이들 6신병상(神病相)의 원인으로서 사대불순(四大不順), 음식부절(飮食不節), 좌선부절(坐禪不節), 귀(鬼), 마(魔), 선세(先世)의 업(業) 등을 거론하고, 치료법으로 지(止), 기(氣), 식(息), 가상(假想), 관심(觀心), 방술(方術) 등 주로 정신요법을 열거하며, 마지막으로 사종삼매(四種三昧)의 십승관법을 가장 이상적인 치료법으로 제시한다.

(4) 관업상경(觀業相境)은 수행자가 정중에 출현하는 무량겁 이래 지은 선악의 여러 가지 업을 지관의 대경으로 삼는 것이다. 《마하지관》 권 제8 하에 의하면 업상(業相)을 관경으로 삼는 이유에 대해 "행인이 무량겁 이래 지은 바 선악의 여러 업은 이미 과보를 받았거나 혹은 아직 과보를 받지 않았다. 만일 평평하게 운심(運心)한다면 상(相)이 곧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지관을 닦음에 제업(諸業)을 잘 움직이기 때문에 선악의 상이 나타난다. ……다만 평등한 거울이 청정하기 때문에 제업의 상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지관이 진행되면 될수록 숙세의 업상이 생기하여 정신적 안정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또한 업이 발현하는 원인을 인연에 따라 내외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안으로 업이 발현하는 이유에 대해 "지관으로 마음을 연찬(硏鑽)하면 마음이 점차 명정(明淨)해져서 여러 가지의 선악을 비춘다. 혹은 지(止)로써 악을 정지시키고 악업을 소멸시키려 한다. 관(觀)으로 선(善)을 관하여 선취에 태어나고자 한다. 혹은 지로써 악을 정지시킴에 악은 고요하기 때문에 생긴다. 관으로 선을 관하건대 선은 관 때문에 소멸한다. 무량한 업상은 지관 속에서 출현한다. 거울이 연마되어 만상이 스스로 드러나는 것과 같다."(《마하지관》 권 제8 하)고 말한다. 외부로 선악을 발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제불의 자비는 항상 일체에게 응하지만 중생은 근기가 없어서 관할 수 없다. 지관의 힘으로 능히 제불을 느끼고, 선악의 선정을 보이면 제업이 곧 드러난다. 꽃다발을 지니고 대중에게 보이는 것과 같다."(《마하지관》 권 제8 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상과 같이 지관의 실수(實修)에 의해 숙세의 선악업이 생기하여 마음의 안정을 방해하게 되는데 그 업상이 출현하는 양상은 행인 개개인에 따라 다르며, 지의는 이것을 여섯 가지로 분류한다. 보과(報果)의 상만 보이는 경우, 습인(習因)의 상만 보이는 경우, 먼저 보과가 보이고 뒤에 습인이 보이는 경우, 습인보과의 순서로 보이는 경우, 습인과 보과가 동시에 보이는 경우, 전후가 일정하지 않은 경우 등이다. 지의는 이들 선악업상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선업상은 육도에, 악업상은 육폐에 의거하여 설명하고 있다. 육폐(六蔽)란 간탐폐( 貪蔽), 파계폐(破戒蔽), 진에폐(瞋 蔽), 해태폐(懈怠蔽), 산란폐(散亂蔽), 우치폐(愚癡蔽)를 지칭하는 것이다. 그리고 업상에 관한 지의의 논술은 대부분 《아비담론》이나 《성실론》에 의거하고 있으며, 대치의 방법은 《중론》에 의거하고 있다.

(5) 관마사경(觀魔事境)은 업상경을 대경으로 지관행이 진전하여 점차 악이 사절되고 선이 발생하는 중요한 시기에 출현하는 악마를 지칭한다. 마(魔)의 본질과 대치법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전개하며, 《대집경》, 《화엄경》, 《열반경》, 《반야경》, 《대지도론》 등을 전거로 활용하고 있다. 《대지도론》 권 제66에 따르면 마라(魔羅)는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작용을 하고, 사람들이 무상보리(無上菩提)로 향하게 하는 지혜를 빼앗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살자(殺者)로 번역된다고 말한다. 또한 《대지도론》 권 제5에 의하면 제법실상(諸法 相) 이외의 일체를 마로 규정하고 일체의 번뇌나 결사가 마의 근본 원인이며 번뇌나 결사를 지니기 때문에 욕(欲)에 속박되고 마의 포로가 된다고 말한다. 지의는 이러한 《대지도론》의 사상을 계승하여 "항상 중생의 선근을 파괴하고 생사에 유전케 하는 것이 마의 본업이며, 만일 마음을 도문(道門)에 안주시켜 도가 높아지면 마도 성행한다."(《차제선문》 권 제4)고 경고하고 있다. 《마하지관》 권 제8하에 의하면 마사(魔事)의 강연(强軟) 등의 화살이 오근을 쏘게 되면 세 가지 허물이 발생한다고 말한다. 즉 사람을 병들게 하고, 관심을 유실(流失)하게 하며, 사법(邪法)을 얻게 하는 것이다.

나아가 지의는 마에 추척귀(  鬼), 시미귀(時媚鬼), 마라귀(魔羅鬼)의 세 가지 발상(發相)이 있다고 말한다. 추척이란 면은 비파(琵琶)와 같고 눈이 네 개이고 입이 두 개이다. 특수한 소리를 내서 선정을 방해하는 귀(鬼)이다. 시미란 《대집경》에서 말하는 12시 각각에 출현하는 시수(時獸)를 말한다. 마라란 마왕 파순(波旬)의 권속으로 항상 강연량면(强軟兩面)의 교묘한 방법으로 보살을 유혹하여 강박하고, 그 수행을 방해하는 악마이다. 이들 세 가지 악마의 선정수행에 대한 방해 양상을 지의는 유(有), 무(無), 명(明), 암(暗), 정(定), 난(亂), 우(愚), 지(智), 비(悲), 희(喜), 고(苦), 락(樂), 화(禍), 복(福), 선(善), 악(惡), 증(憎), 애(愛), 강(强), 연(軟)의 12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전술한 세 가지 악마는 수행자를 외부에서 유혹하고 강박하는 존재로 묘사되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수행자 자신의 정신적인 약점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세 가지 악마의 대치법으로 추척은 계(戒)를 송(誦)하고, 시미는 그 이름을 칭하며, 마라는 공관에 철저할 것을 말하고 있다. 또한 《마하지관》 권8 하에서는 구체적인 실행의 방법에 대해 "이 서원을 만족시키고 이 이법(理法)을 현양하고자 하면 마땅히 마를 항복시켜 도량으로 삼아야만 한다. 80억의 중심(衆心)이 요동하지 않는 것을 지(止)라 이름하고, 마계즉불계(魔界卽佛界)라고 통달하는 것을 관(觀)이라 이름한다."고 말한다.

(6) 관선정경(觀禪定境)은 마사경(魔事境)을 대경으로 하는 지관의 수행 중에 발생하는 장애이다. 이것은 과거에 수습했던 선정에 대한 집착심을 말한다. 《마하지관》 권9 상에서는

"만일 마사(魔事)를 지나치더라도 아직 진명(眞明)을 발하지 않으며, 별수(別修)가 없더라도 통수(通修) 때문에 과거의 습(習)을 발하여 여러 가지 선정들이 분분하게 나타난다. 마땅히 마사를 조치하고 여러 선정을 관조해야 한다. 왜냐하면 선정의 즐거움이 미묘하고 즐겨 탐미하여 번뇌가 날로 증가한다. 만일 이것을 도라고 말한다면 증상만에 떨어진다. 만일 꾸짖고 버리면 완전히 방편을 상실한다. 이와 같은 허물은 함께 기록할 수 없다."

고 말한다. 선정에 대한 집착심이 생기는 것은 내외의 두 가지 인연 때문이다. 외인연은 여래의 시교를 가리키지만 내인연은 숙습(宿習)의 일이며, 문제가 되는 것이다. 《마하지관》은 제경론(諸經論)의 학설을 종합하여 이러한 숙세의 장애가 발생하게 되는 행자의 지위에 집약하여 선문 일반을 근본사선(根本四禪), 십육특승(十六特勝), 통명(通明), 구상(九想), 팔배사(八背捨), 대불정(大不淨), 자심(慈心), 인연(因緣), 염불(念佛), 신통(神通)으로 구분한다. 나아가 그 발상(發相)의 하나하나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더하고 마지막으로 대치법인 십승관법을 어떻게 적용해야 할까를 절실하게 설명하고 있다. 십경을 통해서 지의가 주력을 기울였던 것은 이 선정경(禪定境)과 다음에 설명할 제견경(諸見境)이다.

(7) 관제견경(觀諸見境)은 선정을 닦는 데 있을 만한 독단적인 사견이다. 선정의 최고 목적은 무분별, 무집착의 마음을 현성하는 데 있다. 이 무분별이나 무집착의 마음에 집착하면 그것은 도리어 사견이 된다. 이러한 사견에는 문법(聞法)에 의지하는 경우와 선정에 의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선정의 뒷받침을 받는 사견은 묘오(妙悟)와 마찬가지로 지관의 수행상 중대한 방해가 된다. 《마하지관》 권10 상에서는

"이 사견은 선정 때문에 발생하기도 하고 문법에 의해서 발생하기도 한다. ……문법(聞法)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본래부터 듣는 일이 많기 때문이지만 널리 전오(轉悟)할 수 있다. 견해가 분명해서 문답을 총명하게 판별한다. 선정 때문에 생기는 것은 처음에 마음이 고요하기 때문에 뒤에 관전(觀轉)이 분명하게 된다. 번전( 轉)하는 것이 자재하여 묘달(妙達)과 같이 된다. 남방은 습선자가 적어서 사견을 발하는 자가 미미하다. 북방은 이런 일이 있다. 맹명불식(盲瞑不識)한데 참다운 도를 얻었다고 말하고, 다라니를 얻었다고 말한다. 사람을 아는 데 어둡고 높은 지위에 만족한다."

라 말하고 있다. 사견에 결부된 선정은 영원히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이 조림( 窕?에서 곡목(曲木)을 빼어낼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 점에서 지의는 불법 이외의 외도, 불법과 결부된 외도, 불법을 배웠음에도 외도가 된 사람 등 세 종류로 구분하여 사견의 여러 가지 양상을 개설하고, 특히 장통별원(藏通別圓)의 4교에 따라 발생하는 사견의 본질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특히 불법을 버리고 환속하여 불교와 도교의 혼합을 기도했던 무리들이나 묘오를 과장하는 위선자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여기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노장사상과 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대하여 상세하게 해명하고 있다.

(8) 관증상만경(觀增上慢境)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왜냐하면 《마하지관》은 제 7제견경(諸見境)까지 해설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이다. 다만 《마하지관》 권5 상에서 십경의 생기를 설명하는 문장에서

"만일 사견을 알아서 그르다고 하고 그 맹목적인 집착을 지식(止息)할 것 같으면 탐진리둔(貪茂利鈍) 두 가지가 함께 일어나지 않으며, 무지한 사람은 열반을 증득했다고 말한다. 소승도 역시 횡(橫)으로 4선(禪)을 헤아려서 4과(果)로 삼고 있으며, 대승도 역시 마(魔)가 와서 수기를 주는 일이 있다. 모두 아직 증득하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증상만인(增上慢人)이다. 그러므로 견(見)에 이어서 만(慢)을 설한다"

고 한다. 즉 제견경을 관조하여 사견을 벗어날 때 마침내 자기의 증오(證悟)가 최고의 궁극에 도달했다고 망상(妄想)하기 쉽다. 그 점에서 이 증상만을 대경으로 삼아 십승관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증상만경을 선정의 종말에 가까운 단계에 출현하는 장애로 삼았던 것은 증상만이 선정 수행의 도정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사실이며, 증오가 심화되면 될수록 더더욱 그러한 경향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미 《마하지관》 권1 하에서는 이 증상만을 막기 위해 이즉(理卽), 명자즉(名字卽), 관행즉(觀行卽), 상사즉(相似卽), 분진즉(分眞卽), 구경즉(究竟卽)의 육즉(六卽)을 설명한다. 즉,

"만일 믿음이 없으면 높이 성경(聖境)을 추측하여 자신의 지분(智分)이 아니라고 한다. 만일 지혜가 없으면 증상만을 일으켜 자신을 부처님과 같다고 말한다. 처음과 뒤가 모두 틀렸다. 이러한 일 때문에 반드시 육즉(六卽)을 알아야 한다."

고 말한다. 증상만이 선정의 수행을 방해하는 중대한 장애이므로 지관의 입장에선 증오의 고저를 명확하게 자각하고, 특정한 선정을 무반성적으로 최고의 구경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주는 것이다.

(9) 관이승경(觀二乘境)은 증상만에 이어서 선세의 숙습이 생기하는 것을 지관의 대경(對境)으로 삼아 이것에 십승관법을 적용시킨 것이다. 《마하지관》 권5 상에서

"견과 만이 고요해지면 선세의 작은 습도 고요해져서 생기지 않는다. 눈을 버린 즉 그 일이다. 대품(大品)에서 말하길 항사(恒沙)의 보살은 대심(大心)을 발한다. 혹은 하나, 혹은 둘이 보살위(菩薩位)에 들어가더라도 대부분은 이승(二乘)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만(慢)에 이어서 이승(二乘)을 설하게 된다."

고 말한다. 이승근성(二乘根性)의 자리심(自利心)에 대해서는 지의가 누차 지적하고 있으며, 지관(止觀)을 수행(修行)하는데 이 단계에서 공견(空見)의 잔습(殘習)이 생겨야만 한다는 것은 《마하지관》 권5 상의 십경호발(十境互發)을 설하는 곳에서

"이승을 법계로 삼는다는 것은 혹은 단공(但空)을 보고 불공(不空)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운운, 지자(智者)는 공과 불공을 본다. 성문의 법을 결료(決了)하는 데서 이것은 제경(諸經)의 왕이 된다. 듣고서 잘 사유하면 무상도(無上道)에 다가갈 수 있다"

고 하는 설명에서 알 수 있다. 증상만에 대한 지관의 수행을 진행하는 도정에서 역시 선세의 숙습에 의지하여 소승에 대한 편집(偏執)이 정신 속에 뿌리 깊게 남아서 수행을 방해하기 때문에 새롭게 이 소승심(小乘心)을 대경(對境)으로 삼아 십승관(十乘觀)을 행하는 것이다.

또한 《마하지관》 권10 하에서는 "공을 헤아려서 공으로 삼는 것은 실로 이공(理空)이 아니다. 과(果)가 아닌 것을 과로 계산한다. 이것이 과도(果盜)의 견취(見取)이다. 공견(空見)의 편사(偏邪)는 곧 사견이다."고 하여 이승의 구하기 어려운 독단적인 공견은 지관의 수행을 방해하고 정지시키며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게 한다. 일체의 집착을 여의고 겸허한 무심의 태도를 교시해야 할 공관이 바야흐로 구하기 어려운 공견이라는 독단이 되어 역으로 지관의 수행을 방해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마하지관》에서는 "비격(鼻隔)의 선사는 공견을 발득(發得)하여 많은 그물 속에 떨어져서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다. 산심(散心)의 법사는 제사를 분별하더라도 스스로 공견의 과환(過患)을 모른다. 암증(闇證)의 범구(凡龜), 맹구(盲狗)의 여폐( 吠)는 자행화타(自行化他)에서 전혀 도기(道氣)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이승경(二乘境)을 지관의 대경으로 삼아 십승관을 적용하여 사견과 편집을 여의며, 일념삼천(一念三千)과 원융삼제(圓融三諦)를 관득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0) 관보살경(觀菩薩經)에 대해 《마하지관》 권5 상에서는 "만일 본원을 기억하기 때문에 공(空)에 떨어지지 않는 사람은 여러 가지의 방편도인 보살의 경계에 상즉해서 일어나게 된다. 대품(大品)에서는 `보살이 오랫동안 6바라밀을 실행하지 않고 만일 심법을 듣는다면 비방을 일으켜서 니리(泥梨) 속에 떨어진다'고 말한다. 이것은 6바라밀의 보살일 뿐이다. 통교(通敎)의 방편위도 역시 비방의 의미가 있다. 진도(眞道)에 들어가면 비방하지 않게 된다. 별교(別敎)의 초심(初心)은 심법(深法)이 있는 것을 안다. 이것이 바로 비방하지 않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여러 가지 권의 선근이다. 그러므로 이승의 뒤에 이어서 설하게 된다."고 말한다.

인용문에 의해 지의가 문제시하고 있는 것이 소승보살의 비방심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지의는 이승경을 이탈하더라도 최후에 이 소승보살의 독선적인 편집을 버리지 않으면 원교지관의 완성을 희망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보살경을 지관의 대경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것을 제정했던 것이다. 소승의 보살은 소승의 근성을 지니고 있는 점에서는 성문이나 연각과 상통한다지만 이승이 자리(自利)를 구하고 회신멸지(灰身滅智)를 이상으로 삼는 데 비해서 6바라밀을 행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그런데 석공(析空)을 실상의 원리로 삼고, 이 공을 구경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승과 마찬가지로 공견의 편집을 피할 수 없다. 석공을 구경으로 삼는 공견으로 6바라밀을 행하는 것이므로 그 6바라밀은 편파적이다. 지의는 공견에 집착하여 행하는 보시는 마(魔)의 보시이고, 공견에 집착하여 행하는 인욕은 비겁(卑怯)이며, 정진은 나타(懶惰)이며, 선정은 귀법(鬼法)이요, 지혜는 우치(愚痴)와 동일하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지관을 닦는 것은 이 공견에 집착하는 소승보살의 독선을 배제하기 위해, 이것을 관경으로 십승관을 행하지 않고 겸허한 정신적 자유를 회복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Ⅲ. 十乘觀法의 實際

이상에서 언급한 관음입계경에서 말하고 있는 마음을 관조하는 데 열 가지 법을 갖춘다. 첫째, 불가사의한 경계를 관조한다[觀不思議境]. 둘째, 자비심을 일으킨다[起慈悲心]. 셋째, 교묘히 지관에 안주한다[巧安止觀]. 넷째, 법의 변계소집분을 깨뜨린다[破法遍]. 다섯째, 통함과 막힘을 안다[識通塞]. 여섯째, 도품을 닦는다[修道品]. 일곱째, 대치하는 데 조도를 열어라[對治助開]. 여덟째, 위계를 알라[知次位]. 아홉째, 능히 안정하고 참는다[能安忍]. 열째, 법에 대한 애착을 없앤다[無法愛]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열 가지 법 중에서도 일념삼천의 묘관(妙觀)이 설해지고 있는 관부사의경이 십승관법의 주체가 된다. 나머지는 원돈지관을 수행하는 과정의 실제적인 용심(用心)이거나 분석한 것 내지 예시에 지나지 않는다. 즉 관부사의경이 주체적인 것이라면 나머지는 보조적인 지위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제일의 대경인 음입계경에 대해서 제일의 관법인 관부사의경을 적용해서 완전한 구경의 성과를 거두면 다른 9승관법은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다. 따라서 형계 담연은 상근기자(上根機者)는 단지 관부사의경만으로 지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고, 중근기자(中根機者)는 제 2기자비심(二起慈悲心) 이하의 여섯 가지 관법을 필요로 하며, 하근기자(下根機者)는 십승관법 전체를 적용하고서야 비로소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견해는 관부사의경과 다른 9승관법과의 관계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이하에서 십승관법 개개에 대해 개략적인 내용을 적시(摘示)해 보기로 한다.

(1) 관부사의경은 부사의경을 관조한다는 의미이다. 이 명칭은 《금광명경》의 <산지귀신품> 제10의 `아견불가사의지정 불가사의지취 불가사의지경(我見不可思議智定 不可思議智聚 不可思議智境)'이란 문장이나 혹은 《열반경》, 《청관음경》에서 채용한 것이라 한다. 관부사의경은 십승관법의 전체 속에서 가장 중요한 관법이며, 나머지 9승관법의 관체(觀體)라고도 말한다. 실제 이 관부사의경은 천태의 십승관법 아니 천태의 지관행 중에서 최고의 수행법이며, 이 법을 완성하기 위해 십경의 하나하나에 십승관법을 적용하는 것이다. 만일 제일의 대경인 음입계경에 대해서 제일의 관법인 관부사의경을 적용하여 완전한 구경(究竟)의 성과를 거두면 다른 대경이나 기타의 9승관법은 불필요하다고까지 말한다.

지의는 이 관법을 설하는데 즈음하여 먼저 사의경과 부사의경으로 구분했다. 그리고 사의경은 장교, 통교, 별교에서 말하는 지관의 대경이고, 소승의 `마음에서 6계가 생긴다'는 이치나 대승의 `마음에서 10계가 생긴다'는 이치가 그것이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6계설이든 10계설이든 형식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장통별교(藏通別敎)의 대경은 심생(心生)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심생이라는 이법에 대해 장통별교의 지관의 내용상 사의적 성격이 있다고 지적한다. 다음에 원교지관의 대경은 부사의경이라 전제하고

부사의경이란 《화엄경》에서 말한 것과 같다. "마음은 교묘한 화가가 갖가지의 5음을 만드는 것과 같다. 일체의 세간 속에서 마음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마하지관》 권5 상)

라 설명한다. 나아가 십계호구(十界互具), 3세간(世間), 십여(十如)를 논하고 마침내는 일념삼천설(一念三千說)을 전개한다. 전술했듯이 사의경이 심생(心生)인데 비해서 부사의경은 심구(心具)에 특색이 있다. 성구(性具)의 원리를 지관에 적용했던 것이다. 문제는 관부사의경이라는 이름 아래 지의가 어떠한 관법을 제시하고자 했는가이다. 이 점에 관한 학설은 매우 다종다양하다. 담연(임然)은 관부사의경을 설명하면서 전후 세 가지의 경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 1이 성덕경(性德境), 제 2가 수덕경(修德境), 제 3이 화타경(化他境)이다. 이 경우 수덕경이 능관(能觀)의 관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보았는데 이것을 담연은 사구추검(四句推檢)으로 삼았다. 그러나 과연 담연이 수덕경의 사구추검만을 관부사의경의 관법이라고 생각했는지의 여부는 의문이며, 이에 대해 이론이 분분하게 되었다. 그러나 상당히 유력한 학설은 후대에 정통파의 공식처럼 되어 있었던 초당 처원(草堂處元)의 견해이다. 처원은 삼경은 각각 차이가 있으며, 상근행자(上根行者)는 성덕경에서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부사의경을 관하여 지관을 성취한다. 그렇지만 중근 이하의 행자는 이 부사의경에 대해서 사구분별의 편집을 포용하기 때문에 수덕경에서 새롭게 사구추검의 관법을 닦으며, 화타경에서는 행자로서 사구를 초월하는 실상을 무슨 까닭으로 사구로써 설명하는가를 의심하기 때문에 그것이 화타(化他)의 인연에 의해서 설명된 것으로서, 결코 사구(四句)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이론이 분분함에도 불구하고 《마하지관》을 비롯한 천태 지의의 저술을 분석한 결과 일심삼관(一心三觀)이 관부사의경의 관법, 즉 부사의관의 본질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여기서

"만일 존재의 자성과 무명이 합하여 일체의 존재나 음입계 등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속제이다. 일체의 계와 입이 하나의 법계라면 바로 이것이 진제이다. 하나도 아니고 일체도 아니라면 이것은 바로 중도 제일의제이다. 이와 같이 두루 거칠 것 같으면 일체의 존재가 불가사의한 3제가 아닐 수 없다."

(《마하지관》 권5 상)

라고 하여 원융삼제설로 발전시키고 있다. 일심삼관과 일념삼천설이 합쳐져 원융삼제설로 발전하여 하나의 궤적 속에서 중중무진의 세계를 전개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삼천세간이 실재하는 것으로서 미묘한 지혜의 관찰의 경계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관념적으로 사유되는 것인가 하는 점이다. 《마하지관》은 이 점에 대해 한 생각에 삼천세간이 동시동격으로 구비되어 있다고 하는 것이 부사의경 자체이고 삼천세간이 관찰의 내용은 아니라고 말한다. 즉 《법화현의》 권9 상이나 《삼관의》 권 하를 인용하면서 '부사의경은 원융한 4제나 12연기의 이법이며, 따라서 원융삼제의 미묘한 이법이 부사의경의 주체일 뿐이며, 결코 삼천세간의 차별적인 사상(事相)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2) 기자비심(起慈悲心, 發菩提心)은 관부사의경의 관법을 닦고, 일념삼천의 부사의경을 알며, 스스로도 이 부사의경을 완전하게 체증함과 동시에 일체중생들이 이 이익을 수용하게 하려는 보리심을 발생하는 것이다. 장통이교의 사람들은 자행을 앞세우고 회신멸지를 구하기 때문에 그들의 발심은 자리적 성격을 지닌다. 반면에 별원이교의 사람들은 자행뿐만 아니라 화타를 지원(志願)한다. 그 점에서 《마하지관》은 특히 원교지관의 행자가 발하는 보리심의 화타적 성격을 나타내기 때문에 제 2의 관법을 기자비심이라 명명했다. 그러나 그 본질은 광의의 발보리심이다.

기자비심(起慈悲心)의 자비란 발고여락(拔苦與樂)이며, 이 발고여락의 심정을 자비심이라 말한다. 일체의 중생에 대한 발고여락의 심정이 보리심으로 구체화된 것을 사홍서원이라 한다. 지의에 의하면 발고를 생각하는 대비심에서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와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의 두 가지 서원이 생기고, 여락을 생각하는 대자심에서 법문무량서원지학(法門無量誓願知學)과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의 두 가지 서원이 생겼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사홍서원은 원교의 행자가 발해야 할 서원이므로 중생, 번뇌, 법문, 불과에 대해 하등의 편집도 일으키지 않고 즉공즉가즉중(卽空卽假卽中)의 원융삼제(圓融三諦)의 실상에 상즉한 진정한 발심이라 말한다. 지의는 《영락경》 계열의 4종서원을 채용하고, 그것을 《차제선문(次第禪門)》에서 중국 최초로 설명했다. 이 서원을 이전의 서원과 그 내용을 비교한다면 대승보살의 왕성한 자행화타의 의지를 현저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부사의경의 일념삼천을 관하여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 제법즉실상(諸法卽實相)의 묘리를 알 때 도리어 현실세간의 미망을 슬퍼하고 자타가 함께 이 미망을 벗어나려는 굳은 결의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기자비심은 관부사의경과 밀접한 관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자비의 서원과 불가사의한 경지는 전후가 없이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 자비는 바로 지혜이며, 지혜는 바로 자비이다. 무연(無緣), 무념(無念)해서 두루 일체를 가리고 자유롭게 발고하고, 자연스럽게 여락한다. 독해와 함께 하지 않고, 구공(俱空)과 함께 하지 않으며, 애견(愛見)과 함께 하지 않는다. 이것을 진정한 발보리심의 의미라 한다."(《마하지관》 권5 상)고 말한다. 여기서 진정한 발보리심이라 하듯이 부사의경을 알고, 이러한 이상을 사모하는 맹렬한 지원(志願)이 발보리심이다.

(3) 교안지관은 지관에 의해 마음을 법성에 안주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도 법성이라는 점에서는 엄밀하게는 법성이 법성에 안주하게 하는 정혜를 말하는 것이다. 보리심을 발하여 자타가 함께 부사의경을 성취하려고 하고, 사홍서원을 발한 이상 이러한 지원에 상응하는 수행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 행이 바로 교안지관이다.

이 교안지관에는 두 가지의 구체적인 방법이 있다. 총교안지관(總巧安止觀)과 별교안지관(別巧安止觀)이다. 총교안지관이란 심원에 돌아가 일체의 망상의 유동(流動)을 초탈하고 분명하게 법계진여의 이법을 체증하는 방법이다. "이미 체달하게 되면 망상과 법성을 얻지 못하고 근원으로 돌아가고 반본(返本)하여 법계가 모두 적멸해진다. 이것을 이름하여 지(止)라 한다. 이와 같이 지할 때 일체의 유동이 모두 그친다. 관이란 무명심은 위로는 법성과 같아서 본래가 모두 공이며, 아래로는 일체의 망상과 선악이 모두 허공과 같아서 무이무별(無二無別)이라 관찰하는 것이다."(《마하지관》 권5 상)라고 하여 지관이 모두 일행에 구비된다고 말한다. 즉 무명이 바로 법성이라는 원리를 총관하는 것만으로 환원반본(還源返本)할 수 있는 것이 총교안지관이다.

별교안지관이란 원리를 총관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을 법성에 안주시킬 수 없다는 점을 실수(實修)하는 관법이다. "이 세상을 떠난 뒤에 이러한 스승은 매우 얻기가 어렵다. 눈먼 거북이가 무슨 까닭에 올라와 유공(乳孔)에 합치할 것이며, 떨어진 겨자가 어떻게 내려와 침봉을 관철할 수 있을 것인가. 어렵고도 어렵다."(《마하지관》 권5 상)고 하여 총교안지관의 목적을 달성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탄식하고 있다. 따라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별교안지관이 수립되게 되었다. 별교안지관에는 자행과 교타의 부문이 있다. 우선 자행의 부문에 대해 말하자면 기류의 근성을 신행과 법행으로 구분한다. 옛부터 신행을 둔(鈍), 법행을 리(利)라고 하는 통례가 있지만 지의는 오히려 이둔은 양자에게 모두 있다고 말한다. 다만 신행은 사혜(思慧)는 둔하더라도 문혜(聞慧)는 예리(銳利)하다고 보고, 법행은 사혜는 예리하나 문혜는 둔하다고 하여 양자를 동격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은 각각 여덟 가지의 안심법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다음에 교타(敎他)에 대해서 말하자면 교타란 중생제도를 목적으로 하는 보살행이다. 교안지관이 지관 중의 지관이며, 원행의 중심인 이상 교타의 일면을 지니지 않을 수 없으므로 교화가 지관의 일부라 한 것이다. 교타를 행하는 데도 우선 상대의 근성을 잘 관찰하고, 교묘하게 적절한 지도를 하여 마음을 법성에 안주시켜야만 한다. 그리고 상대의 근성을 역시 신행과 법행으로 구분하고 각각 여덟 가지 안심법이 있다고 말한다.

(4) 파법편은 교안지관을 수행하여 완전하게 정혜(定慧)를 개발할 수 없는 경우, 그것은 편집이 남아 있는 것이므로 이것을 대치하는 관법이다. 《마하지관》 권5 하에서는 "네 번째로 파법편을 밝힌다는 것은 법성이 청정함이다. 합(合)도 아니고 산(散)도 아니며 언어도단이요, 심행처멸이다. 파(破)도 아니고 불파(不破)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파라고 하는가. 다만 중생은 전도됨이 많고 부전도됨이 적기에 전도됨을 파하여 부전도되게 한다. 그러므로 파법편이라 할 뿐이다. 앞서 선교(善巧)로 안심하게 되면 정혜가 개발하여 다시 파하길 기다리지 않는다. 만일 아직 상응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정과 혜를 써서 이것을 모두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파라 이름할 뿐이다."라 하고 있다. 파법편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밝혀 주고 있다.

이 파법편을 철저하게 이행하기 위해서는 원교에 의지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원교에 유문(有門), 무문(無門), 역유역무문(亦有亦無門), 비유비무문(非有非無門)의 사구(四句)가 있지만 이 중에서 무문(無門), 즉 무생문(無生門)을 기준으로 삼는다. 무생문은 원래 생사의 속박을 초탈해야만 하는 것을 밝혀 주는 제일의 원리이다. "무생문은 능히 지관에 통하고 인과에 이른다. 또한 능히 무생을 나타내며, 문이 광양(光揚)하게 한다. 왜냐하면 지관은 행이며, 무생문은 교이다. 교에 의해서 수행하고 무생법인에 통하여 인위를 구족한다."(《마하지관》 권5 하)는 고백에서도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우선 지관의 제일 대경인 식음, 특히 일념의 마음에 대해 고찰하고, 견혹과 사혹의 대치파법에 착수한다.

견혹(見惑)은 가(假)의 사상에 대해 원교의 무생문에 의거하여 파석(破析)한다. 바로 종가입공관(從假入空觀)이다. 이런 경우 상근기자는 곧바로 무생(無生)의 원리를 체득하여 편집을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중근기 내지 하근기의 행자는 새롭게 무생의 원리에 대해 편집을 일으킨다. 이에 다시 이러한 견혹을 파석하여 마침내는 원교의 즉가즉중(卽假卽中)의 공의 진의를 체증하려고 하는 것이다. 사혹은 탐진치 등의 삼계 팔십일품의 사가에 대한 파법을 행하지 않고 무생문의 무루지(無漏智)에 의해 그 목적을 달성한다. 그러나 전술한 견혹에 대한 파법(破法)과 마찬가지로 원융삼제의 원리에 의거한다. 이리하여 원교의 무생문에 의거한 파법을 성취시킨다.

다음에 원교에는 무생문 즉 공관원리의 법문 이외에 가관과 중관의 원리에 입각한 법문도 있다. 그리고 전술했듯이 무생문(無生門)의 파법편이 성취되면 새롭게 원교의 가관의 입장에서 파법을 행할 필요가 있다. 이 파법은 간단하게 말하자면 종공입가관(從空入假觀)의 입장에서 지병(知病), 식약(識藥), 수약(授藥)이라는 대승보살의 화타행으로 전이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병이란 견혹과 사혹의 병상을 상세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병의 모습을 알고 고계(苦界)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중생들을 구제하겠다는 지원을 발하여 식약을 행하게 된다. 병상에 대해 적당한 약을 식별하는 것이다. 약에는 세간법약(世間法藥), 출세간법약(出世間法藥), 출세간상상법약(出世間上上法藥)의 세 가지가 있다. 다음에는 수약이다. 지의는 중생의 약욕(藥欲)을 무시하고 부적당한 법약(法藥)을 주어서는 효과가 없다고 보고 매우 진보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즉 경전의 교의를 현대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후대는 경박해서 정혹(情惑)이 더욱 심하여 곧바로 불경(佛經)을 사용하면 이익이 없다. 보살은 근기를 관찰하고 경전에 달통하여 논서를 만들고 중생들로 하여금 깨달음을 얻게 할 뿐이다. 오직 그를 깨우치는 이로움 뿐이다. ……보살은 이와 같이 지혜를 닦기 때문에 대비서원과 근정진력(勤精進力)을 지니며, 보통 지관을 수행한다. 제불은 위신력을 더하여 활연히 감랑(鑒郞)하게 된다. 입가(入假)의 지(智)에서 자재함을 얻게 된다."(《마하지관》 권6 하)고 한다. 즉 지관을 수행하면 응병여약(應病與藥)의 묘지를 얻을 수 있고, 그래서 사실단(四悉檀)에 의거하여 사교(四敎)를 배제하여 중생을 만족시키면서 이들을 인도하고 자타평등의 이익을 얻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관의 원리에 의거한 파법편이다.

세 번째는 중관의 원리에 의거하여 파법을 행한다. 공관의 원리에 의거한 파법이 자행에 치우치고, 가관의 원리에 의거한 파법(破法)은 화타에 치우치기 쉽기 때문에 새롭게 중관(中觀)의 원리에 의거하여 편파를 배제하고 자행즉화타(自行卽化他)의 진도(進道)에 계합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공가중의 삼관을 파법의 원리로 삼아 일체의 편집을 배제하는 것이다.

(5) 식통색(識通塞)이란 파법편을 수행하더라도 지관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 식통색의 관법을 닦는다. 이것은 바로 해행(解行)이 진체(進滯)하는 이유를 알아서 행의 득실이나 교의 시비를 아는 것과 대응한다. 즉, 지에 따라서 이법에 통달하고 그리하여 불계에까지 오입(悟入)하는 향상도와 정에 움직여서 이법을 상실하는 색(塞)의 위험을 항상 검교음미(檢校吟味)하고, 색을 파괴하고 통을 조장하여 화성(化城)의 초암(草庵)을 넘어 향성의 보소(寶所)에 도달케 하려는 관법이다. 이 관법은 《법화경》, <화성유품>의 "예를 들자면 오백유순의 험난한 악도 광막하고 인적이 끊어져 소름이 오싹 끼치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지나서 보소(寶所)를 찾아가려고 했다고 치자. 이때에 한 인도자가 총명하고 슬기로워 험한 길의 통하고 막히는 모습[通塞之相]을 잘 알고 여러 사람들을 이끌고 이 험난한 길을 지나가고자 했다." 라는 문장을 근거로 삼는다. 즉, 인용문의 대도사(大導師)처럼 뭇 사람을 이끌고 오백유순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 오백유순의 교지행(敎智行)의 전 과정을 알고, 행인에게 유리한 순로(巡路)나 험난한 장소를 충분하게 숙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식통색을 구체적으로 기술하게 되면 4제, 12인연, 6도의 3법에 대해 통(通)과 색(塞)으로 구분한다. 이것을 횡의 통색이라 말한다. 4제 중의 고집 2제는 관지를 폐색하는 것이고, 멸도는 통철시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무명의 12인연은 색, 무명의 소멸은 통이다. 6폐는 색이고 6도는 통이다. 차제삼관에서 말하자면 종가입공관에서 공관이 능파이자 통이며, 일체의 견혹이나 사혹이 색으로서 끊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삼백유순을 넘은 데 불과하다. 그래서 종공입가관을 행하여 사백유순에 도달한다. 이 경우 종가입공관이 도리어 색이 된다. 중도제일의관을 통으로 삼아 종공입가관의 색을 파하고 통하게 될 때 마침내 오백유순을 넘어 보소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일심삼관의 입장이라면 이상에서 언급한 종횡의 통색의 대립을 파괴하고 무애자재하게 보소에 도달할 수 있다. 이것을 통이라 할 수 있지만 통은 본래 색에 대립한 것이고, 일심삼관에는 색이 없기 때문에 엄밀하게는 통도 없는 것이다.

(6) 도품조적이란 4념처, 4정근, 4여의족, 5근, 5력, 7각지, 8정도의 37도품을 적절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전술한 파법편이나 식통색의 관법을 행하더라도 도품조적을 수행하지 않으면 무루의 진법에 신속하게 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상에서 조정이란 말은 근성이나 선락(宣樂)의 상위(相違)에 따라 적당한 도품을 적용하고 지관을 조양(調養)하여 4종삼매를 성취시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37도품이란 본래 소승의 선법이지만 지의는 이 선법을 대승적인 입장에서 채용하고, 《유마경》, 《열반경》, 《대집경》, 《대지도론》 등의 경론에 의거하여 37도품 이외에 대승의 선법이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소승적인 입장을 그대로 긍정한 것은 아니다. 화법사교(化法四敎)의 교판에 의거하여 원교의 실상원리인 원융삼제에 근거한 37도품을 제시했던 것이다. 대소승을 불문하고 원교의 원리 아래 일체의 선법을 통일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37도품을 원행무작의 행으로 응용한 목적은 일심삼관을 완성하는 데 있다. "이러한 도품은 위(位)에 대한 것이 아니다. 단지 초심에서 법성의 이치를 관하면 곧 구족할 수 있다. …… 초심에 도를 행함에 37도품을 써서 지관을 조양하고, 4종삼매로 보살위에 들어간다. 이러한 도품은 대열반의 근인(近因)이다. 나머지의 여러 가지 도품은 원인(遠因)이라 이름한다."(《마하지관》 권 7상)고 한다. 37도품을 적용함으로써 지관이 점차 성숙하고, 마침내 공, 무상, 무작의 삼매해탈문에 들어가 실상의 향성(香城)에 도달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7) 대치조개(對治助開)는 조도대치(助道對治)라고도 부른다. 특히 근기가 둔해서 차장(遮障)이 무겁고, 삼해탈문(三解脫門)을 체증할 수 없는 사람이 잠시 조도를 사용하여 차장을 배제하는 방법이다. 이것은 《대지도론》의 "여러 대치는 조개문(助開門)의 법이다."라는 문장에 의거한다. 그리고 조도의 수는 무량하지만 특히 6바라밀을 사용한다. 즉 4종삼매를 수행하고, 도품조적(道品調適)의 관법을 수행하더라도 간탐심이 생길 때는 보시로써 이것을 대치하고, 파계심이 발생할 때는 지계, 진에심이 일어나면 인욕(忍辱), 방일해태심(放逸懈怠心)이 발생하면 정진, 산란심이 일어나면 선정, 우치심이 일어나면 지혜로 대치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의는 4종삼매의 행자는 이 조도인 6바라밀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의에 안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만일 도품과 6도를 수행하면 부처의 십력을 닦는 것이 된다. 만일 제근(諸根)을 조복(調伏)하고 6도를 만족하면 십력을 만족하여 부처의 위의에 머무를 수 있다…… 만일 도품과 6도를 수행하면 무외(無畏)를 닦아서 부처의 위의에 머무는 것이 된다."(《마하지관》 권7 하)고 한다. 도품이나 6도를 행하여 부처의 위의에 머문다는 사상은 기존의 초월론적인 불신론(佛身論)과 달리 부처를 현실적이고 합리적으로 해석하려는 사상의 발로이다. "현재의 사람들은 부처님을 보더라도 마음에 법문이 없으면 모두 부처님이 아닌 것이다. 만일 이러한 뜻을 얻으면 단지 법의 바름을 취할 뿐이다. 색상(色相)은 바름이 아니다. 만일 오직 색상을 취할 뿐이라면 마(魔)가 변작(變作)하는 모습이니 니목도사(泥木圖寫)가 모두 부처이어야만 한다. 또한 여래의 시현은 자재무애한데 어찌하여 반드시 장광(丈光)의 형태로 만들어야 하는가. 장광의 형태는 단정한 사람에게 시동할 뿐이다. 부처님은 두루 소희(所喜)의 몸을 보이고, 두루 소선(所宣)의 몸을 보이며, 두루 대치의 몸을 보이고, 두루 득도의 몸을 보인다"(《마하지관》 권7 하)고 말한다. 합리적인 자행화타의 법문을 실천하는 곳에 부처님의 진면목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8) 지차위(知次位)는 십승관법 중에서 여덟 번째에 해당한다. 이상에서 언급한 일곱 가지의 관법을 수행하고, 다시 자신의 현재의 행위를 인식하여 증상만이나 비하만(卑下慢)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 증상만이란 아직 얻지 못한 것을 이미 얻었다고 하는 독단심이며, 비하만은 중도에서 자신은 도저히 수행을 감내할 수 없다고 절망하는 퇴굴심(退屈心)이다. 이 두 가지의 만심(慢心)을 제거하기 위해 지의는 여섯 가지 상즉을 설했다. 이즉(理卽), 명자즉(名字卽), 관행즉(觀行卽), 상사즉(相似卽), 분진즉(分眞卽), 구경즉(究竟卽)이다.

지의의 육즉설(六卽說)은 《열반경》의 <여래성품>에 의거하여 설정된 것이다. 지의는 이상의 육즉 이외에 《영락경》의 52위를 채용하고, 《법화경》의 <분별공덕품>이나 광택 법운(光宅法雲)의 학설에 의거하여 새롭게 오품제자위(五品弟子位)를 이것에 부가하여 원교의 행위를 판정했다. 이것을 육즉과 조합시키면 오품제자위는 관행즉의 심천(深淺)을 나타내는 것이며, 십신은 상사즉에 상당한다. 그리고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 십지(十地)와 등각의 41위가 분진즉이며, 묘각이 구경즉에 상당한다. 여하튼 지차위의 관법은 육즉과 원교행위의 두 가지 기준에 입각하여 4종삼매의 실수가 어떠한 지위에까지 진척되었는가를 인식함으로써 수행인이 상만과 자굴의 두 가지 마음을 대치하는 것이 목적이다.

(9) 능안인(能安忍)이란 이상의 여덟 가지 관법을 행하여 법장을 바꾸어 묘혜를 열 때 내외와 강연의 두 가지 유혹을 거부하고 능히 안인절제(安忍節制)하는 관법이다. 번뇌, 업, 선정, 제견(諸見), 만심(慢心) 등이 내적(內賊)이고 명리권속(名利眷屬) 등의 유혹이 외적이다. 이 두 가지 적의 유혹을 받을 때는 자행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화타행도 성취할 수 없다. 따라서 능히 안인하여 내적은 원융삼제의 원리에 의거하여 대처하고, 외적은 막수막착(莫受莫着), 축덕로빈(縮德露룁), 일거만리(一擧萬里)의 세 가지 방법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이것을 내삼술(內三術)과 외삼술(外三術)로 지칭한다. 막수막착이란 명리 등을 받지 않고 또한 이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축덕로빈은 명리의 유혹을 피하기 위해 고의로 덕을 감추고 세상의 주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며, 일거만리는 멀리 절역타방(絶域他方)에 가는 것이다.

이 능안인(能安忍)의 관법은 혜사나 지의의 심각한 체험에 의거하여 제정된 것으로서 《마하지관》 권7 하에는 "만일 명리나 권속이 외부에서 와 파괴하면 이 삼술을 기억하고 이를 악물고 인내한다. 천만 번 청하더라도 확고부동해서 뽑아버리기 어렵다. 양보하고, 감추고, 버려라. 만일 번뇌, 업, 정(定), 견(見), 만(慢) 등 내부에서 와 파괴하면 역시 삼술(三術)을 기억하라.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이다. 설사 피부와 살을 저미더라도 마음이 동산(動散)하지 않으며, 대지가 진압하더라도 중륜하지 않으며, 비풍(臻嵐)에도 가볍지 않고, 한빙(寒氷)에도 차지 않으며, 맹염(猛炎)에도 뜨겁지 않다."고 고백하고 있다. 명예나 이익의 유혹 때문에 자행과 화타가 방해받고 있는 것을 실제의 체험에 의거하여 통렬하게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10) 무법애(無法愛)는 십승관법 중에서 열 번째 관법이다. 전술한 아홉 가지의 관법을 닦고 십신위를 성취하여 내외의 장애를 제거하고 육근이 청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초주위에 나갈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법애를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것을 정타(頂墮) 혹은 순도(順道)라고도 한다.

보통 정타란 4선근 중의 제2정선근위(頂善根位)에서 퇴보하여 악취에 태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지의는 《지도론》에 의거하여 정위에 타재주저(墮在住著)한다는 의미로 파악하고, 십신위에서 순도법애(順道法愛)를 일으켜 악취에 떨어지지 않더라도 초주에도 들어갈 수 없는 주저를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 법애를 제거해야만 지관의 행자는 비로소 초주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위는 내외의 장애는 없고 오직 법애만 있다. 법애는 끊기 어렵다. 만일 계류(稽留:머뭄)하는 일이 있으면 이것은 소사(小事)가 아니다. 예컨대 범(帆)과 같아서 한번은 가고 한번은 머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停)은 곧 주저이며, 또한 사(沙)와 안(岸)에 집착하지 않더라도 바람이 불지 않기 때문에 머문다. 모래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은 내장이 없는 것을 비유하며, 언덕은 외장을 비유한다. 그러나 법애가 발생하여 무주의 바람이 멈추고 나아가지도 물러나지도 못하는 것을 이름하여 정타라 한다."(《마하지관》 권7 하)고 말한다. 법애를 끊으면 초주에 들어가고, 정각을 성취하여 실상을 알며, 자연스럽게 살바야의 바다에 흘러들어 갈 수 있다. 십승관법은 초주에 들어가기까지의 지관행을 설시(說示)하는 것이므로 이 무법애의 관법을 최후로 삼아 일체의 둔근행자(鈍根行者)라 하더라도 상사위로부터 진위인 초주위에 전입할 수 있는 것이다.

Ⅳ. 맺는말

이상에서 십승관법을 요약하여 정리해 보았다. 십승관법은 초기 선종사상의 발달에 많은 기여를 했다는 것이 판명되고 있으며, 특히 우두 법융의 선사상이나 북종선의 사상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고찰되고 있다. 십승관법 자체는 매우 구체적이고 실증적인 관법이라 할 수 있다. 매우 논리적인 정합성을 추구하고 있어서 오히려 번쇄하다는 느낌을 지니게 한다. 반면에 남종선사상이 지니고 있는 초륜이성(超論理性)으로 인해 야기되는 신비주의화 내지 관념화라는 비판의 범주에서 멀찌감치 빗겨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논리의 전거를 대승의 경론에서 광범위하게 찾고 있으며, 관법으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대승불교의 특징인 보살의 서원사상을 지관에 잘 용해시키고 있다. 따라서 지관이 곧 구체적인 보살행의 발판이 되며, 또한 보살행이 실증적인 지관으로 전개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교관(敎觀)을 잘 융합하고 있는 것이다.

◆ 참고문헌◆

1. 《마하지관》 20권(대정장 46)

2. 安藤俊雄, 《천태학》, 平樂寺書店, 1969.

3. 大野榮人, 《천태지관성립사의 연구》, 法藏館, 平成 6年.

4. 池田魯三, 《마하지관연구서설》, 大東出版社, 昭和 61.

5. 關口眞大, 《천태지관의 연구》, 岩波書店, 昭和 44.

6. 新田雅章, 《천태실상론의 연구》, 平樂寺書店, 昭和 56.

●특별기고

박선영 /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釋尊의 傳道宣言에 나타난 敎育思想 試論

Ⅰ. 導論

Ⅱ. 석존의 최초 설법

Ⅲ. 전도의 선언

Ⅳ. 餘論

釋尊의 傳道宣言에 나타난 敎育思想 試論

Ⅰ導論

이 연구는 석존의 기본적인 교육사상을 그의 최초의 설법지(說法地)인 녹야원(鹿野苑:mrgadava)에서 제자들에게 행한 전도선언을 중심으로 검토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석존의 교육사상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석존의 생애 전반과 그의 가르침과 출가제자(出家弟子) 및 재가신도(在家信徒)와의 관계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석존의 설법 내지 교화의 구체적인 장면과 상황에 대한 면밀한 고찰과 그 고찰된 내용에 관한 교육학적인 차원에서의 재해석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의 작업은 많은 지면을 요한다. 따라서 이 연구에서는 석존이 출가제자들에게 전도의 유행(遊行)을 떠나도록 하고 자신도 이 전도의 유행을 하겠다고 다짐하면서 당부한 전도선언을 중심으로 검토하려고 한다. 석존의 전도선언에는 그의 교화 내지 교육의 근본사상이 직접적이고도 집약적으로 함축되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석존의 이 전도선언은 그가 정각(正覺)을 이룬 후 한때, 아무리 가르치고 깨우쳐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되어 교화를 아예 포기하려고 했던 적이 있었던 것으로 초기경전은 전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용단을 내려 교화의 길을 나선다. 따라서 석존의 전도선언은 이와 같은 교화의 용단과 사상적으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석존의 전도선언을 중심으로 한 그의 교육사상의 검토를 위해서는 석존이 정각한 이후에 교화를 결심한 의도에 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이 연구의 주제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석존의 정각 이후의 교화결심에 관한 문제는 어디까지나 석존의 전도선언을 통한 그의 교육사상을 검토하기 위한 직접적인 필요의 범위내에서만, 그것도 되도록이면 간명(簡明)하게 취급될 것이다.

여기에서의 연구는 기왕의 주석학적인 접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석존이 처했던 상황에로 소급하여 추체험(追體驗)을 통해서 해석하는 방법, 다시 말해 이른바 '해석학적 방법(hermeneutische Methode)'을 택하기로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만이 석존의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생생한 의도에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Ⅱ. 석존의 최초 설법

역사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석존은 유·소년(幼·少年) 시기와 청·장년(靑·壯年) 시절을, 비록 작은 왕국이기는 하지만, 장래의 왕위가 보장된 왕자로서 당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쾌락은 다 경험할 수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여러 학문은 물론이고 승마와 무예 등을 포함한 여러 기예(技藝)들도 출중하게 닦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석존의 수행(修行)과 교화의 역정(歷程)을 살펴보면 그가 이미 당시의 여러 계급 가운데서도 뛰어난 지성과 설득력 및 폭넓은 지식과 교양을 갖추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리하고도 체계적인 논리적 사고의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에 틀림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인간이 갖는 근본적인 한계를 해결하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석존은 절실하게 느낄 뿐이었다. 널리 알려져 있거니와, 석존이 왕자시절에 봄날의 농경(農耕)에서 흙 속의 벌레가 보습의 날에 잘리는가 하면 새가 '이 때다'라는 듯이 잽싸게 잘린 벌레를 물고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존재상황에 가슴 아파하기도 하고, 한역(漢譯)의 경전에서는 사문유관(四門遊觀)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바, 인간 일반의 늙고 병들며 죽는다는 현실에 고뇌하기도 한 것은 석존의 바로 이러한 소식을 전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실존적인 자각은 그로 하여금 결국 출가수행자(出家修行者)의 길을 걷게 했다. 그리하여 당시 인도에서 출가수행자들이 흔히 택하던 수정(修定)과 고행(苦行)의 길을 차례로 최고의 수준에까지 닦아 보았으나 이들 또한 본질적인 인간고(人間苦)의 진정한 해탈을 성취하게 하는 길이 아님을 확인하고 모두 버렸다. 그리하여 우루베라의 네란자 강가 보리수(菩提樹) 아래로 자리를 옮겨, 흔히 명상법으로 일컬어지는 독자적인 관조법(觀照法)에 의해 `연기법(緣起法)'을 깨달아 '깨달은 사람, 즉 불타(佛陀:buddha)'가 되었다.

한편, 석존의 이와 같은 깨달음에는 법열(法悅)의 환희와 함께 자신이 깨달은 바를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잘 깨닫게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로 한동안 망설였던 것을 초기경전에서 감지(感知)할 수 있다. 자신이 깨달은 법(法), 즉 진리를 말해 주어도 믿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석존은 결국 크게 용단을 내려 교화의 문을 열기로 결심하게 된다. 초기경전에는 이 과정을 범천(梵天)의 간곡한 권청(勸請)에 의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러한 사정은 여러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하겠으며, 또 그러한 여러 해석의 시도가 있어 온 것도 널리 알려져 있는 바와 같다. 하지만, 위에서 잠깐 시사했듯이, 석존의 이러한 주저는 석존이 자신의 깨달음의 내용을 어떻게 보다 이해하기 쉽도록 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에 관해 깊이 생각하고 있었음을 뜻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주저의 과정은 그대로 다른 사람들을 깨우치기 위한 일종의 교육계획의 과정(過程)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은 한때 함께 고행의 수련을 했던, 그러나 석존이 고행을 버리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타락한 것으로 오해하여 석존의 곁을 떠난 다섯 명의 수행자(修行者)를 찾아 녹야원에서 베푼 최초의 설법에서 분명하게 포착되고 있다.

석존이 쉬라바스티(舍衛城)의 녹자모강당(鹿子母講堂)에 계실 때 자신의 출가 이후 수행(修行)의 과정과 깨달음을 성취한 뒤에 이 다섯 명의 수행자를 찾아 녹야원으로 가서 최초의 설법을 한 상황에 관해 회상하여 들려준 내용을 보면 깨달음을 이룬 한 인간으로서의 석존에 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루베라에서 녹야원까지의 거리는 250킬로미터가 넘는 먼 길이라고 한다. 석존은 이 먼 길을 걸어서 드디어 초기경전에서 흔히 '선인(仙人)들의 주처(住處)'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에서도 짐작이 가듯이 당시 종교적 수행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던 녹야원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이른바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고 하는 '최초의 설법(說法)'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이 최초의 설법에서 석존은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두 극단주의를 예로 들면서, 이러한 극단주의를 버리고 중도(中道)를 취할 것을 가르치면서, 사성제(四聖諦) 가운데 도성제(道聖諦)의 내용인 팔정도(八正道)가 바로 중도라고 깨우쳤다. 석존의 근본사상은 연기사상(緣起思想)이며, 이 연기사상은 바로 중도사상이고, 그리고 이 중도사상의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팔정도라고 하는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석존이 최초의 설법에서 위와 같은 중도를 강조한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하겠다.

그러나 석존이 최초의 설법의 대상으로 택한 다섯 수행자들이 한때 함께 수행했던 도반(道伴)들이었고, 그러나 자신이 고행을 버린 것을 타락으로 오해하고 석존 자신의 곁을 떠났던 점을 고려한다면 이 최초의 설법에서 맨 처음에 중도사상을 강조한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더구나, 이 최초의 설법자(說法者)는, 다시 한 번 되풀이하거니와, 정각을 한 후 세상에 나가서 자신이 깨달은 바를 알려 주고 깨우쳐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하여 주저하고 갈등을 느끼다가 마침내 용단을 내려 교화의 길을 나서기로 하였던 석존이 아닌가. 그래서 분명히 석존은 이 주저와 갈등의 과정 속에서 설법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계획했을 것이라고 추측되기까지 하지 않는가. 더구나 최초의 설법 가운데서 맨처음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취해야 한다고 하면서, 그 극단의 구체적인 실례(實例)로 쾌락과 고행을 든 것은 단순히 중도가 석존의 근본사상 가운데 하나라는 이유만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만약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면 석존이 서로 공존불가능(共存不可能)한 상호반립적(相互反立的)인 관계는 얼마든지 많이 열거할 수 있는데도―하나의 실례로, 석존은 실재주의의(實在主義)의 유변(有邊)과 허무주의(虛無主義)의 무변(無邊)을 들고 있다―불구하고 쾌락과 고행의 예를 제일 먼저 든 것은 석존의 사전준비 가운데 의도되었던 것이 아닐까. 만약 의도된 것이라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다섯 명의 수행자들에게 석존 자신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다시 말해 석존 자신에 대한 그릇된 선입관의 타파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더욱이 이 쾌락과 고행은 모두 석존 자신이 세속의 왕자생활과 출가 후의 철저한 수행을 통해 분명하게 체험했던 일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정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오인(五人)의 수행자들에게는, 모든 극단을 버리고 중도의 정견(正見)을 지니도록 하는 가르침에 있어서, 상호 반립적인 것들 가운데 한쌍인 쾌락과 고행은 가장 설득력 있는 실례(實例)였을 것이다. 모든 교육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인격교육의 상황은 언제나 교사에 대한 인격적인 신뢰가 전제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격적 만남을 통해 감동으로 가슴이 떨리면서 '아!' 하고 경탄하게 되는 상황에서 인격교육의 진가는 발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던가. 인격교육의 이러한 점은 "만남은 교육에 선행한다(Begegnung geht vor Bildung)."는 독일 볼노브(O. F. Bollnow)의 명제 하나만 깊이 생각해 보아도 명백한 것이라 할 것이다.

석존의 최초 설법지인 녹야원에서의 설법 가운데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사성제가 하나의 기본명제로 자주 등장하고 있다. 특히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는 <379>에서부터 <402>에 이르기까지 24개의 소경(小經)들을 통해 이러한 사태가 계속 반복되면서 연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고성제가 인생의 현실 자체가 괴로움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에 관한 깨우침이라고 한다면, 집성제는 이러한 괴로움이 모두 탐욕 내지 아집에 의한 번뇌 때문이라는 것을 알도록 하게 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이러한 탐욕 내지 아집에 의한 번뇌를 제거 내지 소멸하면 진정한 평화의 열반과 자유의 해탈을 향유하고 실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 멸성제이고, 이러한 멸성제의 성취를 위해서는 바른 견해[正見]·바른 사유[正思]·바른 말[正語]·바른 행위[正業]·바른 생활[正命]·바른 노력[正精進:正方便]·바른 정신적 관찰[正念]·바른 정신적 집중[正定]의 팔정도(八正道), 즉 팔중도(八中道)를 실천해야 한다는 것에 관한 가르침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 사성제야말로 석존이 그 어떤 내용보다도 집중적으로 깨우쳐야겠다고 계획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연속되는 녹야원에서의 설법 가운데는 이러한 추측을 밑받침 할 수 있는 주목할 만한 내용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네 가지를 성취함으로써 '대의왕(大醫王)' 다시 말해 '위대한 의사(醫師), 즉 무상(無上)의 완전한 의사'가 된다는 가르침이다. 그 네 가지는 첫째 병을 잘 알고, 둘째 그 병의 원인을 잘 알며, 셋째 병에 잘 대처[對治]할 줄 알고, 넷째 병을 치료한 뒤에 장래에 다시 재발하지 않도록 완전을 기하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석존은 이 네 가지를 잘 안다고 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에 관하여 예를 들면서 자세하게 부연하여 해설하고 있다. 석존이 실제로 든 예를 연구자의 해석을 곁들여 요약한다면, 병을 잘 안다는 것은 온갖 이러저러한 '병의 증세[病症]'에 관해 그것이 어떤 병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진찰하는 것을 뜻한다. 병의 원인을 잘 안다는 것은 병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의미한다. 그리고 병에 잘 대처할 줄 안다는 것은 갖가지 병을 잘 알아 구체적이고도 정확한 처방을 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 치료 후 병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은 미래에 영원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완전치료의 능력을 함의(含意)하는 것이다. 석존은 이와 같은 예를 들고 난 뒤, 이어서 '여래응등정각(如來應等正覺)' 즉 불타는 대의왕으로서 사덕(四德)을 갖추고 중생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 바로 이와 같다고 한다. 석존은 이 사덕(四德)이 앞서 언급한 바 있는 고성제와 집성제 및 멸성제 그리고 도성제 각각에 관한 '정확한 지식[如實知]'을 갖추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세간(世間)에서의 훌륭한 의사는 생(生)·로(老)·병(病)·사(死)·우(憂)·비(悲)·뇌(惱)·고(苦) 등에 대한 근본적인 대처에 관해서는 정확한 지식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바, 여래응등정각만이 진정한 대의왕이어서 사성제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갖추고 이미 모든 인간의 근본적인 괴로움에 완전히 대처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세세생생(世世生生) 영원히 다시는 그 어떤 괴로움도 일어나지 않게 한다는 것이다.

교육학도인 필자는 석존의 생애를 자세히 검토할 때마다 석존이야말로 인류 역사상 진정 위대한 교사였구나 하고 도처(到處)에서 계속 감탄을 금할 수가 없다. 그 가운데서도 위와 같은 의료행위(醫療行爲)와 대비한 사성제의 설법이야말로, 앞으로 검토할 예정인 석존의 전도선언과 더불어, 인류의 위대한 교사로서의 탁월성을 그 어느 대목보다도 약여(躍如)하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여기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석존이 자기자신을 대의왕 다시 말해 '무상(無上)의 완전한 의사'로 자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한 마디로 말한다면 석존은 인간들이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영원히 해방하도록 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확고하게 정립하고 있었다는 것을 함의하는 석존 자신의 직접적인 발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 이미 논의한 바 있었거니와, 석존은 정각을 성취한 뒤 한동안 자신이 깨달은 바를 사람들에게 깨우치는 것을 포기하고 침묵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으나, 끝내는 용단을 내려 교화의 문을 열겠다는 결심을 하고 녹야원에로의 길을 나섰다는 행위에는 범천의 간곡한 권청이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범천의 권청 내용은 "만약 여래께서 법을 설(說)하지 않으면 중생들이 생로병사의 괴로움에 시달리다가 죽고 말 터이니 이 또한 가엾지 않겠습니까.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법을 꼭 설하여 주옵소서.》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범천의 권청이나 이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석존의 교화의 용단은 모두 인간들에게 생로병사의 근본적인 고뇌를 극복하고 영원하고 궁극적인 행복을 성취하게 하기 위한 의도에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석존의 이러한 의도는 위에서 소개한, 최초의 설법지인 녹야원의 현장에서는 석존 자신을 대의왕, 다시 말해 무상(無上)의 완전한 의사로 구체화하여 정립되게 되며, 이와 같은 대의왕으로서의 구체적인 의료행위는 바로 사성제를 깊이 이해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하겠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사성제의 순서가 의사의 의료행위의 순서와 어쩌면 그렇게도 일치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가 각각 의사의 의료행위에서의 병세의 진찰, 병의 원인의 진단, 치료의 방향 내지 목표설정, 치료의 처방 및 시술(施術)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점차 학교교육에서도 그 중요성이 더욱 증가되고 있는 상담에서의 순서와도 원리적으로는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일까. 석존은 위대한 상담자라는 관점에서 불교적인 상담이론의 모색이 시도된 연구도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현대의 학교에서의 '교수-학습'의 원리에도 거의 일치하고 있다. 교육학도인 필자의 생각으로는 초기경전인 아함부(阿含部)의 글들을 읽노라면 마치 야외에서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 문답 또는 토론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훌륭한 수업의 장면들에 대한 기록이라고 해도 별 무리가 없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게 볼 때 이 사성제의 가르침은, 옛 도반(道伴)이었던 다섯 명의 수도자(修道者)를 찾아 녹야원을 향하여 교화의 길을 떠나기 전에 면밀하게 구안(構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심증을 더욱 뚜렷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석존 자신에게 사전의 면밀한 계획이 있지 않고서야 이토록 완벽한 순서와 체계에 따라서 진행될 수 있을까. 비록 사전에 계획하여 구안했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역사적 정황으로 보아서는 참으로 놀랍고 탁월한 계획이요 구안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석존과 같이 깨달음을 통해 밝고 바른 지혜를 갖춘 자만이 가능할 수 있는 계획이며 구안이라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Ⅲ. 전도의 선언

석존은 다섯 명의 수행자들을 상대로 최초의 설법과 더불어 이들과의 공동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이들에 대한 교화가 계속된다. 그리하여 얼마 안되어 그 다섯 제자들 가운데 콘단냐[ 陳如]를 시작으로 하여 모두 깨달음을 얻어 성자 아라한(阿羅漢:arhat)이 된다. 이어서 바라나시의 부호[長者]의 아들 야사(耶舍·耶輸伽:yasa·yasa)가 출가 귀의(歸依)하여 깨달음을 얻고, 그의 네 친구와 다른 50명의 친구들이 또한 출가 귀의하여 깨달음을 얻어 성자인 아라한들이 된다. 이렇게 하여 석존의 제자는 60명에 이르게 된다. 다시 말해 석존과 그 제자 60명으로 이루어진 불교의 성자공동체(聖者共同體)가 이루어진다. 이를 계기로 하여-그러나 다른 문헌에 의하면, 어떤 사람이 친구들과 함께 50인이 바라나시에 와서 결혼할 곳을 찾아 구경하다가 녹야원에서 석존 일행에게 감화되어 출가 귀의하여 모두 성자가 되었는 바, 이와 같이 성자인 제자가 110명이 된 것을 계기로 하고 있다.―석존은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그 유명한 전도의 선언을 하게 된다.

나는 이미 사람과 하늘의 밧줄을 벗어났다. 너희들도 또한 사람과 하늘의 밧줄을 벗어났다. 너희들은 인간에 나아가 많이 건네주고 많이 이익되게 하여 사람과 하늘을 평안하고 즐겁게 해야 한다. 함께 가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씩 혼자서 가야 한다. 나도 또한 이제 우루베라의 마을로 가서 인간에 유행(遊行)하리라.

그러나 이 때에도 석존은, 앞서 살펴본 바 있거니와, 대각(大覺)을 이룬 후 교화를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가지고 번민을 했던 것과 유사한 갈등이 없지 않았던 것 같다. 악마 피아피만[波旬]이, 벗어나지도 못하고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큰 결박에 묶이게 되는 것이라고 하면서 전도를 방해하려 했다는 초기경전의 내용은 바로 이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이렇게 추리하기보다는 오히려 석존이 제자들에게 사람과 하늘의 제도(濟度)와 이익을 위해 전도를 떠나도록 하고 그 자신도 전도의 유행을 떠나려 함에 있어 석존 자신과 제자들이 이교도들을 위시하여 사람들로부터 오해와 불신을 받아 소기의 목적실현에 장애가 있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가 없지 않았던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라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왜 그러할까. 초기경전에서 악마의 이러한 방해에 대해 석존은 단호하게 나는 모든 밧줄로부터 벗어났다고 하면서 여기에서 즉시 사라지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에서 인용한 전도의 선언이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에는 다음과 같이 방침이나 방법이라는 측면에서 보다 구체적이고도 명료하게 나타나고 있다.

비구(比丘)들이여, 나는 하늘과 사람의 모든 구속[係蹄]을 면(免)하였다. 비구들이여, 너희들도 또한 하늘과 사람의 모든 구속[係蹄]을 면하였다. 비구들이여,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간(世間)을 불쌍하게 여기고, 하늘과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유행(遊行)하라. 하나의 길을 두 사람이 가지 말라. 비구들이여, 처음도 아름답고 중간도 아름다우며 마지막도 아름답게, 그리고 의(義)와 문(文)을 갖춘 법(法)을 설(說)하고, 원만(圓滿)하고 청정(淸淨)한 범행(梵行)을 설(說)하라. 태어나면서부터 더러움이 적더라도 법을 듣지 못함에 의해 멸(滅)해야 하는 중생도 있다. 그들은 법을 요해(了解)할 수 있는 자이다. 비구들이여,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장군촌(將軍村)으로 가리라.

위의 남전대장경에서는 앞서의 한역(漢譯)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와 마찬가지로 석존이 자기 자신과 그 제자들이 모두 인간과 하늘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전도의 유행을 떠나라고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석존 스스로 자기자신도 전도를 위한 유행을 떠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교육과 관련하여 무엇을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것일까. 이는 진정한 교사는 깨달음을 통해 그 어떤 탐욕이나 어리석음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이런 의미에서 그 어떤 정신적 속박으로부터도 벗어난 자만이 가능하다는 관점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이 문제는, 전도의 목적이 상대방의 이익과 평안하고 즐거운 행복의 실현을 위한 것이라는 것과 긴밀히 관련된다 할 수 있다. 단순한 인지적(認知的) 차원의 지식이나 기능적(技能的) 차원의 기술의 범위를 넘어서서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기 위한 교육은 위와 같이 정신적 자유의 실현자만이 가능하다는 관점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단지 인간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하늘로 대신되는 우주의 생명체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의 목적이 인간의 범위를 넘어서서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점은 불교의 교육이 모든 생명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한 자비활동임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점은 《남전대장경》에서 '하늘과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유행의 길을 떠나라고 하는 선언 가운데 `세간을 불쌍하게 여기고'라는 표현에서 분명하게 확인된다. 한편, 이미 언급했듯이 석존이 정각(正覺)한 후 한때 교화의 설법을 주저하고 포기하려 했지만 범천의 권청을 계기로 생각을 바꾸어 교화의 설법을 펴기로 결단을 내렸던 바, 석존의 이 결단은 "중생들의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가엾게 여기시어 법을 설하소서."로 요약되는 범천의 권청에 따른 수용의 반응형식을 취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석존이 주저 내지 포기의 고뇌 끝에 교화의 설법을 결심한 것은 바로 중생들이 근본적인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하기 위한, 바꾸어 말해서 중생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성취하도록 하기 위한 자비심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위의 전도선언의 의도와 목적은 석존이 정각(正覺)한 뒤에 교화의 설법을 하기로 한 결단의 의도 및 목적의 연장선상에 있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이 일관된 자비활동으로서의 교화설법의 의도 내지 목적은, 함께 가지 말고 각각 혼자서 따로 가라고 하는 가르침에서 그 극치를 이루고 있다. 각자 보다 많은 우주생명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교육의 지침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자비활동으로서의 교육은 진정 정신적 자유인만이 가능하다 하겠다. 자비에는 예민한 감수성이 전제된다. 그러나 그 감수성이 자기중심성의 속박에 사로잡혀 있거나 무지할 경우에는 이기적이고 독선적이게 마련이다. 비지원만(悲智圓滿)한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인으로서 다른 생명체를 행복하게 할 수 있다 하겠다.

한편 위에서 인용한 남전대장경에는 "처음도 아름답고 중간도 아름다우며 마지막도 아름답게, 그리고 의(義)와 문(文)을 갖춘 법을 설(說)하고,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태어나면서부터 더러움이 적더라도 법을 듣지 못함에 의해 멸해야 하는 중생도 있다. 그들은 법을 요해(了解)할 수 있는 자이다."라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다. 어떠한 점에서 매우 중요한가. 이 내용은 석존의 교육사상 가운데 교육의 기본적인 방침과 학습자관(學習者觀)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태어나면서부터 더러움이 적더라도 법을 듣지 못함에 의해 멸해야 하는 중생도 있다. 그들은 법을 요해(了解)할 수 있는 자이다."라고 하는 선언은 교육의 중요성에 관한 석존의 관점을 극명(克明)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선천적으로 자질이 탁월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교육이 없으면 불행하게 된다고 하는 것을 명백하게 하고 있는 내용이라 하겠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칸트(I. Kant)는 그의 유명한 《교육론》의 벽두(劈頭)에서 "인간은 교육을 필요로 하는 유일한 존재다."라고 갈파한 적이 있거니와, 서기전(西紀前) 6세기 경에 석존은 이미 이러한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이라고 하는 이름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여기에는 지켜야 할 원칙 내지 원리가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석존은 초(初)·중(中)·종(終) 모두의 아름다움[美] 및 의문구족(義文具足)의 법과 원만청정(圓滿淸淨)한 범행(梵行)의 제시를 통해서 깨우치고 있다.

여기에서 '처음도 아름답고 중간도 아름다우며 마지막도 아름답게'라는 내용에서 '아름답게'라는 표현은 꼭 '미학적(美學的) 관점'만의 언표(言表)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지극한 미(美)는, 구태여 희랍(希臘)의 철학을 원용하지 않더라도, 지극한 진(眞)이나 선(善)과 하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언표는 교육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참되고 선하며 아름답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교육에서는 그 목적이나 목표가 모두 교육의 과정(過程)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교육의 내용은 교육의 목적이나 목표의 달성을 위한 교재(敎材)로서의 가치 내지 문화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육내용 또한 이 교육의 과정(過程)을 통해 학습된다. 이렇게 볼 때 실제의 교육에 있어서 그 성패는 바로 이 교육의 과정에 의해 전적으로 좌우된다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육이야말로 그 어느 분야보다도 과정주의(過程主義)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해야 할 것이다. 석존의 '처음도 아름답고 중간도 아름다우며 마지막도 아름답게'라는 가르침은 바로 이러한 점에 관해서 분명하게 확인하고 깨우치면서 당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와 같은 과정에 관한 확인 내지 당부는 "그리고 의(義)와 문(文)을 갖춘 법을 설(說)하고,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는 석존의 교육내용에 관한 가르침이기도 하다. 그것은 간단히 요약하면, 의문구족(義文具足)의 법(法)과 원만청정(圓滿淸淨)한 범행(梵行)이다. 다시 말해 법(法)과 행(行)을 바르고 체계 있게 이해하고 깨닫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의(義)'와 '문(文)'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의(義)가 이치 또는 조리(條理)나 의미라고 한다면, 문(文)은 형식이나 표현의 방식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이치나 의미는 그것이 무엇이든지, 교육의 내용으로 제시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형식을 통해 표현되고 제시되어 제공되어야 한다. 달리 말하면, 교육행위에 있어서 표현의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그 내용을 어떻게 전할 것이냐 하는 매개적인 통로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용은 표현이나 그 표현의 형식을 통해 인지되고 파악되며, 이해되고 느끼며 깨닫게 되어야 할 교육의 목적이나 목표와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교육에 있어 내용과 표현은 서로 불가분리(不可分離)한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다 하겠다. 교육에 있어서 이러한 점을 서양의 철학적 명제를 원용한다면, "내용이 없는 형식은 공허하며 형식이 없는 내용은 허구(虛構)이다."라는 관점의 표명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더욱 중요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는 것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석존의 설법에 있어서 방법적인 기본원리는 이른바 `수기설법( 隨機說法)'이라는 명제로 대표된다. 다시 말해 상대방에 따라 그에 알맞게 설법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교수-학습의 이론'에서는 학습자의 인지발달(認知發達)의 단계에 맞추어서 그에 알맞게 표현하여 제시하면 그 어떤 내용도 그 나름의 수준에서 이해하고 알게 할 수 있다는 이론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교육에 있어서는, 학습시켜야 할 의미나 내용은 그 자체로서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나 내용이 어떻게 표현되어 제시되느냐 하는 것이 더욱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이렇게 본다면, 석존의 전도선언에서 의문구족의 중요성은, 불교 자체의 교의적(敎義的) 차원에서도 함축(含蓄)되어 있는 바가 있겠지만, 전도 내지 교육에 있어서 더욱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이 의문구족은 석존의 설법의 방법론적 기본원리인 "상대방에 따라 그에 알맞게 설법한다[隨機說法]."는 의미를 보다 구체화한 지침이라고 할 수도 있다.

석존의 수기설법에서 '수기(隨機), 즉 상대방에 따라서'를, 후대의 불가(佛家)에서는 흔히, '상대방의 기류(機類)에 따라서 알맞게' 다시 말해 '상대방의 능력이나 수준에 따라 알맞게'라는 의미로 이해되고 있는 경향이 없지 않다. 이러한 관점을 현대의 교육학적 언어로 번역한다면 교육, 다시 말해 학습지도에 있어서의 개별화 원리를 뜻한다 할 것이다. 이 경우 개별화의 원리는 단지 학습자의 학습의 능력이나 수준만이 아니라 그 학습자의 지금까지의 생활, 흥미와 욕구나 또는 장래의 희망 및 그 학습자가 처하고 있는 구체적인 제반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서 그에 알맞게 지도하는 것을 뜻한다고 해야 할 것이다. 후대의 경론(經論)에서 체계적으로 조직화된 물론 그 내용들은 초기의 아함경전(阿含經典)에 근거하고 있지만 십력(十力), 사무외(四無畏) 등 불타만이 지니는 18가지 특별하고도 위대한 능력으로서의 '십팔불공불법(十八不共佛法)'은,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바로 불교에 있어서 이와 같은 개개인에 관한 모든 실태 내지 상황을 잘 알고 고려하여 설법하고 지도할 수 있는 능력으로서의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했듯이, 전도선언에서 전도해야 할 내용은 의문구족(義文具足)의 법과 원만청정(圓滿淸淨)한 범행(梵行), 다시 압축해서 말한다면 법과 행으로 제시되고 있다. 따라서 석존의 교육사상에서 교육의 내용은 법으로 언표되는 진리와 범행으로 명명(命名)되는 실천이라 할 것이다. 이를 교육의 목적과 연관하여 보다 세속적인 교육의 언어로 표현하면 앎과 삶이 하나가 되도록 하게 하여 각자 자유와 평화의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게 하는 교육이라 할 수 있다. 이 경우 진정한 앎은 불교의 경우 정신적 `밝음[明]'을 뜻하는 '지혜'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여래의 별칭(別稱) 가운데는 '명행족(明行足)'이라는 표현이 있는 바, 이는 진정한 앎으로서의 지혜와 그 실천으로서의 행의 일치가 충족된 자임을 뜻한다 할 것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그리고 이미 언급했듯이, 석존의 깨달음의 내용이면서 동시에 석존 자신이 중생들에게 널리 교설(敎說)하여 알게 하고자 한 것은 다름 아닌 연기법이다. 그리고 이 연기법은 바로 중도의 정도이기도 하다. 따라서 석존의 사상에서 교육내용 가운데 진정한 앎으로서의 지혜는 바로 이와 같은 연기법의 깨달음에 의한 지혜라 할 것이다. 그리고 실천으로서의 교육내용은, 석존의 전도선언에서는 자비실천으로서의 전도의 유행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를 이미 살펴 본 사성제에 비추어 보면 연기법의 실천은 구체적으로 팔정도로서의 팔중도이기도 하다. 또한 이것은 계(戒)·정(定)·혜(慧)의 삼학(三學)에 배정하여 이해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석존의 전도선언에서 실천으로서의 행을 `범행'으로 표현하고 있는 바, 석존(釋尊) 재세시(在世時)의 초기불교에서는 범행이라 하면 많은 경우 주로 출가수행자로서의 계행(戒行), 즉 계(戒)의 철저한 수행(修行)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위에 인용한 바 있는 전도선언에서 '원만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서 청정은 특히 출가수행자의 계행을 의미하는 듯한 어감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일반적인 교육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위와 같은 모든 점을 다 함축하고 있는, 그래서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불교적인 실천 전부를 포괄하는 것으로 이해해도 크게 잘못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Ⅳ. 餘論

불교의 초기경전인 아함부의 경전을 읽다 보면, 석존은 인류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위대한 종교적 성자(聖者)이면서도 탁월한 철인(哲人)이며, 또한 위대한 인류의 교사(敎師)이기도 하다는 감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석존 자신이 자기를 '최승자(最勝者)'라고 확언한 바 있거니와, 석존이야말로 여러 면에서 다면불적(多面佛的)인 존재로서 역사적 제약이나 한계를 넘어선 다방면의 총체적 천재라 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이 연구는 석존의 기본적인 교육사상을 그의 최초의 설법과 제자들에게 행한 전도의 선언을 중심으로 검토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는 단순히 불교의 교학적(敎學的)인 차원에서의 주석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석존의 생생한 삶의 과정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작업이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연구에서는 이 문제와 관한 석존의 삶을 살펴 필자 자신의 추체험(追體驗)을 통해서 재해석하는 방법, 즉 해석학적 방법을 택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위와 같은 몇 가지 전제에서 석존의 기본적인 교육사상을 검토하고 정리하여 재해석하려면, 석존의 최초 설법 및 전도선언과 직간접으로 연관되는, 석존이 처했던 상황에 관해 깊이 있고도 치밀하게 검토하여 해석하고, 그 해석된 내용에 관해 교육학적인 의의를 음미해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작업이 어느 정도 원만히 이루어진다면 적게 잡아도 조그마한 단행본 한 권에 해당하는 분량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연구에서는 지면의 제약 때문에, 대체적이고도 거시적인 차원의 시론(試論)에 불과하게 되어, 아주 엉성하고 이론전개에 있어서 논리적인 치밀성을 제대로 기하지 못한 점도 없지 않게 되고 말았다. 동학(同學) 여러분의 양해를 합장하여 앙청(仰請)해 마지않는다. 이 연구의 주제에 관한 본격적인 접근을 통한 천착(穿빈)의 시도는 별도의 후일을 기약하면서, 미진한 점을 보완할 것을 약속하고자 한다.

끝으로, 이 연구에서도 다소 밝혀졌다고 생각되지만, 석존이 정각(正覺)한 후에 한때의 주저 끝에 교화를 결심하고 녹야원으로 교화의 길을 떠난 것과 제자들에게 전도의 유행을 선언하고 실행한 것은, 모두 인간을 위시하여 우주적 차원에서의 자비에 의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자신이 닦아 깨달은 바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각자 깨달아 지극한 행복을 실현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자비활동은 뒷날 크게 발달한 회향사상(廻向思想)과 직결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회향(parinama)이란 '회전취향(廻轉趣向), 즉 방향을 돌려 전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간단히 말해서 방향전환의 실천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의 회향을 불교에서는 자기가 닦은 선근(善根)이나 공덕(功德)을 다른 중생을 위해서 또는 자신의 성불(成佛)을 위해서 방향을 돌려 나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고 있다. 이 회향사상은 불교, 그 가운데서도 대승의 보살사상에 널리 그리고 깊게 뿌리내려 있다. 그래서 대승경전 도처에서 회향사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이 회향은 크게 보리회향(菩提廻向), 중생회향(衆生廻向), 실제회향(實際廻向)의 세 가지로 분류되고 있다. 여기에서 보리회향은 자기가 지은 온갖 선법(善法)을 돌려 보리의 불과(佛果)를 증득(證得)해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중생회향은 자기가 닦은 모든 선근과 공덕을 자비심에 의해 다른 중생들에게 돌려 베푸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실제회향은 자신이 닦은 선근과 공덕을 돌려 유위(有爲)의 유한성을 극복하고, 영원하고도 진실한 무위적정(無爲寂靜)의 즉 열반의 실제(實際)를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종(華嚴宗)에서는 이 세 가지를 회향의 세 방향을 뜻하는 것이라고 보아 '삼처(三處)'라 하고, 그 성질이나 의미에 따라 다음과 같이 10가지의 회향을 말하고 있다.

(1) 회자향타(廻自向他):자신에게서 다른 중생에게로의 방향전환을 뜻하는 것으로, 자신이 닦은 선근(善根)의 공덕을 자비심에 의해 모든 중생들에게 돌리는 회향이다.

(2) 회소향다(廻少向多):비록 자신이 닦은 선근이나 공덕이 조그맣다 하더라도 중생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선근이나 공덕을 모든 중생들에게 돌려 좋은 인연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3) 회자인행 향타인행(廻自因行 向他因行):보살이 자신이 닦은 모든 선근을 불타에 돌리며, 또한 이 선근을 발원(發願)한 바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모든 보살에게 돌려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져 청정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다.

(4) 회인향과(廻因向果):자기가 닦은 선근을 자신의 완성에로 나가도록 하는 향자과(向自果)와 다른 중생들에게 돌리는 향타과(向他果)의 두 가지가 있는 바, 이 가운데 향타과는 위의 '(1)회자향타'와 같다 할 것이다.

(5) 회열향승(廻劣向勝):저열한 것을 돌려 위대하고 훌륭한 데로 나아가게 한다는 뜻으로, 구체적으로는 기뻐하는 바에 따라서 범부(凡夫)나 '이승(二乘)'의 복(福)을 무상(無上)의 정각(正覺)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6) 회비향증(廻比向證):'비(比)'를 돌려 증득(證得)하게 하는 것으로, 속된 것을 전환하여 '저 언덕'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다.

(7) 회사향리(廻事向理):사(事)를 돌려 이(理)를 성취하게 한다는 뜻인 바, 구체적으로는 영원히 유위(有爲)의 일을 하지 않고 피안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8) 회차별행 향원융행(廻差別行 向圓融行):지금까지의 분별(分別)에 의한 모든 차별적인 행위를 전환하여 원융(圓融)한 무애(無碍)의 실천을 하게 함이다.

(9) 회세향출세(廻世向出世):세간적(世間的)인 모든 선근을 다 출세간(出世間)의 성스러운 경지에 따라 교화하여, 모든 중생들이 성숙해서 항상 성스러운 경지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10) 회순이사행 향리소성사(廻順理事行 向理所成事): 이(理)에 따른 사(事)의 행(行)을 돌려 이(理)의 성취한 바로서의 사(事)로 나가도록 하는 것으로, 보다 쉽게 풀어 말한다면 일체의 차별관념을 전환하여 절대의 평등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위의 10가지 회향을, 역시 화엄종에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3가지 회향에 배정하고 있는데, 처음의 (1)과 (2) 및 (3)은 중생회향에, 그 다음의 (4)와 (5) 및 (6)은 보리회향에, 또 그 다음의 (7)과 (8)은 실제회향에 배정하고 있다. 그리고 맨 마지막의 (9)와 (10)은 과(果)와 실제에 통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이를 석존의 생애에 적용해 본다면 석존이 `위대한 깨달음[大覺]'을 성취한 후 자증(自證)의 법열(法悅)에 그대로 잠겨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고 중생의 교화를 위해 이 세속으로 나온 것은 (1)의 '회자향타'에 해당한다 하겠고, 이는 또한 한없는 영겁의 세월을 거쳐 오면서[無量劫來] 자신의 인행을 중생의 인행으로 회향하는 것이라는 의미에서 (3)의 '회자인행 향타인행'이라 하겠으며, 특히 석존의 전도선언(傳道宣言)에서 보다 넓은 지역으로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각자 혼자서 따로 따로 가라 한 것은 (2)의 '회소향다'의 뚜렷한 실증(實證)이라 하겠다. 그리고 정토종(淨土宗)에서는 왕상회향(往相廻向)과 환상회향(還相廻向)을 말하고 있다. 이 경우 왕상회향은 자신의 공덕을 중생에게 돌려 함께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정토(淨土)에 왕생(往生)하기를 서원(誓願)하는 것을 뜻한다. 이에 비해 환상회향은 이미 정토에 왕생한 뒤에 대비심(大悲心)을 일으켜 '방편의 힘[方便力]'으로 다시 이곳의 예토(禾歲土)에 돌아와 중생들을 교화하여 함께 불도(佛道)로 향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에서 아미타불이 인행시(因行時)에 서원한, 중생성취(衆生成就)와 국토성취(國土成就)로 요약되는, 48가지의 비원(悲願)은 대승(大乘) 회향사상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이다. 왜 그러한가. 아미타불의 비원은 이미 성취되어 있으므로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아미타불의 인행시(因行時)의 '본래의 서원[本願]'에 따라 다 정토의 삶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못을 많이 저질렀다 하더라도 10번 이상 아미타불을 칭념(稱念)하면 누구나 다 아미타불의 극락정토(極樂淨土)에 왕생하여 좋은 환경 속에서 성현들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정진(精進)하여 마침내 불도(佛道)를 이루어야 한다는, 아미타불의 이른바 '십념왕생(十念往生)의 본원(本願)'이 바로 그것이다. 이와 같은 회향사상도 교육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재해석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연구의 목적 및 주제와는 거리가 있기에 다음의 기회로 미루고 자제하기로 하였음을 밝혀 두고자 한다

기획논단

'불교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불교학에 있어서의 '통합적 인문학'과 '학제간 연구'-

강 종 원*

Ⅰ. 신세대 불교학의 세 가지 유형

Ⅱ. 인문학의 위기와 불교인문학

Ⅲ. 인문학의 새로운 모색과 불교인문학

Ⅳ. '불교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부록 1: 신학으로서의 불교학은 가능한가?

<불교철학의 궁극적 관심>에 대한 논평 / 강종원

부록 2: 불교학(Buddhist Studies)과 佛學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힌 두 경우

-박태섭과 고영섭의 논문을 읽고 / 심재관

'불교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불교학에 있어서의 '통합적 인문학'과 '학제간 연구'-

Ⅰ. 신세대 불교학의 세 가지 유형

근래에 들어 불교학·인도철학의 방법론 내지는 학문론에 대한 논의가 행해지고 있다.¹ 이 중에서 특히 김호성과 고영섭의 노력이 지속성을 가지고 이루어지고 있는데, 고영섭은 `불학(佛學)'이라는 용어를, 김호성은 `불교인문학'이라는 구체적 용어의 사용을 시도하면서 일반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기본적으로 이들 두 사람의 의도가 기존의 한국 불교학을 하는데 있어서 학(學)적 반성으로부터 출발하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각론으로 들어가면 조금의 차이가 감지되는데, 아마도 이러한 점은 그들의 이론이 자리하는 입장 자체에 차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입장이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차츰 살펴보기로 하고, 우선은 방법론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들 소장학자들의 입장 소개를 통해, 앞으로의 불교학이 나아갈 방향을 도식적으로 모색해 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두 사람 외에 이들의 기본적 입장을 더욱 극명히 대조하기 위해 한 사람의 학자를 더 끌어들이기로 한다면, 종학(宗學)적 입장을 지키면서 불교학을 하는 최봉수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 세 사람의 소장학자들을 각자 하나의 입장을 대표하는 유형으로 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들 세 사람이 불교학의 모든 분야를 다 포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본 논문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만 그 입장 차이를 통해 문제를 더욱 극명히 해보고자 하는 의미인 것이다.

우선 최봉수의 활동을 살펴보면, 최근에 발표된 논문인 <불교철학의 궁극적 관심>에서 자신의 확립된 교판(敎判)을 요약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제까지 타인들이 어떻게(How) 교판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교판(What)을 해 버린 것이다. 물론 그의 교판의 기본적 틀이 타계한 고익진 선생을 계승한 것이긴 하지만 13쪽에 불과하고, 각주 하나 달리지 않은 이 소논문이 불교의 종학에 던지는 파장은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이냐를 따지기 이전에 하나의 중요한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종학적 입장은 타(他)분야와의 교섭이 어느 정도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필자가 추구하는 방향은 아니다. 본 논문 부록에서 수록한 그의 논문에 대한 논평에서도 가볍게 언급하고 있지만, 종학의 한계는 진리의 한계가 아니라 논의의 범위가 한정적이라는 데 있다. 즉 자신의 종교 안에서 같은 종교인들끼리의 논의로 제한되는 것이다. 그 한계를 넘어 타종교와 토론에 들어가면, 결국 신념의 차원으로 넘어가 결론이 나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고영섭의 '불학함'으로서의 불교학은 어떠한지 살펴보자. 그는 '불학'을 '불교학'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불교학과 불학은 같은가, 다른가? 그것이 다르다면 불교학은 근·현대 서구에서 연구해 온 합리적·분석적 불교연구(Buddhology, Buddhist Studies), 즉 서양 기독교의 오랜 신학적 전통에 상응하여 새롭게 연구되기 시작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불학이란 무엇인가? 동양에 있어서의 불학은 유학·도학(노장학)과 더불어 한자 문화권을 중심으로 한 나라에서 불교 내의 다양한 방법론을 동원하여 전개한 불교의 체계적 연구를 일컫는다. 이를테면 한국·중국·일본(瑠球 포함)·베트남 등 한자를 전용한 나라들에서 `교판' 내지 `격의' 등의 방법론을 원용해 불교를 이해하는 불교 연구를 말한다.

그리하여 그는 `불교학'은 `부처의 가르침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또 '불학'은 '동아시아에서 오래도록 이어온 불교 연구의 유구한 전통적 방법, 이를테면 교상판석(敎相判釋) 등과 같은 종합적이고 통시적인 독특한 해석법에 의한 연구 방법 일반'으로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불학'은 문학·사학·철학·종교·예술로 5분 되는데, 그를 통해 '깊이'와 '너비'를 함께 추구하고자 한다. 여기에다가 그의 논리 중 가장 두드러지는 점을 추가하면 언행일치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형을 원효에게서 발견하려 하였고, 그러한 방법론이 보편적인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첫째, 서구의 '불교학자'들은 종합적이고도 통시적인 연구를 한 사례가 없었는가? 서구의 학문에서 말하는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와 같은 노력은 그러한 '통합적 인문학'의 노력이 아니었던가?

둘째, '언행일치'는 동양만의 학문 방법이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인가? 즉, 서구의 학인들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예를 들어, 칸트가 평생을 두고 도덕철학의 기초를 세우려 한 것이 그 자신의 삶과 행동과는 완전히 무관하게 이루어졌을까?

이러한 문제는 서양 학문에 대한 지나친 동양학의 반발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과도하게 서양 지상주의에 경도되어 온 식민성에 대한 반성이지, 서양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모두 무시하는 태도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이러한 세부적 문제점들에 대해서는 심재관과 김호성의 비판에서 다루어졌는데, 본 논문이 다루고자 하는 주제와 관련해서 주목할 점 하나만 들어 보자.

고영섭의 학문론에서 가장 애매한 부분은 '보편성'과 관련된 문제다. 그는 '보편'을 "수많은 개물의 어떤 것에도 동일한 의미로서 공유되는 교집합적 요소가 있다."는 의미로 파악하고 있다. 대단히 모호한 정의긴 하지만, 개체간의 공통성을 강조하는 것이라면 필자 역시 그러한 정의에 공감한다. 그러나 학문의 방법으로서의 보편성은 아무래도 검증 내지는 공론화 가능성이라는 문제, 즉 타당성이라는 문제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논문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그러한 보편성이 구체적으로 원효에게서 어떻게 드러나는가를 살피기보다는 '원효'만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는 주장을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즉, 그의 '보편성' 개념은 `절대성'에 가까운 의미로 들리기 때문이다. 설령 그보다 약한 주장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주장은 불교도 내지는 불교학자들만이 이해해 줄 수 있는 문제다.

따라서 그가 자신의 의도를 분명히 하려면 자신의 논문이 도대체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부터 명확히 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엄격함은 결국 학문간의 교섭에 있어 장애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실제로 그는 '불학'의 지역적 기반을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으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불교의 연구마저도 제한 혹은 배제시키고 마는 경직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인도불교는 분명히 한자와는 다른 문자체계에 의존한 학문 활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불교 내적인 차원보다도 불교학의 바깥, 즉 학제간 교섭에 있어서는 더욱 장애가 될 수도 있다. 종합적이고도 통시적인 연구를 주장하는 그의 방법론은 분명 종학을 하자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의 신념의 차원과 별도로 다른 신념을 가진 타인과도 대화할 수 있는 인문학적 여지를 열어 놓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보편성 개념은 스스로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도 대화 자체에는 실패한, 즉 종학과 인문학 사이에서 정체성을 명확히 확보하는 데 실패한 것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로 주목할 학자는 김호성이다. 그가 처음으로 '불교인문학'이라는 개념을 주장한 것은 <전공 중심주의를 넘어서:불교인문학의 성립 가능성>이라는 글을 통해서인데, '불교인문학'이 성립할 수 있는 배경으로는, 첫째 동국대 안에 '응용불교학'이라는 전공이 생긴 점, 둘째 '불교와 인간', '불교와 예술' 등 다양한 강좌의 수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도권 안에서의 박경준, 김용표, 정승석, 고영섭 등의 노력에 힘입은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인문학'의 개념 수립을 위해 고영섭의 문학·역사·철학·예술·종교의 수평적 범주와, 수직적으로 고전학을 아우르는 데까지 이르는 종합적 연구 개념을 수용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그의 `불교인문학' 역시 기본적으로는 회통(會通)적 성격을 지닌 통합적 인문학으로서의 불교학으로 보인다.

그는 이에 대한 독자의 반론이 있자, 정식 논문을 통하여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5) 여기서는 '수행과 연구'라는 전통적인 학문의 두 요소를 아우르려는 노력 때문에 '불교인문학'이라는 개념 설명은 왠지 부족하다. 하지만 방법론에는 절대적으로 보편타당한 방법론이 없으며, 모든 방법론은 그 나름의 일리(一理)가 있는 방법론일 뿐이라는 생각과, 동서양의 학문 방법론 사이에 어떤 공통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시사함으로써 고영섭보다는 '인문학으로서의 불교학'이라는 개념에 더욱 충실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세 사람의 소장학자들의 입장을 '학문간 대화의 여지'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은 관계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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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 봉 수 --------- 고 영 섭 --------- 김 호 성 |

| |

| * 종학(宗學)적 입장 * 불학(佛學)적 입장 * 불교인문학적 입장 |

| * 불교적 교리의 체계화 * 학문과 수행의 일치 * 회통적 입장 |

| * 타학문과의 대화에 * 전통적 방법론 우위 * 학문간 교섭의 |

| 난점 여지 남겨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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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놓고 보면 최봉수와 김호성의 입장이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고영섭은 이 두 사람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고영섭의 입장이 심재관에 의해 비판받는 것은 그가 근거한 입장 자체에 이미 내재된 것이었다. 그 스스로가 이러한 점을 인식하든 못하든 간에 그의 입장은 이들 양자 간의 종합(감싸안고 뛰어넘음)이 아니라 적당히 뒤섞인 절충적인 것이기에 그 무엇 하나 완벽하게 제안할 수 없었고, 문체상 열정이 앞서게 되는 원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학문 방법론적 고민과 노력에 대해서는 경의를 갖지 않을 수 없고, 논의의 발전적 차원을 위한 중요한 대화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호감을 갖게 되는 것은, 김호성의 '불교인문학'적 방법론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떠한 방법론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볼 때, 어떠한 의도나 관심의 방향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열어 둘 수 있는 방향이 바로 '불교인문학'의 방법론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즉, 어떤 불교학자가 종학적 방법을 선택할 수도 있고, '불교인문학' 내지는 인문학적 방법론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하나의 방법론을 전개해 나갈 때는 자신이 어떠한 방법론을 선택했는지를 명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봉수의 경우 자신의 논의가 종학적인 것이기에 그 자신이나 불교도에게는 실존적 진리의 차원이 될 수 있지만, 서양철학자나 사회학자들에게까지 학문적으로 자신의 언어를 사용할 때는 설득력이 약해진다는 이야기다. 물론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을 테지만 하나의 예를 들어 본 것이다.

또 어떤 경우에는 종학과 불교인문학의 방법을 병행적으로 시도하는 학자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도 그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범주의 변화에 대해서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범주의 오류라는 무서운 결과에 빠지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불교인문학'이 추구하는 바를 명확히 하려 함이다. 그것은 모든 불교학자들에게 어떤 표준적 연구방법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불교인문학'은 다만 불교학과 인접 학문 내지는 불교와 현대사회, 혹은 역사 등과 같이 동시대인과 사회에 어떠한 발전적 논의와 해석을 내놓으려 할 때 유용한 방법론이 되리라는 점을 밝힌다. 따라서 '불교인문학'의 연구 범위와 논점은 제한적 성격을 갖는 것이다.

예를 들어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같이 힘의 논리에 근거한 서구 사상과 논쟁할 때, '깨달음'이나 '공(空)'과 같은 공통적이지 못한 전제로 논의를 벌여 나간다면 의미 있는 토론이 될 수 있겠는가? 즉, '불교인문학'은 일반적으로 인문학자라고 말할 때, 그가 불교학자든, 종교학자든, 혹은 언어학자든 인류학자든 간에, 20세기 말과 21세기 초에 교육받은 지식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언어로 대화하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 그 범위는 불교학 내의 한 분과 학문으로 제한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김호성과 고영섭은 각각 자신들의 '불교인문학'과 '불학'이라는 개념을 '불교학+인문학'과 '불교학 = 인문학'이라는 견해로 나타냄으로써 의견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학' 내부 차원의 논의는 논점을 분명히 하는 데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이 다루게 되는 핵심 문제는 김호성·고영섭 양자가 자신들의 글에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은 부분들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일반적인 인문학이 가지는 역사적 맥락에서의 역할 그 자체에 관한 점이다. 즉, 소위 말하는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된 문제들이 불교학에서도 예외가 될 수 없듯이, 인문학 일반의 문제를 기본으로 하여 '불교인문학'의 모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Ⅱ. 인문학의 위기와 불교인문학

'불교인문학'도 하나의 인문학 이라고 볼 때, 오늘날 인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제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불교인문학'이 '불교학' 안에서 하나의 분과 학문으로서 타학문과의 교류를 전제로 하고 있기에, 일반적인 인문학이 안고 있는 문제를 공유하게 되는 까닭이다. 따라서 오늘날 인문학이 그 정체성이나 학적 반성을 함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인문학의 위기'라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인문학' 역시 그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면 유용한 고찰이 되리라고 본다.

'인문학의 위기'는 근대 자연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또는 '인문학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나'라는 물음에 답하고자 하는 성격을 내포한 것이다. 17세기 이래로 서구에 있어서 과학의 발전을 뒤따라가는 인문과학은 항시 자연과학의 뒤안길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움켜쥐려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딜타이(1833∼1911)는 자연과학과 대립되는 의미로서의 '정신과학'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사회과학과 인문학을 정초하려 하였다. 그 이후로 딜타이에게 있어서의 '설명(Erkl ren)'과 `이해(Verstehen)'의 대립이나, 신칸트학파의 `개성기술적(idiographisch) 방법'과 '법칙설정적(nomothetisch) 방법'의 대립 등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대립적 구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1959년에 스노우(C. P. Snow)가 과학적인 문화와 인문학적인 문화는 서로 성격을 달리한다는 견해와, 그 때문에 발생하는 두 문화 사이의 의사소통의 단절은 현대의 병리현상 가운데 하나라는 진단을 내려 '두 과학' 논쟁으로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또한 그나마 그때까지 자연과학, 특히 물리학을 모든 학문의 전범으로 간주하고 그 기초 위에서 철학자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모색하는 일종의 메타과학으로서의 역할만을 주장하던 통합과학론은 쿤(T. Kuhn)의 등장으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된다. 1962년에 나온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쿤은 과학적 패러다임의 변환이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과학자 사회의 인식론적 변화의 문제라고 하여, 많은 반론들에도 불구하고 과학에서도 해석학적 계기가 중요한 것임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해석학적 계기의 공통성에 착안하여 윤평중은 인문학적 모색이 가능하리라 보고 있다

그러나 인문학의 위기는 더 본원적 차원에서 가속화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쟁은 인간적-역사적 정신으로부터 유래하는 세계의 제현상을 탐구하는 인문학에 주체를 세워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는 해석의 행위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그 전제조건을 흔들고 있다. 더구나 후기 산업사회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 료타르와 같은 이는 지식이 오로지 교환가치에 의해 지배받는다고 한다고 볼 때, 인문학만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자위해 왔던 규범성과 비판적 기능마저도 위기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인문학의 위기 속에서 '불교인문학'의 정체성이 논의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편, 최근의 인공지능기술 등의 발전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을 지배하는 관점 혹은 이데올로기는 '인간주의'였는데, 그것은 인간을 본질로 하여 타자인 대상을 규정해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서구의 인간주의는 대상과 주체와의 위계질서에 따라 여성, 흑인, 동성애자들 등의 소수를 소외시키고 생태계를 위협하는 등의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비판적 인간주의'라는 것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매우 급진적인 견해가 대두되고 있으니, 소위 '탈인간주의(posthumanism)'라 불리는 것이다. 이 견해는 인간의 능력을 능가하는 기계, 즉 인간보다 훨씬 우수한 존재의 출현을 상정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그러한 존재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이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점에서 인문학은 이러한 문제까지 검토해야 할 시점에 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이미 '사이버펑크' 계열의 예술에서는 많이들 다루어지고 있다. 미국 영화 `블레이드 러너'나 사이보그의 정치적 망명을 소재로 한 일본의 만화영화 '공각기동대(Ghost in the Shell)' 등에서는 이러한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강내희는 인간 우위의 인간주의와 기계 우위의 탈인간주의를 모두 배격하고 인간과 기계가 동일한 위상 공간에서 다루어져야 한다는 기계주의적 관점을 들뢰즈, 라캉, 가타리 등의 이론을 들어 소개한다. 따라서 이러한 변화와 관련하여 인문학이 나아갈 바를 모색하려면, 인문학이 타자로 여겼던 것에 대해 개방적 논의를 시작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불교인문학'이 출현할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논의로는, '현대'가 역사적 조건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 하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물론 '현대성' 논쟁은 많은 이견들을 가지고 있고, 아직도 결론이 명쾌하게 나지는 않았지만 하버마스의 다음과 같은 언명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현대는 방향을 설정하는 자신의 척도를 더 이상 다른 시대의 모범들로부터 차용할 수 없으며, 또 그렇게 하려고 하지 않는다. 현대는 자신의 규범성을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창조해야만 한다. 현대는 어떠한 도주의 가능성도 없이 자기 자신에 의존해 있다고 스스로를 파악한다.

이제 현대는 이전의 것들을 단지 전범(Norm)으로써 끌어올 수만은 없다는 말이다. 그러한 현대의 자기 비판성은 현대가 계몽시대 이래로부터 가지고 있던 태생적 운명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따라서 이 관점에 의한다면 '불교인문학'도 그 학(學)적인 반성의 계기를 과거에서만 찾을 수는 없다. 그리고 현대사회가 가진 변화의 속도 역시 이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점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변화의 속도가 전세계에 걸쳐 동시적인 것이며, 따라서 통시적인 면에서뿐만 아니라 동시적으로도 규범성을 생각해야 하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와 같이 현대에 있어 인문학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20세기를 마감하는 시점에 있어서 그러한 학적 위기의 차원은 종래에 접하던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성질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불교학의 한 분과이자 또한 인문학의 한 분과이기도 한 '불교인문학'은, 이러한 인문학적 위기 속에서 그 학적 정체성을 모색해야만 하는 것이다.

Ⅲ. 인문학의 새로운 모색과 불교인문학

앞서 살펴본 인문학의 위기를 바탕으로 한 인문학의 새로운 학(學)적 모색은 이미 여러 학자들에 의해 이론화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이성원은 인문학의 반성적 기능에 착안하여 주체의 변혁에 역점을 두는 교육 기능을 부각하려 하였고, 김남두는 규범적·비판적·전체성에 대한 요구 등의 특성을 들면서 한국적 상황에 맞는 고민을 바탕으로 하여, 한편으로는 교육에 역점을 두고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다운 삶에 대한 통일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또 윤평중은 비판적 이성의 복원과 포스트모던 논쟁의 화해를 바탕으로 한 역동적 규범 이론으로서의 역할, 그리고 연대와 대화를 통한 공동체의 창출을 새로운 인문학의 나아갈 바로 보고 있다. 이러한 노력을 이진우는 기술의 목적을 규정하고 인간성과 자유의 이념을 제시하는 문화과학으로 거듭나는 것에서 찾고 있다.

이들의 논의는 앞에서 강내희를 예로 든 기계주의적 관점까지 포괄하는 첨예함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매우 진지한 고민들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인문학'의 방향 역시 이런 차원의 진지함이 필요하다고 본다. 즉, 불교학 내부에서 어떤 형태의 학문 방법이 더 바람직한가를 따지기 이전에, 현대의 인간이 처한 상황과 인문학의 정체성 모색을 위한 근본적 의문의 차원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따라서 '불교인문학'의 방향도 위에서 예시한 일반적 방향을 따를 필요가 있다.

대체로 인문학이 규범적(당위적)일 것과 비판적(반성적) 성격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에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포스트모던의 논쟁에서 그러한 비판성이 완전히 담보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두 가지 성격은 인문학자들의 신념 밑바탕에 공통적으로 깔린 정서와 확신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이러한 비판적이고 규범적인 성격이 부각되어야 하는 원인, 즉 세계에 있어 하나의 통합된 비전을 제시하는 것에다 더욱 초점을 두고 논의를 전개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의 논의에서 문화비판 또는 문화과학, 문화철학으로서의 인문학을 주장하는 사례가 빈번해진 것은 아마도 이러한 통합적 성격의 부각을 위한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논의를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고려를 해 보아야 하는데, 하나는 메타문화로서의 역할을 위한 `통합적 인문학'이라는 개념과, 또 다른 하나는 그 예비작업으로 먼저 수행하여야 하는 것으로서 다양한 지식의 습득과 여러 분야의 공통적 혹은 첨단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한 '학제간 연구(Interdisciplinary Research)'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제간 연구'는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다. 그러나 '통합적 인문학'이라는 용어는 '학제간 연구'를 수식하는 말로서 엄밀한 정의 없이 사용되고 있으며, 그나마 사용 빈도가 많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본 논문에서는 이 두 개념을 핵심으로 하여 논지를 전개할 것이다.

먼저 '통합적 인문학'은 인문학이 세계를 보편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학문의 방법론적 원리이자 목표이다. '통합적 인문학'이 지향하는 바는 세계를 전체론적(Holistic)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즉, 더 많은 영역과 분야에 걸쳐 세상에 대한 사색이 더욱 명확하고도 직관적으로 올바른 비전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김여수는 인문학의 통합적 성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모든 지적 탐구가 궁극적으로 겨냥하는 것이 그 탐구 대상에 대한 보편적 진리의 발견이라고 한다면, 인문과학은 과학적 설명을 보다 광범위하게 그 설명체계 속으로 수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전통적인 문학·역사·철학·예술·종교뿐만 아니라 과학까지도 아우르는 작업이 된다. 사실상 이 점에서는 고영섭이나 김호성과 전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같다. 그러나 인류 역사에 있어서 그러한 여러 분야에 모두 능통했던 사람이 매우 소수였기에 이러한 목표는 어쩌면 영원한 이상(理想)일 수도 있다. 더구나 서구의 계몽시대 이후로 사회 각 분야가 분화를 향해 치달아 그 첨단에 이른 지금, 이러한 학문의 이상(理想)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분화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또한 규범적인 성격을 가지고 이상(理想)을 지향하는 것이 인문학이 가진 본래적 속성이라는 점도 무시할 수는 없다. 이러한 연유로 '통합적 인문학'은 인문학에 있어서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김용표는 서구의 불교학 연구에서는 이미 불교학을 인문학의 통합된 한 부분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언급한 바가 있다.

한편, 이러한 '통합적 인문학'의 이상적 성격과는 달리 '학제간 연구'는 그를 뒷받침하는 실제적 방법(Technique)이라 할 수 있다. 통합을 향한 노력이 중단될 수 없는 것이라는 점을 위에서 서술하였지만, 그 노력은 부분적인 학제간 연구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수월해 보인다. 그런 연후에 점차로 거시적 차원의 조망을 실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불교인문학'에 있어서 `학제간 연구'는 두 가지 유용한 점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된다.

첫째는 불교적 사유가 인류 역사 전체 속에서 어떠한 위치를 점유해 왔는지를 명확히 인식시켜 줄 것이다. 이는 불교학자 스스로를 문명 해석자로 성장시키고, 그리하여 세계적 차원의 거대 담론 혹은 주류적 논쟁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해 줄 것이다. 둘째는 다원주의시대에 있어서 타분야 혹은 타종교, 그리고 다른 문화와의 상호 소통적 대화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여기서 `가능하다.'라는 말이 아닌 `준비시켜 준다.'라고 표현하는 점에 대해서는 다음 장에서 상술할 것이다. 그리고 기본적인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마지막으로, 불교학에 있어서 세계 해석에 필요한 정확하고도 다양한 자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더 많은 유익함을 기대할 수 있을 테지만 주요하게는 이 두 가지를 우선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통합적 인문학'과 '학제간 연구'의 바탕 위에서 '불교인문학'은 무엇을 지향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Ⅳ. '불교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불교인문학'은 앞에서 제시한 인문학적 모색의 두 전제, 즉 '통합적 인문학'과 '학제간 연구'의 두 축 위에서 불교학자의 학문적 작업을 이루게 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그것은 기존 불교학 안에서의 분과 학문이면서 또한 거시적 의미의 방법론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먼저 분과 학문으로서의 `불교인문학'의 범위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인지 살펴보자.

앞서(I. 신세대 불교학의 세 가지 유형)도 언급한 것처럼, 최근의 불교학 학문론 논쟁에 있어서의 쟁점 중 하나는 불교학의 새로운 방향의 범위와도 관련되어 있다. 즉, '불교학 = 인문학'이라는 김건우의 입장과 이는 간접적으로는 고영섭의 `불학' 개념과도 관련 있다. '불교학+인문학'이라는 김호성의 입장 차이에서 그러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불교학'의 범위가 정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영섭의 '불학'이 불교학 전체 영역을 대상으로 하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동국학풍'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는 김호성의 경우, 동국대학원 불교학과의 교육과정 안에 있는 '응용불교학'이라는 분과를 모델로 생각하면서, 방법론적으로 다른 분야로도 논의를 확대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그와 같은 견해에 공감하지만, 논의의 공적인 한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 범위를 정하는 목적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불교인문학'은 전체 불교학의 분과 학문 중 하나지만 그 기준은 학제적 결정으로서만 되는 것이 아니고, 불교학에 있어서 학제간 연구를 위한 준비작업으로서 설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불교인문학'에 있어서의 `학제간 연구'의 유용성을 논하면서 "타분야 혹은 타종교, 그리고 다른 문화와의 상호 소통적 대화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해 준다."라고 하여 `가능하게 해 준다.'라고 표현하지 않은 이유는 대화를 하려면 먼저 공통의 의사소통 수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다음의 표를 살펴보자.

여기에서 '불교학'은 '불교'와 관련된 모든 학문 활동을 말한다. 그 안에는 많은 분과 학문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특히 우리가 주목할 것은 '종학(혹은 교리학)'과 '불교인문학'이라는 두 부문이다. 여기에서 '불교인문학'은 타학문과의 교섭을 위한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불교인문학'에서 논의되는 언어는 철저하게 타학문의 학자들과 불교학자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언어여야 한다. 경험적인 면에서 볼 때, 불교학자들이 학제간 교섭의 자리에서 불교학적 언어를 구사하는 일이 많이 있다. 그것은 진리의 차원과 언어 표현의 차원을 혼동하는 데에서 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불교의 진리는 쉽사리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렇지만 종교적 차원에서 불교학자의 진리 체험이나 확신을 전제로 하여 상대방과 논의를 한다면 의사소통은 단절되고 만다. 그렇기에 '불교인문학'은 철저하게 불교학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친절성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지나쳐 불교학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는 차원으로 가는 위험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 그렇기에 '불교인문학'적 방법론을 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종학' 혹은 종교철학에 대한 연구를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인문학'의 정체성은 '종학'을 중심으로 한 불교학에 두게 되겠지만, 그 해석과 대상은 일반 인문학자들이나 자연·사회과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말해지는 언어와 대상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살펴보면 '불교인문학'이란 불교학과 여타 학문들과의 교섭 창구가 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지점은 하나의 목표가 아니라 수단일 뿐이다. 실제로 한 학자의 학문이 무르익어 그 사상이 만개하게 되는 것은 '불교인문학'적인 학제간 노력을 통해 진정한 의미의 세계에 대한 전체적이고 통합적인 조망이 이루어졌을 때가 될 것이다.

따라서 '불교인문학' 속에 어떠한 분야들이 있느냐 하는 것은 실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종학'을 잘 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불교인문학'에 있어서도 당연히 '통합적 인문학'의 이념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인문학'은 학문들 간의 공적인 대화를 담보해 내야 하는 의무가 주어진다. 예를 들면, 학자 개인에게도 공적 차원(Public Level)과 사적 차원(Private Level)의 작업이 있다. 사적 차원의 학문은 자신을 수양하거나 혹은 종교적 의미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에 공적 차원의 개인 학문은, 예를 들어 불교학자라면 불교인 혹은 그 문화 전체를 대변하여 해석 혹은 해명하고 변론하는 활동을 말한다. 즉, 전문가라고 말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두 가지를 내포하고 있는 셈이 된다. 실제로 언론학 분야에서 이런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전문직화(professionalism)와 전문화(specialization)를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서는 기능의 특수화와 숙련도를 의미하는 '전문화'와 사회적으로 특정한 역할 등의 문제를 다루는 이념형(ideal type)으로서의 '전문직화'라는 개념이 면밀히 구분되지 못함을 문제삼고 있다. 앞에서 말한 한 개인의 학문에 있어서의 '공적 차원'이란 여기서 말하는 `전문직화'라는 개념에, 그리고 '사적 차원'이라는 것은 `전문화'라는 개념과 대비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 개인에게도 학문의 차원이 나누어지듯이 학문간에도 두 가지 차원이 병존한다. 논자는 이것을 학문간의 '독립적 차원'과 '공존적 차원'으로 분류한다. `독립적 차원' 역시 학문으로서 엄밀성을 추구하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논의 범위가 단일 학문으로 국한된다는 점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학문간의 '공존적 차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공통의 언어적 이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홍성기는 용수(龍樹)의 논법을 분석하면서 "철학적 명제가 주장될 때 그것은 단지 독백(monologue)이 아닌, 무엇보다도 대화(dialogue)라는 논쟁을 통하여 근거지워져야 한다. 그러나 근거를 따지는 대화라는 논쟁은 대화의 참석자들로부터 합리적이라 인정되는 규칙들을 필요로 함은 물론이다."라는 로렌즈(K. Lorenz)의 견해를 들면서, 여기서 '합리적'이라고 할 때의 기준은 일반적으로 종교적 믿음과 철학적 주장을 구별할 때의 그 기준을 적용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논자도 이러한 상식적 기준을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을 적용해서 실제로 이전의 불교학 연구에서도 학제간 연구로 분류될 수 있는 연구들이 있어 왔지만, 과연 다른 학문 분야의 전공자들이 보아서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질 만한 것이었는가 하는 데에는 의문이 간다.

그렇다면 실제적으로 '불교인문학'이 지향하는 방향에 모델은 있어 왔는가? 비록 정통 불교학자의 연구는 아니었지만 김용정이 《과학과 철학》에서 보여준 불교 관련 연구는 가능성 있는 방향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그의 <한국 불교학의 정립을 위한 논리학적 방법론에 관한 연구:현대 기호논리를 중심으로>는 시기적으로도 선구적이지만 상당한 접목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자신이 속해 있던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야 하겠지만 다소 평론적이고, 다양한 지식의 결합 차원을 넘지는 못하고 있다. 즉, '학제간 연구'에 일정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으면서도 통합적 조망의 세련됨은 아직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사상적 정체성의 토대가 치밀하고도 확고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고 본다. 따라서 `종학'과 `불교인문학'은 나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고, 되도록 불교학자는 양자의 방법을 병행적으로 연마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앞에서도 강조했듯이 그럴 경우 자신의 연구 범주가 어디에 속하는지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 이럴 때에 방편적으로 `불교인문학'이라는 개념과 한계 설정은 매우 도움을 줄 것이라 생각된다. 문제는 하나의 새로운 개념이 정착되느냐가 아니라 학문적 반성이 실질적으로 일어나느냐 하는 것이 더욱 본질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불교인문학'의 범위 설정의 의의와 더불어 그 한계를 살펴보았다. 또한 지금까지의 논의는 불교학 바깥을 포함하여 일반적 인문학의 토대 위에서 검토한 것이었다. 그러면 마지막으로 '불교인문학'적 방법이 불교학 혹은 불교 자체에 어떤 이로움을 가져다 줄 것인지를 불교학 내부 차원에서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불교인문학'이 불교학과 타인문학과의 교섭 창구 역할을 하게 되면, 앞에서 '학제간 연구'가 불교학에 끼치는 유용성으로 제시한 바와 같이 불교학자를 사상가로 성장시키는 교육적 역할과 불교와 타학문 혹은 다른 문화, 종교와의 교섭을 객관적 차원에서, 즉 '공존적 차원'에서 가능하게 해준다. 이러한 이점은 용이한 포교의 수단과 같은 낭만적인 이전의 노력들과는 매우 다른 것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공존적 차원'의 대화나 논의는 전세계적 주류논쟁 혹은 거대담론에 불교학의 참여를 허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교가 현대사의 전면에 한 주역으로 나서게 됨을 의미한다.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다른 사소한 이점들은 들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그것은 꿈이 아니다. 불교도로서 생각해 볼 때, 불교는 그만한 정신사적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가치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단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떤 이들은 서구가 이제 동양으로 관심을 보이고 있고, 서구 세계에 불교의 전파가 널리 퍼져 가고 있다는 데에서 고무되기도 한다. 하지만 근대와 현대를 이끌어 온 서구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듯이 쉽게 약해지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불교는 서구의 불교지 동양의 불교가 아니며, 더욱이 한국의 불교는 아니다. '불교인문학'은 그러한 동양적인 혹은 한국적인 정체성 위에서 `공존적 차원'의 대화를 해나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제는 항해를 시작할 때인 것이다. 배를 건조하는 것은 항해를 위함이지, 언제까지고 더 좋은 배를 만들고 있기 위함은 아니다. 대양에서의 항해가 빈번해질 때 자연스레 더 좋은 배의 수요도 증가하고, 더 좋은 배는 더 먼 항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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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 부록으로 실린 두 편의 논평은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김호성 교수의 지도로 이루어진 '불교학방법론' 강의 시간에 과제로 제출되었던 것이다.

懶翁 慧勤의 <工夫十節目>에 관한 연구

김 은 종

Ⅰ. 서론

Ⅱ. 나옹의 <공부십절목> 성립과 그 구성

Ⅲ.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

Ⅳ.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

Ⅴ. 결론

懶翁 慧勤의 <工夫十節目>에 관한 연구

Ⅰ. 서론

나옹 혜근(懶翁慧勤, 1320∼1376)은 고려말의 변혁기를 살다간 인물이다. 즉, 그가 활동했던 14세기 고려는 정치적으로는 원(元)의 내정간섭과 대륙의 원·명 교체에 따라 국가 위기가 고조되고 있었고, 사회적으로는 잦은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으로 혼란상이 가중되고 있었다. 한편 사상적으로는 공민왕이 화엄종 출신의 신돈을 임용하여 국정의 문란이 더해가는 가운데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류의 대불 비난이 강화되고 있었다. 이에 대해 불교계 승려들은 원(元)으로부터 임제선의 직접적 전승을 시도함으로써 활로를 모색하고자 하였다.

이 시기에 선승 나옹이 출현하여 불교계의 인재양성을 통한 선풍의 진작으로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나옹은 남다른 경세의식과 대중구제의 서원으로 출가를 단행하고 국내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후 입원(入元)하여 10년 동안 제선가와의 만남을 통해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신의 선법을 체계화하고, 인도승 호승 지공(胡僧指空)과 임제계 평산 처림(平山處林, 1278∼1361)으로부터 법을 이어 받고 귀국하여서는 불법의 재건과 국운의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

특히 그가 선풍의 진작을 통한 인재양성과 회암사 중병이라는 대중교화를 통해 위축되어 있던 불교계에 활기를 불어넣고자 했던 점은 당시 태고 보우(太古普愚, 1301∼1382)가 중국 임제계의 석옥 청공(石屋淸珙, 1272∼1352)으로부터 전법한 사실을 드러내고 정치적 활동으로 원융부를 설치하고 구산통합이라는 측면에서 불교계의 활로를 찾고자 하였던 점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이처럼 나옹은 수행과 교화에 철저했던 선승으로서 57세의 짧은 기간 동안 많은 문도들을 배출하여 고려말뿐 아니라 조선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 불교계와 민중들에게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여 왔다.

그러므로 나옹선에 대한 연구는 사대주의적으로 고착시켜 보던 한국불교의 사승관계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가능하게 하리라 본다. 그리고 오늘날 '선의 대중화'를 위한 문제에 적절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옹선에 관한 연구는 김포광이 조선불교의 전등이 득도사의 입장에서 볼 경우에는 보조 지눌(普照知言內, 1158∼1210)―나옹 혜근(1320∼1376)―조선 승려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후로 불교학자들과 사학자들 사이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는 나옹의 사승관계를 통해 그가 받았을 선사상적 영향관계를 밝히고, 환암 혼수(幻菴混修, 1320∼1392)에의 사법상에 나타나는 태고법통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옹법통설을 제기하는 데 이르고 있다. 그리고 나옹선의 특징을 밝힘에 있어서는 개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옹이 직접 만나볼 수는 없었지만 당시 고려에 유행했던 선적(禪籍)을 통해 받았을 제선가(諸禪家)들로부터의 영향관계에 대해서는 다루어지지 않고 있고, 나옹선의 본질이나 그 방법면에서도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그의 특징적 선관(禪觀)이 드러나는 <공부십절목>을 통하여 나옹선을 조명해 보고자 한다. 공부십절목은 삼문구·삼전어와 함께 수행인의 공부점검과 수행지침으로 나옹선을 이해하는 특징적인 자료이기 때문이다.

논의 전개를 간략히 말하자면, 먼저 <공부십절목>의 성립과 구조에 대해 간략히 개관을 한 다음,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을 밝히고,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밝히는 순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나옹선의 이해를 돕고, 오늘날 선을 수행하는 공부인들에게 자신의 공부를 점검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리라 생각된다.

Ⅱ. 나옹의 <공부십절목> 성립과 그 구성

<공부십절목>이란 학인들의 공부를 시험하는 단계적 물음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옹선의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는 선사가 51세 되던 공민왕 19년(1370) 9월 '공부선(工夫選)'의 주맹(主盟)이 되었을 때, 공부인의 근기를 시험하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이러한 학인제접의 문답 형식은 이전부터 내려오는 임제 간화선의 수행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는 것인데 10절목으로 구성된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특징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공부십절목>의 성립 자체는 나옹선의 이해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즉, 승정의 혼란으로 침체되었던 승과가 공민왕에 의해 공부선의 형식으로 부활되었을 때, 선교 양종의 학인들을 가려뽑는 장(場)인 매우 비중 있는 공부선을 나옹이 주관하게 되고, 나옹은 이를 학인들의 공부점검을 위해 제시하였기 때문에 그 불교사적 의의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법계 수여의 기본이 되는 승과가 고종대(1213∼1259) 이후에는 승정의 혼란으로 침체되고 결행이 잦았다. 그런데 공민왕대에 다시 나옹이 주맹이 되어 '공부선'을 부활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신돈을 제거하고 난 뒤 중단되었던 승과의 실시로 분위기 일신과 승풍을 진작시키는 데 일조를 하였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 나옹이 이 <공부십절목>을 후진 양성이나 불교도들을 지도할 때에 어떻게 활용하였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두 가지 의미에서 접근해 볼 수 있다. 즉, 화두의 형태로 제시되어 스스로 점검하고 깨달음의 길로 접근하도록 하는 선수행의 지침으로서의 의미와 종래 견성 이후의 수행에 대해 흔히 돈수를 강조해 온 데 대하여 보림의 측면에서 공부점검법으로서의 의미가 그것이다.

먼저 경술(1370) 9월 16일·17일 국시공부선장(國試工夫選場)에서 공부십절목이 설해진 경위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사(師) 좌석에 나아가 한참 있다가 말씀하셨다.

"고금의 격식[ 臼]을 모두 부수고 범성의 자취를 다 쓸어버리며, 납자의 목숨을 끊어버리고 중생의 정해(情解)를 털어버리로다. 변통살활(變通殺活)이 모두 여기에 있고 잡았다 놨다 함이 모두 이 손 안에 있도다. 삼세제불이나 역대 조사나 천하의 노화상도 모두 이와 같다. 산승은 이와 같은 법으로 우리 임금님의 색신과 법신이 만세 만만세토록 무궁하고 수명과 혜명이 다함이 없기를 봉축하옵니다. 청컨대 제인(諸人)은 실다웁게 답안을 쓰고 부디 함부로 소식을 통하지 말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사(師) 다시 말씀하셨다.

"행(行)은 도달했어도 이치[說]가 이르지 못하면 행이 능하지 못한 것이요, 이치[說]는 도달했어도 행이 이르지 못하면 이 또한 도리가 능하지 못한 것이요, 도리나 행이 도달했더라도 이는 모두 문 밖의 일이라 입문일구(入門一句)는 도대체 무엇인가?" 학자들이 모두 말없이 물러났다.

이렇게 차례로 들어와 대답하게 하였는데, 모두 몸을 구부리고 땀을 흘리면서 모른다고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는 알았으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혹은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하고는 물러가기도 하였으므로 임금은 매우 불쾌한 빛을 보이는 것 같았다. 끝으로 환암 혼수 스님이 오자 스님은 삼구(三句)와 삼관(三關)을 차례로 묻고, 법회를 마치고는 회암사로 돌아갔다.

여기에서 승려들이 공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입문삼구조차 통과 못하는 상황은 당시 그들의 수행 풍조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뒷날인 17일에는 학인들을 제접한 후 <공부십절목>을 제시한다.

스님께서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가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의단이 풀리는 곳에는 마침내 두 가지 풍광이 없고, 안공(眼孔)이 열리는 때에는 한 항아리의 봄빛이 따로 있으니 비로소 일월의 새로움을 믿겠고 바야흐로 천지의 대단함을 알 것이다. 그런 뒤에 반드시 위쪽의 관문을 밟고 조사의 빗장을 쳐부수면 물물마다 자유로이 묘한 이치를 얻고 마디마디 종지와 격식을 뛰어넘을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丈六金身)을 만들고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드니, 만드는 것도 내게 있고 쓸어버리는 것도 내게 있으며, 도리를 말하는 것도 내게 있고 도리를 말하지 않는 것도 내게 있다. 왜냐하면 나는 법왕이 되어 법에 있어서 자재하기 때문이다."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과연 그런 납승이 있다면 나와서 말해 보라. 나와서 말해 보라."

학인들이 문에 이르자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한 걸음 나아가면 땅이 꺼지고 한 걸음 물러나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나지도 않으면 숨만 붙은 죽은 사람이다. 어떻게 걸음을 내딛겠는가?"

학인들은 모두 말없이 물러갔다.

이에 <공부십절목>을 설하니 다음과 같았다.

一. 세상 사람들은 모양을 보면 그 모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소리를 들으면 그 소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어떻게 하면 모양과 소리를 벗어날 수 있을까.

二. 이미 소리와 모양에서 벗어났으면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 어떻게 그 바른 공부를 시작할 것인가.

三. 이미 공부를 시작했으면 그 공부를 익혀야 하는데 공부가 익은 때는 어떤가.

四.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떠한가.

五.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 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六. 공부가 지극해지면 근정(動靜)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 같나니, 그 때에는 어떻게 해야 합당한가.

七. 갑자기 120근 되는 짐을 내려 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 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自性)인가.

八. 이미 자성을 깨쳤으면 자성의 본래 작용은 인연을 따라 맞게 쓰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본래의 작용에 맞게 쓰이는 것인가.

九.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十.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이를 구성면에서 살펴보면 성색초월(聲色超越) → 하개정공(下介正功) → 정숙공(正熟功) → 타실비공(打失鼻孔) → 의식불급(意識不及) → 오매항일(寤寐恒一) → 수지경절( 地更折) 수연응용(隨緣應用) → 요탈생사(要脫生死) → 지거처(知去處)의 10단계를 순차적으로 물어서 그 깨달음의 단계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순차적으로 보는 것에는 무리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단계적 점검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설정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고 그 내용상에 있어서는 1절목에서 7절목까지는 견성의 단계를 나타내고, 8절목에서 10절목까지는 보림의 단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즉, 나옹은 일반적으로 깨달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견성의 단계를 <공부십절목>의 7절목에 해당시키고 성품을 단련하고 보림하는 8절목 수연응용의 대기대용적 작용을 비롯하여 9절목 요탈생사에까지 이르고 급기야 10절목의 생사를 벗어나서 4대가 가는 곳까지를 알아야 비로소 이생의 일을 다 마쳤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깨달음의 단계를 점검하여 대기대용적 응용에 이르기까지의 완성에 이르도록 하는 데 의의가 있다.

Ⅲ.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

또한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받았을 선적을 통한 사상적 영향관계의 일단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드러난다. 즉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나옹이 사용한 용어나 형식을 빌어 그 사상적 연원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는 제공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솔직히 필자의 식견부족으로 구체적인 연원까지는 추적하지 못하였다. 다만 사상적 연원을 고찰하는 실험연구의 입장에서 <공부십절목>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되는 부분을 찾아보려 노력하였다.

첫째, <공부십절목>의 깨달음 10단계라는 형식적인 면에서는 《화엄경》에서 말하는 <화엄십지(華嚴十地)>와 상통하고, 그 절목이라는 형식은 몽산의 <무자십절목(無字十節目)>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둘째, '도솔 삼관(三關)'과의 연관성 문제를 주목할 수 있다.

물음의 형태는 전통적으로 선사들이 학인들을 제접할 때 사용된 방식으로 삼관, 삼전어, 문구, 삼구 등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중에서도 삼관이란 수행자로 하여금 항상 대립적으로 보는 편견을 버리고 수행에 입문하게 하는 3가지 기관을 말하는데 유명한 것으로는 운문 문언(雲門文偃, 864∼949)의 삼관과 임제종 황룡파 황룡 혜남(黃龍慧南, 1002∼1069)의 삼관, 도솔 종열(兜率從悅, 1044∼1091)의 삼관, 양기파 고봉 원묘(高峰原妙, 1238∼1295)의 실중삼관(室中三關) 등이 있다.

특기할 것은 도솔의 삼관이다.

<도솔삼관>

一. 번뇌의 풀을 헤치고 도의 깊은 뜻을 참구하여 단지 자성을 보라. 바로 지금 그대의 참된 성품은 어느 곳에 있는가?

二. 자성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할 텐데 눈빛 떨어질 때 어떻게 생사를 벗어날까?

三. 생사를 벗어났다면 갈 곳을 알 것인데 사대가 분리되면 어느 곳을 향하여 갈 것인가?

<공부십절목>

九. 이미 자성의 작용을 알았으면 생사를 벗어나야 하는데 안광이 땅에 떨어질 때에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十. 이미 생사를 벗어났으면 가는 곳을 알아야 한다. 4대는 각각 흩어져 어디로 가는가.

이를 보면 도솔의 삼관 중 2가지 질문이 <공부십절목>의 9절목과 10절목에 수용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사실을 미루어 나옹이 도솔에게서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 영향관계에 관해 간과할 수만도 없다.

셋째, 표현의 유사성을 통해 《고봉화상선요》와 《몽산법어》와의 사상적 영향관계를 알 수 있다.

즉, 4절목 '자취를 없애고…' 한 구절과, 6절목에 나타난 `개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을 핥느니라' 한 대목이 《선요》의 '신옹 거사에게 보이는 구절'에서 발견되고, 7절목의 '120근 되는 짐을 내려 놓는 것과 같아서…' 한 구절도 《선요》의 '앙산 노화상께 사법 의심함을 풀어주는 글'에서 발견된다.

<공부십절목>

四. 공부가 익었으면 나아가 자취를 없애야 한다. 자취를 없앤 때는 어떠한가.

六. 공부가 지극해지면 동정에 틈이 없고 자고 깸이 한결같아서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고 움직여도 잃어지지 않는다. 마치 개가 기름이 끓는 솥을 보고 핥으려 해도 핥을 수 없고 포기하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것과 같나니, 그때는 어떻게 해버려야 하겠는가?

七. 갑자기 120근이나 되는 짐을 내려 놓는 것 같아서 단박 꺾이고 단박 끊긴다. 그 때는 어떤 것이 그대의 자성인가.

《선요》

"양기(楊岐)가 자명화상(慈明和尙)을 참례하니 그로부터 9년이 되던 해에 자취를 없애고 도를 천하에 전파함도 역시 이 하나의 믿음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늘 별안간 어떤 사람이 묻기를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하고 묻는다면 "개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솥을 핥느니라." 하겠다.

"화두를 확연히 깨달으니 곧 혼이 나가고 담이 없어진 듯하고 죽었다가 다시 소생한 듯하였습니다. 어찌 120근의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습니까?

그리고 5절목의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한 구절이 《몽산법어(夢山法語)》의 <몽산화상시총상인(夢山和尙示폡上人)>에서 똑같이 발견된다.

<공부십절목>

五. 자취가 없어지면 담담하고 냉랭하여 아무 맛도 없고 기력도 전혀 없다. 의식이 닿지 않고 마음이 활동하지 않으며 또 그 때에는 허깨비몸이 인간세상에 있는 줄 모른다. 이쯤 되면 그것은 어떤 경계인가.

《몽산법어》

"적적성성하여 마음의 움직임이 멈출 때엔 허깨비몸이 이 인간 속에 살아있다는 사실마저 잊고 오직 면면히 이어지는 화두만이 보이리니…"

이상과 같이 밝혀진 내용들을 간략히 도표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

이러한 사실은 나옹이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여말선초부터 우리 나라 조계선종의 주요 지침서로 쓰였던 고봉 화상의 《선요》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음을 나타내고, 당시 국내에 유행되었던 몽산 화상의 《몽산법어》도 이미 접했으며 그에게서도 사상적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몽산 덕이(夢山德異, 1231∼?)와 고봉 원묘(高峰原妙, 1238∼1295)는 원나라 임제계의 선승들로서 한국 선사상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나옹만이 그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앞으로 더 밝혀지겠지만 그 당시 고려의 승려들은 거의가 이 두 선승들의 영향하에 선사상을 전개하고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특이한 것은 시대적으로 300년이나 앞선 도솔 종열의 삼관이 수용되고 있는 점이다.

이와 같이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인도승 지공과 평산 처림을 직접적으로 만나서 사승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시대와 분파를 초월하여 제선가와 폭넓게 사상적으로 교유했을 것이라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Ⅳ.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

나옹선의 기저에는 그의 중생구제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의식은 나옹이 요연 선사 문하로 출가했을 때와 입원유학기 지공과의 첫대면 때의 문답에서 나타나고 있는데 그의 선사상 전반에 시종일관되게 작용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선사상을 전개함에 있어서 대상이나 방법에 국한없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철저한 신심과 꼭 이루고 말겠다는 의지에 바탕하여 바로 그 자리에서 자신의 본래면목에 계합할 것을 강조하지만, 근기에 따라 주장자나 불자, 죽비 등을 번쩍 들어보이기도 하고 다양한 화두를 제시하기도 하며, 때로는 염불을 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가 선의 방법으로 가장 중요시한 것은 역시 화두참구에 의한 본지에의 계합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밝히기에 앞서 그가 제시한 화두참구의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화두참구의 시작은 각자의 안목에서 제시하는 본래면목이나 세계상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즉, 깨치지 못한 중생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육안으로 파악하는 것들이 실재한다고 믿는데 깨달음의 안목에서는 이를 달리 설명한다. 그리고 거기에 일호의 의심이라도 발견되면 기필코 해결해 내리라는 마음을 내고 공부에 돌입하라는 것이다.

"이 정각의 성품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위로는 모든 부처에서 밑으로는 여섯 범부에 이르기까지 낱낱에 당당하고 낱낱에 완전하며, 티끌마다 통하고 물건마다 나타나 닦아 이룰 필요없이 똑똑하고 분명하다. 지옥에 있는 이나, 아귀에 있는 이나, 축생에 있는 이나, 아수라에 있는 이나, 인간에 있는 이나, 천상에 있는 이나 다 지금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모두 이 자리에 있다. 각경 선가와 여러 불자들이여!"

죽비를 들고는

"이것을 보는가."

하고는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는가. 분명히 보고 똑똑히 듣는다면 말해 보라.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이처럼 나옹은 죽비를 들되 그 모습에서 정각의 성품을 보고, 죽비로 치되 그 소리에 정각의 성품의 소식을 듣는데 깨닫지 못한 자는 그 소식을 알 길이 없다.

결국 "그것이 무엇일까?" 여기서 공부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마음이라고도 하고 본래면목이라고도 하는 '그 무엇'에서 모든 시비이해와 선악염정이 일어나기 때문이며, 그 본래면목을 알지 못하고서는 끝없는 생사고해의 윤회 속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의문이 일어나면 거기서 당장 깨닫는 일이 급선무이다.

이 본래면목이란 역력고명(歷歷孤明)하게 언제나 드러나 있지만 언설로서 이르지 못하고 명상으로서 나타낼 수 없으므로 부처님도 다만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실 뿐이었던 것이다. 불조의 심인이 심심상연(心心相連)으로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一着子)는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하지마는,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닫는 길뿐이다."

이 때 철저한 신심과 의지가 요구된다.

"이 일은 승속에도 관계 없고 노소에도 관계 없으며, 초참·후학에도 관계 없고, 오직 당사자의 진실하고 결정적인 신심에 있을 뿐입니다."

"진정 이 큰 일을 참구하려면 …오직 당사자가 결정적인 믿음을 세우고 견고한 뜻을 내는 데 있는 것입니다."

셋째,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달아지지 않을 경우 화두를 참구해 나간다.

나옹은 "그대들이 그대로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선배 큰스님들이 부득이하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라고 밝히면서 화두참구의 방법을 제시하였다.

그는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한 가지 화두를 계속 참구하고 중간에 화두를 바꾸는 것을 경계한다. 또 화두의 종류에 있어서는 특정화두에 국한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화두를 들도록 하였지만 시간적으로는 항상 철저하게 참구해 나갈 것을 강조한다.

"…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 번 앉으면 그대로 눌러 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라든가, '나개시본래면목(那箇是本來面目)'이라든가, '나개시아성(那箇是我性)'이라든가 하라. 혹은 '준동함령 개유불성 인심구자무불성(濬動含靈 皆有佛性 因甚狗子無佛性)'이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 이 중에서도 마지막 한 구절을 힘을 다해 들어야 한다."

"부디 다른 화두로 바꾸어 참구하지 말고 다만 하루 스물 네 시간 무엇을 하든지 늘 드십시오."

넷째, 공안참구의 방법에 있어서는 조작하지 않음과 쉬지 않음을 강조한다.

즉, 간화·공안선에 있어서 대혜 종고(大慧宗 , 1089∼1163)로부터 지적되고 있는 10종선병은 조작하고 헤아리는 지해(知解)의 병이라는 말로 축약될 수 있다. 이처럼 나옹에 있어서도 공안을 놓고 헤아리거나 언설로 이해하려 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그리고 "어떤 때는 화두가 분명하고 어떤 때는 분명하지 않으며, 어떤 때는 나타나고 어떤 때는 나타나지 않으며,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으며, 어떤 때는 틈이 있고 어떤 때는 틈이 없거나 하면 그것은 신심과 의지가 견고하지 않기 때문임" 을 지적하고 "빨리 공부를 더하여 앞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한다.

"도란 첫째는 그 짓지 않는 것[不造]이요, 둘째는 쉬지 않는 것[不休]임을 알 것입니다."

"… 계속 의심해 가고 계속 부딪쳐 들어가 몸과 마음을 한덩어리로 만들어 그것을 분명히 캐들어가되, 공안을 놓고 그것을 헤아리거나 어록이나 경전에서 찾으려 하지 말고, 모름지기 단박 탁 터뜨려야 비로소 집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섯째, 화두를 놓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참구하기를 계속하도록 한다.

무슨 일을 하거나 간에 계속해서 의심을 일으켜 나가면 화두를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경지에 이르는데, 여기에서 다시 의심을 더하여 온통 하나의 의단(疑團)이 형성되도록 계속 의심하여 들어간다. 그 경지에 이르면 자신과 의심이 하나로 뭉쳐져서 경계를 잊게 된다. 이 때에는

"이렇게 계속 들다 보면 공안이 앞에 나타나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린다. 고요한 데서나 시끄러운 데서나 들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것이다. 그 경지에 이르거든 의심을 일으키되 다니거나 서거나 앉거나 눕거나 옷을 입거나 밥을 먹거나 대변을 보거나 소변을 보거나 어디서나 온몸을 하나의 의심덩이로 만들어야 한다."

이 상태에서도 적적성성(寂寂惺惺)하게 화두를 놓지 않고 계속해서 의심해 들어가면 자신도 잊고 경계도 잊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러한 심신일여(心身一如), 오매항일(寤寐恒一)의 경지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져버린다. 즉,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을 온통 놓아 버릴 때 공부는 날을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곳에 이르러 가슴 속이 갑갑하더라도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저 이렇게 끊임없이 들고 참구하다 보면 어느 새 들지 않아도 화두가 저절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저절로 의심되어, 밥을 먹어도 밥인 줄 모르고 차를 마셔도 차인 줄 모르며, 또 이 허깨비몸이 인간에 있는 줄도 모르게 될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하나 같고 자나깨나 매한가지인 곳에서 몸을 뒤쳐 한 번 던지십시오"

여섯째, 공부를 더해가는 가운데 의심덩이가 부서지고 바른 눈이 열려 본지에 계합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이렇게 되면 자성의 원리를 알게 되고 그 자성의 혜광(慧光)이 발함에 따라 자성의 작용을 알게 된다. 이 때부터는 그 인연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그 작용을 나투게 되는 것이다.

끝으로 깨달음에 이르른 사람에게 나옹은 정안종사(正眼宗師) 참문과 보림을 제시한다.

깨침 후 본색종사(本色宗師) 참문으로 마지막 의심을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태고 보우에게서도 똑같이 강조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당시 국내에 유행되던 몽산 화상이나 고봉 원묘의 영향으로 파악해 볼 수 있다. 또한 보림도 "마음 바탕을 깨닫는 데는 아무런 차별이 없으나 행과 견해가 서로 응하여야 조사라 한다." 한 달마대사에게서 강조되어 온 정신 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뜻을 세웠거든 정신을 차리고 눈을 비비면서, 용맹정진하는 중에도 더욱더 용맹정진을 하라. 그러면 갑자기 탁 터져 백천 가지 일을 다 알게 될 것이다. 그런 경지에 이르면 사람을 만나보아야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20년이고 30년이고 물가나 나무 밑에서 성태(聖胎)를 길러야 한다.".

이상과 같이 나옹은 간화선을 지도할 때에도 이런 단계에 따라 상세하게 지도하고 있다.

즉, 생사를 초월하고 고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 의심이 생기면 거기서부터 공부가 시작된다. 의심이 생기면 화두를 들고 공부를 진행해 나가는데 공안참구는 행주좌와 어묵동정간에 틈이 없이 철저하게 의심해 나간다. 그렇게 공안을 들다보면 의심이 점점 깊어져서 화두가 들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들리는 단계에 이른다. 이에 심신을 온통 하나의 의심덩어리로 만들어서 계속해서 참구해 나가면 의식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때 다시 단박에 몸을 던져 공부를 더하면 동정이 한결같고 오매가 항일의 경지를 지나 의심이 타파되고 비로소 자신의 진면목을 알게 된다. 이 단계를 대체적으로는 깨달음의 단계로 설정하지만 나옹은 여기에 다시 정안종사 참문과 보림을 제시한다.

보림의 공(功)을 더하여 생사해탈을 이룬 후에야 완전한 깨달음의 성취로 보는 것이다.

이를 그 순서대로 생각해 보면 의심의 제기 공안참구 계속 참구 무자미(無滋味) 심신일여(心身一如), 오매항일(寤寐恒一) 단박 깨침 정안종사(正眼宗師) 참문, 보림 등으로 나타낼 수 있을 것 같다.

이를 <공부십절목>의 단계에 적용시켜 보면 다음의 표와 같다.

<표 2> 공안참구 지도체계와 <공부십절목>의 단계

그러므로 이 <공부십절목>은 수행점검법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깨달음을 성취해 나가는 수행의 지침으로 이해할 수 있다.

Ⅴ. 결론

이상에서 나옹의 <공부십절목>의 성립과 구조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서 <공부십절목>에 나타난 나옹선의 사상적 연원을 밝힌 다음, 나옹선에 있어서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밝혀 보았다. 이를 간략히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학인들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점검하는 공부점검법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즉, <공부십절목>은 공민왕이 그 동안 승정의 문란으로 중단되었던 승과를 부활하여 선교 양종의 학인을 가려뽑는 공부선장(工夫選場)에서 학인들의 공부점검법으로 제시된 성립 배경은 이를 잘 나타내 준다. 그 구성은 성색초월 → 하개정공 → 정숙공 → 타실비공 → 의식불급 → 오매항일 → 수지경절 → 수연응용 → 요탈생사 → 지거처의 10단계를 순차적으로 물어서 그 깨달음의 단계를 평가하도록 되어 있고, 내용은 1절목에서 7절목까지는 견성의 단계를, 8절목에서 10절목까지는 보림의 단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결국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깨달음의 단계를 점검하여 대기대용적 응용에 이르기까지의 완성에 이르렀는가를 점검하는 데 의의가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깨달음의 기연과 방편에 있어서는 대중적으로 활짝 문을 열어놓고 있지만 '실제 서울에 제대로 도착했는가'를 판별함에 있어서는 그 준엄함이 10절목에 예리하게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받았을 선적을 통한 사상적 영향관계의 일단을 밝힐 수 있는 근거가 드러난다. 즉, 그가 <공부십절목>에서 사용한 용어나 형식을 빌어 단정지을 수는 없지만 그의 사상적 연원의 일단을 추적해 보고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그는 여말선초부터 우리 나라 조계선종의 주요 지침서로 쓰였던 고봉 화상의 《선요》와 당시 국내에 유행되었던 몽산 화상의 《몽산법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거기에다가 시대적으로 300년이나 앞선 도솔 종열의 삼관이 적극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점을 볼 때,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나옹이 인도승 지공과 평산 처림을 직접적으로 만나서 사승관계를 맺었다고 하지만 시대와 분파를 초월하여 제선가와 폭넓게 사상적으로 교유했을 것이라는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해 주고 있다.

셋째, 나옹의 <공부십절목>은 수행의 지침으로서의 의미가 있다.

그가 참선을 지도했던 내용은 <공부십절목>의 단계와 어느 정도 일치된 면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인생의 고를 벗어나고 생사를 해탈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본래면목을 알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 의심이 생기면 거기서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그렇게 하여 의심제기 → 공안참구 → 계속 참구 → 무자미 → 심신일여, 오매항일 → 단박 깨침 → 정안종사 참문·보림 등의 단계를 설정하고 이에 따라 학인들의 단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나옹의 <공부십절목>의 의의를 세 가지로 살펴보았다.

하지만 그 사상적 연원을 밝힘에 있어서 제선가의 선사상과 나옹의 선사상을 세밀히 비교하지는 못했고, 필자의 깨달음의 깊이에 대한 한계로 참선의 수행체계에 대해서도 심도있게 다루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선학의 가르침을 바라마지 않는다.

韓國의 塔婆를 찾아서

시작하는 글

탑파는 산스크리트어로 수투파 팔리어로 투파의 중국적인 음사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略)하여 탑(塔)의 일자(一字)로서 흔히 통용된다. 탑파의 시초는 부처님의 열반에서 기인한다. 유한성의 육신을 대신한 후대의 흠모와 신앙의 대상으로서 부처님의 육신을 대신한다. 인생행로의 진정한 동반자이며 지도자인 한 인자한 스승의 죽음은 그를 따르는 사람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참담한 슬픔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까지 슬픔에 잠길 수만은 없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어떤 매개체를 찾게 되었던 것이 바로 이 탑의 건립이었다. 조금은 감성에 치우친 필자만의 느낌이라고 해도 어쩔 수는 없다.

탑파는 불교미술의 대표적인 조형물로서 여러 가지 상징성을 지닌다. 탑이 주는 일반적인 느낌은 불교라는 종교를 알리고 사찰을 장엄하는 장엄구로서의 느낌이다. 그러나 이러한 외형적인 느낌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어떻게든 일차적으로 불교를 알리고 동시에 관심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탑파의 일차적인 기능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탑파 속에 담긴 진리를 읽어내는 것이다. 불교의 유형 무형의 모든 문화적인 자산들이 그렇듯이 중생구제라는 불교 본연의 사명의 내포와 인간 심성의 정화 내지 구원과 같은 불교 본질적 모습을 파악하며, 불교의 유형, 무형의 상징물에 담긴 진리, 내지는 정서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다. 불교는 구원이 아니라 진리와의 합일을 추구한다. 진리에의 합일은 인류가 행복해지는 첫째 조건인 것이다. 탑파 또한 진리 표현의 또 다른 방법인 동시에 오늘의 불교를 있게 한 모태이며 불교 전통의 확립이라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따라서 불교교리의 발전과 더불어 탑파의 신앙도 변해진다.

탑파는 지역의 특징을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리나 제행무상의 법칙에는 버틸 재간이 없다. 인도 마우리아 왕조의 아쇼카왕은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백성들을 다스렸다. 또한 그가 세운 탑은 8만 4천 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많은 탑도 속절없는 세월 속에 다 묻혀버리고 지금은 산치 대탑이 위풍도 당당하게 장구한 세월의 역사를 말없이 말하고 있다. 인도의 탑은 산치탑에서도 알 수 있듯이 중국과 한국의 탑과는 다른 복발형 즉 그릇을 뒤집어 놓은 듯한 형태이다. 이에 비해 중국을 위시한 북방불교 계통의 불탑은 한결같이 목조 누각과 같이 층수를 지닌 여러 층의 탑으로 전개되었으며 개념 또한 공덕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 불탑은 세계 불교예술사상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조형미를 지니고 있다. 더구나 불탑이 지닌 뛰어난 예술적 감각은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함께 서민의 애환 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최초의 석탑인 백제의 미륵사지 탑은 백제의 미술문화가 매우 진취적이고 창의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백제인의 오랜 고심과 연찬을 통하여 탄생된 그야말로 한국미술사상 초유의 석탑임을 알게 한다.

따라서 본론에서는 우리나라의 석탑이 세계 불교미술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독특한 한국의 석탑으로서 그 위치를 확보할 수 있었던 사실을 입증하는 형식으로 엮어나갈 것이다.

백제 미술의 거작 익산 미륵사지 석탑

미륵사지에 있는 서탑(西塔)은 한국 최고최대(最古最大)의 석탑이다.

이 탑은 주지하다시피, 7세기 초 백제 석조미술을 대표하는 거작이라 할 수 있으며 한국 석탑의 양식 설정에 있어서도 매우 귀중한 역할을 하는 탑이다. 한국 석탑의 발생과정에서 목조 탑파가 선행(先行)양식을 이루었고 그를 모델로 하여 7세기 초에 백제에서 석탑이 건립되었다. 이 탑은 가장 충실하게 목탑을 모방하여 목재 대신에 각 부재를 화강암 석재로써 사용하고 있다. 단층의 낮은 기단을 가지고 있으며 제 1층은 3칸 4면을 모하여 중앙칸을 통하여 내부에서 십자(十字)로 교차되고 있다. 넓은 옥개와 그리고 그 밑에 층급형(層級形) 받침도 모두 목탑의 그것을 모(模)하였거나 변형하고 있다. 따라서 이 탑에서는 예술적인 창안이나 변형을 찾기보다는 목탑을 충실하게 돌로써 번안하려는, 목조탑자의 충실한 석재번안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탑의 옥개석이 얇고 추녀에 이르러 뚜렷이 반전(反轉)된 것이 목조 건축의 추녀형식과 같아서인지, 석탑임에도 불구하고 차가운 돌의 질감보다는 따뜻한 나무의 질감이 느껴졌다. 현재는 탑의 제 6층의 일각까지만 남아 있으나 원형은 아마도 9층이었으리라고 추측된다고 한다. 이토록 아름답고 훌륭한 탑이 반쪽은 거의 허물어져 발라놓은 시멘트에 억지로 의지하고 있으나, 언제 다시 허물어질지 모를 만큼 위태한 모습으로 서 있어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최근 발굴조사에서 이와 규모가 똑같은 또 하나의 석탑이 추정되어 원래는 사지 동서에 쌍탑이 건립되었던 것으로 고증되었다. 사지의 동쪽에 미륵사지 동탑(東塔)을 추정하여 새로 석탑을 건립해 놓은 것을 보고 우리는 희비가 교차하는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원래는 저렇듯 반듯하고 깨끗한 탑이었으나 유구한 세월과 역사에 부딪쳐 노쇠한 모습을 하고 있는 서탑(西塔)의 모습이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새로 건립된 동탑에서 미륵사지 동서탑의 원형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저 석탑을 다듬던 옛 장인의 손길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기에 미륵사지 동서탑과 백제 미륵사가 또 다시 수백 년이 지난 세월에도 불구하고 우리 앞에 복원된 모습을 보여주길 간절히 기대하면서 아쉬운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한국의 線의 美 부여 정림사지 5층 석탑

이 탑은 미륵사지 석탑과 함께 또 하나의 백제 시원석탑(始原石塔)으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규모는 비록 미륵사지 탑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미륵사지 탑과 같이 목조탑의 형식을 최대한 번안한 흔적이 뚜렷한 탑이다.

이 탑은 백제를 정벌한 당장(唐將) 소정방(蘇定方)이 탑신에 자기의 전공을 각자한 것 때문에 `평제탑(平濟塔)'이라고도 불리워 왔다.

이 탑은 좁고 낮은 단층기단을 이용하여 목조탑의 건축수법을 그대로 나타내었고, 넓은 각층의 옥개석과 그 끝 전각(轉角) 부분에만 약간 위로 올린 반전을 나타냈으며, 옥개석 밑에는 포(包)의 출목(出目)을 일반탑에서와 같이 층단으로 나타내지 않고 비스듬히 약식으로 표현한 것이 특이하다.

이 탑을 보고 있노라면 하얀 학 한 마리가 너울너울 춤을 추면서, 살며시 지상 위로 내려앉는 모습이랄까. 천 년의 풍상에도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한국 특유의 선(線)의 미(美)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것은 다른 탑에서 보기 힘든 넓고 얇은 옥개석 때문일 것이다. 이 탑은 미륵사지 석탑에 비할 때 목탑의 충실한 번안이라기보다는 예술적인 변형이 곳곳에 가하여져서 작품 그 자체로서 가치를 한층 더하고 있다.

이 탑의 아름다움 앞에서 우리는 일제히 입을 다물지 못하였고, 때마침 내리는 이슬비의 분위기와 백제탑의 황홀경에 휩싸여 발걸음을 뗄 수 없었다.

미륵도량 금산사 5층 석탑과 육각다층석탑

금산사는 미륵불이 56억 7천만 년이 지난 후 사바세계에 와서 불국토를 이루어 끝없는 욕심에서 생긴 번뇌와 망상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중생들을 구제한다는 전설을 품고, 삶에 지친 중생들의 아픔을 감싸 안아주는 미륵도량으로, 후백제의 견훤과 큰 인연을 맺고 있는 사찰이다.

그러한 도량에 있는 5층 석탑은 고려시대 석탑으로 이중기단 위에 세운 소형 5층 석탑이다. 탑의 구조는 통일신라 석탑의 일반형을 따르고 있으나, 하층기단이 협소하고, 옥개석 추녀 끝이 살짝 들려 고려의 시대적 특징을 잘 보여준다. 상륜부의 노반(露盤)이 크고 넓으며, 그 위에 특이한 복발(覆鉢)이 있고, 복발 위에 보륜(寶輪)과 보주(寶珠)가 있다. 이 탑은 전형적인 한국 석탑의 미를 반영하고 있었다. 주지스님께서는 이 탑이 석가탑과 아울러 한국의 대표 모델이 되는 탑이라는 설명을 해 주셨다.

마당에 있는 육각다층석탑은 육각 기단 삼층으로 우리나라의 탑이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든 방형탑(方形塔)인 데 비해, 이 탑은 점판암(粘板岩)의 육각다층석탑임이 특색이다. 고려초의 석탑으로 봉천원에서 옮겨온 것이며, 이색적인 각층의 체감비례가 아름답고, 섬세한 조각기법을 보여준다. 원래 이 탑에는 층마다 탑신(塔身)이 있었으나 지금은 가장 위의 2개 층의 탑신과 11개 층의 옥개석이 남아 있다. 원래는 육각마다 11개의 풍경이 달려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옥개가 온건한 반전을 보이며, 전각 양면마다 정혈(釘穴)이 있는 것은 일반 석탑과 같고, 다만 옥개리(屋蓋裏)의 받침에 있어서 특수한 취향을 보이고 있어 단층형인 것을 상하에, 사복형(蛇腹形)인 것을 중간에 넣은 것은 고려 석탑의 특색일 것이다. 그리고 이 사복면에 비룡(飛龍)을 선조(線彫)하고 있다.

한국에서 점판암제의 소석탑이 일시의 유행을 본 일이 있었다. 더욱이 소공예적인 것이 많은 가운데 이 금산사의 육각다층석탑도 그러하지만 똑같이 탑신부를 잃고 있으면서 옥개석만을 남기고 있는 것이 해인사 원당암 다층석탑과 비슷한 형태이다.

천불천탑의 운주사

신라시대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창건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운주사 길목을 막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석탑들과 여기저기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석불들이다. 이렇게 석탑과 석불들 사이를 지나면 운주사 일주문과 대웅전이 보이고 왼편으로는 요사채가 보인다. 운주사의 석탑들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기이한 문양의 석탑들이란 것과 운주사의 석탑들 사이에서 왠지 불교와는 다른 냄새가 나는 것은 석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이들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는 운주사 총무스님과 차담을 앞에 놓고 운주사에 대하여 많은 질문을 해보았으나 뾰족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다만 지금까지 운주사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거리가 되었고 다양한 논문들이 발표되었지만 운주사에 대한 그 진위는 아직까지 풀지 못했다는 것이 이곳 운주사 총무스님의 말씀이었다.

운주사에는 많은 탑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어느 하나만을 꼬집어서 운주사 탑의 전체적인 모습을 설명하기란 실로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운주사 탑들이 모두 서있는 것만으로 너무나 신기할 만큼 그 비례나 대칭이 매우 위태하고 기형적이라는 것이다. 석굴암의 석가탑처럼 준수하고 균형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다보탑처럼 화려하고 섬세하지도 않다. 다만 운주사의 탑은 커다란 암반을 지대석으로 하여 기단부와 탑신부의 각면에서 교차문, 쌍교차문, 마름모꼴, 꽃모양, 횡선문양 등 매우 다채로운 문양들을 하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그 문양들이 조각가가 막대기로 쓱쓱 긁어 놓은 듯 하지만 여기에는 토속적인 칠성신앙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운주사의 다탑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은 접어두고라도 운주사에 왜 이다지도 많은 탑을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아주 특이한 형태로서 운주사라는 골짜기에 세워졌는가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필자는 세 가지로 한번 추정해 본다. 먼저 도교인들이 도교의 전파와 성행을 목적으로 여기에 다탑을 세운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것과 어느 조각가가 이제까지의 탑들보다 좀더 남다른 탑을 조성하고자 하여 운주사 골짜기에서 개인적으로 세우지 않았는가 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백제말기 민중의 소박한 소망을 이 탑을 통해 표현하려 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 수수께끼 같은 운주사 다탑에 관한 정확한 이야기는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좀더 운주사를 돌아보면 다음과 같은 생각이 떠오른다.

탑 주변에 옹기종기 서 있는 불상들이 물론 불상의 형태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이 마치 예배의 대상이 아닌 바로 백제 민중의 모습이란 것이었다. 이 불상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두 손 모아 합장한 아주 다소곳하고 순박하면서도 다정한 모습이며 그것은 마치 가족들이 절에 기도하러 온 듯한 모습 같기도 하다. 또한 그들의 합장한 손과 모습에서 백제 민중들의 소망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고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 불상들의 모습에서 그 소원을 들어주는 신앙의 대상이 바로 여기 천 여년의 세월에도 꿋꿋이 서 있는 탑들이라는 것이다. 팥시루떡을 얹어놓은 듯한 원형다층석탑, 동굴동굴한 석돌이 마치 떡꽂이처럼 쌓아올린 원구형다층석탑에서 소외된 민중들은 누가 정치를 하고 누가 권력을 휘두르느냐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이들에게 중요했던 것은 바로 민생고의 해결, 즉 배불리 먹고 가족들이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했을 것이다. 해 지는 천불천탑 속에 백제 민중들의 애환이 떠오르자 문득 신라에게 멸망당한 백제 유민들이 기억되기도 했으며 운주사, 구름이 머문다는 것은 바로 민중들이 모여드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과 더불어 곧 운주사가 그 옛날에는 민중들의 정신적인 안식처였을 것임을 추정해 본다. 초저녁 안개가 운무처럼 피어올라 사람도 탑도 운무에 소리 없이 물들었다. 이제 운주사를 떠나야 할 시간.

비바람 눈보라 모진 세월에도

조금도 변함없는 천불천탑을

한가지 바램으로 여기에 세웠구나

하루도 쉬지 않는 저들의 소원

님이여 어서 어서 이곳에 나투소서

라고 두 손 모아 기원하며 우리는 운주사를 뒤로 하였다.

사자산문의 개산지 쌍봉사

운주사를 뒤로 하고 우리는 이양으로 향하는 국도를 탔다. 장마가 시작되려는지 눅눅한 공기가 계속되더니 이윽고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막상 쌍봉사에 도착하니 궂은 날씨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맑게 개었고 우리는 유쾌한 기분으로 해탈문이란 현판이 있는 일주문을 들어섰다. 이윽고 바로 눈앞에 아담한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쌍봉사에 온 것은 바로 이 대웅전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쌍봉사 대웅전을 처음 본 순간 마치 법주사 팔상전이 떠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법주사 팔상전과 쌍봉사 대웅전이 바로 같은 목탑양식이라는 데 있었다. 쌍봉사 대웅전이 조선시대 유일의 3층 목탑식 건물이며 5층 목탑인 법주사 팔상전과 함께 목탑의 원형을 가늠할 수 있는 귀중한 목조건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쌍봉사 대웅전은 보물 제16호 지정이었으나 1984년 4월 3일 화재로 소실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목탑이라는 자리를 법주사 팔상전에 넘겨주고 말았다. 그렇지만 쌍봉사 대웅전 부처님의 영험함이 화재로 증명되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기이한 이적이 있다. 대웅전에서 불길이 솟는 것을 목격한 농부가 달려와 보니 대웅전은 이미 거세게 불에 타고 있었다. 농부는 갑자기 부처님을 꺼내와야 되겠다는 다급한 생각으로 후원에서 양은솥을 머리에 쓰고 법당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곧 본존불을 업어 모셔 나오고 이윽고 좌우보처였던 아난존자와 가섭존자도 모시고 나왔다. 그러나 잠시 후 이 본존불을 다시 들려고 했을 때는 무거워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다. 어痔든 이렇게 소실된 쌍봉사는 1986년 12월에 문화재 관리국에서 준공 복원하였으며 현존했던 쌍봉사 대웅전에서 보다 전형에 가까운 대웅전으로 복원하였다 한다.

쌍봉사에 기거하는 스님의 안내로 시골의 호젓한 산길 같은 대나무 오솔길을 5분여 정도 걸어 올라가니 사자산문의 개산조인 철감선사의 징소탑이 있었다. 철감선사의 징소탑에 다다르니 통일신라 부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이라는 사실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 형태가 매우 치밀하고 섬세하며 새김장식이 베풀어지고 탑신에는 목조건축물을 방불케 할 정도의 정밀한 표현이 돋보인다. 기본 평면이 팔각당형으로 구성된 이 승탑은 팔각의 바닥돌을 2단으로 내고 그 위에 낮은 1단의 각이진 턱을 둥글게 돋우어 2단의 하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소용돌이 구름무늬를 베풀고 상단에는 꽃무늬 기둥을 모서리마다 새기고 각면에는 사자상을 새겨 넣었다. 중개는 다양하게 굴곡이 지고 각을 낸 괴임턱을 돋운 다음 각면의 모서리에 꽃무늬 기둥을 새기고 기둥 사이의 각면에는 가릉빈가를 배치하였다. 상단도 역시 2단으로 구성하여 하단에는 연꽃무늬, 상단에는 곳곳이 진상다리 모양의 우아하면서도 입체적인 인상을 배치하였고 그 단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천인상이 하나씩 새겨져 있다. 탑신은 맨 밑에 연꽃무늬의 받침을 내고 그 위로 둥근 기둥을 모서리마다 올렸다. 앞뒤의 벽문에는 문비가, 그 좌우면에는 사천왕상을 배치하였고 나머지의 양 옆면에는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지붕에는 기왓골과 두 겹의 서까래들이 새겨져 있고 처마 깊숙한 곳에는 비천상과 향로가 새겨져 있다. 처마 밑에는 암막새와 수막새 기와 무늬까지 완벽하게 표현되어 있어 마치 목조건물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었다. 또한 탑 전체의 장식이 매우 화려하고 비례와 구성미가 돋보였다. 철감선사 부도탑의 형체로나 그 규모로 보면 지금은 많이 퇴락되어 한참 복원해야 하겠지만 예전의 사자산 쌍봉사는 철감선사(798~868)가 쌍봉사에 선문을 개설하여 이를 크게 떨치고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의 기초를 마련하고 그 개산조가 되었다. 뒤에 철감선사의 수제자인 징효선사는 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아 강원도 영월 법흥사에서 사자산문을 일으켰다. 초기의 쌍봉사는 고려 최씨 무신정권 제3대 집정인 최항이 머물렀으며 조선 세조 때는 세조의 원당사찰이었고 사찰에 딸린 논밭이 사방 30리에 이르렀다 한다.

쌍봉사는 철감선사의 선풍이 곳곳에 스며 있는 곳이기에 앞서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도량이었다. 쌍봉사에서 하룻밤 쉬었다 오고 싶었지만 우리가 미리 정해 놓은 선약이 있어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쌍봉사를 떠나야 했다.

한국 유일의 목조탑 법주사 팔상전

장마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한낱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무척이나 뜨거운 햇살이 초여름이란 것을 무색하게 하였다. 미륵도량이자 법상 도량인 법주사 역시 대가람답게 장관을 이루었다. 특히 위용을 자랑하는 듯한 법주사 미륵대불을 위시한 당우와 전각들 사이로 우리가 목표로 하여 찾아온 전각이 있었으니 바로 팔상전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초창되어 조선 인조 4년(1624)에 벽암선사가 재건하고 1968년 완전 해체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른다. 오늘날 법주사 팔상전의 의미는 한국 탑파에 있어서 목조탑 가운데 유일한 탑이라는 데 있다 하겠다. 그것은 1984년 4월 30일 쌍봉사 삼층목조탑이 화재로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법주사 팔상전은 1층과 2층이 정면 5칸, 측면 5칸, 3, 4층은 정면과 측면 3칸, 5층은 정면과 측면 모두 2칸의 정방형으로 지붕은 사모지붕으로 상부에 상륜부가 완전히 갖추어져 있다. 1층부터 4층까지는 기둥 위에만 공포로 짠 주심포식이나 5층은 주간에도 공포를 짜올린 다포식으로 되어 있고, 내부중앙에는 찰주의 심초속이 있어 심주를 세웠고, 1층 탑신의 사방에는 출입구가 계단과 통하게 되어 있고 전체의 높이가 약 22.7미터로 현존하는 한국 목조탑 중에서 제일 높은 것이다. 1968년 팔상전 해체 복원 수리시 중앙의 거대한 신주 밑에 사리장치가 발견되었고 전각내부에는 사방 네 벽에 두 폭씩의 팔상전이 모셔져 있으며 그 앞의 불단을 만들어 불상을 봉안하고 불상 앞에는 5백 아라한이 모셔져 있다. 법주사는 도량 곳곳에 전각과 석등, 석불 등이 보물 아님이 없었으며 도량 그대로가 천하의 박물관이었다.

사명대사 득도도량 직지사 3층 석탑

서기 418년 아도화상에 의해 세워진 직지사는 천 여년을 한국의 역사와 같이 했다고도 할 수 있다. 사찰마다 각기 그 나름대로의 멋과 아름다움이 있지만 직지사는 한마디로 한국사찰 가운데 가장 으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전각마다 그 화려함과 웅장함이 깃들어 있었고 전각의 조각장식이나 법당과 누각 요사채 등 그 내부의 단청이라든가 그 문양이 어떤 것은 섬세하면서 어떤 것은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마치 다채로운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듯하다. 또한 전각과 당우의 곳곳마다 세계 유명조각가의 작품과 비견할 수 있을까 할 정도이다. 이처럼 직지사는 단정하면서도 힘찬 기백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어 예술의 극치를 이뤄 마치 한편의 연화장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 듯한 착각이 든다. 직지사에게서 살아있는 듯한 힘찬 기백이 드는가 했더니, 직지사가 바로 사명대사가 출가한 득도도량이었던 것이다. 직지사는 조선시대 배불정책에서도 사명대사의 임진왜란 때의 활약으로 조선 8대 가람으로서 그 사운을 유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직지사는 아도화상이 일선군 냉산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켜 절을 지을 길상지가 있다고 하였음으로 직지사라 이름한 창건설화가 있으며 또한 다른 하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라는 선종에서 유래되었다는 두 가지 이야기 모두 결국 불교의 본지를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우리의 탐방의 요점인 탑파는 청풍료 삼층석탑이 보물 1186호에 지정되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대웅전과 비로전 앞의 삼층석탑과는 동일한 단층기단이지만, 균형미가 돋보이는 선산과 문경 일대에서 유행한 양식의 석탑이다. 직지사는 많은 당우와 전각이 있었으나 많이 퇴락하였던 것을 녹원 스님의 원력으로 지금의 대가람을 이루었으며 특히 만덕전은 83칸 주심포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총 361.4형 건물로 내부시설은 현대식 시설로 설치하여 국제간의 불교교류나 불교연수와 법회나 회의 등 다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직지사를 나오면서 한 가지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사찰보다도 직지사는 한국사찰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호국의 상징 감은사지 3층 석탑

경주에서 보문으로 나가 감포쪽으로 국도를 타고 달리다 보면 왼쪽으로 감은사지가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호국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설화와 그의 아들인 신문왕이 신라의 보물중의 하나인 만파식적을 얻었다는 사찰이다. 이렇듯 호국의 상징이던 감은사는 이젠 전설만이 남아 황량한 사지엔 잡초만이 무성하고 동서로 삼층석탑만이 사지를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석탑 하나만 보더라도 감은사는 규모가 큰 사찰임을 알 수 있었으며 지금도 전각의 자리였던 곳에 주춧돌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감은사지에 동서로 서 있는 두 탑을 보면 만듦새와 규모가 동일하며 아랫 기단은 댓돌과 기단몸돌을 한 돌로 붙인 여러 새의 돌로 맞추고 덮개들도 여러 대의 돌을 맞추어 있다. 아랫 기단의 낮은 네 벽과 모퉁이는 물론 벽 중간에도 세 개의 사잇기둥을 개겨 넣었고 덮개돌 위에는 둥글고 각이 진 2단의 턱을 내어 윗 기단을 받고 있다. 윗 기단 역시 여러 개의 돌을 짜맞추어 이루었고 벽면의 기둥은 귀기둥과 각 면의 두 개씩의 사잇기둥을 새기고 있으며 덮개돌에는 밑 부분이 안턱을 새기고 x면은 각이 진 두 단의 턱을 내어 탑신을 받고 있다. 탑신부는 1층의 몸체가 사방의 벽판석과 기둥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맞추고 지붕은 당당하고 널찍하며 밑의 층단은 별개의 돌로 맞추어 층단을 이루었는데 층단은 각층이 모두 5단씩이다. 상륜부에는 지붕 꼭대기를 덮은 노반만이 남아 있고 그 위의 상륜부를 구성하고 있는 부재들은 없어진 채 있으며 이를 꿰어 고정시켰던 쇠막대기만이 꽂혀 있다. 전체적으로 이 쌍탑은 규모가 거대하고 그 느낌이 당당하여 마치 좌우로 대장군이 우뚝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감은사가 호국적인 의미의 사찰이었고 그 쌍탑 역시 호국적인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마치는 글

불교미술의 주류는 불탑과 불상에 있으며, 그중 한국의 불탑은 인도를 비롯한 불교 전래국에 있어서 그 예를 볼 수 없을 만큼 특수한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 불탑의 발생학적 연원은 목조탑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이러한 목탑을 배경으로 석재로써 조성된 최초의 탑은 위에서도 밝혔다시피 익산 미륵사지 동서탑과 부여의 정림사지 석탑이라 하겠다. 그로부터 한국은 일약 `석탑의 나라'로 불리워지게 되었다.

신라의 웅장무비한 남성적 기백의 표출인 감은사 동서탑은 석탑이 지닌 양식적 특징에 있어서도 신라 삼국통일의 기념비적 대탑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며, 이와 같은 형식을 추종한 석탑이 이후 전국적으로 유행되었다.

우리가 둘러본 탑 어느 하나 선인들의 정성과 믿음의 결정이 아닌 것이 없다. 이러한 예술은 철저한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지며, 돌의 딱딱하고 날카로운 질감을 무시한 부드러운 곡선 속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여 불교적 인생관까지도 살펴볼 수 있었다. 종교적 염원을 담은 평화의 표현의지는 딱딱한 직선이라기보다 부드럽고 평화로운 곡선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탑은 불상이나 다른 불교미술과 함께 불신앙의 주체가 되고 있으며 이러한 신앙을 통하여 불교를 무엇보다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탑을 보면서 다시 한 번 부처님 법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를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아름다운 조형물들이 제도적으로나마 열악한 보존상태를 면해서 하루빨리 복원 보존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食堂作法의 儀式절차에 대한 比較硏究

-高麗板 《禪苑淸規》와 奉元寺의 食堂作法을 中心으로-

명 연*

Ⅰ. 서론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2. 연구범위 및 연구방법

Ⅱ. 본론

1. 식당작법의 연원과 의미

2. 고려판 《선원청규》와 봉원사의 공양의식 게송 비교

3. 악기를 중심으로 본 식당작법의 비교

Ⅲ. 결론

食堂作法의 儀式절차에 대한 比較硏究

-高麗板 《禪苑淸規》와 奉元寺의 食堂作法을 中心으로-

Ⅰ. 서론

1. 문제제기 및 연구목적

불교의식은 부처님에 대한 예(禮)를 말하며, 의식 대상의 형태에 따라 12가지로 나누고, 식당작법은 생활의례로 일반 대중(大衆) 사찰에서 매일 거행되는 공양의식을 말하며, 진행과정에 따라 전문의식과 일용의식으로 나눈다.

공양을 범어(pujana)로 음역하면 물질적·정신적으로 베푼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식당작법은 단을 꾸미고 게송을 염송하는 범패와 작법무로 할 때 식당작법이라고 하며, 일반 대중사찰에서 거행할 때는 공양의식이라고 말한다.

본고에서는 식당작법과 일반사찰에서 행하는 공양의식을 동일한 의미의 공양의식으로 보지만 그 절차에 따른 게송에 초점을 두고 연구하고자 한다.

영산재의식 속에 공양의식으로 연행되는 식당작법(食堂作法)이 있는데, 이것은 곧 대중의 수행생활에서 식당작법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공양의식이 수행의 지표가 되는 것은 지금의 사원생활을 엿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사원생활에서 늘 강조되고 있는 수행(修行)의 2대 요소를 들라면 공양(供養)과 예불(禮佛)이다. 수행승에게 강조되는 일상적 경책(警責)이 바로 `공양과 예불'이라고 하는 점을 봐서도 공양의식이 갖는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러한 재의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식당작법에 대해서 현행 한국불교학계에서 연구된 바가 미미(微微)하고, 특히 우리 나라 식당작법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고려판 《선원청규(禪苑淸規)》의 식당작법과 현행 중요 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 50호로 지정된 영산재에서 행해지고 있는 식당작법과의 비교 연구는 아직 우리 나라 음악학계 및 불교학계에서 제대로 논의된 바가 없다. 특히 고려판 《선원청규》에 나타난 식당작법과 현행 봉원사에서 연행되고 있는 식당작법의 연행절차가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나 언급이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고려판 《선원청규》에 나타난 식당작법과 현행 봉원사[重要無形文化財 第 50號]에서 행해지고 있는 식당작법의 차이점을 도출하여 식당작법의 올바른 전승(傳承)과 계승(繼承)에 도움을 주고자 함이 본 연구의 중요한 목적이다.

2. 연구범위 및 연구방법

현행 무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된 봉원사 영산재(靈山齋)에는 식당작법이 하나의 의식으로 속해 있는데, 고려판 《선원청규》에 문헌으로 남아 있는 식당작법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 라는 의문에서 본 연구가 시작되었다.

본 연구의 범위는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식당작법의 문헌인 고려판 《선원청규》와 무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된 봉원사에서 행해지는 식당작법만을 한정하였고, 그 가운데 식당작법 중 게송(偈頌)·악기(樂器)를 중심으로 연구범위를 한정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이 두 가지 사항에 관해서 양자가 뚜렷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당작법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 연구의 연구 방법으로는 《선원청규》에 나타난 식당작법과 현행 봉원사에서 행해지고 있는 식당작법을 게송(偈頌)과 사용 악기를 중심으로 비교 고찰하는 비교 연구가 시도될 것이다.

Ⅱ. 본론

1. 식당작법의 연원과 의미

불교교단의 기강을 바로잡는 데에는 계율(戒律)이 있고, 선원대중(禪苑大衆)의 일상생활에는 총림(叢林)의 청규(淸規)가 있다.

중국의 초기 선종에서는 산발적으로 수행하거나 율원(律苑) 등에서 수행하면서 지내왔는데, 백장 선사(百丈禪師, 749∼814)가 출세하여 대규모의 집단적 단체 수행을 위해 종합 수행도량인 총림(叢林)을 창설(創設)하였다. 여기에 따른 선문의 독자적인 수도생활의 규범이 인도의 현실과 다를 뿐만 아니라, 율장의 내용이 너무 산만한 편이어서 중국의 여건에 맞도록 집약한 것이고, 총림의 운영과 대중생활의 질서유지에 있어서 가장 평등주의적(平等主義的)인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 청규의 정신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선종(禪宗)의 교단사(敎團史)적인 측면에서 《백장청규(百丈淸規)》가 큰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백장의 고청규(古淸規)는 당말(唐末) 오대(五代) 사이에 모두 산실(散失)되어 버리고 지금 전해오는 것은 없다. 다만 그 대강(大綱)과 면목(面目)은 몇몇 선사의 어록(語錄)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 제 6권의 백장의 전기에 부록된 《선문규식(禪門規式)》 (1005)에서 그 편린(片鱗)을 엿볼 수 있고, `회해선사탑명'(懷海禪師塔銘, 818)에서 그 원형을 엿볼 수 있는 정도이다. 그 후 북송(北宋)의 휘종대(徽宗代, 1100∼1125)에 고청규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을 때, 종색노자각선사(宗Ⅹ長老慈覺禪師)가 《백장청규》 사상을 부흥재휘(復興再輝)하고자 널리 당시의 총림고찰을 역방(歷訪)하면서 행법(行法) 격식의 자료를 수집하고 참고하여 숭녕(崇寧) 2년(1103)에 선원청규 10권을 찬술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선원청규》이다.

《선원청규》에서는 일반적인 수행승들의 일상생활의 모든 규범과 위의(威儀)를 규정하고 있다. 선승들의 생활규범을 규정한 최초의 계율이 《백장청규》이다. 그 이후로 선원의 수행풍토에 따라 여러 청규가 선원의 생활에 규범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천되어 왔다.

《선원청규》 가운데 공양위의(供養威儀)는 `부죽반(赴粥飯)'항에 언급되어 있고, 현행 조계종 소심경(小心經)으로 정착되어 왔다. 아울러 영산재와 같은 의식에서도 그 근간은 《선원청규》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의식이 다른 것 같아도 흐름의 일관성을 가지면서 변천되어 왔다.

2. 고려판 《선원청규》와 봉원사의 공양의식 게송 비교

1) 고려판 《선원청규》 식당작법[赴粥飯]에 나타난 게송

<원문>

(1) `佛恩想招偈 佛生迦臻羅 成道摩0陀 說法波羅奈 入滅拘尸羅

불은상초게 불생가비라 성도마갈타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

<해설> 부처님의 은혜를 생각하는 게송

불은상초게 - 백장청규의 작법은 선승의 식당작법을 서술한 것이므로 일반승(교학승, 염불승)의 작법과는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일반승이 불(佛)에 대한 예경을 중시하는데 비하여 선승은 조사스님에 대한 예경을 우선한다. 그러므로, 입당(入堂, 공양당에 들어감) 후에 성승(聖僧) 조사스님 앞에 먼저 주지인으로부터 좌위(坐位)에 따라 문신(問訊, 예배하는 것)하고 유나(維那)가 분향(焚香, 향을 사룬다)한 연후에 각자 자리에 앉는다. 여기서 현행 소심경에서는 부처님 은혜를 생각하는 팔상성도게를 송하는데 비하여 선원청규에서는 조사스님 성승(聖僧)에 문신하는 것으로 대신하는 점이 선승의 가풍이 다른 특징의 일면을 보여주는 부분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특히 재(齋)가 있는 경우에는 단월(檀越, 재가 시주)을 위하여 유나가 재를 설하는 소(疏, 경론의 문구 해석)를 송하여 불은(佛恩)이 제자들에게 두루 감응하기를 발원해 주기도 한다. 그 내용은 "계수하나이다. 박가법 원만수다라 대승보살승 그 공덕 사의하기 어렵나이다." 혹은 "불법승 삼보는 최승의 양전이라 무릇 귀의하는 곳에서는 모두 감응을 드러내리라." 등이다.

<원문>

(2) 展鉢偈 如來應量器 我今得敷展 願共一륀衆 等三輪空寂

전발게 여래응량기 아금득부전 원공일체중 등삼륜공적

<해설> 발우를 펴는 게송

부처님의 응량기/내 이제 받아 폈으니/원컨대 일체중생은 함께/삼륜이 공적하여지이다.

전발게 - 청규의 작법에는 뚜렷이 발우를 펴는 게송은 없다. 선승의 일상 작법은 생활과 같이 간소한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형식상의 전발게는 없어도 묵연한 가운데 엄숙히 발우를 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청규에서 `전발의 법'이라고 하여 상당히 자세하게 발우를 펴는 위의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원청규의 성격이 선승의 일상생활의 위의를 나타내고자 하는 선원의 계율이므로 간소한 가운데 꼭 필요한 위의를 적절히 언급하였다고 본다. 즉 발우수건(발건)을 펴서 접는 것으로부터 수저집을 정리하여 놓는 것까지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원문>

(3) 十念 - 淸淨法身臻盧舍那佛 圓滿報身盧舍那佛 千百億化身釋迦牟尼佛

십념 - 청정법신비로자나불 원만보신노사나불 천백억화신석가모니불

當來下生彌勒尊佛 十方三世一륀諸佛 十方三世一륀尊法

당래하생미륵존불 시방삼세일체제불 시방삼세일체존법

大智文殊舍利菩薩 大行普賢菩薩 大悲觀世音菩薩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諸尊菩薩摩 薩

제존보살마하살

<해설> 열 가지 부처님의 명호

청정한 법신의 비로자나불 / 원만한 보신의 노사나불 / 천백억화신의 석가모니불 / 미래에 오시는 미륵존불 /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 / 대지혜의 문수사리보살 / 큰 행원의 보현보살 / 대자비의 관세음보살 / 모든 존귀하신 보살마하살.

십념 - 십념(十念)은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첫 부처님 명호인 청정법신 등으로 운운(云云)하고 있다. 십념[十聖佛]은 이미 일반적으로 많이 지송되고 있기에 굳이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아도 통용되는 십불(十佛)의 명호로, 대중이 알 수 있는 부분이므로 생략하고 있다. 당시에 유통되는 십불의 명호를 대략 몇 가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는 도안 법사(道安法師)가 제정하여 공양시에 염송하도록 한 십이불을 줄여 통칭 십불이라 한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 원만보신 노사나불 /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 / 당래하생 미륵존불 / 서방 무량수불 / 시방삼세 일체제불 / 대성문수사리보살 / 대승보현보살 / 대비관세음보살 / 대지세지보살 제존보살마하살 / 마하반야바라밀이다.

《정법안장(正法眼藏)》 안거권(安居券)은 <서방 무량수불, 대지세지보살>의 둘을 제외한 십불의 명호를 들고 있다.

《선원청규》에서는 여기에 <대승묘법연화경(大乘妙法蓮華經)>을 더하여 11불의 명호를 들고 있다. 또 염송시 운율을 중시하는데, 이는 대중이 여법히 공양하는 위의를 맞추기 위하여 하추(종을 울리는 것)할 때, 독송의 속도를 잘 지키라고 하고 있다. 즉 종소리가 빠르면 대중의 불명호는 불자에 떨어지고, 종소리가 느리면 대중의 불호는 앞구절에 떨어진다고 하여 종소리와 운율의 속도를 맞추도록 경계하고 있다. 끝으로 십념이 끝나면 종을 울리지 않은 채 탄백(큰 소리로 말하는 것)하되 `우러러 바라옵건대 삼보께서는 두루 인지함을 내려주소서' 함으로써 십념을 모두 마친다.

<원문>

(4) 奉鉢偈 若受食時 當願衆生 禪悅爲食 法喜充滿

봉발게 약수식시 당원중생 선열위식 법희충만

<해설> 발우를 받드는 게송

이 공양을 받을 때 / 원컨대 모든 중생은 / 선열로서 공양을 삼으며 / 법희가 충만하길 바란다.

봉발게 - 봉발게를 염송하는 대신 수좌(首座)의 시식에 따라 창식게(밥맛을 생각케 하는 게송)와 비슷한 내용의 창을 함께 한다. 그 주된 내용은 죽에 대하여 십리(十利 :色·力·壽·樂·辭·淸弁·宿食餘·風餘·飢消·渴消)재에 대하여 삼덕육미(三德六味 :三德 - 智德·斷德·恩德, 六味 신맛·단맛·매운 맛·짠맛·싱거운 맛 등)를 반에 대하여 오상(五常) 무애변(法無 ·義無 ·辭無 ·樂設無 )을 각각 창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원문>

(5) `五觀偈 - 計功多少量彼來處 忖己德行全缺應供 防心離過貪等爲宗

오관게 - `계공다소량피래처 촌기덕행전결응공 방심이과탐등위종

正思良藥爲療形枯 爲成道業應受此食

정사양약위료형고 위성도업응수차식

<해설> 다섯 가지 돌이켜보는 게송

공덕의 많고 적음을 헤아려 저 공양의 온 곳을 생각한다 / 내 덕행의 온전함과 부족함을 생각하며 공양에 응한다 / 마음을 다스리고 허물을 버리는 것은 탐욕 등을 근본으로 한다 / 정히 양약으로 여겨 몸이 허물어지는 것을 치료하기 위함이며 / 도업을 이루기 위하여 마땅히 이 공양을 받는다.

오관게 - 오관게는 자신이 이 공양을 받을 만한 덕행이 있는가를 반성하는 게송이다. 청규에서는 간단히 게송만을 송하고 그외 부분에 대하여 더 언급이 없다.

<원문>

(6) 出生偈 - 汝等鬼神衆 我今施汝供 此食遍十方 一륀鬼神共

출생게 - 여등귀신중 아금시여공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

<해설> 귀신에게 공양을 베푸는 게송

너희 귀신들에게 / 내 이제 공양을 베푸노니 / 이 음식이 시방에 두루하여 / 일체의 귀신들은 공양할지어다.

출생게 - 출생게는 구류중생(九類衆生:胎生·卵生·濕生·化生·有色·無色·有想·無想·非有想非無想) 귀신에게 공양을 베푸는 부분이다. 일반적으로 현행 소심경에는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생반한다. 생반시(귀신용 수저로) 밥알 일곱 낱 정도를 떠서, 그대로 발우수건 위에 놓고 왼손의 엄지로 무명지를 눌러 감로인을 결하면서 게송을 송한다. 게송을 읊고 나서 윗자리부터 차례로 헌식기를 돌려 생반(귀신용 밥알)을 모은다. 이와 같은 출생을 헌식이라 한다. 청규에서는 출생게만 표시하고 다만 간단한 주의 사항만을 언급하고 있다. 즉, 오관게를 마치기 전에는 출생하지 말고 또 자기 차례가 아니면 출생하지 않는다는 조항이다.

<원문>

(7) 絶水偈 - 我此洗鉢水 如天甘露味 施與餓鬼衆 皆令得飽滿

절수게 - 아차세발수 여천감로미 시여아귀중 개령득포만

(絶水想念偈) 옴 마휴라세 사바하 (3)

<해설> 아귀에게 공양을 베푸는 게송

나의 이 발우 씻은 물은 / 하늘의 감로수와 같은지라 / 너희 아귀들에게 베푸노니 / 모두 배부를지어다.

절수게 - 현행 소심경의 절수게는 위와 같이 4구와 진언이 부가되어 있다. 그러나 청규에는 다만 뒷부분의 현행 소심경과 동일한 진언만 명기하고 있다. 그렇다고 간단한 절수 진언만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 세발(발우를 씻는 것)의 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규정하고 있어 세발과 관련된 위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

<원문>

(8) 食畢偈 - 飯食已訖色力充 威振十方三世雄 回因轉果不在念 一切衆生獲神通

식필게 반사이흘색력충 위진시방삼세웅 회인전과부재념 일체중생획신통 -8

(食畢想念偈)

<해설> 공양을 마치는 게송

공양을 마치니 색력이 충만하고 / 위의가 시방삼세에 떨치는구나 / 인(因)을 돌려 과(果)로 바뀜을 마음에 두지 않고 / 일체중생은 부처님의 신통을 얻을지어다.

식필게 - 모든 공양의 절차를 마치는 부분을 식필게라 한다. 청규에서는 간단히 현행 소심경과 같이 4구의 게송만으로 명기되어 있다.

청규에서는 공양을 마친 뒤의 부분은 입당의 절차와 동일한 절차를 간단히 언급함으로써 공양작법을 모두 끝내고 있다.

2) 봉원사(奉元寺) 영산재식(靈山齋食) 중의 식당작법 게송

현행 무형문화재 제 50호로 지정되어 있는 영산재 가운데 식당작법을 8게송 중심으로 아래와 같은 절차로 고찰하겠다.

(1) 오관게(五觀偈) - 계공다소량피래처(計功多少量彼來處)

촌기덕행전결응공(村己德行全缺應供)

방심이과탐등위종(防心離過貪等爲宗)

정사양약위료형고(正思良藥爲療形枯)

위성도업응수차식(爲成道業應受此食)

현행 《선원청규》의 식당작법과 다른 도입부를 보이고 있다. 현행 소심경이 발우를 펴기 전에 부처님 은혜를 생각하는 팔상성도게(불생가비라 성도마갈타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의 일부를 송하는 데 비하여 영산재 식당작법은 공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오관게와 착석을 나타내는 게를 대중이 송한다.

일반적으로 소심경에서 염송하는 오관게는 공양을 받은 다음 하는 봉발게와 공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오관게를 염송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 영산재 작법에서는 처음 도입부에 먼저 오관게를 송한다. 처음에 오관게를 염송하고 다시 일반게 순서에 맞추어 봉발게 다음에 다시 오관게를 염송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오관게 소리가 끝나면 대중은 묵좌(默坐)하고 오관의 태징(하발금) 소리에 맞추어 타주 스님은 바라춤을, 그리고 북채를 잡은 스님은 법고를 추며 법고춤이 끝나면 맞춤쇄 태징으로 세 번씩 몰아 뛰어 15망치를 울려 마친다.

착석을 나타내는 게

若敷床座 當願衆生 敷善法座 見眞實相 正身端座 當願衆生 坐佛道樹 心無所畏(공양을 하기 위해 상에 앉는 것은 그 의미가 법좌를 펴서 진리의 실상을 보신 부처님과 같이 모든 공 양하는 중생도 그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이 때 몸을 단정히 바르게 하여 부처님이 보리수하에 정각을 이루신 것처럼 우리 모든 중생도 그와 같이 단좌하여 마음에 두려움이 없는 무소외(無所畏)를 바란다는 뜻이다. 소심경에서는 부처님의 팔상성도를 생각하는 `불은상초게(佛恩想招偈)'와는 다르다 하여도 상에 앉는 것은 실상의 진리를 보신 부처님과 같이 정각을 이루고자 하는 염원을 갖는 뜻에서는 일맥 통하는 유형을 취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부분이다.

(2) 전발게(展鉢偈) - 여래응량기 아금득부전 원공일체중 등삼륜공적(如來應量器 我今得敷展 願共一륀衆 等三輪空寂) 옴 발다라야 사바하 (3)

부처님의 공덕에 응할 만한 응량기인 발우를 내가 지녀 펴고자 하니, 원컨대 일체중생의 삼륜(받는 자·주는 자·주는 물건의 세 가지)이 공적하여지이다.

현행 소심경은 간소한 양식에서 전발게만 염송한다. 그러나 영산재 같은 큰 재에서는 반야심경도 함께 염송한다. 일반 소심경에서와는 달리 후반에 다라니(眞言, 呪, 摠持, 能持라고도 함. 모든 악한 법을 버리고 한량없이 좋은 법을 가지는 것)가 부가되어 있다. 반야심경을 송주하는 것은 일괄 송주가 아니고, 나누어서 송한다. 즉 처음부터 즉설주왈까지의 본문 부분을 먼저하고 그 다음 사이를 두고 주문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를 창한다. 마지막으로 `처무상도념(處無上道念:처하는 곳에서 무상의 도를 생각하는 것)'을 창하면 이때 타주는 팔정도를 돌며 타주춤을 춘다.

(3) 십념(十念) - 특이한 상황 없이 청규나 동일한 십불의 명호를 서술하며 타주는 타주채를 들고 염송이 끝날 때까지 팔정도를 중심으로 돈다.

(4) 봉발게(琫鉢偈) - 현행 소심경의 봉발게인 `약반식시 당원중생 선열위식 법선충만 결부부좌 당원중생 선근견고 득부동지'를 골격으로 한 조금 더 복잡한 형태의 게송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법희충만게 뒷부분에 다음과 같은 후반의 게가 연결된다.

결가부좌당원중생 선근견고득부동지 약견공발당원중생 기심청정공무번뇌

結跏趺坐當願衆生 善根堅固得不動地 若見空鉢當願衆生 其心淸淨空無煩惱

내용을 살펴보면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① 공양을 받는 중생은 선열로 공양을 삼으며 법열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② 공양상에 결가부좌한 중생은 선근이 견고하여 부동지를 이루기를 바란다.

③ 빈 발우를 보면 중생의 그 마음이 청정하게 공하여 번뇌가 없기를 바란다.

그 외에도 불·법·승과 계·정·혜에 관한 진언이 이어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불삼신:법신·보신·화신을 말한다.(법삼장진언:옴 불모규라해 사바하 (3))

법삼장:`경장·율장·논장의 삼장을 말한다.(승삼승진언:옴 수탄복다해 사바하 (3))

계장은:율장의 계법을 말한다.(계장진언:옴 흐리부니 사바하 (3))

정결도:`선정을 결정코 이루려는 도업을 말한다.(결정도진언:옴 합부리 사

바하 (3))

혜철수:혜학을 철저히 닦을 것을 말한다.(혜철수진언:옴 나자바니 사바하 (3))

(5) 오관게(五觀偈) - 현행 소심경에는 `계공다소량피래처 촌기덕행전결응공 방심이과탐등위종 정사양약위료형고 위성도업응수차식'의 오구의 게송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영산재 작법에는 오관게 후에 몇몇의 게송이 더 부가된다. 이는 작법의 초두에서 오관게를 먼저 독송한 것과 같이 오관이 작법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시사하고 있다.

약견만발 당원중생 구족성만 일체선법 득향미식 당원중생 지절소욕 정무소착

若見滿鉢 當願衆生 具足成滿 一륀善法 得香美食 當願衆生 知節少欲 情無所着

원아만발 변성묘공구 변어법계중 공양제삼보 차시제중생 무유기갈자 변성법희식

願我滿鉢 變成妙供具 變於法界衆 供養諸三寶 次施諸衆生 無有飢渴者 變成法喜食

속무상도 아신중 팔만호 일일각유구억충 제피신명 수신시 아필성도 선도여

速無上道 我身中 八萬毫 一一各有九億蟲 濟彼身命 受身施 我必成道 先渡汝

그 구성은,

원단일체악 원수일체선(願斷一륀惡 願受一륀善)

일체중생이 이 공양을 받음으로써 무상도를 이루기를 발원하는 부분.

회향제중생 보공성불도(回向諸衆生 普共成佛道)

악을 끊고 선을 닦는 것을 생각하는 게송의 부분이 부가된 후에 오관게를 지송한다.

i. 공양중생의 성도원

㉠ 발우에 가득한 공양을 보는 중생은 일체의 선법이 구족히 성만하기를 바란다.

㉡ 향미식을 얻은 중생은 절도와 소욕을 알고 정에 집착함이 없기를 바란다.

㉢ 내가 받은 공양은 묘한 공양구가 되어 두루 법계의 제삼보께 공양되기를 바란다.

㉣ 시식 받은 중생 기갈이 없어지고 법희의 식(食)으로 바뀌어 속히 무상도를 얻기 바란다.

㉤ 내 몸 속에 있는 팔만 모공(毛孔)의 각기 구억(九億)의 충(蟲)들도 저들의 신명을 이것으로 제도하고 내 필히 성도하여 저들도 제도하기를 바란다,

라는 내용으로 일체선법과 무상도를 이루기를 바라는 발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ii. 단수게(斷水偈)

일체의 악을 끊고 일체의 선을 닦은 바 모든 선근이 제중생에게 회향하여 널리 함께 불도를 이루기를 바라는 발원으로 내용을 이루고 있다.

(6) 출생게(出生偈) - 현행 소심경과 유사한 내용이나 뒷부분 게송이 약간 차이가 난다.

(선원청규 출생게)

여등귀신중 아금시여공(汝等鬼神衆 我今施汝供)

차식변시방 일체귀신공(此食遍十方 一륀鬼神供)

(영산작법 출생게)

여등귀신중 아금시여공(汝等鬼神衆 我今施汝供)

칠립변시방 삼도기갈(七粒遍十方 三途飢渴)

실제열뇌 보동공양(悉除熱惱 普同供養)

이상 외에도 청규에 없는 몇몇의 게송이 부가된다.

출생게 이후에 정식게(淨食偈)와 삼시게(三匙偈) 그리고 당좌(堂佐)의 권공(勸供)의 게와 당좌의 정진게(精進偈)를 송한 후 공양을 한다. 그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정식게(淨食偈) 五觀一滴水 八萬四千蟲 若不念此呪 如食衆生肉

옴 살바나유타 발다나야 반다반다 사바하 (3)

한 방울의 물에 팔만 사천의 충이 있되 이 주문을 염송하지 않으면 바로 중생 의 몸을 먹는 것이 된다는 내용이다.

삼시게(三匙偈) - 願斷一륀惡 願修一륀善 願共諸衆生 同成無上道

숫가락을 들면서 발원하되 일체의 악을 끊고 일체의 선을 닦아서 공히 모든 중생이 함께 무상도를 얻기를 발원하는 내용이다.

권공(勸供)의 게(偈) 三德六味 施佛及僧 法界人天 普同供養

공양은 삼덕과 육미를 갖추고 있어 불·법·승 삼보와 법계의 인천에 두루 널리 공양을 한다는 내용으로, 당두가 대중이 공양하기를 권하는 내용이다.

정진(精進)의 게(偈) 但念無常 當勤精進 如救頭燃 愼勿放逸

다만 무상을 생각하며 마땅히 힘써 정진하기를 마치 머리에 불을 끄듯이 하여 삼가 방일하지 말라는 내용을 당좌가 대중을 대표해서 창을 한다. 이와 같이 출생게 이후에 네 가지 게를 창하여 마치면 곧 공양을 시작한다.

(7) 절수게(節水偈) - 발우를 씻고 난 물을 아귀 중생에게 주는 내용이다. 현행 소심경과 청규와 영산재 작법의 세 가지가 동일하게 언급하고 있다. 내용은 4구(四句)와 진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我此洗鉢水 如天甘露味 내 이제 발우 씻은 물은, 하늘의 감로미와 같은 맛이니

施汝餓鬼衆 皆令得飽滿 너희 아귀 중생에게 베푸노니, 모두들 포만하여지이다.

옴 마휴라세 사바하 (3)

(8) 식필게(食畢偈) - 식당작법이 끝나는 마지막 부분이다. 현행 소심경과 청규가 간단히 식필게(飯食已訖色力充 … 云云)만을 지송하고 식당작법을 마치는데 비하여 영산작법에서는 많은 부분을 할애하여 마지막 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특히 현행 소심경과 선원청규에 없는 부분은 축원부분이다. 금일에 재를 시설한 모든 제자들을 위하여 위로는 국왕(대통령)으로부터 사사시주(四事施主:재사·법사·무외사·번뇌사) 및 법계 일체중생에게 평안을 바라는 회향의 축원이다. 그 구성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식필게는 현행 소심경과 청규는 동일하나 영산작법에서 후반부의 게송이 길게 추가된다.

반사이흘색력충 위진시방삼세웅 회인전과부재념 일체중생획신통

飯食已訖色力充 威振十方三世雄 回因轉果不在念 一륀衆生獲神通

의 4구로 현행 소심경은 간단히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영산작법의 식필게 부분은 다음과 같이 다소 길다.

飯食已訖 當願衆生 공양을 이제 마치니 원컨대 모든 중생이

德行圓滿 成十種智 덕행이 원만하고 십종지를 이루어지이다.

願我所受 香味觸 원컨대 내가 받은 색성향은

不在我身 出生孔 내 몸에 남아 있지 말고 모공을 빠져나가

遍入法界 衆生身 법계에 두루한 중생의 몸에 들어가

同等法樂 除煩惱 동등하게 법락을 받고 번뇌를 제하여

施者受者 具獲五常 주는 자, 받는 자 모두 오상(五常)을 얻으며

色力命安 及無 辯 색력과 명(命)이 편안하며 무애변을 얻어지이다.

다음과 같은 후렴을 지송하고 난 다음 재자의 축원 부분으로 이어진다.

處世間如虛空 如蓮華不着水 세간에 처하되 허공같이 하며, 연꽃이 물들지 않듯이

心淸淨超於彼 稽首禮無上尊 마음은 청정하여 저 세간을 뛰어넘으니,

머리 숙여 위없이 존귀하신 분께 귀의합니다.

축원은 금일에 재를 시설한 재자와 영가를 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원왕생 원왕생(願往生 願往生)' 혹은 `정찰정찰생정찰(淨刹淨刹生淨刹)' 등의 내용으로 영가의 극락왕생을 비는 창을 계속한다. 연후에 일반 축원의 형식을 빌어 금일의 공양재자로부터 일체 법계중생에 이르기까지 축원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한다. 즉,

금일공양재자 액소재 원성취 …운운…(今日供養齋者 厄消災 願成就 …云云…)

법계중생동일포 마하반야바라밀(法界衆生同一包 摩 般若波羅蜜)

마지막으로 해탈주(解脫呪)와 퇴좌게(退座偈)와 회향게(回向偈)로 모든 식당작법이 끝난다.

해탈주(解脫呪)

南無 東方解脫主世界 虛空功德 동방해탈주의 세계에 귀의하노니 허공 같은 공덕

淸淨微塵 等目端正 功德相 미진수같이 청정하고 눈같이 단정한 공덕의 모습

光明華 波頭摩 瑠湜光 寶體相 광명의 꽃 파두마 유리광명의 보배몸 같은 모습

最上香 供養訖 種種莊嚴頂 최상의 향기 가지가지 이마와 계두를 장엄하는

無量無邊 日月光明 願力莊嚴 무량무변한 일월의 광명 원력으로 장엄하시고

變化莊嚴 法界出生 無障碍王 변화로 장엄하신 법계에 나투신 걸림 없는 왕이신

如來阿羅漢 三 三佛陀 여래 아라한이신 위없는 삼불타(三佛陀)시여.

퇴좌게(退座偈)

退座出堂當願衆生深入佛地永出三界

자리에 일어나 당을 나오니 원컨대 모든 중생이 깊이 佛地에 들어 길이 삼계를 벗어날지어다.

회향게(回向偈)

普願衆生苦輪海 널리 원하건대 고해의 중생

摠令除熱得淸莎 모두 뜨거운 번뇌 벗고 청량 얻어

皆發無上菩提心 위없는 보리심을 발하여서

同出愛河登彼岸 함께 애욕의 바다 벗어나 피안을 오를지어다.

<표 - 1> 《선원청규》 게송과 봉원사 게송 비교

3) 《선원청규》의 게송과 봉원사 식당작법 게송의 차이점

위의 여덟 게송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봉원사는 오관게부터 시작되며, 전발게에서는 옴 발다라야 사바하 진언(眞言)이 암송되고 십념에서는 청규와 봉원사 작법이 동일하며, 봉발게는 결가부좌당원중생 선근견고득부동지 악견공발당원중생 기심청정공부번뇌 이외에도 다섯 가지 진언이 더 불려졌다. 오관게는 동일하나 봉원사작법에서 약견만발 당원중생……운운……회향중생 보공성불도 등이 더 불려졌다. 출생게에서는 봉원사작법에서 삼시게(三匙偈), 정식게(淨食偈), 권공(勸供)의 게(偈), 정진(精進)의 게(偈) 등이 더 불려지며, 절수게는 청규와 봉원사작법이 동일하다. 그러나 식필게에서는 청규와 봉원사작법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반사이흘(飯食已訖) 게송만 같고 그 다음부터는 봉원사작법에 많은 게송이 더 첨가되어 있다. (당원중생 덕행원만 성십종지원아소수 향미촉 부재아신 출생공편입법계 중생신 동등법락 제번뇌 시자수자 구획오상 색력명안 급무애변 처세간여허공 여련화불착수 심청정초어피 계수례무상존, 축원, 해탈주, 퇴좌게, 회향게 등이 불려진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여덟 게송의 골격은 같지만, 봉원사작법에서는 오관게를 중요시하는 까닭에 오관게가 가장 먼저 나오며, 게송과 축원, 해탈주, 진언이 더 첨가된 것은 재의식을 중요시하여 현재와 같은 식당작법이 불려진 것이라 생각된다.

3. 악기를 중심으로 본 식당작법의 비교

비교 방법:《선원청규》에 나타난 악기

두 가지 작법을 사물(운판, 목어, 법고, 범종)을 중심으로 비교하여 본다.

18) ` -70

1) 《선원청규》 에 나타난 악기

사용악기 대종, 운판, 목어, 법고, 장판, 점추.

청규에서 보이는 악기는 사물을 필두로 하여 공양의식의 진행은 추(才追)를 중심으로 한다. 청규는 대중의 위의를 규정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위의 부분을 세밀히 서술한 부분이 많다. 특히 하발(下鉢)하기 이전 입당의 순서에서 사물의 사용을 보이고 착석한 후로는 주로 소종을 치면서 공양의식 절차를 진행한다.

<입당(入堂) ~ 하발(下鉢)>

장판:대중이 공양에 나아가는 신호를 알리는 운판의 일종이다. 조식(早食)에서는 공양방 운판을 세 번 내리고 제당 앞의 운판을 일제히 울려 공양을 알린다. 이때는 공양방 운판과 제당의 운판을 교대로 울리고 끝으로 공양방 운판과 제당의 운판을 한 번씩 내린다. 이것으로 대중은 공양자리에 착석한다(장판은 운판의 성격으로 보인다).

목어:목어는 목조로 된 용의 머리와 물고기의 몸으로 된 형상이다. 승당의 바깥에 걸어서 공양 때를 알린다. 특히 독경 때 쓰이는 목어와는 구분이 된다. 목어를 친 후에는 누구도 식당방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목어를 치기 전에 대중은 식당방 자기 자리에 착석해야 한다.

북:고(鼓)를 세 번 울린다. 이때 주지(방장)가 당으로 나아간다 (鳴鼓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일종의 북으로 보이나 정확한 사실은 알기 어렵다).

종:종이 울리면 공양 자리에 착석하고 있던 대중은 상에서 내려온다. 주지인이 성승(聖僧)에 문신한 후 다시 대중은 상에 오른다. 이는 주지를 공경하는 의미의 의식(표현) 때문이다. 첨추(砧才追) 유나는 입당하여 성승전에 문신하고 향을 올린 다음 침추 곁에 위치한다. 이후 공양절차는 유나가 침추로 진행한다(각주 21참조).

이상의 법구(法具)는 예불에서 사용되는 성격과는 달리 공양 진행에만 이용되는 사물인 것 같다. 이와 같이 복잡한 입당과 문신 소향 등의 절차를 거친 다음 공양의식에 임하는 것이 《선원청규》와 봉원사 식당작법의 성격과는 다른 점을 보이고 있다.

이상의 불은상기게(佛恩想起偈)부터 식필게(食畢偈)까지의 진행절차는 현 조계종 소심경과 유사하나 죽비 대신 침추(砧才追)로 진행한다.

(1) 불은상기게 - 청규에서는 불은상기게의 항목이 없다. 성승전에 문신하는 것으로 불은(佛恩)을 상기하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2) 전발게 - 전발의식이 따로 없다. 유나가 침추 곁에 위치하면 대중은 각자 발우를 편다. 특기할 것은 홍제선원에서는 이때 종을 한 번 내리고 덧붙여서 "대중은 저마다 심경(般若心經) 3편을 염하되 모인(某人)에게 회향한다."라고 되어 있다. 또 재(齋)가 있을 때에는 다음과 같은 간단한 의식이 있다.

주지인은 향로 앞에 꿇어 앉아 유나는 종을 내리면서 다음과 같이 송(誦)한다. "계수 하나이다. 박가범 원만 수다라 대승보살승 그 공덕 사의하기 어렵나이다." 등의 축원을 한다.

(3) 십념 - 십념불(十念佛)의 각 불(佛)에 맞추어서 추를 내린다. 이때 운곡(韻曲)을 중시한다. 예컨대 추가 빠르면 불자(佛字)에 추가 떨어지고 추가 느리면 불명(佛名 - 청정법신)에 추가 떨어진다. 그러므로 대중의 송(誦)에 맞추어 추를 내려야 한다. 마지막에는 추를 내리지 않고 이르되 "우러러 유하건대 삼보는 두루 인지를 내리소서." 하는 것으로 마친다. 이어서 수좌는 추를 한 번 내리면 시식을 한다. 즉 죽과 밥을 찬탄하는 내용이다.

(4) 봉발게 - 청규에는 없는 항목이다. 그러나 수좌가 시식 후 죽의 십리(十

利)와 반의 삼덕육미를 찬탄하는 내용은 소심경의 봉발 내용과 비교될 수 있겠다. 식사가 끝난 후 유나는 성승의 장막 뒤에서 수좌에게 문신하여 시재(施財)를 청한다. 이때 수좌는 추를 한번 내리면서 재물을 보시한다.

(5) 오관게 - 유나가 추를 내리면서 오관게를 송하고 대중은 다만 합장하고 오관게를 관(觀)한다.

(6) 출생게 - 오관게에 이어서 귀신에게 줄 밥알을 낸다. 여기서는 추를 내린다는 언급이 없다.

(7) 절수게 - 게송만 소개되고 추를 내리는 내용은 언급이 없다.

(8) 식필게 - 추를 내려 식필게송을 끝으로 공양을 마친다.

이상과 같이 공양절차가 끝나면 입당에 준하여 주지가 먼저 당을 나가고 대중은 발우를 올린 다음 당종이 세 번 내리면 공양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공양의식이 끝난다. 대중 차를 마시는 내용도 약간 언급하고 있다.

2) 봉원사작법에 나타난 악기

사용 악기 - 법고, 범종, 목어, 운판, 바라, 삼현육각, 호적, 광쇠, 태징, 목탁, 경쇠.

봉원사의 식당작법은 영산재(靈山齋)의식 속에 포함되어 있다. 앞서 언급한 청규는 위의(威儀) 부분이 강조된 반면 봉원사 식당작법은 의식(儀式)으로 이루어진 성격이 분명하다. 봉원사작법에 사물의 성격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천도의 의미가 강하며 악기의 종류도 다양하다. 예컨대 삼현육각, 태징, 바라, 목탁, 경쇠 등이 있다.

또 특이한 점은 청규에서는 보이지 않는 타주무가 있다. 공양의식에서 타주무가 보이는 것은 불제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격과 또는 팔정도(八正道)로 도업(道業)을 성취하겠다는 의미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1) 오관게 - 봉원사작법에는 불은상기게가 없다. 그러나 사물로 의식을 시작하는 점이 다르다. 천도의 성격이 강하여 사물을 모두 사용한다. 먼저 대종을 울려 대중 운집을 알린다. 그 후 대중이 운집하면 식당방에 따라 작법을 진행한다.

① 운판삼하 - 허공중생들은 모두 편히 쉬라는 뜻으로 세 번 내린다.

② 당종 18번 - 지옥중생에게 공양을 베푸니 쉬라는 뜻으로 내린다. 당종을 18번 내린다.

③ `목어와 법고 - 먼저 목어는 수륙중생을, 법고는 중생과 세간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

이상과 같이 사물로써 모든 중생에게 공양을 베풀어 제도하는 뜻을 편다.

④ 오관게 - 북과 목어에 맞추어 오관게 짓소리를 한다. 오관게의 뜻이 공양작법의 중심 사상이기 때문에 청규나 소심경과는 달리 작법의 초두에 언급되고 있다.

⑤ 하발15추 - 하발을 알리는 15추는 세 번씩 몰아 5번 15망치를 친다. 이때 오관의 태징과 타주 스님의 바라무, 법고무 등과 함께 어우러진다.

정수정건 삼타 - 공양 진지의 청결을 위하여 정수 정건을 준비하는 뜻으로 광쇠를 3번 친다.

(2) 하발게 - 독창과 대중창이 어우러지며 타주무가 아래와 같이 이루어진다.

① 중수타주 대중창 - 중수의 경쇠와 대중의 창이 어우러져 다음과 같은 착석게를 한다.

중수 - 약수상좌 대중 - 당원중생 수선법좌 견진실상

중수 - 당원중생 대중 - 당원중생 좌불도수 심부소외

② 중수대중창 - 중수와 대중이 전발게를 송하는 동안 타주는 팔정도를 돌며 타주무를 춘다.

③ 대중창 - 반야심경을 송한다.

(3) 십념 - 중수의 경쇠에 따라 십불의 명호를 염한다. 이때 타주는 팔정도를 돌며 타주무를 춘다.

(4) 봉발게 - 중수가 경쇠로 시작을 알리면 대중은 다같이 봉발게를 송한다.

(5) 오관게 - 오관게 후렴 두 번은 오관 스님이 홋소리로 하고 마지막 후렴은 대중이 짓소리로 함께 한다.

(6) 출생게 - 중수의 광쇠 7망치 후 정식게를 송한다. 중수경쇠로 삼시게를 송한다. 위의 두 게송은 청규와 소심경에는 없는 게송으로 차이를 보인다.

당좌는 광쇠 3번에 맞추어 권공의 창을 알리면 대중의 공양을 권한다. 이때 타주는 앞의 염송과 함께 타주무를 추며 팔정도를 한 바퀴 돈 후 상판과 하판을 향하여 `공양 소합소'를 외친 후 등을 맞대고 좌정하고 대중은 공양한다.

(7) 절수게 - 광쇠 6추로 공양이 끝날쯤 숭늉을 돌린다. 이후에 발우를 씻고 광쇠를 3번 치면 타주는 팔정도를 한 바퀴 돌고 대중은 절수게를 송한다.

(8) 식필게 - 중수의 광쇠에 따라 공양이 끝나는 식필게를 송한다. 당좌는 광쇠를 세 번 친 후 아래 글귀를 외친다.

처세간여허공 여련화불착수 심청정초어피 계수례무상존

處世間如虛空 如蓮花不着水 心淸淨超於彼 稽首禮無上尊

<축원(祝願)>

봉원사작법에서는 재의식에 포함된 작법이므로 영가천도와 재를 베푼 시주들에게 영가는 왕생극락하고 시주자는 복덕이 구족하기를 바라며 또 식당작법에 모인 대중도 자귀의불(自歸依佛), 회향게(回向偈)를 통하여 해탈(解脫)하기를 바란다. 후반부 축원에서 태징, 타주무가 어우러져 복잡한 의식이 이루어져 있으나 생략했다.

특이한 것은 자귀의불과 회향게 부분이다. 자귀불은 오관게에서 자귀불을 송하면서 식당을 돌고 타주는 나비무를 춤추고 요잡 태징으로 바라무를 춘다. 회향게는 요잡 후 대중이 당수의 광쇠에 맞추어 "성불하십시오." 동음동참함으로써 모든 의식이 마무리 된다.

이상과 같은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 정리해 불 수 있다.

13

<표 - 2> 《선원청규》와 봉원사 식당작법 악기 비교표

<표 - 2>에서 살펴보면 처음 시작의 사물의 쓰임은 같고, 봉원사작법에서 삼현육각, 호적, 바라, 태징과 작법이 등장하며 청규에서는 추로써 순서를 알리지만, 봉원사작법에서는 경쇠와 광쇠로 진행된다. 오관게와 출생게는 청규와 봉원사작법이 함께 묵묵히 게송으로만 진행하고 절수게에서 봉원사작법이 경쇠와 타주무가 등장하며, 식필게에서는 청규에서는 추와 종이 사용되며 봉원사작법에서는 광쇠와 태징, 경쇠, 요잡태징, 삼현육각, 호적, 타주무, 바라무, 나비무 등 모든 악기와 춤이 등장해 한바탕 판이 벌어지면서 끝이 난다.

Ⅲ. 결론

이상 《선원청규》에서는 대중의 위의(威儀)와 시주(施主)자들의 공덕을 축원하고, 사물의 쓰임새도 다양하게 나타나며 무용[舞]으로 나타내는 의식의 기록은 없다. 《선원청규》에서는 위의(威儀)에 대해서 중요시했고, 대중의 질서에 대해서 엄격했던 것으로 보인다.

첫째, 일제 이후 불교계의 모든 의식의 지침서인 《석문의범(釋門儀範)》 소심경에서는 상당히 간소화되어 있다. 게송 부분에서는 동일하나 사물에서는 죽비와 소종만 사용된다. 현재 조계종(曹溪宗) 각 강원(講院)이나 선원(禪苑)에서 행해지는 공양의식은 소심경과 동일하다.

둘째, 봉원사 식당작법에서는 《선원청규》와 유사한 부분은 사물의 사용이 비슷하나 봉원사작법에서는 삼현육각이 첨가되고 게송 부분에서는 오관게(五觀偈)를 상당히 중요시하여 가장 먼저 나온다.

청규에는 춤이 보이지 않고, 소심경에서만 타주무가 춤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현재와 같은 형식으로 변화되었는지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의식의 행위가 청규와 소심경은 대중의 질서와 위의(威儀)를 중요시한 데 반하여, 봉원사 식당작법은 의식(儀式)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난다. 석문의범 식당작법에서는 다만 팔정도 형태로 앉아 공양을 하는 데 반하여 봉원사 식당작법에서는 팔정도를 가운데 두고 공양 도중 타주무를 추는 의식이 행해지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게송 부분은 《선원청규》와 소심경은 동일하고, 봉원사 식당작법에서는 게송의 순서가 차이를 보이고 게송이 더 첨가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기 사용(사물)에서 《선원청규》와 식당작법에서는 사물을 사용했으나, 소심경에서는 간소화되어 죽비와 소종으로만 되어 있다. 무용(舞踊)에서 청규에서는 무용을 했다는 내용은 보이나, 어떤 형태의 무(舞)였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봉원사 식당작법이 현재 무형문화재(無形文化財)로 등록되어 있고, 봉원사에서 해마다 5월 5일에 영산재 시현회(示現會)를 가지고 있는 만큼, 변화된 연원과 의식으로서 바른 전승을 위해서 가장 근원이 된 《선원청규》의 식당작법[赴粥飯] 연구와, 봉원사 식당작법의 변천사를 문헌(文獻)을 통해 재조명하고, 그 정신과 내용 등을 연구하여 올바른 전승(傳承)을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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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의 敎育思想에 대한 小考

혜 정 *

緖言

Ⅰ. 敎育의 原理 및 目的

Ⅱ. 宗敎와 敎育

1. 佛敎의 思想變遷

2. 佛敎의 人間觀

3. 佛敎와 敎育

Ⅲ. 敎育課程內에서의 佛敎敎育

1. 兒童期의 佛敎敎育(미술교육 중심)

Ⅳ. 宗立學校 佛敎敎育의 現況과 未來

結語

佛敎의 敎育思想에 대한 小考

緖 言

불교심리학에서는 정신적 과정을 역동적이고 실용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인간의 욕구에 대한 가치를 그 욕구를 성취한 결과로서 평가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의 논리는 바로 그러한 사실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 가령 경전에서 말하고 있는 '탐욕은(성냄은… 어리석음은… 잘못된 집중은… 잘못된 마음은…) 악한 행위로 이끄는 원인이다.' 등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는 인과론적 구조이다. 따라서 동기 제거를 통한 문제 해결을 원칙으로 한다. 즉 악한 행위의 동기에 의한 결과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은 선한 행위로 이끄는 동기들에 의해서라는 논리이다. 이러한 것들은 수행자의 인내와 노력, 실천, 근면함에 있다고 보며 이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후천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교육 역할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물론 이것은 인간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긍정적인 가능성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서야 가능한 작업이다.

일찍이 불가에서 인간을 위시한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실유불성(悉有佛性) 사상은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인간은 고래로 더불어 사는 사회 속에서 나름대로의 질서와 편의를 추구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야기되는 수많은 문제들과 봉착하게 되었다. 따라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당연히 제시되어야만 했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는 윤리, 도덕, 규칙, 법 등이다. 그러나 그러한 당위적인 약속들이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었다. 문제 해결 방안으로 제시된 몇 가지 방법들조차도 어떤 토대 위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현대인의 삶은 많은 부조리적 측면 속에서 영위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삶이 보다 더 원만하게 영위될 수 있도록 하는 정신적 토대로서 교육의 필요성이 전제되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오히려 이러한 전제 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육을 행하는 데 있어서 바람직한 사상, 즉 교육관의 정립이 필요하다. 그것은 종교에 입각한 것일 때 이상적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원리 및 목적 위에서 종교와 교육의 상관관계를 정립해 보는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본고에서는 불교를 통한 아동교육과 그 영향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 그것의 심화단계로서 불교와 교육의 관계 파악을 위한 불교사상의 시대적 변화를 살펴봄과 동시에 인도불교, 원시교단불교, 나란타사(那爛陀寺), 오늘날 한국불교의 일반을 이루고 있는 선사상 속에서의 교육관을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 아울러 현행되고 있는 교육과정 속에서 불교교육을 종립학교를 통해 살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불교교육의 과제를 시사하는 것으로 본고를 마칠까 한다.

Ⅰ. 敎育의 原理 및 目的

실천적 현상으로서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본질부터 파악함이 우선되어야 하며 그것은 어의(語義) 파악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역사적으로 국가의 이념과 그 시대 사람들의 인생관과 인간관, 그리고 교육의 장면이나 대상에 따라서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으므로 단언하기 쉽지 않지만 사전적 의미로는 '성숙한 사람이 미성숙한 사람에게 심신의 모든 성능을 발육시킬 목적으로 일정한 방법에 의하여 일정한 기간 계속하여 미치는 영향', 혹은 '피교육자의 지식, 이해, 태도를 기르고 생활을 발전시키며 인격을 형성하는 인간교육의 과정'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어떤 것을 발전, 바람직한 것, 바람직한 성격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치는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스토 텔레스(Aristoteles, B.C.384∼322)는 이성적 인간을, 존 로크(Jon Loke, 1632∼1704)는 신사(紳士) 육성을,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1778)는 자연인을, 죤 두이(Johon Dewy, 1859∼1952)는 반성적 사고의 인간을 바람직한 인격으로 보았으며, 우리 나라의 각 시대별 바람직한 인격을 신라시대는 화랑, 고려시대에는 불교적 인간, 조선시대에는 예를 숭상하는 유교적 인간을 육성이나 발전의 방향으로 삼았음을 볼 때 내용적 의미에서는 각기 다른 범주에 적용했으나 방향적 의미에서는 발전, 육성, 성장이라는 목적이 모두 일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규범적 인간이다. 그런데 교육의 본질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먼저 사전적 의미에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말에서 교육에 해당하는 말을 찾는다면 '가르친다'인데, 그 어원은 '가르친다'나 '기른다'이다. 여기서 전자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고 후자는 분별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르친다는 말이 방향 제시나 분별과도 어원을 같이 하므로 그 말 속에는 교육의 의미인 '발전'이나 '성장'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자의(韓字義)로서 '교육'의 어원을 찾는다면 맹자의 《진심편(盡心篇)》의 <군자유삼락(君子有三樂)> 등에서 '득천하영재이교육도유삼락야(得天下英才而敎育度有三樂也)'에서인데 이는 군자에게 있는 세 가지 즐거움 중의 하나가 총명한 수재를 얻어 교육함이라는 것에서 사용되어진 말이라고 한다.

이 밖에 교육에 대한 정의는 영어의 Education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이상의 여러 가지 정의들에 대한 공통점을 끌어낸다면 그것은 모두 인간의 잠재적 소질을 밖으로 끄집어내어 미발달상태, 미성숙상태의 가능성을 발달, 성숙, 실현의 상태로 변화하게 하는 작용을 의미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이란 `내부적 가능성을 외부적 조성에 의해 변화·발달시키는 인간교육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은 어원적 의미에서의 교육을 알아보았는데 인간에 대한 참교육 실천을 위해서는 교육의 본질적 규명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측면에서 공자나 루소는 성선설을, 순자나 홉즈는 성악설로 인간에 대한 본성을 부정적인 측면으로 규명했다. 그러나 고자(告子), 로크 등은 제3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인간은 환경에 따라 선할 수도 있고 악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痔든 교육이라는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외형적 조건인 교육의 주체, 교육의 객체, 교육 요소 등과 더불어 내적 조건으로서의 긍정적인 인간관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관 위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작용은 조성작용 내지 협력적 기술로서의 교육의 성격, 사회계승 문화계승 및 발전 수단으로서의 교육의 성격인 기능적 측면, 그리고 이러한 사회문화의 전달을 위한 조성작용으로서의 교육이 학교라는 전문기관을 통해서 이루어질 때 교육을 '인간행동의 계획적인 발전'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교육의 목적이 설정되는 것이다.

교육의 목적이란 교육활동이 지향해야 할 기본적인 방향을 말한다. 인간의 모든 의식적인 행동은 어떤 목적이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데 교육도 역시 의식적인 노력으로서 자목적(資目的)인 활동인 것이다. 그런데 교육의 정의가 사회, 국가, 시대를 따라 달리 정의된 상대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듯이 교육 목적도 또한 상대적이다. 교육의 목적이나 요인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보편적으로 교육의 목적 내지 요인을 결정하는 기준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것도 용이한 방법 중의 하나일 것이다.

교육목적의 기초는 철학적 요인, 사회적 요인, 심리학적 기초 위에서 세워지는 요인, 생물학적인 요인 등이 있으며, 이중 가장 궁극적인 요인으로 철학적 사고가 결정한다고 본다. 또한 교육의 목적은 역사적인 각도에서 보는 사회주의적, 이상주의적, 도구주의적 목적 등과 민주주의의 목적들이 저마다 다른 데 있음도 주지해야 하는 사실이다.

우리 나라의 일반적인 교육목적은 교육법 제1조에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유적 생활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비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현실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초등학교의 교육목적은 국민 생활에 필요한 기초적인 초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중학교 교육목적은 초등학교에서 받은 교육의 기초 위에 중등보통교육을 하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더불어 각급 학교마다의 목적을 설정해 놓고 있다.

본고에서는 이와 같은 교육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바람직한 교육으로서 '불교사상에 입각한 교육'에 대하여 고찰할 것이다.

Ⅱ. 宗敎와 敎育

1. 佛敎의 思想變遷

불교의 사상 변천은 원시·근본·부파·소승·대승, 대승의 각 종파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이 원칙이겠으나 본고에서는 원시와 근본을 원시로, 부파와 소승을 소승으로, 대승과 대승의 각 종파를 대승으로 묶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시불교사상은 불타 재세시로부터 불멸(佛滅) 100년 경까지 불타의 사상을 말한다. 이것의 문헌적 자료는 북전(北傳)의 한역본인 사아함(四阿含)과 남전(南傳)의 사미사야(四尼木司耶)등이 이에 속한다. 여기서 원시불교사상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북전의 아함경을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시불교사상은 단언하면 무상(無常)·무아(無我)·연기(緣起)·중도(中道) 등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열반을 증득하기 위한 수도 방법으로 선관법(禪觀法)을 중심으로 한다. 원시불교의 이러한 사상체계는 삼법인(三法印), 사성제(四聖諦), 팔정도(八正道), 십이연기(十二緣起) 등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으며 그 수도법으로서 선관법은 사선(四禪)이 가장 체계적이라 하겠다.

삼법인이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열반적정(跡槃寂靜)의 교설을 말한다. 삼법인을 통해서 일체의 고정관념을 배격하고 있으며 이것에 의해서 이상세계를 실현하려는 것이다.

사성제는 고집멸도(苦集滅道)의 네 가지 가르침을 말한다. 이것은 인생은 괴로운 것이며 괴로움의 원인은 집(集, 煩惱)이며 이것이 소멸되어 이상세계인 열반의 경지인 것을 멸이라 하며 이상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이 도이다.

불타는 인생의 고(苦)를 구체적으로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와 팔고(八苦) 등으로 열거하고 이것의 근원으로서 삼법인에서 나타난 인간의 욕망에 반한 현상계의 무상·무아에 기인한다고 본다. 즉 "나는 모든 존재가 무상하기 때문에, 그리고 모든 존재가 변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즐기는 바 존재는 다 괴로움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무상무아한 실상을 깨닫지 못하고 상주실아(常住實我)로 착각하고 애착하는 것이 번뇌이며 이것으로 인하여 모든 괴로움이 생(生)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苦)라는 것은 우리의 주관적 감정에서 내려지는 그릇된 판단에서 유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번뇌가 소멸될 때 열반세계가 증득되는 것이며 이는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서라고 한다.

마땅히 너희들을 위해 무위법(無爲法)과 무위도(無爲道)를 말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하라. 무엇을 무위법이라 하는가.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분노와 어리석음이 영원히 다해 모든 번뇌가 길이 없는 것이 무위법이다. 무위도(無爲道)란 무엇인가. 팔정도분(八正道分)을 말하는 것이니 곧 정견(正見)·정사(正思)·정어(正語)·정업(定業)·정명(定命)·정정진(正精進)·정념(正念)·정정(正定) 등을 무위도라고 부른다.

정견(正見)을 통한 무상무아의 깨달음, 다시 말해서 불교철학사상의 근본 중핵(中核)인 연기법에 대한 깨달음인 것이다. 모든 것이 상의상관(相依相關)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생성한다는 연기관에 입각할 때 모든 것은 무상무아하다는 논리는 명백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법 속에서 인간의 실존실태와 생성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십이연기이고, 이것의 생성과정으로 연속 관찰하는 것이 순관(順觀)이며 그 반대로 관하는 것이 역관(逆觀)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생존의 현실을 정견의 반대인 무명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불교의 인생관은 무명이 근원이 되어 현실고를 초래한다는 논리적인 분석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원시불교사상 중에서 중도사상을 들 수 있는데 이것도 역시 연기관에 입각한 사상이다.

세인(世人)은 전도되어 두 극단에 의지해 유(有)다 무(無)다 하여, 세인은 모든 현실세계를 취하고 마음에 문득 헤아리고 집착한다…… 여래는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나니 소위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는 것이다.

연기관에 입각해 볼 때 모든 것은 상의상관적 존재이므로 상주불멸의 존재로 착각하여 극단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한다. 이것을 곧 중도라고 하는 것이다. 팔정도는 중도의 구체적 실천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면 곧 중도(中道)·생안(生眼)·지(智)·명(明)·각(覺)을 얻어 열반에 향하리라. 어떤 것을 중도라 하는가. 소위 팔정(八正)이니 정견·정사·정어·정업·정명·정정진·정념·정정 이것이 중도이니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원시불교사상의 핵심은 무상·무아·연기·중도 등이며 이것의 철학적 구축은 삼법인·사성제·팔정도·연기법임을 알 수 있다.

소승불교라 함은 불멸 후 약 100년 경부터 교단 내에서 율법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상좌부를 중심으로 한 보수파와 대중부를 중심으로 한 진보파로 나뉘어졌는데 점차 교리·중심 인물·지역적 관계 등의 이유로 다시 분파 분열하게 되어 십팔부를 형성하게 되었는데 이를 불교사에 있어서 지말분열(枝末分裂)이라고 한다. 이 근본 지말 십이부파가 인도 불교계를 대표하던 때를 일컬어 부파불교시대라고 하며 이것을 소승불교라고 한다. 그런데 소승불교의 핵심적 근간은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라고 한다. 부파불교시대에 있어서 이론적·세력적으로 가장 강력하였지만 후에 대승불교 측에서 소승불교라고 공격을 가장 많이 받았던 부파였다. 그리고 훗날 이 설일체유부는 자연히 소승불교가 되었던 점 등에 입각하여 볼 때 소승불교사상이라 함은 곧 설일체유부사상임을 알 수 있다.

소승불교의 기본사상은 업감연기사상(業感緣起思想)에 입각해 있다.

중생과 세계는 각기 차별이 있으니 이러한 차별은 누구 때문인가. …… 단지 중생의 업으로 말미암아 차별이 일어난다.

연기하는 데 있어 근본원인은 중생 각자의 업력이며 여기에 일체만유의 연(緣)이 가해져 과(果)를 초래한다고 본다. 이것은 중생 각자의 차별과 함께 세계 차별까지도 초래한다고 본다. 여기서 업이란 생각·동작·언어 등 삼업의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업력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과보를 초래한다고 한다. 그리고 삼업의 원동력은 삼독 등 각종 번뇌[惑]며 이것의 과보로서 현상이 생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회에서 벗어나 열반의 경지인 아라한(阿羅漢)에 이르기 위해서는 혹업고(惑業苦)를 멸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소승불교의 사상으로서 오위칠십오법(五位七十五法)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우주 만유의 모든 법의 실체를 색(色)·심왕(心王)·심소(心所)·불상응(不相應)·무위(無爲) 등 5위(五位)로 나누고 다시 이것을 75종으로 나누어 이 5위75법의 실체가 삼세에 걸쳐 없어지지 않고 존재한다고 한다. 시간과 법이 항유한다는 이 `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설은 불타의 무아사상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라 하겠다. 박선영 교수는 이것의 문제점을 지적함에 있어서 과거·현재·미래가 실유하다면 이러한 삼세의 시간 구분은 무엇에 의해 규정하느냐는 것이다.

이상 소승불교의 사상체계는 사물의 요소를 실유(實有)의 입장에서 분석하고 엄밀한 인과법칙을 논하여 무아사상과는 거리가 있음을 살펴보았다.

대승불교사상은 기존 소승불교사상의 제한점, 즉 윤회전생의 시간적 인과관계를 논함에 대하여 대승은 만유제법이 상의상자(相依相資)하는 원리로 보고 있다. 이러한 사상은 화엄종에서 상즉상입(相卽相入)의 법계연기설과 공사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여러 인과 연으로 생겨난 사물이기에 나는 공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공이라는 말도 임시의 이름에 불과하니 또한 이것이 중도(中道)의 의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살펴보듯이 대승에서 말하는 무는 도무(都無)가 아니라 판정법적으로 부정을 통하여 중도의 긍정으로 극복되어야 할 개념이라고 한다. 용수(龍樹, 150∼250)는 소승불교의 실유사상에 대하여 유무에 집착하는 것임을 지적하고 이를 타파하고 극복함으로써 중도의 실상을 규명하려 했다. 이것이 곧 '파사현정(破邪顯正)'이다. 그러므로 대승에서의 공이란 연기와 중도에 입각한 공이며 이를 반야공이라 한다.

대승불교사상을 논함에 있어서 중요한 개념은 보살사상이다. 보살은 사홍서원과 육바라밀을 실천하여 이상세계를 실현하고자 노력한다. 이는 자리이타를 실천하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이다. 보살은 협화(協和)·화합(和合)·화동(和同)을 실천하며 공사상에 입각하여 편견이나 집착을 멀리한다.

이상으로 보아 대승불교사상의 정수는 연기사상을 상의상자(相依相資)의 원리로 보아 상즉상입(相卽相入)의 이론으로까지 전개되며 공사상에 입각한 중도의 지혜를 증득함으로써 개인적 성불과 현세적 불국정토를 실현코자 하는 보살사상이며 화합정신이다. 이것은 물론 모든 것이 일체유심조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이는 곧 보살사상의 정신인 화합사상이요 유심사상이다.

2. 佛敎의 人間觀

인간은 그 자신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해석하게 되어 있다. 따라서 십이연기를 대함에 있어서 그 내용보다는 그 근거를 추구하는 불타의 자세에 입각해서 아(我)가 있음으로 해서 비아(非我)가 있으며 아라는 생각이 멸함으로써 비아라는 생각도 없어지는 세계 속에서 하나되는 것이 불교인간학의 입장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인간에서 출발하여 인간으로 완성되는 그래프가 바로 `불교인간학'의 지향점이라고 한다. 이러한 불교인간학의 입장에서 교육과 불교의 만남을 도모하는 것은 다가치(多價値) 사회 속에서 정체성의 혼미를 거듭하는 현대인을 위한 대승적 자비구현을 위해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1장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일반적인 교육의 정의를 한다면 교육의 목적에서 그 정의를 찾는 것이 옳을 것이다. 가령 교육의 어떤 목적이 설정되었다면 교육은 그 목적에 다다르기 위한 사다리와 같은 것이다. 이것은 선불교에서 말하는 화두와 같은 것으로서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화두를 들고 궁극에 도달하면 그 화두를 버려야 한다는 것과 같다. 마치 강을 건넌 사람에게 있어서는 더이상 뗏목이 필요하지 않지만 건너기 위해서는 그 뗏목이 필수불가결한 것과 같은 것이다.

불교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제시한다면 그것은 단연코 깨달은 자이다. 물론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상은 시대를 따라 달리 해왔다. 원시불교시대엔 아라한이,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이 그것을 대변해 왔다. 이렇게 보면 이상적인 인간상도 결국은 시대를 따라 달리하는 상대적인 가치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결국 깨달음에 근거하고 있음은 명백한 일이다. 또 이상적인 인간상을 우리 나라의 역사적인 시각에 입각하여 찾는다면 삼국시대엔 화랑, 고려시대에는 불교적 인간, 조선시대에는 예를 숭상하는 유교적 인간이었다. 이처럼 이상적인 인간상은 시대나 장소, 문화, 사회에 따라 상대적으로 주어지는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교육에 대한 근원적인 정의를 내린다면 그것은 인간이 저마다 소지하고 있는 잠재적 소질을 발현시켜 미분화된 가능성을 발달, 발전시켜 현실화시키는 인간육성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불타는 말한다.

모든 비구들이여, 나는 이미 인천의 속박을 벗어났다. 너희들도 역시 인천의 속박을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너희들은 마땅히 인간들에게 가서 많이 구제하고 많이 이익되게 하며 인천을 안락하게 해야 한다. 함께 떠나지 말라. 각자 혼자서 떠나라. 나도 우루베나의 세니니가마로 가서 인간에게 유행하겠노라.

여기서 우리는 각자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즉 불타는 인간이라는 것이다. "여실히 견지하여 통달요해(通達了解)한 인(人)"이다. 불타가 지극히 인간적이라 한 것은 그의 죽음에서도 알 수 있다. 신에겐 죽음이 없다. 불타가 죽음을 시현한 것은 깨달음이라고 하는 것을 가장 현실적으로 가르치고 싶었던 것이다. 불성이라 하는 것은 신과 같은 초월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임을 말하고자 했던 것이다.

《열반경》에서 '일체중생실유불성(一切衆生悉有佛性)'이라 한 것은 그러한 맥락에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불타는 미혹중생을 위하여 선각자로서 스승의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사랑을 자비라고 하는 것이다. 자비는 상호작용이다. 일방적으로 주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줌을 통해서 상대방을 동등한 입장으로 끌어올린다. 이것이 바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인간의 종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내면 속에 잠재해 있는 가능성인 불성을 발현시킨 것이 깨달음이요, 그 깨달음에 인격성을 부여한 것이 불타이다. 일반적으로 교육이 추구하는 바가 그 시대성을 반영하는 입장에 있다면 불교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성을 지향한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이상적인 인간상을 달리 표현했지만 그것은 본질적인 차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의 차이를 말할 뿐임을 우리는 안다. 즉 불교도 인간이 살고 있는 역사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 시대상을 떠나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교육을 불교인간학적 입장에서 본다면 그것은 인간완성을 지향점으로 하여 수행, 즉 행위를 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불교학에서 추구하는 그 목표는 다만 어떤 지식의 획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식의 획득을 위한 활동 그 자체가 해탈의 원인이 된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의 내면적 세계인 아(我)를 자기자신의 행위를 통해 외적으로 표현된 아가 바로 깨달은 아, 즉 불교인간학이 지향하는 인간상을 이루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교육이 지향하는 바도 올바른 인간상을 구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인간학을 정립하는 것과 교육학에서 추구하는 인간학 정립과는 무관하지 않다.

이상은 불교적 인간이 교육적 인간으로서 지극히 이상적인 인격임을 살펴보았다. 그러므로 불교의 인간관을 좀더 고찰해 보는 것은 불교교육학적 입장에서는 당연한 문제일 것이다.

불교의 인간관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현실적인 인간관과 이상적인 인간관으로 나누어 살펴보고 성도자로서의 인간성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불타의 현실적인 인간관을 원시불교의 삼법인을 통해서, 이상적인 인간관은 열반관을 통해서, 마지막으로 불타의 성도내용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다.

제행무상(諸行無常)·제법무아(諸法無我)·일체개고(一切皆苦)의 삼법인에서는 현상계의 사물에 대한 항상성의 부정[諸行無常]과 현상계의 모든 만유가 시간적으로 영원하지 않으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보고 이 모든 현상을 인연소생(因緣所生)이라는 견해[諸法無我], 그리고 무상·무아에 대한 전도된 생각으로 인한 고[一切皆苦]의 삼법인은 중생의 현실을 직관함으로써 삶에 대한 비관적이거나 무사 안일한 태도를 지양하고 현실의 문제를 극복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불타의 이상적 인간관을 엿보게 하는 열반사상에서는 인간의 현실적인 고가 무명에 의한 업(생활)에서 찾음과 동시에 인간 현실관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혹·업·고의 속박으로부터의 해탈을 추구한다. 여기서 말하는 열반은 곧 해탈을 의미한다.

열반이란 탐욕이 영원히 다하고, 성냄이 영원히 다하며, 어리석음이 영원히 다해, 모든 번뇌가 영원히 다한 것이니 이를 열반이라고 부른다.

…저 욕(欲)에서 욕이 없어 모든 괴로움을 해탈한다. 이와 같이 괴로움에서 나오게 되나니, 이와 같이 괴로움이 해탈이 된다. 너의 묻는 바 해탈은 저에게 다 없어짐이다.

열반은 정적 표현이고 해탈은 동적 표현으로서 이름만 다를 뿐 결국 무명을 모두 제거한 불타임을 뜻한다. 불교의 이상세계는 현실고의 원인인 미혹에서 벗어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다.

불교의 교육목적은 이처럼 자각을 통한 열반, 즉 해탈에 이르는 것이라고 한다면 이에 도달한 이상적 인간으로서의 불타는 지식의 축적 내지 기능의 소유자로서 인간이라기 보다는 본질적으로 완성인의 경지에서 자아발견이요, 그 자아의 현실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격완성자인 불타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상적 인간관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이는 불타가 깨달은 것과, 그러한 불타의 인격적 특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불타는 12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통해 생사윤회하는 원인이 무명에 있음을 여실히 알았다. 연기의 자각은 곧 미망으로부터의 해탈이며 불교의 사상과 실천체계를 수립했던 것이다. 그리고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을 통해서 불타의 인격적 특징을 볼 수 있으며 사물의 실상과 진리에 이르는 길과 모든 사람들에게 과거·현재·미래의 행위 및 실태를 여실히 아는 지혜의 힘으로서 십력(十力)은 최상의 지력(智力)인 동시에 사람들을 교화하는 교육의 목적인 것이다. 그리고 목적을 전달하는 방법으로써 사무외(四無畏), 삼념주(三念住)를 사용한다.

불교의 이상적인 인간은 일체의 번뇌를 멸진하고 제법의 실상을 깨달아 무명에서 벗어난 지혜의 소유자를 의미한다. 이상적 인간이 무명의 분별심, 즉 지식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다면 이것은 지혜에 의한 삶이 아닌 것이다. 이상적 인간은 무명이 소멸했으므로 진리를 알고, 번뇌가 없어졌으므로 탐애가 끊어져 법에 의한 참다운 삶을 영위하게 되므로 일체의 대립과 갈등이 해소된 이상적 인간사회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3. 佛敎와 敎育

1) 印度佛敎敎壇의 敎育思想

여기서는 불타의 교육사상을 불타의 교육활동, 원시불교교단과 나란타사(那蘭陀寺)에서 펼쳐진 교육활동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불타는 인도 아리아적 문화 속에서 자랐지만 그 문화를 규정하는 특색은 바라문교적 문화였다. 그렇기 때문에 불타는 브라만의 전통사상인 브라마니즘과의 연계 속에서 그의 교육활동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인도의 브라마니즘적 사회에서는 카스트제도에 의한 사회질서가 유지되는 데 최상의 브라만을 선두로 하여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 등의 사성(四姓) 계급으로 그 가계나 신분을 규정하고 있다. 브라만을 비롯하여 앞의 셋은 재생족(再生族)이라고 하며 수드라는 일생족(一生族)이라고 한다. 재생족이란 최초의 생을 어머니로부터 받지만 문자초(文字草)의 띠를 두르기 때문에 칭하는 것이다. 즉 일정한 연령에 따라 입문식을 행하고 그에 따라 교육을 받는데, 특히 입문한 1∼2년 동안은 스승의 집에서 종교적 교육을 받게 되는데 인간은 이를 통해 거듭난다고 생각을 한다. 즉 종교적 재생이 가능한 계급이라는 뜻에서 재생족이라고 한 것이다. 반대로 일생족이란 입문식의 자격이 없으므로 교육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카스트 제도에서는 결혼·직업·제식 등 여러 가지 교육에서 엄격한 차별규정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고대 인도의 아리아인은 이상적 생애를 사생활기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는데 범행기(梵行期), 가주기(家住期), 임서기(林棲期), 유행기(遊行期) 등이 그것이다. 스승을 모시고 수학을 하고 가장이 되어서 사회적 의무를 마친 다음, 삼림에 깃들어 고행을 하여 이욕유행(離欲遊行)하는 삶의 경로를 따랐다.

불전에 의하면 불타는 7∼8세에 취학하고 17∼18세에 야쇼다라비를 맞이하여 아들 라후라를 얻었으며 29세에 출가하여 35세에 대오하였다. 그리하여 여러 지방을 유력하면서 교화에 힘쓰다가 80세에 열반하였다. 불타는 당시의 관습을 좇아서 500명의 석가족의 동자와 무량무변한 동남동녀와 함께 학당에서 문도의 스승인 뵈이슈바-미트라에게 취학하였는데 모든 분야에서 스승을 능가하였다. 그리고 출가할 것을 부왕에게 청했는데 부왕은 이를 저지하기 위하여 오욕의 즐거움을 더하게 하였다. 그러나 결국 불타는 몰래 왕궁을 떠나 출가하였고 당시 숲에서 림서자(林棲者), 유행자(遊行者)들로 보이는 사문의 무리와 함께 수행하면서 수정주의(修正主義)자인 아라라 카아라 마와 웃다가 라마붓다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만족을 얻지 못하여 그 무리로부터 독립하여 오비구(五比丘)들과 함께 고행하다가 극단적인 수행법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판단하에 극단으로부터 벗어나 6∼7일간의 수행 끝에 중도·연기·사제·팔성도·삼법인 등의 정각을 얻었다.

불타가 깨달은 법은 종래의 브라마니즘의 문화를 초극한 새로운 것이었다. 그가 가정의 유한한 인륜적 조직을 떠나서 강가에서 깨달음을 얻고 욕락을 버리고 출가했지만 반대로 고행도 버렸던 탈극단적인 태도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痔든 불타는 성도(成道)했고 성도 후 자내증(自內證)의 법을 일반인들에게 설하려는 데 있어서 갈등했다. 자신의 깨달은 법이 심심미묘해서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범천(梵天)의 권청으로 오비구에게 초전법륜을 한 데 이어서 카시국의 장자의 아들 야사(耶舍)와 그의 부모 및 친구들을 교화하고 뒤이어 왕사성의 빔비사라왕에게 설법하고 죽림정사를 보시 받았다. 그리고 사리불, 목건련과 그들의 각각 제자 100여 명을 교화하여 1,200여 명의 불제자가 탄생하였는데 불타의 교화 내용은 때때로 가족윤리에서 출발하여 일체중생이 서로 경애해야 할 이치를 가르쳤다. 이러한 내용은 한역 《장아함(長阿含)》 제11 《선생경(善生經)》, 《중아함(中阿含)》 제33 《선생경》, 별역 《호가라월육방예예경(尸迦羅越六方禮禮經)》 등에 실려 있다.

자식의 어버이에 대한 오사(五事)와 어버이의 자식에 대한 오사, 남편의 처에 대한 오사,아내의 남편에 대한 오사는 바로 불타의 가정교육에 관한 지도윤리가 나타나 있다. 뿐만 아니라 사제의 오사도 언급하여 스승과 제자가 각각 자신의 위치에서 스승은 제자를 격려하고 계도하고, 제자는 스승의 가르침에 따르고 봉사할 것을 가르친다. 이것은 교육애를 바탕으로 한 불타의 교사론인 것이다. 불타의 교육방법은 대기설법으로 개성화에 의한 교육원리를 활용했던 것이다. Pali 중부경 전(中部經典) 권 87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라만에 대하여 수비고우뇌(愁悲苦優惱)는 사랑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임을 가르치고 있다. 불타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것의 원인을 직관하도록 유도하는 등 상황에 따른 적절한 비유로서 교화하고 있는 것이다. 십이부경(十二部經) 중 비유는 그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2) 原始佛敎敎壇의 敎育思想

교육집단으로서의 승가와 교육시설로서의 정사 및 가람, 그리고 출가와 불교입문 절차, 교사와 학습자의 자격, 사제관계와 상호의무, 복무규정 및 그 벌칙, 그리고 사미, 여자, 카스트의 교육을 통해서 원시교단의 교육사상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원시교단에서 승가는 교육집단으로서 비구·비구니·사미·사미니·식차마나(五衆)와 재가자인 우바새·우바이(七衆)로 구성되어 있는데 승가에 입단하는 자는 계율에 의해서 20세가 되면서 구족계를 받고 그로부터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비구는 장로(10), 비구니는 장로니(12)가 되어 제자를 가르칠 자격을 얻는다. 구족계를 받기 이전에는 사미, 사미니라 하는데 특히 사미니는 불음(佛淫)·불도(不盜)·불망어(不妄語)·불비시식(不非時食) 등 육법을 닦도록 되어 있는데 구족계를 받기 전까지를 식차마나라고 한다.

교육시설로서의 정사의 시원은 불타가 왕사성에 머물고 있을 때까지도 비구들의 좌와처가 정해져 있지 않았었는데 그때 그 성의 장자가 승원 및 강당으로 구성된 정사를 건립하여 헌납한 것에서 찾는다. 이렇게 구성된 승가에는 입단하는 절차가 있었다. 즉 출가, 혹은 진구(進具, 불타의 뜻에 가까워진다)가 그것이다. 입단을 원하는 자는 출가와 진구가 우선되어야 한다. 오비구는 최초의 승가입단자인데 그들은 불타의 이이변중도(離二邊中道)·팔성도(八聖道)·사제(四諦)·삼전십이행상(三轉十二行相)의 설에 교화되었다. 삼전십이행상이란 사제 각각에 시(示)·권(勸)·증(證)의 삼행상(三行相)이 있는데 이를 합하여 십이행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불타의 교화를 받아 입단하는 자들은 삼보(三寶)에 귀의함으로써 출가, 진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귀의 삼창은 후에 백사갈마법(白四0磨法)으로 대치되게 되는데 여기서 백은 백사(白事, 아뢴다), 사는 제4, 갈마는 작법, 또는 의식의 뜻이다. 어쨌든 입단의 절차를 거쳐 구족계를 수지한 비구가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스승의 자격을 얻는데 이를 화상이나 아사리라 하며 입단한 수학자는 화상에 대해서는 스승과 같이 사는 제자의 뜻으로서 saddhiviharin, 아사리에 대해서는 가까이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서 antevasin으로 불린다. 수학자는 무학(無學)의 오분향을 몸에 익힌 사람에게 시봉하는데 이는 교사로서의 자격을 말하는 것이다. 교사는 무학의 오분향을 익혀 그것을 타인에게 성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제관계와 상호의무에 있어서 대품에 의거해서 살펴보면 먼저 수학자가 스승에게 나아가 배움을 받을 때 울다라승(鬱多羅僧)으로서 편단우견우칠저지(偏꾄右肩右膝著地)하고 합장공경(合掌恭敬)하면서 "거룩한 스승이여 저의 스승이 되어 주시옵소서."라고 삼청(三請)하고 스승이 응답할 때 비로소 제자로 인정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사제지간이 형성되면 친자의 관계에 비유된다. 그리하여 법률 안에서 증장하고 광대해진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면은 브라마니즘의 스승과 범행자와의 관계와도 같아서 인도 고대 교육사상의 공통점이 된다. 율에는 교사와 학습자의 의무를 화상법(和尙法), 제자법(弟子法)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자는

화상에 대하여 일찍 일어나 신을 벗고 웃옷을 한쪽 어깨에 메고서 화상을 위하여 칫솔, 양칫물을 드리고 앉을 자리를 베풀어야 한다. 만약 죽이 있으면 그릇을 씻어서 죽을 드리고 스승이 죽을 다 잡수시고 나면 물을 드리고 그릇을 받아 깨어지지 않게 잘 씻어 보관한다. 화상이 자리에서 일어선 자리에 먼지가 있으면 소제해야 한다. 화상이 마을에 가고자 하면 하의(下衣)를 드리고 …….

등으로 바르게 복무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한편 교사인 스승은 제자를 교수하고 훈계하는 것을 본무(本務)로 한다. 교사는 제자에 대하여 바른 복무를 해야 한다. 바른 복무란 설시(說示)·질문(質問)·교수(敎授)·훈계(訓戒)에 의하여 제자를 섭수하고 애호하여야 한다는 등 여러 가지 규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사제간의 상호 의무는 서로 대등하여 지극히 민주적이다. 이렇게 규정된 상호 의무를 위배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칙이 있다. 즉 제자가 스승에 대한 복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오개조(五箇條, 특별한 애정과 신념, 慙愧心, 敬意, 修習이 없는 자)의 조건에 해당한 자를 빈출( 出)하여야 한다. 만약 이러한 제자를 빈출해 내지 않으면 그 스승도 죄가 있다.

사미의 교육을 살펴보면 애초에 불타는 학처를 정하고 비구 한 사람이 두 사람의 사미를 둘 수 없다고 했지만 후에 총명하고 재능 있는 비구는 두 사람의 사미에게 시봉하게 하거나 능히 교수하고 훈련할 수 있는 한도까지 둘 수 있도록 허락했다. 더불어 불타는 사미십학처를 정하고 학습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사미가 비구를 공경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는 등 오사(五事)에 해당하는 처벌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비구가 시물을 얻지 못하도록 꾀하거나, 비리를 당하도록 꾀하거나, 주처를 얻지 못하도록 꾀하거나, 비구와 비구 사이를 이간시키거나, 비구를 꾸짖고 비방할 때 등이다.

여자의 교육은 여자가 출가함으로써 비구니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였다. 소품에는 비구니들은 팔중법(八重法·八敬法·八不可越法·八存師法·八盡形壽不可過法)에 의해 비구니의 진구를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율장 경분별(經分別), 비구니분별, 일육육파일제법(一六六派逸提法)에는 20세 미만의 동녀는 진구할 수 없으며 그들이 진구하기 위해서는 2년간 육법을 학계(學戒)하고 나서 승가의 허가를 받을 때 수구(受具)하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식차마나계를 수지한 사미니가 구족계를 받고 12년이 지난 후에야 교사로서 자격이 주어졌다.

카스트교육에 있어서 불타는 카스트 제도하에서 중히 여기는 가계나 탄생 등에 대하여 중시하지 않고 행위에 중점을 두었다. 그렇다고 기존 질서에 대한 반사회적 개혁가는 아니었다. 불타는 사회로부터의 초월을 도모했던 것이다. 불교교단은 일미평등의 대해에 비유되었다. 사실 불타의 제자 중 우바리는 천민 계급인 이발사였다. 불타의 교단은 세속적인 제도에 의한 입단의 자격을 제한하지 않았던 것이다.

3) 那爛陀寺의 敎育思想

나란타사의 교육사상을 알아보는 데 있어서 연혁과 규모, 조직, 승도(僧徒)의 현황, 교과목 및 교육방법 등을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겠다.

현장(玄 , 600∼664)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 권9에는 나란타승가람이라고 되어 있고 의정(義淨, 634∼713)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 권상에는 나란타로 건너갔던 7세기 경의 인도는 불교를 비롯하여 당시 인도에 있던 여러 학문들을 포함하여 교육했다.

나란타사의 연혁을 살펴보면 가람의 남쪽에 못이 있고 그 못에 나란타라고 하는 용이 있어서 그곳을 나란타라고 이름하였다고 하며 옛날 여래가 보살행을 닦을 때에 대국의 왕이 되어 그곳에 도읍을 정하고 중생을 가엾게 여겼기 때문에 그 덕을 찬미하여 시무염(施無厭)이라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란타의 가람이 건립된 것은 불타 입멸 후 선왕녕(先王寧) 제일(帝日)이 남방에다, 그의 아들 각호가 동방에다, 유일왕이 동북방에, 유일왕의 아들인 금강이 서방에 각각 가람을 세웠다고 한다.

나란타사는 나이가 가장 많은 상좌를 존주(尊主)로 삼아 모든 문의 자물쇠를 관리하도록 했으며 달리 외부인을 두지 않았다. 다만 수위(守衛)를 두어 절안과 화승자사(和僧自事)를 전장(典掌)하게 하였는데 이를 호사(護寺)라 한다. 그리고 절안에 어떤 일이 있을 때 종같은 것을 쳐서 알리는 건추(健椎), 대중의 식사를 감독하는 유나(維那) 등의 소임이 있었으며 의사의 절차는 상좌로부터 석차에 따라 순차로 할당하였다. 또한 사원의 재정적 기초는 국왕의 기진(寄進)에 의하여 확립되어 있어서 승도는 안심하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국왕은 흠중하게 백여 개의 읍을 바쳐서 공양에 충당하였다. 읍은 이백 호인데 하루에 갱미(坑米) 우유 등 수백 석을 바쳤다. 이로 말미암아서 학인은 서공(瑞拱)해도 모자라는 것 없이…….

《대당서역기》 권9에 의하면 승도의 수는 수천이라고 되어 있고 그 중에서 덕이 높아 명성을 이역(異域)에까지 떨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나란타사에는 이역에서 유학 온 학승들도 많았다고 한다. 중국의 현장과 의정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나란타사의 교과목은 《삼장법사전》 권3에 의하면 "승도는 주객을 합하여 만인이나 되며 대승을 학습하고 18부를 겸해서 익혔다. 여기에는 속전, 베다 등의 서인명성명의방술수(書因明聲明醫方術數)에 이르기까지 닦고 익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절안의 강좌는 하루에 백여 개소이며 학도는 수습하느라 촌음을 아꼈다 한다. 이에 대하여는 《구법고승전(求法高僧傳)》, 《남해귀기내법전(南海歸寄內法典)》, 《삼장법사전(三藏法師傳)》 등이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교육방법은 원시불교 이래의 교육전통에 따라서 사자상승(師資相承)의 형식으로 교수되었는데 방법으로는 토론에 의한 방법이 성행하였다. 현장의 《대당서역기》 권9에 의하면 "학문의 나아감을 청하고 현(玄)을 말하는 것은 해가 저물어도 계속된다."고 하여 나란타사를 '담의(談議)의 문(門)'이라 했다. 여기에 입문하기 위에서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 했는데 중도 탈락자가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내용에 대해 《삼장법사전》 권3에도 언급하고 있는데 "덕이 있는 무리가 있는 곳은 자연히 엄숙하고 건립이래 70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 사람도 허물을 범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 덕육(德育)의 엄격함을 말하고 있다. 이 밖에 의정(義淨)의 《남해귀기전》 권2에서도 나란타사의 엄격한 계율의 법식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4) 禪과 敎育

일반적으로 교육학을 사회과학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종교로서의 선과 과학으로서의 교육을 어떻게 접근시키느냐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따라서 종교로서의 선이 일반적인 의미의 사회과학에 속하는 교육론은 아니지만 교육론을 끄집어내는 원천이 될 수 있음에 역점을 두고 그 작업을 행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선은 재가일반인들을 상대로 한 것이 아니고 출가자를 위한 인간형성의 길이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학습자의 주체가 되고 대다수의 일반인들을 위한 교육의 관계에 있어서의 선을 교육의 근원으로 삼는 것에 목적을 두고자 한다. 그러기 위하여 선에 있는 교육의 기능, 교육적 사회관, 선교육에 있는 문화의 의의, 교육적 인간교섭 등을 살펴보기로 한다.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인간이 된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타인의 주관적인 의도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교육에 의한 인간형성의 가능성의 문제는 선에서 더욱더 기본적인 과제로 논의 되어 왔다. 규봉 종밀(圭峯宗密, 780~841)은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서

선이란 천축(天竺)의 말로서 선나(禪那)라 한다. 중화에서는 번역( 譯)하여 사유수(思惟修)라 한다. 또한 정려(靜慮)라 하기도 한다. 이는 모두 정혜(定慧)의 통칭이다. 원이란 일체중생의 본각진성(本覺眞性)이다. 또한 불성이라고도 하며 심지(心地)라고도 한다. 이를 깨닫는 것을 혜라 하며 이를 닦는 것을 정이라 하고 정혜를 통칭하여 선나라 한다. 이 성이 바로 선의 본원이다.

라고 한다. 또한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寂)은 그의 어록인 《임제록(臨濟錄)》에서 "적육단상(赤肉團上)에 일무위진인(一無爲眞人)이 있어 항상 너희들 모두의 면문에서 출입한다."고 했다. 종밀(宗密)이 말하는 `본각진성 불성심지(本覺眞性佛性心地)'와 임제가 말하는 `일무위진인(一無爲眞人)' 모두가 인간의 본성에 대한 언급이다.

교육에 의한 인격형성은 도야(陶冶)의 원리와도 같은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선에서 주장하고 있는 실유불성과도 같은 것이다. 도(陶)는 점토를 빚어서 어떤 형상을 만드는 것이며, 야(冶)는 조철(組鐵)을 제련하여 강철로 제련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가도치성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작업이다. 그러므로 실유불성이라 하는 체인(體認)은 수증(修證)과 교육에서의 상호작용을 배재시키고서는 가능한 것이 아니다. 도원(道元)이 《정법안장》 '법성(法性)'의 권에서

혹은 경권(經卷)을 좇아서 혹은 지식을 좇아서 참학하면 무사독오(無師獨悟) 한다. 무사독오는 법성의 시위(施爲), 설령 생지(生知)라 하더라도 반드시 심사(尋師) 방도(訪道)하여야 한다. 어느 것이나 모두 생지(生知)가 아니겠는가?

대도는 여인음수냉난자지(如人飮水冷暖自知)의 도리는 아니다. 일체제불, 일체보살, 일체중생은 모두 생지(生知)의 힘으로써 일체법성의 대도를 밝히는 것이다. 경권이나 지식을 좇아서 법성의 대도를 밝히는 것을 스스로 법성을 밝히는 것이라 한다.

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견지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교육의 참 정의를 내릴 수 있다. 인간이 비록 생지했을지라도 이것을 그대로 방치한다면 참다운 인격형성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인간은 경권이나 지식을 좇는 교육적 주객의 교섭에 의해서 바람직한 인격형성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만이 인간이 된다고 하는 명제와 인간은 다른 사람의 주관에 의하여 쉽사리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는 명제의 모순은 해결된다. 실제로 인간은 교육에 의해서 인간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인간은 인간인 자기에 의한 자기형성을 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주장해야 할 자기조차 없는 곳에서, 사자상승(師資相承)마저도 몽땅 끊어진 자리에서 무사독오하는 것임을 본다. 이것이야말로 교육에서 추구해야 할 요소라고 생각한다.

인간을 교육함에 있어서 생활행동양식을 익히는 것은 중요한 교육의 계기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인간은 일정한 문화 속에서 형성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교육이 의도적이며 조직적으로 행하여지는 한 기존의 문화에서 무엇인가를 선택하거나 정리를 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의 양태를 볼 수 있는 것이 중국에서의 교상판석(敎相判釋)이다. 교상판석이란 스스로 의지해 서야 할 주요 경전을 기준으로 하여 그 경전이 설시하는 바를 최고의 신조로 하고 그것을 불타의 구극적 직설이라고 함으로써 여러 종파 중에 자기의 종파가 불교의 중심축이 됨을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불교의 교의 분석과 사상 강조를 체계화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불교에서는 여러 종파가 나타났으며 이것에 대한 유일한 비판이 선가에서 나왔다. 즉 '불립문자 교외별전'의 제창이 그것이다. 문자나 언구에 집착함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선은 바르게 불법을 배워서 행위화하여 인간의 진실에 파고 들어가야 하는 `학행불이(學行不二)'로 파굴되었을 때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물론

학인은 초발심시에 도심이 있거나 없거나 경론성교(經論聖敎) 등을 잘 보아야 한다. 나는 처음에 무상에서 겨우 도심을 일으키고 마침내 산문을 물러나 두루 제방을 찾아 도를 닦았는데 건인사(建仁寺)에 있을 때 정사(正師)를 만나지 못하고 선우(善友)가 없었기 때문에 미하여 사념을 일으켰다.

고 하는 도원의 말은 선에서 의도하고 있는 본질과는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의 본지는 번잡한 학구방법이 종교적 안심에는 방해가 된다는 위구(危懼)에서 엄한 금계가 되었던 것이지 교육계기의 매체가 되는 모든 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도원이 말하고 있듯이 모든 불조도 원래는 범부였었고 그에 따른 갖은 선악의 행이 있었지만 가르침에 따라 수습한 결과로 범부를 면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발달과정에 응한 교육적 가치를 말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형성의 계기에 필요한 전통문화에 대한 선의 입장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에 입각해 볼 때 모순된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 선도 결국은 당시의 사회문화 속에서 일정한 기틀을 가지고 형성되었고 더욱이 선에서 추구하는 그러한 사상이 결정코 문자나 언구를 배격한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우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어록이나 법어 등이 문헌으로 남겨져 있음은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따라서 선교육에 있어서 문화는 상호 보완적인 견지에서 습득되어 궁극적으로는 그것들로부터 초극하는 데 그 목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선과 문화의 상호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을 위해서는 먼저 학습자와 교수자 사이에는 어떠한 형태로든 상호 교섭이 전제되어야 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자연적 환경, 정신적 환경과의 교섭 모두를 포함하는 것이다.

교육적 현실은 항상 환경과의 상호 접촉관계에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교육이 의도적이고 형식적인 것에만 의존하는 것만은 아니고 무의도적이며 비형식적인 것과의 접촉도 인간형성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고 할 수 있다. 선에서 산천초목을 기연으로 해서 각성하는 경우가 바로 후자의 경우일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명을 다했을 때 결국 자연으로 친화하는 과정, 사대로 귀속되는 사상은 자연의 무의도적인 환경에 접촉되어 일어나는 각성인 것이다. 자연과의 접촉이라고 할 때 인간이 갖고있는 정신적 역량, 즉 인간은 문화의 영향을 받지만 그 문화를 창조하기도 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는 교육적 가치의 근원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인간과의 교섭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교육적 교섭은 일반적으로 명령지도, 설득, 감화 등의 유형으로 분류해서 살펴볼 수 있는데 선가에서 총림이나 승당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적 교섭도 예외는 아니다. 백장청규는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인 교육의 목적이 동화작용 내지 차대성원의 유형화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동화나 유형을 초극한, 즉 동화하면서 동화의 유형에 떨어지지 않는 행도가 선가에서 추구하는 교육적 인간교섭이다.

Ⅲ. 敎育課程內에서의 佛敎敎育

불타의 가르침에 입각한 교육목적은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인간의 계몽, 즉 득열반(得跡般)에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불성의 계발을 통하여 그러한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정화(淨土具現)에 있는 것이다. 이것을 위한 방법인 교육 내용으로 삼학(三學), 팔정도(八正道), 37조도품(三十七助道品)을 들 수 있다.

삼학을 통해서 열반의 이상경지에 도달하여 참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데 이것은 삼학을 배우는 과정 속에서 집착과 번뇌를 여의기 때문이다. 아울러 팔정도의 실천을 통해서 학행일치의 전인교육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 37조도품은 불교의 지고의 목적인 학(覺)을 실현하는 지혜를 얻기 위한 실천도로서 불교교육에서 가장 체계화되고 구체화된 것으로 사념처(四念處)·사선정(四禪定)·오근(五根)·오력(五力)·칠각지(七覺支)·팔정도의 행법이다. 이러한 수행체계는 곧 교육의 입장에서 교육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석존이 이러한 교육내용을 후학들에게 어떠한 방법으로 가르쳤는가 하는 문제는 교육의 목적 못지않게 중요한 교육과정 중의 하나이다. 즉 교육방법이 그것인데 석존은 신통으로 불신자로 하여금 그것을 보고 믿게 하는 신족교화법(神足敎化法), 언설로서 사성제·십이연기·삼법인·팔정도 등의 진리를 일체중생을 이치에 맞는 말씀으로 교화하는 언교교화법, 교화대상자에게 훈계와 교회로서 하는 훈회·교화법 등의 교화 방편법과 전의법·비유법·문답법·상호 설법 등의 수기설법을 들 수 있다. 불타의 현실에 입각해서 펼쳤던 교육목적, 교육내용, 교육방법은 오늘날 실천되지 못하고 있는 전인교육의 위대한 본보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래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성장기에 있는 아동이나 청소년에 대한 교육은 참으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석존이 설시한 교육목적인 해탈과 정토실현은 그들의 어깨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고에서는 아동과 청소년 불교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할 것이다.

1. 兒童期의 佛敎敎育(미술교육 중심)

일반적으로 아동이라 할 때 광의로는 신생아부터 사춘기 또는 청년기 전까지의 미성숙자를 말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6∼12세의 어린이를 말한다. 아동의 현대적 정의는 "심리학적으로는 6세부터 12∼13세까지를, 즉 초등학교 재학 및 그 전후 연령에 해당하는 자를 아동으로 가리킨다. 그러나 아동복지법에는 18세 미만의 자를 말한다."

불경에서는 아동이라는 용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동자(童子)·사미(沙彌)·영아( 兒)·영동( 童) 등이 있다. 동자 동녀는 원시경전 및 대·소승경전에 언급되어 있으며 범어로는 쿠마라(kumara)라고 하며 동자·동남·동아·동진 등으로 음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가장 불교적인 아동의 개념은 동자·동녀·영아·영동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근본개념에 대하여 혹업연기설에 근거한 윤회사상에 의하여 인간을 수태에서부터 파악한다. 이것은 태아를 정상적인 인격체로 보고 이때부터 업의 소유자, 즉 주체적인 능력을 스스로 갖추어 태어난다고 보는 것이다. 《포태경(胞胎經)》에서는

때에 왕사성에 장자의 딸이 있었는데 그 이름은 묘혜(妙慧)였다. 나이 겨우 8세로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낯빛이 고우며 모든 상호가 고루 갖추어져 있으므로 보는 사람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이는 일찍이 과거에 한량없는 부처님들을 가까이 모시면서 공양하여 여러 가지 선근을 심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은 어린아이의 전생 업에 따른 현생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우리는 전생의 업연에 따라 현생의 모습이 결정되는 것에 체념하는 운명론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발견한다. 대승불교는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고 있다. 불성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선행을 수습하면 해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을 동자로 화현시키는 경우가 많다. 지혜의 인격화로서의 문수보살, 문수사리법왕자, 문수사리동자, 문수동자 등으로 불리는 한편, 《대보적경》, 《묘법연화경》에서는 동녀가 보살로 표현되고 있다. 불교에서는 아동을 구도자의 모습으로 보았던 것이다.

중생 가운데 있으면서 중생상을 짓는 자는 중생상을 능히 없애지 못한 것이다. 만약 중생으로서 중생상을 깨뜨린다면 능히 대반열반을 얻는다. 이 대반열반을 얻는 연고로 울음과 곡을 멈추지 아니한다. 이름하여 영아행이라고 한다.

이상으로 볼 때 불교의 아동기를 수태에서 15세까지로 보고 있으며, 가지고 태어난 업을 수행을 통해서 불성을 발휘하여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시기로 파악한다.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아동의 교육을 이상국가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근세에는 문예부흥의 영향으로 인한 인문주의 사상의 함양으로서 아동교육을 하였으며 19세기에는 페스탈로치가 인간애에 의한 아동교육의 실천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으로서의 아동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20세기에 이르러서는 프로이트, 에릭슨, 피아제 등의 아동에 대한 연구활동에 의하여 아동교육 이론이 정립되고 현대심리학에 의해 아동을 무한한 가능성의 존재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로써 아동의 독자성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었다.

불교에서의 아동관은 위에서도 잠깐 살펴보았듯이 일차적으로는 보호하고 계도해야 할 존재이지만 원래 불성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스승과 바른 교육으로 성인을 거치지 않고 깨달음에 직입할 수 있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구법행각이나, 《열반경》 <성행품>의 설산동자, 《묘법연화경》에서의 선근복덕과 인연의 공덕을 짓는 사례를 열거하는 가운데 어린이가 장난으로 탑을 만들거나 나뭇가지나 손가락 등으로 불상을 그리고 성불한다는 내용, 그리고 불교사상 변천에서 언급되었던 원시불교의 《육방예경》에서의 시가라월동자(尸迦羅越童子)의 육방예경의 행을 실천하는 데 이 모든 동자는 불교의 아동관을 여실히 내보인다. 그러므로 불교의 아동관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불교에서는 아동의 성구별 없이 현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인간으로서 보살로 표상되고 있다. 이는 축소된 성인이 아닌 자아완성과 중생제도의 생활을 실천하는 구도자적인 존재로 파악되고 있다.

둘째, 아동의 장난이나 놀이는 미숙하고 철없는 짓이 아니라 이상적 인간의 형성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셋째, 아동의 순수한 마음은 최상의 마음 단계로 성인도 본받을 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넷째, 자리이타의 실천행을 쌓으려는 수행자가 아동을 지도하기 위해서는 교사, 즉 수행자 자신이 보살로서 아동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관점을 보이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아동을 지도하려는 교사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위치가 아니라 스스로 아동의 세계에 들어가서 아동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점은 현대교육에도 중요한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본다.

한 마디로 불교의 아동관은 구도자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아동관이 위와 같다는 견지에서 볼 때 일반적인 불교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 전미개오(轉迷改悟), 지악수선(止惡修善)에 있고 아동교육의 목적은 불성을 충분히 발현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활동과 사회생활에 직접 참여, 그리고 지정의(知情意)가 전체적으로 조화되는 원만한 인격형성을 통한 사회화에 있다고 본다. 이를 김동화(金東華) 박사는 개인적으로는 인격완성이요, 나아가서는 지상에서의 불국토 건설이라고 말한다. 이렇듯 아동에 대한 교육은 대승적 사상으로 확대되어 있다. 이러한 면은 교육내용인 삼학, 사념처, 사정단, 사신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로 구성된 삼십칠조도품, 육바라밀 등에서 더욱 첨예화된다.

이러한 불교적 사상에 입각한 아동의 불교교육을 정인자(鄭仁子)는 미술교육을 통한 검증을 보이고 있다. 그는 아동미술교육과 아동의 정서관계를 살펴보는 데 있어서 먼저 아동미술의 정서발달, 환경에 의한 미술표현, 아동미술의 심리적 표현, 청소년기에 미치는 정서적 영향을 파악하고 종교적 교육사상이 아동정서에 미치는 영향 및 그것의 분석, 발전방향 등을 모색해 놓고 있다.

미술교육은 조형활동을 통하여 "미술을 통한 교육으로 현대교육이 목표하는 인간형성에 이바지하는 일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동의 정서발달과 미적 인간 형성은 미술교육의 조형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창의성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실시되는 미술교육의 파지는 아동의 발달단계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하버트리트는 1942년 <예술과 교육>에서 버트의 구분(1922)을 인용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 휘젓거리는 시대(2∼5)

2. 선묘(線描)시대(5∼6)

3. 묘사적 상징주의시대(7∼8)

4. 묘사적 사실주의시대(9∼10)

5. 시각적 사실주의(11∼12)

7. 예술적 부활시대(청년기 15세 이후)

인간의 성장은 각기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대체적으로 육체적인 외형보다는 정신적인 내형의 범위를 중요시한다. 그리고 심리적 표현으로서 발달단계를 로웬필드는 난화기, 전도식기, 도식기, 여명기, 의사실기, 사춘기 등의 6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이르러서는 소년과 소녀의 성격, 정서, 사고력을 각기 개성적으로 명백히 드러내며 미적 발달로 가장 예술적인 작품과 창의성에 기대할 수 있는 시기다.

한편 환경에 의한 아동미술 표현은 자연적, 사회적, 문화적 관계에 입각해서 고찰되어진다. 예를 든다면, 산 속에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것을 6세 아동이 그린 그림같은 경우는 사회적 환경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는 경우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아동이 8년간 생활하다가 한국에 온 아동의 그림에 침엽수의 크리스마스트리 형태인 나무, 인디언의 모습, 미국사회의 기계문명에 의한 로봇형의 그림과 한국에서 미술교육 과정을 2년 거친 후 표현된 그림에서 활엽수의 둥글고 원만한 나무 형태를 우리 주변의 사물에 대해 부드러운 감성으로 표현한 그림은 자연적 환경을 설명할 수 있는 경우이다.

또한 문화의 영향을 보면 근래에는 매스미디어 보급으로 도시와 농촌간의 차이가 별로 없지만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은 아동의 그림은 부처님과 공양, 자비를 나타낸 보시정신을 엿볼 수 있었으며 기독교 영향을 받은 아동의 그림은 이스라엘의 성경에 의한 십자가의 예수, 희생적인 정신을 묘사하고 있다. 문화적 환경 가운데 종교적 요소는 아동에게 새로운 정서 교육의 기초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아동의 정서적 발달과정에서 습득, 교화되어 온 환경요인들은 청소년기의 정서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청소년기의 정서는 아동 초기부터 예술지도를 합리적으로 미와 조화되도록 아동에게 교육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미적으로 치우치지 않는 조화와 사회참여 및 협력관계를 갖게 해야 한다. 즉 문화적 환경요인에 의한 정서성과 청소년이 갖고 있는 창의성으로 사회참여를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서적 창의성은 청소년 장래에 '나와 세계' 관계의 소통수단으로 동원되어 가능한 보다 넓은 사회 참여가 이루어지게 한다. 이처럼 예술과 종교는 정신적, 문화적 활동에 대한 표현이며, 사회와 미술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위에서 불교미술이 아동에게 다양한 사고의 표출로 나타났음을 확인해 보았다.

불교미술은 회화와 조형으로 크게 나누며 회화는 탱화(幢畵), 불화(佛畵) 등이 있고 조형에는 불상과 탑 등이 있다. 불교미술이 아동에게 미치는 영향은 문화의 인식과 인격완성, 이상세계 구현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불상의 자비로운 상호는 붓다의 깨달음과 신라의 천년문화를 읽을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태어난 문화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더불어 아동을 보살의 화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아동의 무한한 가능성과 독자성을 지닌 존엄스러운 존재임을 자각하게 하여 인격완성과 이상세계 구현을 위한 정서적 발달을 유도하는 것이다.

불교기의 오색에서 청색은 마음을 흐트리지 않고 부처님의 법을 구하는 정근을, 황색은 찬란한 부처님 모습의 빛과 같이 변하지 않은 굳은 마음을, 적색은 항상 쉬지 않고 수행에 힘쓰는 정진을, 백색은 깨끗한 마음으로 온갖 번뇌를 밝히는 청정을, 주황색은 수치스러움과 그릇된 길로의 꾀임에서 잘 견디어 이기는 인욕을 상징한다. 법륜은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중생들을 깨우치기 위해 수레바퀴와 같이 부단히 구른다는 뜻이다. 이 법륜이 만다라적인 원형을 가지고 있어서 불교미술을 통해 불교의 구도성을 아동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연꽃은 진흙 속에서도 더러움에 물들지 않은 성스러운 불교 꽃으로서, 아동으로 하여금 어떠한 환경에 처해 있어도 연꽃같이 깨끗한 진리와 지혜를 배우게 하는 동시에 연꽃이 갖는 깨끗한 진리를 깨우치게 한다. 이렇게 아동에게 미치는 불교미술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정인자(鄭仁子)는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1. 아동의 학부모에게 불교적 아동미술교육이 정서적으로 청소년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해 자아실현의 인격형성에 도움이 되는지 이해시킨다.

2. 아동의 학부모에게 불교의 전통문화를 계몽시켜 한국의 문화예술을 가정으로부터 이해하도록 한다.

3. 아동미술교육 발달 단계에 불교의 아동교육사상에 의한 정서교육을 함양시킨다.

① 난화기―만다라적인 표현을 인물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표현하게 한다.

② 전도식기―감정과 그리려는 느낌을 자유롭게 표현시켜 아동의 욕구를 만족케 한다.

③ 도식기― 만다라에서 발달된 인물중심과 자연대상물을 표현하여 조화로운 사회성, 자연과 인간의 공존성을 깨우치게 한다.

④ 여명기―아동의 심리에 의한 개성적 표현을 석존의 교화사상으로 정서발달을 도와준다.

⑤ 의사실기―불교미술의 이해를 돕고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예술성을 계발시킨다.

⑥사춘기―아동에게 창조적 예술의 극치를 이루게 하여 자연, 사회, 문화를 이해시켜 건전한 사회인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불교미술의 교육원리는 결손 가정의 아동들에게 불교적인 사상으로 더욱 심도 있게 진행된다. 즉 심리적 극단적으로 표현된 그림을 훈계하기보다는 팔상도(八像圖), 보살상(菩薩像)을 이해시켜 원만한 표현으로 유도하며 아동의 정서불안과 사회성 결핍에 따른 사고를 불교의 보살상을 이해시킴으로써 마음의 수행과 사회성을 키워주고, 한국불교의 전통미술문화를 이해시켜 아동의 존엄성을 인식하게 해야 한다. 여기에서 불교적 교육사상에 의한 아동미술의 나아갈 방향이 정해진다.

첫째, 아동은 자신이 잠재 능력적인 불성으로서 충분히 조형표현을 할 수 있는 자아실현의 활동을 해야 한다.

둘째, 아동은 불교미술을 통하여 민족문화를 배우고 경험하여 일반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문화계승의 긍지)

셋째, 아동은 불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성인이 존중하여야 하며 불교적 가치관에 의해 지·정·의(知情意)의 인격형성으로 원만한 사회, 이상적인 사회를 실현한다.(전인교육에 의한 불성발현으로 이상세계 지향)

위와 같은 방향으로의 진입은 위에서 언급한 불교교육 내용인 삼학·삼십칠보리분법·육바라밀 등에 의해서임은 두말 할 것도 없다.

Ⅳ. 宗立學校 佛敎敎育의 現況과 未來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국립학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 때의 태학(太學)이고 사학으로는 고구려 경당이 시효인데 근대교육은 1895년 이후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미션스쿨에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뒤를 이어 불교 종립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는데 1906년의 명진학교이다. 이렇게 시작된 종립학교는 1560여 개의 사립 중등학교 중 종교단체가 세운 학교가 350여 개며 이 중 종립학교는 초등학교 1개, 중학교 13개, 고등학교 13개, 대학교(전문대학 포함) 3개로 총 30여 개이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제도하에서는 종립학교에서의 종교교육이 어려웠다. 1969년 부터 실시된 무시험 제도와 1974년부터 시행된 고등학교 입학추첨제, 그리고 1980년부터 시행된 대학입시에 반영하게 된 내신성적 등이 사학 교육의 독자성과 자유성 및 다양성을 배제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후 1988년부터 종교학을 고등학교에서 교양 선택으로 지정하여 1990년도부터 정식 교과과정으로 교육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동안 편법으로 실시해 오던 종교교육을 교양 선택과목으로 교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한 1996년부터 실시된 제6차 교육과정 개편과 관련하여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포용에 역점을 둔 중·고등학교의 종교 교과서의 편찬목차와 내용지침이 시달되었다. 기존의 비제도권 내에서만이 가능했던 종교교육(불교교육)이 제도권 안에서 실시되게 된 것이다.

불교종립학교 건학이념은 불교정신인 지혜와 자비에 근거한 인간의 자기 완성과 불국정토의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인간을 양성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에 따라 불교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초·중등 종립학교 27개교는 은석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모든 학교에서 정규수업 시간에 불교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에 따라서 교학시간, 종교시간, 불교시간 등으로 불리고 있는 이 과목은 교법사가 담당하여 교실 또는 교내 법당을 이용하여 주 1시간씩 실시하고 있으며 생활기록부에는 단위와 이수 여부만 기록하고 평가는 내신성적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우리 나라에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교육이념은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완성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구유하게 하여 민주국가 발전에 봉사하며 인류공영의 이상실현에 기여하게 함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교육이념은 국가와 사회를 위한 수단으로 교육이 이용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즉 오늘날의 중등학교는 대학으로 가는 중간과정으로 밖에 인식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된 교육이념에 대해 불교종립학교의 교육이념은 교육 그 자체에 대한 목적을 벗어나 불교사상을 실현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국학원의 설립목적을 보면

한국불교의 정통 대한불교조계종 종립 동국학원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에 입각하여 불교적 인격도야를 통한 고등교육, 중등교육, 초등교육,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조국의 자주독립과 진리탐구의 선구로서 자리(自利)와 이타(利他)를 하나로 하는 보살정신을 세계에 구현함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교육의 일선에서 종립학교의 불교적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서는 교육이념의 분명한 이해와 함께 불교이념의 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처럼 불교교육이념은 일반학교의 이념과 대립하거나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반학교 교육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완성하는 입장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교육에 있어서는 일반교육의 이념에 입각해서 교육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의 무시험제도와 고교 평준화에 의한 학생의 비자발적인 학교의 선택 등은 사학의 자율성을 저해하고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따라서 다가치 사회 속에서 실시되는 종립학교의 불교교육에 대한 대안이 새롭게 정립되어야 함을 시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불교종립학교의 현 상황과 제6차 교육과정의 교과서 성격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과서 내용 영역체계

1. 인간과 종교 생활주변의 종교들 / 종교의 신념과 이해

궁극적 가치와의 만남 / 종교적 인격형성

2. 세계문화와 종교 유교의 전통과 사상 / 불교의 전통과 사상

도교의 전통과 사상 / 크리스트교의 전통과 사상

이슬람교의 전통과 사상 / 힌두교의 전통과 사상

그 밖의 종교와 사상

3. 한국문화와 종교 전통적인 민간신앙 / 유·불·도교의 수용

크리스트교와 이슬람교의 수용 / 한국의 민족종교

4. 종교경험의 이해 신앙의 여러 관점 / 종교의식과 종교적 실천

종교적 공동 생활

5. 현대사회와 종교 성스러운 문헌들의 현대적 의미

종교와 세속문화와의 만남

다른 종교들간의 대화 / 종교와 사회의 이상실현

6. 특정종교의 교리와 역사 종교의 경전 / 종교의 교리

종교의 역사 / 일상생활 속에서의 종교적 생활

종교와 내일의 한국 문화

우리 사회는 다종교 속에서 야기된 다가치로 인한 가치혼돈의 문제, 종교간의 갈등이 야기되고 있다. 불교, 기독교, 세계종교가 거의 동등한 세력을 가지고 있고 민족종교까지 혼재해 있음에도 그 어느 것 하나도 우리의 문화를 대표하는 자리에 있지 못하는, 팽창주의의 각축전이 벌이는 가치지향적 성격으로 타종교와의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이다.

사실 종립학교는 사립학교임에도 불구하고 학생 선발권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다양한 종교를 가진 학생들로 구성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불교 수업시간이 모든 학생에게 긍정적으로 인지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이다. 1996년의 교육개정에는 교파적 종교교육을 지양하고 종교 일반교육을 종용하고 있다. 그런데 불교이념으로 건립된 학교 입장에서는 다종교 상황 속에서 불교이념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기회균등과 고려 대상의 균등, 결과의 균등 모두를 고려하는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이런 기본 철학은 종립학교의 종교교육을 타 교과와 동등하게 인정해 주는 것 등으로 그 입장을 대변하게 되었다.

교육부에서 정한 종교교과의 성격은 첫째, 종교적인 문제를 종교적 관심에서 접근한다. 삶의 궁극적인 물음과 이해라는 종교적 관심 자체의 의의를 중시하고 그에 대한 체계적인 통찰력을 제시함을 기본성격으로 한다. 둘째, 교파적 종교교육을 자양하여 모든 고등학생을 위한 교육이 되게 한다. 개별종교의 참된 의미와 더불어 보편적 종교에 대한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지식을 창조적으로 조화하여 비종립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등학생의 올바른 종교관을 진작시키기 위한 교양과목이 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편성과 특수성을 동시에 추구하다 보니 종교사의 학습사, 세계사와 연결되고 종교윤리 측면은 윤리교과와 연결되어 비슷한 교과서가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교육부의 제6차 교육과정의 중·고등학교 종교교육과정 개정안에는 교과의 성격과 목표에 대한 것 외에 내용, 방법, 평가 등에 대해 다루면서 특히 내용에 있어서는 상당히 자세한 부분까지 다루고 있다. 여기서 특정종교에 대한 교과서 편성에서 교리내용을 현실과 관련지어야 하고 불교적 삶의 가치관을 형성하도록 도와야 하며 정신적 차원이 아닌 신행생활 위주로 행동적 언어로 구성되어야 하며 그리고 신앙적 덕목과 윤리덕목이 구분되지 않아야 한다. 즉 종교윤리에 일반 윤리가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의 체계화나 학습상의 논리적 서술에 그치지 말고 학습자 스스로 자주적으로 탐구하고 연구하며 활동할 수 있는 학습자료이면서 학습의 길잡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과서 개발 문제는 학교 및 종단 관련 단체와 그에 관련된 기구들의 상호 협동 체계하에서 행해져야 할 것이다.

結 語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정의는 '깨달은 사람에 의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이다.

본고에서는 불교사상에 입각한 교육의 실천을 유도하는 방향에 입각해서 종교와 교육의 상관관계를 조명해 보기 위하여 불교의 교육사상을 시대별, 장소별로 살펴보고 그것이 현행교육의 현장에 접목되었을 때 미치는 영향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아울러 불교교육의 현안점으로서 종립학교의 불교교육의 문제를 파악해 보고 불교교육의 미래를 진단해 보았다.

인간의 삶 가운데서 가장 직접적으로 저마다에게 내·외적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회일 것이다.

사회는 일정한 위치나 자세를 각 개인에게 요구하거나 강요하기도 한다. 더불어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연적인 윤리, 도덕, 규칙, 법 등의 이름으로 서로를 위한 자기 양보가 바탕되지 않으면 그 사회조직은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러한 원칙들이 쉽게 발휘될 수 있도록 보조한다. 물론 교육의 정의나 목적이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므로 한 마디로 말한다는 것은 큰 오류일 것이다. 그러나 붓다는 인간의 본성에 내재한 불성을 중시하였고 그것에 입각한 중생 계도를 실천하였다. 그렇다면 교육의 무한한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더라도 인간에 대한 교육실천의 원리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행해져야 할 것임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기독교의 교육사상이 사랑과 봉사정신에 입각한 것이라는 점에서는 바람직한 교육의 실천이념으로 손색이 없겠지만 어차피 교육이라고 하는 것이 사회·문화·정치 등 모든 것과의 연계 속에서 행해지는 것임을 볼 때 우리의 전통문화라 할 수 있는 토속신앙에 대한 극단적인 태도는 교육을 받는 아동으로 하여금 전통문화의 단절과 그것으로부터 파생될 질서윤리의 상실, 그리고 배타적인 사고가 함양될 수도 있다는 염려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옛날 불교가 우리 나라에 유입되면서 한국의 문화를 토대로 깊이 뿌리내린 불교사상에 의한 교육은 매우 가치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깨달은 사람에 의한 깨달음으로 이끄는 가르침의 불교가 오늘날 전인교육을 지향하고 있는 교육에 미칠 영향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실유불성사상에 입각한 대기교화 정신이다. 수천 년 전에 펴 보인 붓다의 교육관이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되고 긍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인간의 본질에 대한 절대적인 규명이 앞섰기 때문이다. 인간을 기능적이고 부분적인 존재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절대적인 인간애에 바탕을 둔 거시적인 판단이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심각한 경제난으로 인하여 수많은 사회문제 속에 놓여 있다. 국가 경제난이 물질주의에 길들여진 사람들의 의식 속에 견디기 어려운 시련으로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한 묘안을 제시해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절대적인 대응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교육을 통한 의식 계몽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의 정신적 바탕은 바로 불교사상에 의한 종교교육일 것이다. 원만한 융섭의 정신으로 행해지는 교육, 즉 불교사상에 입각한 교육이 범국민적으로 행해진다면 적어도 청소년의 집단자살, 골육상잔의 비극, 사기, 도박, 인신매매, 마약 등의 어두운 사회문제는 줄어들 것이다. 교육에 있어서 불교의 가치는 이러한 면에서 소중히 다뤄져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추후에 선사상에서 엿보여지는 교육사상의 발굴과 그것의 현실화를 과제로 남기는 바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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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과학의 물질관 비교

유 방

Ⅰ. 序論

Ⅱ. 佛敎의 物質觀

1. 物質觀

2. 物質의 單位

Ⅲ. 科學의 物質觀

1. 原子論

2. 分子

Ⅳ. 佛敎와 科學의 物質觀 比較

Ⅴ. 佛敎의 時間과 宇宙觀

1. 數와 時間觀

2. 世界와 宇宙觀

Ⅵ. 結論

불교와 과학의 물질관 비교

Ⅰ. 序論

과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전적인 의미에서 본다면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혹은 철학 이외의 학문의 총칭이나 자연과학'을 말한다. 즉 과학이란 인간의 눈에 비친 가장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을 발견하기 위한 지식 체계이며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학이 종교의 진리와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현대는 과학의 시대라고 한다. 또한 기계문명의 시대라고도 한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의 행위에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피해도 주었다. 그러나 피해보다는 도움을 더 많이 주어 세상은 발전되어 왔다. 과학의 법칙들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문명의 발전의 속도가 느렸으나, 과학의 법칙들이 발견되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생활은 변화의 물결에 휩싸여 갔다.

신을 믿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이제 신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종교의 역할도 줄어든 것처럼 보인다. 즉 종교의 자리를 과학이 대신함으로써 종교는 한계에 이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종교의 역할이 과학에 뒤진다 하더라도 종교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려고 한다. 즉 과학의 발달이 결코 인간 정신을 침범하여 그것을 무너뜨리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불교의 사상은 현대의 서구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리며, 이는 과학이 불교 사상에 합치되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과학의 발달이 곧 기계문명의 발달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거의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등식 관계만을 가지고 본다면 전혀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될지도 모른다. 즉 세상의 모든 법칙이 곧 기계문명에 의해 지배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날의 자연 환경을 본다면, 이미 기계문명에 의해 파괴된 것은 인간의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과학을 맹신하고 있는가? 많은 과학자는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사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을 맹신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능력을 알지 못하고 미리 겁부터 먹고 피하는 것과 같다.

이 논문에서는 과학의 여러 분야 가운데에서 물질관에 중점을 둘 것이다. 그리고 역량이 된다면 세계관도 아울러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현대 물리학에서 물질의 단위를 어느 정도로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불교에서 물질의 단위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를 알아보며 상호간의 단위를 비교함으로써 현대 과학과 불교의 진리(법칙)가 어느 정도 일치되는가에 중점을 둘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필자는 여러 가지 문헌을 통해서 비교해 갈 것이다. 단위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 역량이 되는 한 서로의 크기를 비교하고 개념도 정리해 보고자 한다.

Ⅱ. 佛敎의 物質觀

1. 物質觀

불교에서는 몸을 나타내거나 어떤 물질을 나타낼 때 모두 사대(四大)로부터 출생하는 것이므로 사대는 물질의 바탕이 된다고 한다. 즉 《아비달마품유족론(阿臻達磨品類足論)》에서는

色云何 謂諸所有色 一切四大種 及四大種所造色 四大種者 謂地界水界火界風界 所造色者 謂眼根耳根鼻根舌根身根色聲香味 所觸一分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여기에 따르면 물질은 일체의 사대종(四大種)에 의하여 만들어지며, 사대종이란 것은 지(地)·수(水)·화(火)·풍(風)의 사계(四界)로서 오근(五根)과 오경(五境)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물질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대의 성질을 설명하고 있는데,

地界云何 謂堅性 水界云何 謂濕性 火界云何 謂煖性 風界云何 謂詛等動性 眼根云何 謂眼識所依淨色 耳根云何 謂耳識所依淨色 鼻根云何 謂鼻識所依淨色 舌根云何 謂舌識所依淨色 身根云何 謂身識所依淨色

라고 하여 지계(地界)는 견고한 성질을 말하며, 수계(水界)는 습기(濕氣)의 성질을 말하고, 화계(火界)는 온난한 성질을 말하며, 풍계(風界)는 경(詛) 등의 동성(動性)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물질에 사대의 성질이 없으면 물질 자체가 구성되지 못하고 분산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비바사론(臻婆沙論)》에서는 사대의 성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問:어떻게 이 사대종이 항상 서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는가.

答:자상의 작업이 일체의 취집물 가운데서 모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견성의 취집 가운데 지계의 자상이 나타남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 의가 잘 이루어져 있게 된다. 이러한 물질의 취집 가운데서 만약 수계가 없다고 한다면 금은석 등이 녹는 것을 못하고 또 금은석 등은 분산되어 버린다. 또 만약 화계가 없다고 한다면 석등이 서로 격돌할 때 불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며 물체가 능히 성숙하지 못하고 결국 부패하고 말 것이다. 그리고 만약 풍계가 없으면 물질에 동요도 없게 되며 증장할 수 없게 된다.

습성의 취집 가운데 수계의 자상이 나타남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 의가 잘 이루어져 있게 된다. 이러한 습성의 집합으로 물질의 취집 가운데서 만약 지대가 없다고 한다면 엄하게 냉한할 때 얼음이 얼지 못하고 배 등이 뜨지 못하게 된다. 또 만약 화계가 없다고 한다면 따뜻한 기운이 없게 되며 물이 부패하고 만다. 그리고 습성의 취집 가운데 만약 풍계가 없으면 물질에 동요도 없게 되며 증장할 수 없게 된다.

난성의 취집 가운데 화계의 자상이 나타남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 의가 잘 이루어져 있게 된다. 이러한 난성의 취집 가운데 만약 지계가 없으면 등촉등의 불꽃이 회전하지 못하게 되고 물체를 지속시킬 수 없다. 수계가 없다고 한다면 화류가 불가능하게 되고 화염이 취집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만약 풍계가 없으면 물질에 동요도 없게 되며 증장할 수 없게 된다.

물질의 동요가 취집한 가운데 풍계의 자상이 나타남을 얻을 수 있으므로 그 의가 잘 이루어져 있게 된다. 이러한 동요의 취집 가운데서 만약 지계가 없다고 한다면 담장을 접촉하는 장애를 절회하지 못하며 물체를 지속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수계가 없다고 한다면 냉풍도 없어지고 동집은 자연히 분산되어 버릴 것이다. 또 만약 화계가 없다고 한다면 난풍이 없어지고 동의 집합은 부패하고 말 것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으며, 각각의 대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다. 즉 이것은 각각의 사대에 해당되는 특징과 연관성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대의 특성은 인과 연이 구별되지 않고 동시에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되어지며, 지·수·화·풍은 존재를 하게 하는 가장 중요한 성질이다. 그것이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존재가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곧 공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또 《아비달마순정리론(阿臻達磨順正理論)》에 따르면,

모든 유정(有情)의 근본사(根本事) 가운데 사대종(四大種)은 수승(殊勝)한 작용이 있으며 이러한 작용에 의하여 식(識)과 공(空)과 함께 함을 건립하고 유정의 근본이 되기도 하기 때문에 대(大)라고 이름한다. 또 광혹( 惑)한 우부(愚夫)의 사건 가운데서 이 사대가 가장 수승하기 때문에 대라고 이름하며 널리 일체 색법(色法)의 의지처(依止處, 所依)가 되기 때문에 대라 하고 광(廣)이라고도 한다.

라고 설명하고 있다. 즉 사대는 모든 유정의 근본사 가운데 수승한 작용이 있고, 이러한 작용에 의하여 유정의 근본이 되며, 일체 색법의 의지처가 되기 때문에 대(大)라고 한다는 것이다.

《비바사론》과 《구사론》 등에 의하면, 이러한 바탕에서 인연을 만나면 극미(極微)·미진(微塵)·동진(銅塵)·수진(水塵)·토모진(兎毛塵)·양모진(羊毛塵)·우모진(牛毛塵)·향유진(向遊塵)·기( )·슬( )·광맥(禾廣麥)·지절(指節)·주( )·궁(弓)·구로사(俱盧舍)·유선나(踰繕那) 등 물질의 세계를 조성한다고 한다.

2. 物質의 單位

극미는 물질 가운데 최소 단위를 말하는 것으로, 《비바사론(臻婆沙論)》에 의하면 극미는 모든 물체 가운데서 가장 미세한 물체라는 뜻에서 미세색(微細色)이라고도 이름한다. 《비바사론》 권 제136에 나와 있는 예문을 보면,

극미(極微)는 가장 미세한 물질[色]이므로 가히 단절할 수도 없고 파괴할 수도 없으며 관아(貫芽)할 수도 없다. 그리고 가히 취사(取捨)하거나 승리(乘履)하며 박체(搏 )할 수도 없다. 그리고 극미(極微)는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으며 모나지도 않고 둥글지도 않으며 바르지도 않고 바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리고 높고 낮은 것도 아니며 더욱 미세하게 할 수도 없고 분석할 수도 없으며 가히 볼 수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후상(嗅嘗)할 수 없고 마촉(摩觸)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극미를 가장 미세한 물질[細色]이라고 한다.

極微是最細色 不可斷截破壞貫芽 不可取捨乘履搏 非長非短 非方非圓 非正不正 非高非下 無有細分不可分析 不可覩見 不可聽聞 不可嗅嘗 不可摩觸 故說極微 是最細色.

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기록에 의하여 극미가 가장 작은 물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히 만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으며, 더 이상 분석할 수도 없는 물질을 극미라고 한다. 이에 대해 세친(世親)도 《구사론(俱舍論)》에서

논하건대, 모든 물질을 분석하면 하나의 작은 분자[一極微]에 이르나니, 그러므로 한 작은 분자가 물질의 가장 작은 것이 된다. 그와 같이 모든 이름과 시간을 분석하면 한 글자와 찰나에 이르나니 그것이 이름과 시간의 가장 작은 것이 된다. 한 글자의 이름은 구(북)라는 이름을 말함과 같다. 또 일찰나(一刹那)의 양은 뭇 인연으로 화합된 법이 그 자체를 얻는 순간이며 혹은 움직이는 법이 진행하고 있는 도수의 한 가장 작은 분자이다. 힘이 센 사람이 빨리 한번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이 육십오찰나가 된다고 하니, 그와 같은 것을 일찰나의 정도라고 말한다.

라고 말한 바와 같이 극미(極微)와 관련시켜 찰나(刹那)라는 시간을 설명하고 있다. 시간은 법에 의하여 정해진다는 말과 같이 극소의 물질인 극미에 의하여 극단의 시간인 찰나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색법(色法)과 시간은 불가 분리한 것으로서 이에 준하여 생각하면 불교적인 시간론도 가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질의 대소 단위를 나타내는 말은 《구사론》과 《비바사론》에 의하면,

論曰 極微爲初 指節爲後 應知後後皆七倍增 謂七極微爲一微量 積微至七爲一金塵 積七金塵爲水塵量 水塵積至七爲一兎毛塵 積七兎毛塵爲羊毛塵量 積羊毛塵七爲一牛毛塵 積七牛毛塵爲隙遊塵量 隙塵七爲 七 爲一 七 爲 麥 七麥爲指節 三節爲一指 世所極成 是故於頌中不別分別 二十四指橫布爲 竪積四 爲弓 謂尋 竪積五百弓爲一俱盧舍 一俱盧舍許是從村至 阿練若中間道量 說八俱盧舍爲一踰繕那 如是已說 踰繕那等 今當辯後年等量別.

極微是最細色 此七極微成一微塵 是眼眼識所取色中最微細者 此有三種眼見 一天眼 二轉輪王眼 三住後有菩薩眼 七微塵成一銅塵 有說 此七成一水塵 七銅塵成一水塵 有說 此七成一銅塵 七水塵成一兎毛塵 有說 七銅塵成一兎毛塵 七兎毛塵成一羊毛塵 七羊毛塵成一牛毛塵 七牛毛塵成一向遊塵 七向遊塵成一  七 成一 七 成一 麥 七禾廣麥成指一節 二十四節成一u四u爲一弓 去村五百弓 名阿練若處 從此己去名邊遠處 則五百弓成摩竭陀國一俱盧舍 成北方半俱盧舍 所以者何 摩竭陀國其地平正去村雖近而不聞聲 北方高下遠猶聲及 是故北方俱盧舍大 八俱盧舍成一踰繕那.

라고 하여 설명하고 있다. 《구사론(俱舍論)》과 《대비바사론(大臻婆沙論)》의 설명에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극미(極微)가 맨 처음이 되고 지절(指節)이 맨 나중이 되는데 뒤와 뒤의 모든 것이 칠 배로 증가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일곱 개의 극미가 하나의 미량이 되며 미량의 일곱이 하나의 금진(金塵, 銅塵)이 되며, 일곱의 금진이 하나의 수진(水塵)의 양이 되며, 그렇게 하여 일곱의 슬( )이 하나의 광맥(禾廣麥)이 되며 일곱의 광맥이 손가락 하나의 한마디가 된다. 그리고 스무네 개의 손마디는 일주(一 )가 되며 사주는 일궁이 된다. 또한 오백궁(五百弓)은 일구로사(一俱盧舍)가 되며, 팔구로사(八俱盧舍)는 일유선나(一踰繕那)가 된다.

1) 극미(極微)

극미는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더 이상 분쇄하거나 파괴할 수 없으며 버리거나 만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극미는 눈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며 만약 극미를 더 분쇄한다고 한다면 곧 공이 되어 버린다고 한다. 이와 같이 볼 때 극미는 공과 인접한 최소 단위를 말하며 이는 부처님과 보살의 혜안(慧眼)만이 관찰할 수 있는 단위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비바사론》에서는 묘음 존자와 아비달마 논사들의 말을 싣고 있다. 즉 묘음 존자는 "극미는 마땅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혜안의 경계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으며, 아비달마 논사는 "극미는 마땅히 볼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안과 천안으로는 능히 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두 가지 견해의 말은 결국 하나의 말로 풀이된다. 즉 육안과 천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지만 혜안으로는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체는 여러 인연이 집합한 것이기 때문에 변천하고 파괴되는 물체의 형상과는 달리 만약 극미가 파괴되면 공의 상태가 되어 버리고마는 물질 자체의 최소 단위이다. 그러나 극미가 존재할 때에는 7개의 극미가 취합하여 존재한다고 한다. 즉 어떤 일극미를 중심으로 사방상하의 육방에 6개의 극미가 위요(圍繞)하여 일단이 되어 있는 것이니, 이것을 육방 중심 칠극미라고 한다.

그렇다면 극미의 크기는 어느 정도가 될까? 매우 궁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의 크기의 단위로 환산한다는 것이 근사치에 가까울지 모르겠지만 일주를 기준으로 환산해 보기로 하겠다. 즉 일주는 1척 8촌이라는 근거로 환산해 보면 쉬우리라 생각한다. 오늘날의 단위가 1척이 약 30cm 정도 되니까 그것을 기준으로 하면 일주는 약 54cm가 된다. 따라서 역으로 환산하면 극미의 값이 나올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또 하나는 《불교학대사전》에서 제시한 일주가 18인치에 상당한다고 하는 설을 참고하여 역으로 계산을 해 보면 어떠한 차이가 나는가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따라서 여기서는 두 개의 수치를 가지고 계산을 해 보고 그 값들을 비교해 보기로 한다.

일주의 단위가 1척 8촌이기 때문에 그것을 역으로 환산하면 1.13×10-11m가 나오고, 일주가 18인치라는 설을 근거로 환산하면 9.63×10-12m가 나온다. 즉 이 양자는 그 값이 비슷한 거리에 있는 것이다.

"此七極微 成一微塵 是眼眼識所取色中 最微細者 此三種眼見 一天眼 二轉輪王眼 三住後有菩薩眼."

2) 미진(微塵)

미진은 극미보다는 크지만 아직도 미세한 물질이므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없는 단위이다. 미진에 대한 또 다른 이름은 일미량이며 미진은 극미보다 7배가 큰 물체이다. 눈으로는 볼 수도 없고 오직 천안이나 전륜성왕안 보살안으로만 볼 수 있는 미세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청화 스님의 법어집 《원통불법의 요체》에는 이와는 상이한 설명을 하고 있다. 즉 대일경소일(大日經疏一)과 구사론광기(俱舍論光記) 그리고 승론(勝論)을 인용하여 금진이 되어야만 비로소 천안과 전륜성왕안과 불과를 득한 보살안에만 견득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도 각각의 설을 대입하면 7.965×10-11m와 6.74×10-11m가 나온다.

3) 동진(銅塵)

동진은 금진이라고도 칭하며 이는 미진보다 7배가 큰 물체이다. 이 금진(金塵)은 천안(天眼)과 윤왕안(輪王眼)과 불과(佛果)를 득한 보살안(菩薩眼)에만 견득(見得)할 수 있다. 금진 곧 일아뇩색(一阿 色)은 금중(金中)에서 왕래하여도 무장무애(無障無碍)하며 백사십의 사체공덕(事體功德)을 갖추고 있다. 또한 원상(圓常)하여 다시 생멸이 없고 공겁시(空劫時)에는 이산(離散)하여 공중에 부유(浮遊)하나 체법(體法)은 항유(恒有)하며 그 작용에 있어서 생멸 무상하다.

일주를 1척 8촌으로 환산한 값은 5.575×10-10m이며, 18인치로 환산한 값은 4.72×10-10m이다.

4) 수진(水塵)

수진은 금진보다 7배가 더 큰 물체를 말한다. 일주를 1척 8촌으로 환산한 값은 3.9×10-9m가 되고 18인치로 환산한 크기는 3.3×10-9m이다.

5) 토모진(兎毛塵)

토모진은 수진보다 7배가 더 큰 물체를 말한다. 역시 두 크기를 환산한 것은 2.73×10-8m와 2.31×10-8m로 나온다.

6) 양모진(羊毛塵)

양모진은 토모진보다 7배가 더 큰 물체를 말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물질의 크기는 1.91×10-7m와 1.61×10-7m로 나타난다.

7) 우모진(牛毛塵)

우모진은 양모진보다 7배가 더 큰 물체이다. 우모진의 크기는 일주를 1척 8촌으로 환산했을 때와 18인치로 환산했을 때의 차이가 거의 없다. 즉 1.33×10-6m와 1.13×10-6m로 나타나는 것이 약 0.2의 차이가 생긴다.

8) 향유진(向遊塵)

향유진은 극유진이라고도 하며 극유진은 틈 사이로 날아다니는 먼지만큼의 크기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극유진은 문틈 사이로 햇빛이 들 때 그 햇빛 속에서 날아다니는 먼지만큼의 크기를 말한다. 이 먼지는 만약 햇살이 없어지면 육안으로 볼 수 없을 만한 크기의 물체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일광중(日光中)에 부유하는 미진이라는 뜻에서 일광진(日光塵)이라고도 하며, 이는 우모진보다 7배가 더 큰 물체이다. 향유진의 크기는9.37×10-6m와 7.93×10-6m이다.

9) 기

기는 더러운 옷 속에 화생하는 서캐 만한 물체를 뜻하며 이를 기량이라고도 한다. 오형근 교수는 부파불교의 물질과 시간론에서 이 물질부터 우리의 육안으로 쉽게 볼 수 있는 분량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이것의 크기는 약 0.06mm로서 머리카락의 굵기와 비슷하다. 그리고 이 기량은 우모진보다 7배가 더 큰 물체이다. 기의 크기는 6.559×10-5m와 5.55×10-5m이다.

10) 슬( )

서캐라는 알에서 출생한 이를 비유한 것으로서 이만한 물체를 슬량이라고 칭한다. 이 슬량은 기량보다 7배가 더 큰 물체를 뜻한다. 슬의 크기는 4.59×10-4m와 3.88×10-4m이다.

11) 광맥(禾廣麥)

광맥은 논과 밭에서 자라난 벼와 보리만큼 큰 물체를 말한다. 이 광맥의 분량도 위에서 말한 슬량보다 7배가 더 큰 물체를 뜻한다. 광맥의 크기는 3.214×10-3m와 2.72×10-3m이다.

12) 일지절(一指節)

일지절은 손가락의 세 마디 가운데 한 마디의 크기를 말한다. 이른바 한 마디의 분량은 광맥의 분량보다 7배가 더 큰 분량이라고 한다. 즉 일지절의 크기는 2.25cm가 된다. 광맥의 크기를 환산하면 2.25×10-2m와 1.905×10-2m이다.

13) 일주(一 )

《불교의 물질과 시간론》에서는 일주를 손에서 팔꿈치까지의 길이를 말하며 동시에 이 팔꿈치까지의 물량을 의미한다고 하며, 《불교학대사전》에서는 18인치에 상당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일주는 24개의 손마디 만한 길이를 뜻하며 따라서 일주는 24개의 손마디 길이만큼의 물체를 의미한다. 일궁의 길이에 대하여 역으로 환산하면 일주의 길이는 약 54cm가 된다.

1척을 30cm로 계산하여 m로 환산한 경우는 0.54m가 나오며, 18인치를 m로 환산한 경우는 0.4572m가 나온다.

14) 일궁(一弓)

구사론에 의하면 일궁은 4주를 이어 놓은 길이를 뜻하며 동시에 일궁 만한 물체를 말한다. 이는 일주가 1척 8촌이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이를 합치면 7척 2촌 길이의 물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1척을 30cm로 할 경우에는 1척 8촌이면 약 54cm가 되고, 7척 2촌이면 약 2.16m가 된다. 그리고 인치를 환산한 경우는 1.8288m가 된다.

15) 구로사(俱盧舍)

구로사는 위에서 말한 활을 500개 이어 놓은 거리를 말하며 동시에 그 거리만큼의 둘레에 해당하는 물체를 뜻한다. 이는 일궁이 7척 2촌이라는 말이 있으므로 500궁은 약 3,600척 가량의 둘레를 의미한다. 따라서 일궁이 270cm이기 때문에 500궁은 1080m이다. 그리고 인치로 환산하여 적용하면 914.4m가 된다.

16) 유선나(踰繕那)

유선나(踰繕那)는 유순(由旬)이라고도 표현하며 인도에서 거리를 표시할 때 흔히 쓰이는 말이다. 이 유순은 세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40리의 거리이고, 둘째는 50리의 거리이며, 셋째는 60리의 거리를 뜻한다. 그리고 《비바사론》과 《구사론》에 의하면 8구로사를 합한 길이를 1유순이라고 한다. 이들의 기록에 의하여 유순의 길이를 가히 짐작할 수 있으며, 여기서는 유순의 길이에 해당하는 둘레만한 물체를 뜻한다. 즉 8640m이다. 이것은 20리가 조금 넘는 거리이고 인치로 환산하면 7315.2m가 조금 못되는 거리이다. 따라서 이들을 종합하면 오늘날의 인치나 m 단위가 당시에 인도에서 사용하던 단위와 차이가 생기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당시에 사용하던 단위를 먼저 찾아내고 그것을 기준으로 새롭게 단위 설정을 하는 것이 올바른 미시세계와 거시세계의 크기를 측정하는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는 비사량의 세계로 사량의 세계로서 그것을 분별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이다.

Ⅲ. 科學의 物質觀

1500년 이전의 유럽의 지배적 세계관은 대부분의 다른 문명과 같이 유기적인 것이었다. 사람들은 소형의 친밀한 집단에서 생활했으며 유기적 상관관계를 가지고 자연을 경험하고 있었다. 따라서 4대 문명의 발상지에서 시작된 기술적 발전은 어떤 과학적인 발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경험이나 어림짐작에서 비롯된 것이다. 곧 정신적 현상과 물질적 현상이 상호 의존적이었으며, 개인적 필요는 집단의 필요에 종속되는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그것은 유럽 사회뿐만 아니라 여타의 다른 사회도 마찬가지의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6세기 및 17세기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켰다. 유기적이고 생명체적이며 정신적인 우주의 기본 개념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 대치되었으며, 이 기계론적 세계관이 현대의 지배적 사상이 된 것이다. 이 발전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및 뉴턴의 업적으로 결실된 물리학과 천문학의 혁명적 변화로 이룩되었다.

그리고 18세기와 19세기는 뉴턴의 역학에 의하여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다. 뉴턴의 세계에 대한 수학적 체계는 실재(實在)의 참된 이론으로 급속히 정착되었으며, 과학자와 대중들로부터 열광을 받게 되었다. 또한 기체의 물리적 운동을 연구한 존 달톤(John Dalton)은 화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원자가설(atomic hypothesis)'을 창안하게 되었다. 그는 혼합기체의 성질을 원자의 기하학적이며 역학적 모델로 설명하고자 시도하였다. 19세기의 화학자들은 달톤의 가설을 이용하여 정확한 원자 이론을 발전시켰으며, 이것이 20세기에 와서 물리학과 화학의 개념을 통일하는 길이 된 것이다.

현대의 과학의 발전은 우리들이 몰랐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고 있다. 때로는 우리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신비감을 가지고 지켜보게 한다. 이전까지 생소하게 들렸던 행동이나 말이 친근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과학이 밝혀낸 부분 중에서 불교와 관련이 있는 한 부분을 가지고 이 장을 쓰고자 한다. 현대 과학에서 밝혀낸 물질, 즉 분자와 원자 그리고 원자핵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1. 原子論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원자와 공 말고는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겨 원자가 물질의 보이지 않는 가장 작은 구성 요소라고 생각했다. 그는 원자는 균일하고, 단단하며 무게 있고, 압축되거나 파괴되지 않으며, 원자의 형태와 크기의 차이에 따라 물질의 다양한 성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원자는 물질뿐만 아니라 감각이나 인간의 영혼 같은 성질을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원자는 각 원소의 각각의 특징을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도달할 수 있는 최소의 미립자이다. 그리스어로 '쪼갤 수 없는' 이라는 뜻의 아토모스(atomos)에서 유래된 말로 특히 화학반응에 관계하는 화학 원소의 최소 단위에 사용된다. 19세기 초에는 원자론이 화학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과학자들은 원자를 반지름이 10-10m 정도 되는 아주 작은 공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화학 이외의 방법으로 원자를 더욱 분리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원자는 더 작은 입자인 전자와 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핵은 다시 양으로 하는 양성자와 전하를 갖고 있지 않는 중성자로 되어 있다. 이 양성자와 중성자를 합해서 핵자라고 부른다.

이러한 원자 구성 입자는 2가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하나는 우주의 기본 구성 요소로서의 역할이며, 또 다른 하나는 그들을 묶어 두는 4가지 기본힘, 즉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을 전달하는 매개자로서의 역할이다.

원자 구성 입자들은 원자의 크기에 비하여 아주 적다. 즉 핵자의 크기는 10-15m정도이다. 그리고 이들 핵자의 주위는 전자가 둘러싸고 있다. 전자들은 전기적인 힘에 의해서 원자핵에 붙들어 매어져 있다. 원자핵은 양전기를 띠고 있으며, 음전기를 띤 전자들은 전기적인 힘에 의하여 둘러싸여 있으며 원자핵 둘레를 돈다. 전자에서 원자핵까지의 평균 거리는 약

10-10m이다. 이 거리가 원자의 크기를 결정한다. 원자는 작은 태양계와 비슷하다. 가운데에 원자핵(태양)이 있고, 그 둘레를 전자들(행성)이 돈다.

그리고 원자핵은 두 가지 형태의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양전기를 띤 양성자와 전기적으로 중성인 중성자라고 불리는 입자들이 그것이다. 양성자와 중성자는 둘 다 전자보다 1800배 정도 무겁다. 그리고 양성자는 원자의 특징을 결정한다. 각각의 양성자는 +1가의 양전하를 띠고 있으며 원자핵 속에 들어 있는 양성자의 수가 그 원자의 전기적 특성을 결정한다.

원자핵 속에 있는 중성자의 수는 0부터 140 이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접하는 원자들은 양성자와 중성자의 수가 비슷하다. 뿐만 아니라 어떤 화학 원소의 원자핵 속에는 항상 똑같은 수의 양성자가 있지만 같은 원소라도 중성자의 수는 다를 수 있다.

또한 양성자와 중성자는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기본 입자가 아니라 좀더 작은 쿼크라고 하는 입자들로 이루어진 복합 입자이다. 즉 쿼크는 현재 물리학자들이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입자로서 내부 구조가 없고 더 작은 구성원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점입자로 소립자라고도 하며 전자와 전하를 띠지 않는 중성미자 역시 소립자로 알려져 있다.

1)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은 인도의 원자론과 마찬가지로 질료로써 변하지 않는 진짜 존재는 흙·물·불·공기라는 4원소설을 제시하였다.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설의 개념을 확립하였고, 그의 이론은 이오니아 자연학이 주장했던 3원소에 흙을 더한 것이었다. 엠페도클레스는 세계는 영원히 분리와 결합을 반복하는데, 이것이 곧 4원소의 작용이라는 것이다.

이 이론에 대한 사고를 더욱 철저히 하여 기초적 토대를 분명히 한 사람이 데모크리토스였다. 그는 세계를 충만된 것과 공허한 것으로 나누었다. 이 충만된 것을 아톰(Atom)이라 부르며, 아톰의 의미는 더 이상 분해가 불가능한 것이라는 의미로 근대의 원자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아톰은 여러 가지 모습을 취하고 있는데 그것의 배열정도와 방향에 의해 가지각색의 다양한 세계가 완성되고 또한 감각하고 있는 현상은 아톰의 조합에 지나지 않는다.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이 근대의 원자론에도 통하고 있다는 이유로 그는 고대의 합리적 유물론의 제 1인자로 생각되어 왔다. 데모크리토스의 합리주의는 결코 자연을 단순한 물질로 보는 근대의 합리주의 그 자체가 아니며, 오히려 자연과 세계를 인간과 같은 원리를 가진 것으로 생각한 고대의 합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신화적 자연관에서 탈피하여 최초로 자연을 이해하려 노력한 철학자는 이오니아 지방의 식민도시 출신의 무역상인 탈레스(B.C 624∼546)였다. 그는 만물의 근본적인 요소, 즉 아르케는 물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제자였던 아낙시만드로스(B.C 610∼528 추정)는 아르케를 무한한 것이라고 하는 불특정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여기서 무한한 것을 세계의 아르케라고 생각한 것은, 어느 특정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원리인 것이다.

그리고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인 아낙시메네스(B.C 585∼528)는 이것을 더 확대시켜 공기가 짙어지면 바람이 되고, 바람이 짙어지면 구름이 되며, 구름이 더 짙어지면 물이 되고, 나중에는 흙과 돌이 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 만물은 운동하는 물질인 공기로 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또한 그 공기는 신체로 들어와 기식을 이루는 영혼을 이루는 것이며, 이 생각을 바탕으로 세계와 우리는 하나라는 이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아르케 추구의 열정은 피타고라스 학파와 엘레아 학파 등에 의해 추상적·형이상학적인 체계로 전개되었다.

피타고라스(B.C 571∼497) 학파는 신이 기하학자이기 때문에 세계는 합리적이고 수학적이라고 여겼고, 자연을 연구하여 자연 속에 내재되어 있는 수의 조화를 살피고 그 합리적 조화를 밝혀내어 만물의 근원을 규명하고자 했다.

원자론을 주장한 데모크리토스(B.C 460∼350)는 물질은 궁극적이고 나눌 수 없는 동질이며 크기와 형태만이 다른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빈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운동하며 수적으로 무한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는 원자는 스스로의 힘으로 운동하고 만물은 필연적으로 창조, 소멸되나 그것은 원자의 결합과 분리라고 보았으며, 진실로 존재하는 것은 원자와 원자의 변화, 운동하는 장소로서의 공허(빈 공간)라고 하고 이는 이성에 의해서만 파악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기원전 5세기 중엽 무렵 아테네는 지중해 문화의 중심이 되었고, 그리스를 중심으로 에게해 연안에서 일어났던 자연철학은 아테네 문화 속에 흡수되었다.

한편 아테네의 현인 플라톤(B.C 427∼347)은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강하게 주장된 4원소설을 발전시켜, 신이 우주의 근원인 4원소를 만들고 이를 기초로 해서 모든 물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였으며, 또한 우주가 4원소에 의해 기하학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겼다. 그는 이전의 원자론이 우주의 생성과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목적성이 없다고 본 반면에 우주의 생성과 일어나는 모든 일에 선한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의 제자이며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집대성자인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물질의 근원을 설명하기 위해 4원소 외에 4개의 성질(온·냉·건·습)을 제시하였다. 즉 4개의 성질을 적극적 성질과 소극적 성질로 나누고 뜨거움과 차가움을 적극적인 성질로, 마름과 축축함을 소극적인 성질로 나누어 상호 변환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모든 것은 원소이거나 원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원소란 다른 물체들이 그것으로 분해될 수 있고 잠재적으로나 실제적으로 그들 물체 속에 존재하고 있을 수 있지만 원소 그 자체는 여하한 더 간단한 물질이나 다른 종류로 분해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들이 모두 동일한 빠르기로 운동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형태와 크기가 다른 원자들이 빈 공간에서 같은 속도로 움직일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시하였다.

2) 중세의 원자론

에피쿠로스 학파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적을 무게라는 개념을 원자에 도입하여 형태와 크기뿐만 아니라 무게도 원자의 근본 성질이라 설명하며 데모크리토스의 학설을 수정, 보완하였으며, 에피쿠로스 학파의 영향을 받은 루크레티우스는 원자의 운동을 소용돌이치는 원자의 궤도운동에서 원자가 이탈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하여 원자의 숙명론적 운동에서 나름대로 벗어나고자 했다. 데모크리토스, 에피쿠로스 그리고 루크레티우스를 거치면서 원자론은 거듭 발전을 이루었으나 중세기에는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망각 속에 방치되었다.

원자론이 다시 부활된 것은 17∼18세기의 가상디 이후 데카르트와 갈릴레이, 보일과 호이겐스 그리고 뉴턴 등에 의해서였고, 이 시기의 원자론은 역학적, 양적인 개념만을 가지게 된다. 그 후 라이프니치는 원자론을 관념적으로 해석하여 비물질적인 단자를 물질적인 원자 대신 대입시켰다. 이후 원자론은 돌턴의 원자량의 과학적 규명과 원소 주기체계가 발견됨으로써 진일보한 원자물리학적인 단계로 진입한다.

3) 근·현대의 원자론

근대적 원자론은 영국의 돌턴에 의해 1803년에 창안되어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돌턴의 원자모형은 딱딱한 공모형인데 이 원자설로 화학반응시 질량보존의 법칙과 일정 성분비의 법칙을 설명할 수 있으며, 돌턴은 자신의 원자설을 바탕으로 배수비례의 법칙을 발표하였다. 돌턴의 가설을 보면, 첫째 더 이상 쪼갤 수 없으며, 둘째는 같은 원소의 원자는 크기·모양·질량이 같으며, 셋째는 원자들은 새로 생기거나 소멸되지 않으며, 넷째는 화합물은 서로 다른 원자가 정수비로 결합하여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돌턴의 가설 중 수정되어야 할 것은 원자는 더 작은 입자로 나눌 수 있으며, 같은 원자도 질량이 다른 것이 있다는 점이다. 원자에는 여러 종류가 존재하고 같은 종류의 원자는 모두 일정한 특성이 있고, 다른 종류의 원자는 특히 무게가 다르다는 결론을 얻는다.

영국인 톰슨은 음극선 연구의 결과로 전자의 발견을 발표하였다. 톰슨의 원자모형은 음극선 실험을 통하여 만들어졌는데 건포도가 든 푸딩 혹은 호박떡 모양이었다. 1903년에 톰슨은 음극선 실험을 통하여 전자를 발견하고 양전하 속에 양전하와 같은 수의 전자가 파묻혀 있는 입자로 정의했다. 원자에 포함된 전자의 질량과 전하량은 어떤 기체든지 상관 없이 일정하고, 전자의 질량은 수소원자 질량의 1/1000보다 작다는 것이다. 그의 전자모형은 수소원자는 양전하를 띤 양성자들 사이에 음전하를 띤 전자가 박혀 있고 그 모양이 마치 호박떡과 같았기에 호박떡 모형으로도 불린다.

그러나 이 모형으로는 원자핵의 존재를 확인한 α입자 산란 실험을 설명할 수 없었다. 톰슨에 의해 밝혀진 전자는 크기가 너무 작아서 일반 현미경으로 보기가 힘들뿐 아니라 전자현미경으로도 보기가 힘들었는데 전자를 최초로 시각화한 사람은 영국의 윌슨이었다. 그는 안개상자를 만들어 전자의 궤적을 작은 상자에 응축된 수증기 속에서 사진으로 찍어 포착하였다.

1900년대 초기까지는 원자 내부의 알려진 입자라고는 전자밖에 없었다. 물리학자들은 물질의 성질을 설명하기 위해서 원자 속에서 전자의 가능한 배열 수를 생각해야 하는데 원자는 전기적으로 중성이므로 전자로 인한 음전기를 보상할 만한 양전기가 있어야 한다고 가정하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러더퍼드였다.

러더퍼드는 α입자 산란 실험을 통해 핵을 발견하여 행성모양의 원자모형을 만들었는데,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의 내부를 조사하는데 알파입자를 사용하여 산란 실험을 실시하고 이 실험을 통해 톰슨의 원자모형을 부정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다. 즉 원자의 양전기는 톰슨이 주장했던 것처럼 원자 내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다.

러더퍼드 모형의 특징으로는 양성자와 중성자가 모두 원자핵으로 좁은 공간에 밀집되어 있으며 원자의 공간 대부분을 전자가 빠른 속도로 돌아다니며 차지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이 모형의 문제점은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을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11년 러더퍼드는 양전하가 모인 것을 원자핵이라고 명명하고 원자핵의 발견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핵의 크기도 추정하였는데 핵은 원자 크기의 1/10000 정도였다.

1919년 F. 러더퍼드는 가벼운 기체의 원자에 알파입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하던 중 이 원자들이 충격을 받으면 수소의 원자핵으로 보이는 입자를 방출하는 것을 발견했다. 다음 해에 그는 수소원자의 원자핵이 기본 입자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이 원자핵에다 첫째를 의미하는 그리스어인 프로톤(proton)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해에 그는 이외에도 전기적으로 중성인 입자가 존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발표했다. 이 입자인 중성자는 1932년 제임스 채드윅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수소 이외의 모든 원자의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를 포함하고 있다. 다만 수소 원자는 1개의 양성자로 된 원자핵과 1개의 전자로 이루어져 있다.

중성자는 전자에서도 밝혔듯이 수소 원자를 제외하고는 모든 원자핵을 이루는 구성 입자이다. 이것은 전하를 갖고 있지 않으며, 질량은 전자의 약 1840배이다. 핵에 속해 있지 않는 자유 중성자는 `베타붕괴'라고 하는 방사성 붕괴를 한다. 붕괴를 하면 양성자 1개, 전자 1개, 반중성미자1개로 분리된다. 따라서 자유 중성자는 자연 상태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며 인공적으로 생성시켜야만 한다. 이것은 전기적으로 중성자이기 때문에 원자 내의 전기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나며 원자핵과 아주 드물게 충돌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만 물질과 작용하여 복사한다.

그런데 이러한 원자핵의 설에도 불구하고 다시 물질 구성의 기본적인 구성 입자로 쿼크를 들고 있다. 즉 양성자와 중성자가 원자핵을 이루는 것과 같이 양성자와 중성자 그 자체도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현재의 이론에 따르면 쿼크는 질량을 가지고 있으며, 각 운동량의 양자역학적 기본단위의 1/2스핀을 갖는다. 쿼크는 궁극적인 기본 입자로 내부 구조가 없는 즉 더 작은 그 무엇으로 분리될 수 없는 입자이다. 쿼크는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항상 다른 쿼크들과 결합하여 생긴다.

그러나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서 전자는 핵 주위를 등속 원운동으로 회전하는데 등속 원운동은 가속운동이므로 끊임없이 전자기파를 복사하고 핵위로 떨어져 원자는 붕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원자는 순간적으로 붕괴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므로 러더퍼드의 원자모형에 문제가 제기되어 새로운 모형으로 다듬어진 궤도모형이 보어에 의해 만들어졌다.

덴마크의 보어는 양전기를 띤 핵이 있으면 전자는 핵이 끌어당겨서 마치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돌 듯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고 이런 운동을 하는 전자는 곧 전자기 복사선을 방출하면서 에너지를 잃고 원자핵으로 떨어져 붕괴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딜레마에 고민하고 있었다. 보어는 독일의 프랭크에 의해 제시된 불연속적 흑체복사 에너지 개념에 착안하여 특정한 상태에서 물질이 빛을 방사하지 않는 현상이나 전자가 순간적으로 핵위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려 했다.

보어가 1913년에 발표한 모형은 궤도모형이며 수소원자의 스펙트럼 분석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의 일정한 궤도만을 원운동하는 모형으로 정의하였는데, 수소원자의 스펙트럼은 설명할 수 있었으나 전자수가 많은 스펙트럼은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단점이 있다.

현대의 원자모형은 양자역학에 토대를 두고 만들어졌는데, 원자 내의 전자의 위치를 기술하고자 할 때, 독일의 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는 입자의 속도와 위치를 정확히 측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러한 측정에는 반드시 불확실성이 내재한다는 것을 수학적으로 보여주었다.

특정 순간에 원자 내에서 전자의 위치를 알거나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단순히 확률로써만 표현되며 따라서 전자 확률 개념에 자주 쓰이는 개념이 전자구름인데 이것은 마치 핵 주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하며 이를 점 밀도 그림으로 표시하면 구름모양의 흐릿한 모습으로 표현된다. 확률이 높은 곳에서 전하가 높고 전자밀도가 크다.

1964년에 미국의 머리 겔만은 모든 중간자가 1개의 쿼크와 1개의 반쿼크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중입자는 3개의 쿼크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간단한 구상을 모형으로 제시했다. 또한 각각 구별되는 향을 가진 3가지 종류의 쿼크들이 있다고 가정했다. 이 3가지 쿼크들은 현재 u(up), d(down), s(strange)로 흔히 표시되고 있다. 각각은 분수의 전자 전하를 가진다. 즉 전자의 전하보다 작다. u와 d쿼크는 양성자와 중성자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되며 따라서 보통 물질에서 발견되는 것들이다. s쿼크는 오메가 입자와 보통 물질에는 없는 극히 짧은 수명을 갖는 원자 구성 입자들이다.

쿼크들이 서로 가까이 있을 때 글루온에 의하여 전달되는 결합력은 약하다. 그리고 이들 쿼크는 양성자의 지름인 10-15m의 거리에서 자유롭게 움직인다. 그런데 양성자에서 쿼크들을 떼어 내려고 하면 그 결합력은 강해진다. 따라서 한 쿼크가 가속 입자에 의해서 충격을 받은 후 옆의 쿼크들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 글루온들은 쿼크의 운동으로부터 얻은 에너지를 이용해 더 많은 글루온을 만들어낸다. 이 현상은 상호 작용하는 물체들 사이의 거리의 제곱에 따라서 더 약해지는 전자기력과는 대조된다.

2. 分子

분자는 물질이 그 성질을 보유할 수 있는 최소의 단위이다. 즉 고유한 특성을 가지고 하나의 단위로 작용할 수 있는 원자들의 결합체이며, 일정한 질량과 구조 그리고 원자 조성을 가진다. 이러한 분자는 매우 간단한 것도 있으며, 반대로 수천 개의 원자로 이루어진 매우 복잡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산소와 수소 같은 것은 원자가 두 개로 이루어져 있으며, 헬륨이나 네온 같은 기체는 한 개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천연고무의 분자는 약 7만 5천 개의 탄소 원자와 약 12만 개의 수소 원자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분자의 길이는 각각의 상태에 따라 다르다. 즉 물분자처럼 간단한 분자는 길이가 1억분의 3, 4cm밖에 안되지만, 고무의 분자는 길이가 그 수천 배나 된다고 한다.

분자는 수나 종류의 변화 없이 물리적 변화를 할 수도 있으나 화학반응을 통해 변형될 수도 있다. 분자의 총괄적인 화학작용은 분자를 이루는 원자들과 그들 사이의 화학결합의 특성에 의해 결정된다. 전자가 둘 이상의 원자핵의 인력을 동시에 받아 생기는 결합은 원자핵 간거리를 가깝게 한다. 결합이 생기거나 끊어지는 모든 화학반응은 원자의 전자 구조상 변화로 설명될 수 있다.

Ⅳ. 佛敎와 科學의 物質觀 比較

위에서 불교와 과학의 물질관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그것은 단지 이론으로만 발전된 것이 아니고, 과학의 경우에는 실험에 의하여 확인된 것이다.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 설정된 것이 아니지만 극미는 원자와 크기를 비교할 때 거의 같다. 따라서 극미 자체를 원자론으로 봐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과학에서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원자를 구성하는 새로운 물질 즉 원자핵을 발견했으며, 더 나아가 전자를 비롯한 양성자와 중성자를 발견했다. 양성자는 다시 쿼크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즉 극미는 극미로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극미를 구성하고 있는 새로운 입자가 있다는 것이다.

극미는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더 이상 분쇄하거나 파괴할 수 없으며, 버리거나 만질 수도 없으며, 더 분쇄한다고 한다면 공이 되어 버린다고 하는 불교의 설이 이제 과학의 실험에 의하여 정면으로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다만 서구의 과학도 18세기 이전에는 원자설로서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새로운 물질의 형성에 대한 연구가 성과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 물리학에서 물질의 가장 미세한 소립자인 광량자의 본질이 불교에서 물질의 근본으로 삼는 금진에 비유된다고 한다.

금진(金塵)의 구조는 우주의 본질인 물심일여(物心一如)의 심체(心體)에는 본래로 지(地)·수(水)·화(火)·풍(風) 사대(四大)의 사성(四性)과 사상(四相)이 갖추어 있는데 그 사성과 사상이 화융(和融)하여 일극미(一極微)를 이루어 서로 분리할 수 없으므로 팔사구생(八事俱生)하여 수일불멸(隨一不滅)이라 칭한다. 이 극미(極微)를 사방상하(四方上下)의 육방과 중심의 칠미(七微)가 합성되어 처음으로 천안소견(天眼所見)의 아뇩색(阿 色)이 되는데 바로 금진이다.

이 금진은 천안(天眼)과 윤왕안(輪王眼)과 불과(佛果)를 득한 보살안(菩薩眼)에만 견득할 수 있다. 금진 곧 일아뇩색은 금중에서 왕래하여도 무장무애(無障無碍)하며 백사십의 사체공덕(事體功德)을 갖추고 있다. 또한 원상하여 다시 생멸이 없고 공겁시(空劫時)에는 이산(離散)하여 공중에 부유하나 체법(體法)은 항유(恒有)하며 그 작용에 있어서 생멸 무상하다.

《大日經疏一·俱舍論光記·勝論》

따라서 물질의 구성 자체를 견성오도한 사람이 볼 수 있는가 아니면 범부가 볼 수 있는가에 따라 구별하고 있다. 즉 성인의 눈에는 보이나 범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금진이며, 금진 이하의 과정은 색계와 무색계진으로서 범부들은 알지 못한다고 한다.

위에서 불교의 물질의 단위와 과학에서 분자와 원자의 단위를 설정했다. 이로써 비교를 한다면 원통불법의 요체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는 상이한 점이 있다. 우선 금진을 원자핵에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진은 원자핵 주위를 감싸고 있는 전자나 양성자와 중성자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극미는 현대적인 용어로 쿼크에 비유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비유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즉 원자의 크기는 10-10m로, 1척을 30cm로 계산하여 극미의 크기인 1.13×-11m나 18인치를 일주로 하여 계산했을 때 9.63×10-12m와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핵자의 크기는 10-15로 차이가 난다. 따라서 여기에 관한 연구가 계속 진행되어 확실한 1척의 기준이나 인치에 대한 기준이 제시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Ⅴ. 佛敎의 時間과 宇宙觀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는 많은 것은 항하사수와 같은 말이 있으며, 시간적으로 짧은 말은 찰나가 있다. 그리고 크다는 것은 삼천대천세계라는 말이 있다. 이는 경전에 자주 사용되는 말로 우리도 그러한 표현을 종종한다. 그러나 천체가 구성되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구성된 천체의 크기나 모양새 혹은 생성에서 소멸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천체가 건설되는 과정과 생성에서 소멸에 이르는 과정을 경전에 근거하여 살펴보고 우주의 크기를 어느 정도로 하고 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1. 數와 時間觀

구사론(俱舍論)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에 관한 것을 들어보면,

如彼經言 有一無餘數始爲一 一十爲十 十十爲百 十百爲千 十千爲萬 十萬爲洛叉 十洛叉爲度洛叉 十度洛叉爲俱 十俱 爲末陀 十末陀爲阿庾多 十阿庾多爲大阿庾多 十大阿庾多爲那庾多 十那庾多爲大那庾多 十大那庾多爲鉢羅庾多 十鉢羅庾多爲大鉢羅庾多 十大鉢羅庾多爲矜 羅 十矜 羅爲大矜 羅 十大矜 羅爲頻跋羅 十頻跋羅爲大頻跋羅 十大頻跋羅爲阿芻婆 十阿芻婆爲大阿芻婆 十大阿芻婆爲毘婆訶 十毘婆訶爲大毘婆訶 十大毘婆訶爲  伽 十  伽爲大  伽 十大   伽爲婆喝那 十婆喝那爲大婆喝那 十大婆喝那位地致婆 十地致婆爲大地致婆 十大地致婆爲뫈都 十뫈都爲大뫈都 十大뫈都爲 臘婆 十 臘婆爲 臘婆 十大 臘婆爲印達羅 十印達羅爲大印達羅 十大印達羅爲三磨鉢眈 十三磨鉢眈爲大三磨鉢眈 十大三磨鉢眈位揭底 十揭底爲大揭底 十大揭底爲拈筏羅  十拈筏羅 爲大拈筏羅  十大拈筏羅 爲 達羅 十 達羅爲大 達羅 十大 達羅爲跋藍 十跋藍爲大跋藍 十大跋藍爲珊若 十珊若爲大珊若 十大珊若爲臻步多 十臻步多爲大臻步多 十大臻步多爲  十跋邏  爲大跋邏  十大跋邏  爲阿僧企耶 於此數中忘失餘八 若數大劫至此數中阿僧企耶名劫無數 此劫無數復積至三 經中說爲三劫無數 非諸算計不能數知 故得說爲三劫無數.

라고 하였다. 즉 하나의 남김 없는 수(數) 곧 무여수(無餘數)가 일이 되며 일을 열한 것이 십이 되고 십을 열한 것이 백이 되며 운운하여 십대발라참(十大跋邏 )이 아승기야(阿僧企耶)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수 가운데 나머지 여덟은 잊었다고 하였다. 이는 구사론의 저자인 세친이 잊은 것인지 아니면 전해 오던 설이 끊긴 것인지 여기에서는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 따르면 현재 우리는 수의 단위에서 경 이상은 셀 수가 없다. 아승기야는 아승지(阿僧 )라고도 하는데, 모든 산수의 계산으로는 능히 세어 알 수 없으므로 삼무수겁(三無數劫)이라고 한다는 것은 현재의 우리의 식견으로도 짐작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냥 어마어마하게 큰 수 혹은 많은 수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시간의 단위로 가장 짧은 것을 찰나(刹那)라고 한다. 그리고 보다 긴 것은 달찰나( 刹那)와 납박(臘縛)이라고 하며, 이것이 모여 주야(晝夜)를 이룬다고 한다. 《구사론》에서 이러한 시간의 단위를 살펴보면,

論曰 刹那百二十爲 刹那 此六十 刹那爲一臘縛 三十臘縛爲一牟呼栗多 三十牟呼栗多爲一晝夜 此晝夜有時增有時減有時等 三十晝夜爲一月 總十二月爲一年 於一年中分爲三際.

라고 하고 있다. 즉 백이십찰나는 일달찰나(一 刹那)가 되며 육십달찰나는 일랍박(一臘縛)이 되고 삼십납박이 일모호율다(一牟呼栗多)가 된다. 그리고 삼십모호율다가 일주야(一晝夜)가 되기 때문에 현재의 하루 24시간으로 계산하면 찰나에 대한 시간의 단위도 계산할 수가 있다. 여기에서 일주야는 24시간(86400초)이기 때문에 삼십모호율다는 86400초가 되며, 삼십납박이 일모호율다가 되기 때문에 2880초가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다시 일납박 즉 육십달찰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96초가 되며, 일달찰나는 0.4초가 된다. 그리고 일찰나는 0.013초가 된다. 이와 같이 짧은 시간의 단위는 눈 깜빡하는 것과 같다고 하나, 오히려 빠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시간의 단위로 긴 것은 겁(劫)이 있다. 앞에서도 천체의 설명에 겁이 사용되었지만 겁이란 것은 아주 긴 시간의 단위로 광겁(曠劫) 혹은 영겁(永劫)이라고도 한다. 《구사론》에 의하면 "이 주의 사람의 수명이 무량한 때를 지나서 주겁의 처음에 이르러서 수명이 점점 줄어들어 열 살에 이르는 동안을 이름하여 처음의 일주중겁이라 한다. 이 뒤의 18겁은 다 증감이 있다. 즉 10세에서 늘어나 8만세에 이르러, 다시 8만세로부터 줄어서 10세에 이르는데 이를 이름하여 제이중겁이라고 하며 이 뒤의 17중겁도 이와 같다. 일체의 겁증은 8만을 지남이 없고 일체의 겁감은 오직 10세가 그 끝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사람의 수명이 10세에서 백 년마다 한 살씩 늘어 8만 4천 세가 되는 기간을 일증겁이라 하며 한 번 줄었다가 늘어나는 기간을 일소겁이라 한다. 그리고 겁의 성질은 오온이라고 한다[劫性是何 謂唯五蘊].

김용정 박사는 《과학과 불교》에서 1소겁이란 2천 6백만 년에서 2천 년을 감한 수 즉 1천 5백 9십 9만 8천 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1중겁은 그 스무 배인 약 3억 2천만 년이라고 하며, 1대겁은 중겁을 네 개 합친 것으로서 이 우주의 시초로 종말의 길이를 삼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2. 世界와 宇宙觀

경전에 많이 등장하는 세계에 대한 개념을 찾아보자. 먼저 관무량수경에 나오는 무량수불의 크기에 대해서 살펴보면, 불신의 키는 육십만억 나유타 항하사 유순이라고 한다. 그리고 관세음보살의 키는 팔십만억 나유타 유순이며, 대세지보살의 크기는 관세음보살과 같다고 한다. 이러한 숫자를 어떻게 파악할 것이며, 수량으로 환산할 수는 있는지 의심스럽다. 다행히 시도를 해본 사람이 있어 그 크기를 현대적인 수치로 옮겨 적어 본다.

나유타란 천억 또는 만억을 뜻한다. 그런데 나유타 앞에 이미 만억이란 숫자가 나오고, 이것이 무한히 큰부처의 키를 나타내는 데 쓰이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만억의 뜻으로 사용할 것이며, 유순은 30리 혹은 40리에 해당하는 인도의 거리 단위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많다는 뜻이므로 16km로 생각하고 계산하면,

80만억 나유타 유순은

80×만억×만억×16

=80×10,000×100,000,000×10,000×100,000,000×16km

=1,280,000,000,000,000,000,000,000,000km

=1.28×1027m가 된다.(우주 반지름의 9.1×10³m, 은하계 반지름의 2.7×109)

그런데 우주의 반지름은 150억 광년이다. 따라서 이것을 계산해 보면,

150억년×30만km

=15,000,000,000(년)×365(일)×24(시간)×60(분)×60(초)×300,000km

=140,000,000,000,000,000,000,000km

=1.4×1023m이다. 그리고 은하계의 반지름은 5만 광년이므로,

=50,000(년)×365(일)×24(시간)×60(분)×60(초)×300,000km

=470,000,000,000,000,000

=4.7×10¹7이다.

우주는 성(成)·주(住)·괴(壞)·공(空)의 과정을 통하여 운전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천체가 이 우주에는 부지기수라고 하며 삼천대천세계라는 말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구사론(俱舍論)》 권11에 의하면 천 개의 사대주와 내지 범세 등을 합쳐서 일소천세계라고 하며, 일소천세계를 천배하여 일중천세계라 한다. 그리고 천 개의 중천세계를 모두 합쳐서 일대천세계라고 한다. 이들 세계는 함께 성립되고 함께 괴멸하게 된다.

그런데 앞서 유순이나 구로사와 같은 단위를 살펴보았지만, 소천세계나 중천세계 그리고 대천세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아가 삼천대천세계는 어느 정도의 크기를 말하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천체가 건설되는 과정을 보면 중생들의 업력이 작용하게 된다고 한다. 즉 구사론에 보면 게송으로 다음과 같이 설해 놓았다.

安立器世間 風輪最居下 其量廣無數 厚十六洛叉 次上水輪深 十一億二萬

下八洛叉水 餘應結成金 此水金輪廣 徑十二洛叉 三千四百半 周圍此三倍.

기세간이 마련되었는데 풍륜이 가장 밑에 있으면서

그의 분량과 넓이는 무수하며 두께는 십육억 유선나이네

다음 그 위에는 수륜이 있는데 깊이가 십일억 이만 유선나로서

밑의 팔억 유선나는 물이고 나머지는 엉키어 금륜 이루었네

이 수륜과 금륜의 넓이와 지름은 십이억 삼천 사백반 유선나이며

주위는 그 수의 삼배가 되네.

그리고 논하기를 이 삼천대천세계는 이와 같이 건립되어 그 형체와 분량이 같지않다고 한다. 또한 모든 유정들의 증상하는 업력으로 말미암아 먼저 최하위에서 허공에 의지하여 풍륜이 생기하게 되는데, 금강으로도 분쇄할 수 없는 견고한 풍륜이 허공에 의지하여 생기며 그 풍륜의 넓이는 무수한 것이다. 이러한 문헌은 《대비바사론》과 《구사론》에서 보이고 있는 바, 그것을 비교해 보면,

謂諸有情業增上力 先於最下依止虛空有風輪生廣無數 厚十六億踰繕那 如是風輪其體堅密 假說有一大諾健那 以金剛輪奮威懸繫 金剛有碎風輪無損.

如是世界壞經久時 於下空中有微風起 二十空劫此時已度 二十成劫從此爲初 所起微風漸廣漸厚 時經久遠盤結成輪 厚十六億踰繕那量 廣則無數 其體堅密 假說有一大諾健那 以金剛輪奮威懸繫 金剛有碎風輪無損.

라고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유정들의 증상하는 업력으로 말미암아 큰 구름과 비를 일으켜서 먼저 건설된 풍륜 위에 쏟아 붓게 된다. 그리고 물방울은 마치 차축과 같이 생겼으며 그것이 적집되어 윤을 이루었기 때문에 이를 수륜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직 수륜이 응결되지 않았을 때에는 깊이가 십일억 이만 유선나의 양이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천체가 생성 유지되고 소멸되어 없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경전에는 자세하게 설해 놓았다. 이는 구사론에서 자세하게 말해지고 있는데, 하나의 천체가 생성되는 기간을 성겁(成劫)이라 한다. 그러나 천체 자체도 하나의 물체이기 때문에 자체의 변화를 일으켜서 파괴하게 되는데 그 파괴되는 기간을 괴겁(壞劫)이라 하며, 파괴된 천체는 모습만 없어질 뿐이며 실은 무형의 성질로 남아 있게 되는데 그것이 공간에 남아 있는 기간을 공겁(空劫)이라 한다.

應知有四劫 謂壞成中大 壞從獄不生 至外器都盡 成劫從風起 至地獄初生

中劫從無量 減至壽唯十 此增減十八 後增至八萬 如是成已住 名中二十劫

成壞壞已空 時皆等住劫 八十中大劫 大劫三無數.

라고 하였다. 즉 성겁은 풍륜부터 생기기 시작하여 지옥까지 모두 생기는 것이며, 괴겁은 지옥까지 생기지 아니하고 바깥 세계가 모두 없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이러한 구사론의 설명은 모든 현상을 성(成)·주(住)·괴(壞)·공(空)의 관계, 즉 윤회의 흐름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주의 생성(生成)에서 공(空)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알아보았다. 다음에는 우주의 크기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는 무한히 크다. 따라서 그것을 숫자로 표현하고자 할 때는 몇십억이라는 말이 흔히 사용된다. 그러면 불교에서는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그런데 이러한 관계 외에도 삼천대천세계가 있다. 즉 《구사론》에는,

논하건대 천의 사대주(四大洲)와 내지 천의 범천(梵天)을 통틀어 일소천(一小千)이라 하고, 천소천(千小千)을 일중천(一中千)세계라 하며 천중천계(千中千界)를 통틀어 일대천세계(一大千世界)라 한다. 이와 같이 대천세계(大千世界)는 동일하게 이루어지고 동일하게 무너진다(論曰 千四大洲乃至梵世 如是總說爲一小千 千倍小千名一中千界 千中千界總名一大千 如是大千同成同壞).

라고 삼천대천세계의 크기를 설명하였다. 사대주란 것은 첫째는 남섬부주(南贍部洲)요, 둘째는 동승신주(東勝身洲)이며, 셋째는 서우화주(西牛貨洲)요, 넷째는 북구로주(北俱盧洲)이다. 이들의 모양과 크기를 말하면 남섬부주는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으며 삼면은 넓이가 같은데 그 모양은 수레와 같아서 남쪽만은 넓이가 삼유선나 반이 되고 삼면에는 각각 이천 유선나가 된다. 그리고 오직 이 주(洲) 가운데에 금강의 자리가 있어 위로는 땅끝까지 닿고 아래로는 금륜에까지 이른다고 한다. 그리고 동승신주는 동쪽은 좁고 서쪽은 넓으며 삼면의 양은 같고 모양은 반달과 같다. 동쪽은 삼백오십 유선나이고 나머지 삼면은 각각 이천 유선나이다. 그리고 서우화주는 모양이 둥근 달과 같고 지름은 이천오백 유선나이며, 둘레는 칠천반 유선나이다. 북구로주는 모양이 모난 자리(방좌)와 같고, 사면의 양은 같아서 사면이 모두 이천 유선나라고 한다. 그러나 이들의 크기로 삼천대천세계의 크기를 짐작하기란 매우 어렵다. 즉 이들 사주에는 또한 각기 이중주가 있으며 섬부주의 밑으로 이만 유선나를 지나면 아비지옥이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내용들을 다 열거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여기서는 사대주에 대한 간략한 설명으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구사론에는 삼천대천세계를 설명하고 있는데, 삼천대천세계는 유정세간과 기세간이 있으며, 금륜(金輪)의 위에 구산(九山)이 있는데 묘고산(妙高山)이 그 가운데 있으며 나머지 여덟의 산은 묘고산을 둘러 있다. 그리고 이 산들의 가운데는 또한 여덟 바다가 있는데 전의 7바다에는 팔공덕수(八功德水)가 있으며 여덟 번째 바다 가운데는 사면으로 묘고산을 상대로 하여 사대주가 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크기를 말하고 있는데, 먼저 구산을 보면 중앙에는 묘고산(소미로)이 있으며 다음은 유건달라산이며 이사타라산과 갈지락가산 그리고 소달리사나산과 알습박갈라산과 비나담가산과 니민달라산이다. 이들의 크기는 물에 들어간 것이 똑같이 팔만 유선나이고 물 밖에 나온 것은 소미로산이 팔만 유선나이고 그 밖의 여덟 산은 반반으로 점차 낮아진다. 즉 처음의 유건달라산은 사만 유선나이고 최후의 철위산은 삼백십이반 유선나가 나왔다고 한다. 즉 물 위에 나온 산의 크기는 유건달라산이 사만 유선나이고 이사타라산이 이만 유선나이며, 갈지락가산은 만 유선나이다. 그리고 소달리사나산은 오천 유선나이며 알습박갈라산은 이천오백 유선나이고 비나담가산은 천이백오십 유선나이다. 니민달라산은 육백이십오 유선나이며 철위산은 삼백십이반 유선나가 나왔다. 그리고 위의 칠산 밖으로 사대주가 있으며 철위산은 사대주 밖으로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삼천대천세계의 크기를 상상하거나 표현한다는 것은 현재의 입장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Ⅵ. 結論

위에서 불교의 물질관과 과학의 물질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뿐만 아니라 불교의 우주관과 시간관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알아보았다. 앞으로 계속 연구해 볼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연구에 있어서 자료가 축적되지 못했으며, 경전적 근거를 명확하게 모두 제시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를 함에 있어 무엇보다 깊이 생각할 것은 오늘날 서구에서 각광받고 있다는 불교가 과학에, 특히 물리학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과학의 발전과 불교학의 발전에 있어서 상반되는 문제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은 불교학에만 치우쳐서 완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계속적으로 물리학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불교와 과학에서 물질을 보는 관점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물질은 끊임없이 반복하여 성(成)·주(住)·괴(壞)·공(空)을 되풀이하는데, 고대 그리스의 엠페도클레스는 4원소설을 제기하였다. 이는 불교의 4대설과 틀리지 않으며, F. 카프라는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에서 현대 물리학자는 물질이 수동적이고 비활성적인 것이 결코 아니라, 지속적인 무도와 진동 운동을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며, 이 무도와 진동 운동의 율동적 모형은 분자, 원자 및 핵의 형태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초미시적 차원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원자핵의 연구에서 양자와 중성자의 속도가 광속도와 비슷한 고속도라는 결정적인 경지에 도달한다고 한다.

나는 물질의 구성을 사대로 보는 불교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에너지(堅·濕·煖·動)와 물질(色:地·水·火·風)이라는 구성 요소는 어떠한 것에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에서도 에너지는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에너지는 모든 물체의 운동에 기본이 되며, 따라서 에너지가 없다면 물체는 상호 조합되거나 분산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견(堅)·난(煖)·습(濕)·동(動)이라는 사대의 성질은 다만 표현의 차이에 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리고 우주의 반지름을 150억 광년으로 보고 있는 천체 물리학과 삼천대천세계를 설한 불교의 우주관에는 아직도 연구할 바가 많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시 연구할 필요가 있으며, 앞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리라 생각한다.

불교의 물질관이나 시간관 그리고 우주관에 대한 것은 비사량(非思量)의 세계이다. 따라서 그것을 수의 단위로 환산한다는 자체가 불설(佛說)에 어긋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즉 비사량의 세계를 알음알이로 표현한다는 것이 얼마나 부처님의 말씀에 가까이 다가가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미시세계(微視世界)의 찰나나 극미의 단위, 거시세계(巨視世界)의 유순(由旬)이나 겁(劫) 그리고 삼천대천세계는 사량분별(思量分別)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다만 현대 과학에서는 그것을 수나 단위로 설명하기에 수의 단위로 설명을 해 보았을 뿐이다.

좁은 소견으로 《구사론》과 《비바사론》을 주요 교재로 하여 불교의 물질관에 대해서 나아가 시간과 우주관에 대해서 살펴보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다. 다만 여기에서 하나의 성과가 있다면 고대 그리스의 원자론이나 불교의 물질관이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사점으로 인하여 오늘날 서구의 과학계―특히 물리학계―가 불교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서구 물리학계의 이러한 관심을 단지 물리학계의 관심으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불교계도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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